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04화 (204/411)

204. 협업

오규철 셰프가 권수연에게 물었다.

“우리 방송에 출연한 로봇 셰프가 누군지 모르시는군요?”

“당연히 모르죠. 로봇 가면을 썼는데요.”

“그렇죠. 그런데 숙녀분께서는 나강인 씨와 어떤….”

나강인이 설명했다.

“친구입니다.”

“그러시군요.”

“정말 대단한 걸 연구하는 과학자죠.”

“아. 훌륭하십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리액션에 영혼이 없습니다. 농담인 줄 아나 봅니다. 권수연이 얼마나 대단한 과학자인지 오규철 셰프는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오규철이 나강인을 슬쩍 본 후에 빙그레 웃으며 권수연의 질문에 대답했다.

“로봇 셰프가 누군지 말씀드리면 큰일 나죠. 우승하거나 탈락할 때까지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게 가면 셰프의 방송 콘셉트인데요. 하하하.”

권수연도 이름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물어본 건 아니다.

“그쵸. 그러면요. 로봇 셰프가 또 나오나요? 지난번 방송에는 다른 분이 나오시던데요. 그건 말씀해주실 수 있잖아요.”

“우리 방송에 다시 악당이 나타나면 짜잔 하고 나오시겠죠?”

“와. 그땐 진짜 멋지겠다.”

오규철이 나강인을 다시 슬쩍 보았다.

“방송에 다시 나오면 진짜 멋질 겁니다.”

“그 산과 강 디저트를 꼭 먹어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그분이 가면을 벗어야 하잖아요. 누군지 알아야 주문할 수 있으니까요. 아쉽다.”

오규철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가만? 이거 혹시 강인 씨를 다시 출연시킬 기회인가?’

오규철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그는 권수연을 보며 씩 웃었다.

“손님에게는 기회가 올지도 모르죠.”

“나중에 가면 벗는 날이 오면요?”

“그게 아니라, 평가단 스무 명에 포함되면 되니까요.”

권수연은 병원과 집에서 회복하는 동안 인터넷 서핑을 많이 했다.

“네? 그거 추첨 아니에요? 저도 평가단 신청을 했지만 떨어졌는데요?”

“그동안은 추첨으로 평가단을 구성했지만, 이제부터는 추천도 포함할 계획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이미 그렇게 가기로 결정됐습니다.”

“그럼 추천은 어떻게….”

“평가단 절반을 요식업계 종사자로 채운다든지, 연예인 평가단을 추가한다든지, 아니면 제작진이 직접 선정한다든지, 다양한 직업군을 섞는다든지. 여러 가지 계획이 있습니다.”

권수연이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어머! 그럼 혹시 저한테도 기회가 있나요?”

“물론이죠. 과학자의 관점에서 요리를 맛보는 것도 신선하고 좋으니까요.”

“시켜만 주시면 저도 꼭 하고 싶어요.”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하하하.”

오규철이 나강인을 보며 씩 웃은 후에 주방으로 돌아갔다.

나강인이 말했다.

“오 셰프님이 머리를 쓰시네.”

- 전 찬성입니다.

“너는 상대 선수의 요리가 먹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 당연히 그 조건을 추가한 상태에서 출연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그 방송에 나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권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강인아. 너 진짜 유명한 사람 많이 안다. 스칼렛 켈리도 알고, 오규철 셰프님도 알고. 저분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우연히 알게 됐어.”

바로 이곳에서 자칼 일당을 쓸어버리면서 알게 됐다.

“너 부업으로 무술감독도 한다고 했지? 방송 쪽에서 만났구나?”

“내가 무술감독을 한다고 너한테 말했나?”

“연지한테 들었어.”

AI 전지인이 불평했다.

- 이연지는 입이 너무 쌉니다.

“친화력이 좋은 거야. 걔 친화력은 국가대표급이잖아.”

- 그건 맞습니다.

나강인이 말을 돌렸다.

“연구는 다시 시작하니까 어때?”

권수연이 활짝 웃었다.

“엄청 신나.”

“잘 될 것 같아?”

“응. 아픈 기간 동안 구상만 하던 걸 실제로 적용해보려고. 아마 잘될 거야.”

AI 전지인이 뿌듯해했다.

- 이라미드 태양전지 최초 개발자를 우리가 살려냈습니다. 그 기술은 제 메모리에 기록된 것보다 훨씬 빨리 완성될 겁니다. 자랑스러워하십시오.

“내가 아니라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AI 전지인의 초기 메모리에는 그 기술이 다시 발굴되어 완성되는 건 30년 후라고 기록되어 있다.

- 최초 개발자가 직접 연구하면 그 기술이 얼마나 빨리 완성될지 궁금합니다.

나강인이 권수연에게 물었다.

“구상한 게 어떤 건데?”

권수연 신나서 연구의 기술적인 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1분도 지나기 전에 나강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AI 전지인에게 물어보았다.

“알겠냐?”

-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잘 되고 있나 봅니다.

“그치? 나도 그건 알아들었다.”

어차피 더 들어봐야 의미가 없다. 나강인이 권수연의 말을 끊었다.

“어. 그래. 잘하고 있구나. 그런데 오늘은 밥 먹으러 왔으니까 일 이야기는 하지 말자. 여기 무척 맛있어.”

권수연도 그녀의 실수를 깨달았다.

‘나만 너무 신나서 연구 이야기만 잔뜩 했네. 강인이는 연예계에서 일하니까 이쪽 분야는 관심이 없을 텐데.’

그녀가 방긋 웃었다.

“맞아. 여기 진짜 맛있어.”

***

스칼렛은 이튿날 저녁때 나강인을 다시 만났다.

그녀가 따지듯이 물었다.

“어제 커피는 맛있었어요?”

“같은 카페에서 마셨으니까 맛을 알 텐데요.”

“흥. 저녁은 또 누구랑 만났어요? 신은하 씨는 어제 생방송에 나왔으니까 아닐 테고.”

저녁은 권수연이 밥을 샀다. 명분은 나강인이 수술실에 들어와서 도와준 게 고마워서였다. 나강인이 닥터 노네임이라는 건 권수연도 모른다.

“내 일에 관심이 많으시네.”

“많죠. 엄청 많죠.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요.”

스칼렛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강인을 쳐다보았다.

“강인 씨가 진짜로 드래곤 플레이트의 개발자예요?”

그녀는 그 이야기를 어제 철인기공 이태성 본부장에게 들었다. 라이센스 협의도 오늘 이 만남에서 하기로 했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진짜입니다만?”

스칼렛이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어 나강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 나랑 같이 일 여러 개 하자.”

나강인이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밥 산다고 해서 왔는데, 그냥 가야겠다.”

스칼렛이 얼른 테이블 위에 엎드리며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제시카가 옆자리에서 한숨을 쉰 후에 말했다.

“나강인 씨를 스카우트하겠다고 제안하는 거예요. 조건은 뭐든 다 맞춰드릴게요.”

“스카우트 제안은 지난번에도 거절했습니다만?”

“그때는 경호원으로 스카우트하는 거였죠. 드래곤 플래이트의 개발자라는 걸 알았으니까 상황이 변했어요.”

스칼렛이 얼른 허리를 펴며 말했다.

“맞아요.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만 할 게 아니라, 같이 연구도 하고, 같이 다니면서 내 경호원도 하고, 그러다 같이 놀러도 다니….”

“거절합니다.”

스칼렛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아니, 왜요?”

“난 여기서 할 일이 있어서.”

AI 전지인이 말했다.

- 스칼렛이 계속 따라다니면 임무 수행에 방해됩니다. 내치십시오.

스칼렛이 입술을 내밀고 툴툴댔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미국에서도 다 할 수 있을 텐데. 한국에서만 해야 하는 일은 가끔 한국에 들어와서 하면 되고.”

제시카가 다시 나섰다.

“나강인 씨가 거절할 거라고 예상했어요.”

“아냐! 난 잘하면 될 줄 알았다고!”

제시카가 스칼렛을 옆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일 이야기를 하죠. 우리는 드래곤 플레이트의 미국 라이센스 생산을 원해요. 나강인 씨가 설계도를 공급해주면 제작과 판매는 우리가 해결할게요. 철인기공이 지금 하듯이요.”

“그걸 만들려면 해결할 문제가 많을 텐데요?”

“생산기술은 철인기공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요. 대외적으로는 오메가테크가 철인기공으로부터 라이센스와 기술지원을 받는 거죠.”

“철인기공이 오메가테크와 일하고 싶나 보네.”

“맞아요. 전부터 우리와 협업하기를 원했죠. 이번 일이 첫 공동사업이 될 거예요.”

“그런데 그거야 철인기공의 입장이고요.”

이 협업이 성립하려면 나강인이 오메가테크에도 개인특화형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도면을 계속 공급해야 한다. 단발성으로 끝나면 협업의 의미가 없다.

게다가 제작 과정에서 철인 기공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철인기공도 처음에는 여러 문제가 생겨 고생했다.

오메가테크에 그런 문제가 생기면, 철인기공 때처럼 나강인이 도와줘야 할 수도 있다.

“내가 요즘 좀 바빠서, 오메가테크 것까지 설계할 시간이 없습니다.”

스칼렛이 툴툴댔다.

“너무해요. 유나린 박사를 먼저 가로챘으면 이 정도는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녜요?”

“음? 유 박사를 스카우트할 생각이 아직도 있습니까?”

“당연한 거 아녜요? 어제 만나서 직접 스카우트제의를 했는데요.”

“아. 그래서 한국대학교에 온 거군요.”

“당연하죠. 나강인 씨도 어제 그래서 거기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제의한 결과는요?”

“거절하던데요. 선수 친 사람이 나강인 씨만 아니었어도 어떻게든 데려가고 싶었어요. 강인 씨가 전화로 유나린 박사에 관해 물어봤을 때는, 설마 이렇게 먼저 빼갈 줄은 몰랐다고요.”

“그건 뭐,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유나린 박사는 그 연구를 해야 해요.”

AI 전지인이 맞장구쳤다.

- 그 연구를 해야 노벨상을 탑니다.

스칼렛은 궁금했다.

“진짜 어디에 그렇게 꽂힌 거예요? 무슨 연구인지 설명이라고 좀 해줘요.”

스칼렛 켈리는 오메가테크의 사장이면서 동시에 학술지에 논문이 등재되는 과학자다. 그녀의 논문은 권수연이 감탄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 기술적인 부분이 대화의 주제가 되면 밑천이 당장 들통납니다. 말을 돌리십시오.

나강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알아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대답이 아니라 질문을 했다.

“인간의 신경 신호를 외부 장치를 이용해 근육에 전달하는 기술은 어디서 잘하는지 압니까?”

“우리 회사가 잘해요.”

“어? 오메가테크는 분야가 많이 다를 텐데?”

오메가테크의 전문분야는 각종 장비와 로봇, 그리고 군대에서 쓰는 무기다.

“물론 우리가 가진 건 근육에 전달하는 기술은 아니에요. 그래도 신경 신호를 외부 장비에 전달하는 기술은 우리도 있어요.”

“그게 왜 있습니까?”

“음…. 우리 회사 전문분야에는 로봇 개발도 있어요.”

“압니다. 그래서요?”

“우리 회사에서 로봇을 제어하는 방법은 다양해요. 사람이 무선조종장치를 손으로 제어하거나 미리 프로그래밍된 동작을 반복하게 하는 게 제일 흔해요.”

좀 더 발전된 형태도 있다.

“기본적인 동작을 스스로 판단해서 하는 모델도 있고, 행동 카피 방식의 이족보행 로봇도 있죠.”

“이족보행이면 인간형?”

“네. 사람이 몸에 센서가 부착된 옷을 입고 움직이면, 무선조종장치가 이족보행 로봇을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죠.”

“흥미로운 로봇이군요.”

“아직 사람의 움직임을 제대로 따라가진 못해요. 갈 길이 멀죠.”

그녀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 흔들었다.

“그리고 이건 최신 기술인데요. 손의 신경 신호를 감지해서 분석하고, 그걸 바탕으로 장비를 조종하는 기술이 있어요.”

스칼렛이 방긋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세워 나강인을 가리켰다.

“그거 물어본 거죠?”

“맞습니다. 그러면.”

나강인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사람의 신경 신호를 감지해서 근육에 다시 전달할 수도 있습니까?”

“몸에서 신경만 절단된 환자의 한쪽 신호를 다른 쪽 신경으로 전달해 움직이는 거요?”

“그렇죠.”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죠. 그건 아직 안 해봤지만.”

“그러면 그 신경 신호 전달 기술로 의수를 제어할 수도 있겠네요.”

“더 연구하면 가능하겠죠? 신호를 해석해서 의수의 초소형 모터를 빠르게 제어하려면 해결해야 할 복잡할 문제가 무척 많지만요.”

“모터가 아니라 인공 근육을 쓰는 의수를 개발하면 그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군요.”

스칼렛이 웃었다.

“맞아요. 이론적으로는 굉장히 쓰기 편한 의수나 의족이 만들어지겠죠.”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런 인공 근육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요. 꿈 같은 소리예요.”

“유나린 박사의 새 연구가 바로 그거입니다.”

“네?”

“유나린 박사가 새로 연구하는 게 바로 그 인공 근육 연구라고요.”

스칼렛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그런 연구에 필요한 규모를 생각해보았다. 한두 푼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설사 돈을 쏟아붓는다 해도 현재 기술로는 성공 확률이 희박했다.

“잠깐만요. 그걸 유나린 박사 혼자서 한다고요?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예산이 빠듯하니까 아마도?”

“그 예산은 나강인 씨가 드래곤 플레이트를 팔아서 대고요?”

“그렇죠?”

“미친 거 아녜요? 차라리 그 돈으로 로또를 사요! 그게 성공 확률이 더 높으니까!”

“내가 그 미친 짓을 꼭 해야겠습니다. 그러니까 협조하시죠.”

“무슨 협조요?”

“유나린 박사와 협조해서, 의수와 의족 기술을 개발해봐요. 오메가테크는 로봇 기술이 있으니까 가능할 겁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 줄 알아요? 우리 로봇은 모터 기반이라고요!”

AI 전지인은 2082년이라면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의수 대용품 정도는 직접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지금은 인공 근육도 없고 신경 신호 전달 기술도 몰라서 대용품조차 만들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신호 전달 문제는 오메가테크가 해결할 수 있다.

나강인이 말했다.

“의수의 기본 설계는 내가 맡겠습니다.”

AI 전지인은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대용품이라고 했지만, 2082년이 아니라 현재라면 그건 대용품 수준이 아니다.

“오메가테크는 사용 편의성 문제와 신경 신호 전달 기술을 맡아요.”

문제는 인공 근육이다.

“인공 근육은 유나린 박사가 시작했으니까 맡겨두면 되고요. 그 연구는 아마 꽤 빨리 성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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