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07화 (207/411)

207. 구내식당

백미소는 나강인이 소품이 아니라 진짜 나무 봉에 맞아 쓰러졌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꺄악!”

변형찬 감독이 외쳤다.

“오케이! 거기까지! 일단 모두 정지!”

백미소는 촬영이 중단되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이미 몇 번이나 들었다. 그래서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당황한 목소리로 김유찬에게 말했다.

“그 대걸레는 우리 회사 비품이잖아요. 영화 소품이 아니란 말이에요.”

김유찬이 부러진 봉을 휙휙 돌리며 대답했다.

“압니다.”

“네? 진짜 나무 막대기라는 걸 알면서 그걸로 나강인 씨를 때린 거예요?”

김유찬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전력을 다해 후려쳤죠.”

“왜, 왜요? 원한이라도 있으세요?”

“이래야 그림이 잘 나오니까요.”

백미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얼굴만 잘생긴 미친놈인가?’

자책도 했다.

‘내가 말렸어야 했어. 내가 안 말려서 나강인 씨가 다쳤어.’

그녀는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를 들었지만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넘어진 나강인에게 걸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움직이기 직전에 나강인이 넘어져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당황했다. 나강인의 얼굴이 맞아서 날아간 사람치고는 너무 편안해 보였다.

“어?”

변형찬 감독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방금 그림 진짜 잘 나왔어요. 관객이 보면 어디 하나 부러진 줄 알 겁니다.”

“잘됐네요.”

백미소는 이 분위기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물었다.

“진짜 뼈가 부러지셨으면 어떻게 해요?”

바로 앞에서 김유찬이 웃으며 설명했다.

“에이. 괜찮습니다. 우리 영화는 그동안 계속 이렇게 찍었는데요.”

“네? 다들 미치셨어요?”

“제정신으로 한 거죠.”

“매번 나강인 씨를 팼다고요? 저렇게 심하게요?”

“우리가 진짜로 때리고 차고 베면, 나강인 씨가 알아서 잘 맞아줬죠.”

그녀는 이번에는 나강인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동안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고 있었던 거야?’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영화 제작진을 향한 분노도 치솟았다.

‘이 사람들 이제 보니까 진짜 나쁜 사람들이네!’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특수효과는요? 이런 건 원래 특수효과로 처리하는 거잖아요.”

김유찬이 대답했다.

“이게 바로 나강인표 실전형 특수효과입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보호장비는요? 왜 아무것도 안 입어요? 방검복이라도 입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에이. 그런 걸 입으면 표가 나잖아요.”

백미소가 김유찬을 노려보았다.

‘이 얼굴만 잘생긴 사이코패스 새끼가!’

나강인이 겉옷을 벗었다. 속에는 티셔츠만 입고 있었다.

그녀가 얼른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얼마나 다쳤….’

김유찬은 조금 전에 대걸레 봉을 나강인의 몸통을 향해 휘둘렀다. 몸통보다 먼저 팔이 그 봉에 맞았다.

그녀가 나강인의 왼팔부터 확인했다.

“어?”

팔은 부러지지 않았다. 부러지는 건 고사하고 멍든 자국조차 없었다.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눈에 힘도 줘보았다. 다시 봐도 팔이 너무 멀쩡했다.

그녀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방금 진짜로 맞으셨잖아요. 제가 분명히 봤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팔에 빨개진 자국조차 없어요?”

“음…. 날아오는 적의 무기와 비슷한 속도로 피하면서 대걸레 자루를 부러뜨렸으니까?”

“네?”

나강인이 손짓을 섞어 설명했다.

“쉽게 말해서, 봉이 날아오는 순간에 비슷한 속도로 움직여서 충격 없이 팔로 받은 후에, 적당한 순간에 팔을 튕겨서 봉을 분지른 겁니다. 물론 몸은 계속 맞은 것처럼 옆으로 날아가고요.”

“네?”

“어…. 이것보다 더 쉽게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김유찬이 그녀의 앞에서 말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우리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뭐, 지금도 머리로만 이해하는 거지 몸으로 따라 하지는 못하지만.”

백미소는 그녀가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방금 진짜로 때린 게 아니라….”

“나야 진짜로 때렸죠. 그래야 그림이 잘 나오니까. 그리고 그렇게 때려도 강인 씨가 알아서 잘 막을 거라는 믿음도 있고요.”

“믿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요?”

“당연하죠. 아니면 내가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팹니까? 하하하.”

백미소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옛날에 유명한 권투선수가 그런 방법으로 충격을 줄였다는 말은 들었어. 하지만 그 사람은 전설이잖아.’

스태프가 나강인에게 다가가 젤과 로션, 물 등을 내밀었다.

“여기요. 어느 쪽을 쓰실 거예요?”

“계속 바꿔야 하니까 지금은 물로 하죠.”

나강인은 물만 조금 손바닥에 뿌린 후에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졌다.

백미소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메이크업을 잘한다더니, 거울은 보지도 않고 겨우 물만 가지고 헤어스타일을 순식간에 바꾸네?’

다른 스태프는 갈아입을 옷과 가면을 가져왔다.

나강인이 겉옷을 바꿔 입었다. 백미소는 그의 분위기가 실시간으로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거기다 디자인이 다른 가면까지 쓰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와. 대박. 사람이 아예 바뀌었어.”

나강인이 벗은 겉옷은 다른 배우가 입었다. 가면도 그가 썼던 것을 썼다. 그런 후에 그 배우는 나강인이 쓰러졌다가 일어난 자리에 그대로 누웠다.

손태민이 손뼉을 쳤다.

“자자. 두 번째 전투 들어갑니다. 우리 이런 거 많이 해봤으니까 다들 익숙하죠? 이번에도 한 번에 갑시다!”

김유찬은 침입자들을 하나씩 싸워 쓰러뜨리면서 복도를 전진했다. 나강인이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침입자 역할을 연기했다.

두 번째부터는 나강인만 맞은 게 아니다. 김유찬도 몇 대 얻어맞았다. 그러면서 김유찬의 옷이 찢어져 맨살이 드러났다. 머리도 헝클어졌다.

그래도 잘생김은 무너지지 않았다.

백미소는 김유찬의 잘생긴 얼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조금 전에는 이 촬영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겨우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강인 씨가 처음에 안 다친 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이제는 서로 때리는데, 왜 김유찬 씨도 안 다쳐?’

백미소는 나강인이 휘두른 무기에 김유찬이 옷이 찢어지는 걸 분명히 보았다. 거기엔 어떠한 특수효과도 없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김유찬의 옷이 쫙 찢어졌다.

그런데도 김유찬의 몸에는 긁힌 자국이나 멍조차 없었다. 옷에 묻은 핏자국이나 상처 자국 몇 개는 분장팀이 중간에 추가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또 있었다.

‘나강인 씨는 왜 저렇게 모습이 계속 바뀌지?’

나강인은 헤어스타일과 의상만 바꿨는데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것만 바꾼다고 사람이 저렇게 달라 보일 수 있나?’

또 한 번의 짧은 전투가 끝나고 나서 나강인이 옷을 갈아입고 가면을 갈아 썼다. 그 틈을 이용해 그녀가 김유찬에게 궁금하던 걸 물었다.

“제 눈에는 나강인 씨가 옷만 바꿔입어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이는데요. 제 착각인 거예요?”

김유찬은 격렬한 전투 장면을 연달아 찍느라 지친 상태였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허억. 헉. 아, 그거는요. 자세까지 바꿔서 그래요.”

“네? 자세라니요?”

“나강인 씨는 가면, 옷, 헤어스타일만 바꾸는 게 아니거든요. 어깨의 처짐이나 걸음걸이, 손짓 하나까지 다 바꿔요. 자세를 살짝 낮추면 키까지 바뀐다니까요.”

백미소는 연기를 배워본 사람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네? 그걸 매번 다 바꾼다고요? 그것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정도로요?”

“그러니까 더 대단하죠.”

김유찬이 몰아쉬던 숨소리가 조금 안정됐다.

“나강인 씨는 몸 쓰는 연기의 천재예요. 거기다 대사 연기도 잘하고 표정 연기도 좋아요. 그래도 얼굴은 내가 더 잘생겼습니다. 하하하.”

변형찬 감독이 큰 소리로 말했다.

“김유찬 씨가 웃는 거 보니까 너무 많이 쉬었나 보네요. 주인공이 편해지면 지친 모습이 안 나오니까, 바로 다음 전투 들어갑시다!”

김유찬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감독님! 전 지금 대답해주느라 제대로 못 쉬었….”

“쉬면 안 됩니다. 마지막에는 지쳐서 쓰러져야 합니다. 지금 바로 갑시다!”

“쓰러지는 건 제가 연기력으로 어떻게든 할 테니까….”

“기왕이면 진짜로 쓰러집시다!”

촬영이 다시 시작됐다.

백미소는 김유찬을 상대로 매번 다른 사람이 되어 싸우는 나강인을 보았다. 보면 볼수록 놀라고 감탄했다.

‘그냥 무술감독이 아니라, 연기까지 잘하는 사람이었어?’

변형찬 감독은 그런 백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표정 괜찮네? 나중에 다른 씬에 좀 더 등장시켜도 되겠는데?’

마지막 적을 무찌른 후에 김유찬이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허억. 허억.”

아무리 거칠게 숨을 몰아쉬어도 공기가 부족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대로 쓰러져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는 부러진 막대기를 지팡이처럼 짚으며 겨우 버텼다.

신은하가 뒤늦게 직원들과 함께 연구소에 도착했다.

그녀가 상처투성이인 김유찬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김유찬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 후에 말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그게 나였을 뿐이야.”

대사가 끝났는데도 모든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에서 계속 그 모습을 찍었다.

변형찬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먹을 흔들었다.

“오케이! 좋았어요!”

김유찬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으로 스르륵 넘어졌다가, 그대로 벌렁 드러누웠다.

“허억. 허억.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

신은하는 언제 눈물을 글썽거렸냐는 듯이 김유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유찬 오빠는 강인 오빠가 옷 갈아입고 스타일 바꿀 때마다 쉬었으면서 왜 이래요? 체력이 너무 약한 거 아니에요?”

“그 시간이 매번 너무 짧아서 거의 쉬지도 못했다. 나니까 이만큼이라도 한 거야. 다른 사람이 이 연기를 했으면 중간에 쓰러져 죽었어.”

“더 많이 뛰어다닌 강인 오빠는 멀쩡해 보이는데.”

김유찬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쓰러졌던 나강인이 일어나 옷을 툭툭 털고 있었다.

“양심이 있으면 사람하고 비교해야지. 강인 씨는 사람 아니잖아.”

***

연구소 전투의 촬영은 끝났지만, 이곳에서 찍어야 할 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데 주연배우 김유찬이 뻗어버렸다.

변형찬 감독이 김유찬에게 물었다.

“유찬 씨. 지금 그 지친 상태 그대로 다음 장면도 찍으면 딱인데….”

누워 있다가 겨우 일어난 김유찬이 그 말을 듣고 항의했다.

“감독님. 저 지금 손 떨리는 거 보이시죠? 이 상태로 어떻게 찍어요.”

“그렇죠? 좀 쉬어야겠죠?”

“많이 쉬어야죠.”

변형찬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럼 밥 먹고 합시다. 밥. 오늘 밥은….”

변형찬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강인을 보았다.

나강인은 강원도나 남양주 세트장처럼 촬영 환경이 나쁠 때는 사람들의 체력 보존을 위해서 한 번씩 야전 전술 요리를 만들곤 했다.

그런데 여기는 경기도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연구소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나강인이 말했다.

“이 연구소 구내식당이 오늘 문 열었다던데. 맛있겠네요.”

백미소가 얼른 자랑했다.

“저희가 고생하시는 여러분을 위해 식사를 따로 준비했어요.”

변형찬 감독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어, 그러시군요. 다들 구내식당으로 갑시다.”

“예에.”

“구내식당이 그래도 도시락보다는 낫지.”

“오늘은 서울을 벗어나서 촬영하니까 혹시나 했는데 아니구나.”

이 연구소에는 주말에도 출근하는 사람이 조금 있다. 그들은 평소 주말에는 연구소 밖에서 식사를 사 먹는다. 그 약간의 직원을 위해 구내식당이 열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영화 촬영팀을 위해 구내식당이 문을 열었다.

그렇다고 구내식당 직원들을 출근시킨 건 아니다.

백미소는 잘나가는 출장요리 업체를 불러 구내식당 조리사 유니폼을 입혔다.

그 전문업체는 필요한 식재료를 직접 준비해 왔다. 식재료 단가는 평소에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비쌌다. 소고기와 해산물도 좋은 걸 썼고 후식으로 제공할 과일도 고급품으로 준비했다.

그녀는 배우와 스태프들이 받아가는 요리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이러면 우리 구내식당이 평소에도 이렇게 밥이 잘 나오는 줄 알고 감탄하겠지?’

그녀는 단순히 배우들이 놀라게 하려고 외부 업체를 부른 게 아니다.

‘영화가 잘 돼서 배우들이 예능프로에 나가면, 우리 회사의 맛있는 구내식당 이야기를 누군가는 하겠지. 한 번만 해도 남는 장사고, 김유찬이 인기 예능에서 말해주면 아주 대박이야.’

그녀가 노리는 건 회사가 직원 복지에 신경을 쓴다는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그녀의 제안대로 유명 출장요리 업체를 섭외했다.

그녀가 주연배우 김유찬의 반응부터 살폈다. 그의 앞에 놓인 식판에는 백미소가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요리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김유찬은 딱히 맛에 감동한 모습은 아니었다.

‘인기 스타니까 이 정도로는 안 되는구나. 평소에 좋은 걸 많이 먹었겠지.’

그녀가 변형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감독은 그동안 조감독으로 있었다니까 감탄을….’

변형찬은 밥을 맛있게 먹기는 했다. 하지만 앞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주제는 밥이 아니라 영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럼 조연 배우들은….’

다른 배우들도 맛있게 먹기는 하지만, 맛에 감탄하거나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미소는 실망했다.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에 다녀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러나? 이렇게 밥이 잘 나오는 회사가 대한민국에 있을 것 같아? 없어! 우리도 이렇게는 안 나와. 그런데 왜 아무도 안 놀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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