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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210화 (210/411)

210. 지원

합동수사본부 형사가 설명했다.

“만약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발사한 우주 정거장이 지구로 추락하면, 우리나라 우주 산업 기술 분야 전체가 수렁에 빠질 겁니다. 정부 주도의 사업도 언론의 비난을 상대하느라 시간을 다 보낼 거고요.”

“우주 정거장의 추락이라….”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위성 궤도에서 질량체를 추락시켜 지상을 타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2082년에는 그런 공격도 하냐?”

- 가성비가 너무 나빠서 다른 해결방법이 없는 최악의 경우에만 시도합니다.

“이 경우는 자기네 위성이 아니니까 가성비는 최고겠지. 방법만 있으면 떨어뜨리겠네.”

나강인이 합수부 형사에게 물었다.

“우주 정거장이 추락해서 대도시에 떨어지면 상황이 심각해지겠군요. 지금 기술로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형사는 당황했다.

“예? 어…. 제가 브리핑은 받고 왔는데요. 떨어지는 지점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아는 만큼만 말해주시죠. 그 우주 정거장에 자체 추진용 엔진이 있습니까?”

“아! 그건 있다고 들었습니다.”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우주선에 추진 엔진이 있으면 추락 각도와 속도를 조정해 대도시 한복판에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인상을 썼다.

“서울을 노리고 우주 정거장을 떨어뜨리면 위성 궤도에서 쏘는 질량 병기가 된다는 소리인데….”

-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다만, 현재 기술로 가능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합수부 형사도 나강인의 말을 들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러면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되는 건가요?”

“물론 그런 일이 생기면 대공 미사일로 요격을 시도하겠지만, 미사일이 빗나가면 뭐….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떨어지는 거죠.”

형사가 침을 꼴깍 삼켰다.

“위에 보고할 때 그 부분을 꼭 확인해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그 정도 분석은 이미 관련 기관에서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결과만 알려달라고 하시죠. 그런데 이러면….”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합수부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놔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 우주에서 태양을 연구할 수 있다는 부분도 마음에 듭니다. 우리 임무를 위해서도 이번 일은 맡아야 합니다.

“네가 어쩐 일로 이번 일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냐?”

- 적이 한국의 우주 산업을 무너뜨리려면 수도인 서울을 노렸을 때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 공격이 빗나가 이 제작 거점 위치에 떨어지면, 앞으로의 임무 수행에 타격이 옵니다.

“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페넬로페가 날아갈 수도 있고?”

- 꼭 그래서만은 아닙니다.

“꼭 그래서인 것 같다.”

나강인이 합수부 형사에게 물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

형사는 당황했다.

“어?”

“왜 그러십니까?”

형사가 활짝 웃었다.

“이렇게 쉽게 도와주실 줄 몰랐습니다.”

나강인이 제작 거점으로 쓰는 작은 2층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에 비싼 장비가 많은데, 그게 조금 빗나가서 저기 떨어지면 저도 피해가 큽니다.”

이 제작 거점은 서울을 살짝 벗어난 외진 곳에 있다. 서울을 노리고 추락시킨 우주 정거장이 조금 빗나가면 여기에 떨어질 수도 있다.

형사가 불안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 사이로 가늘고 긴 비행운이 보였다.

“아, 하하. 여기 말이군요. 설마 저 비행운이….”

“그 우주 정거장은 내년에 발사한다면서요.”

“다른 나라 우주 정거장이 혹시나 추락하면 어쩌나 해서….”

“그 고도에서는 비행운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도 알긴 아는데요. 하, 하하.”

나강인이 피식 웃으며 질문했다.

“굳이 저를 찾아왔다는 건, 합수부에서 뭘 어떻게 할지 결정했다는 뜻이겠지요?”

“물론입니다. 일단 이번에 수상한 정황이 드러난 회사에 사람을 심을 계획입니다.”

“그래서요?”

“직원으로 위장 침투한 사람이 내부에서 조작된 장비나 소프트웨어 백도어 같은 걸 직접 찾아내야지요.”

“기술 전문가가 필요하겠군요.”

“물론입니다. 최고의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나강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네?”

“기술 전문가를 투입하셔야죠. 저는 거기 침투해서 싸울 사람이 필요해서 온 줄 알았습니다.”

“아니, 그거야 당연히….”

합수부 형사가 제작 거점을 가리켰다.

“나강인 씨는 드래곤 플레이트를 혼자서 개발한 천재 공학자이고.”

경기도의 백한수려 연구소 방향으로도 손을 뻗었다.

“VTX-13 개발자들도 모르던 폭발위험을 논문만 보고 알아낸 천재 화학자에.”

형사가 스마트폰도 흔들었다.

“최고 레벨의 화이트 해커이시잖습니까? 그런 분이 그 회사에 침입하셔야 이상한 게 있으면 바로 알아보시죠.”

“어….”

“우리나라에 나강인 씨처럼 그걸 다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건 다 AI 전지인 덕분이다.

VTX-13의 위험은 화학식을 분석해서 알아낸 것도 아니다. 2082년에 폭탄 재료로 사용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건 오해가 좀….”

형사가 활짝 웃었다.

“거기다 비상 상황이 생겨도 몸 하나쯤은 안전하게 빼낼 수 있는 전투력까지 있으시잖습니까? 어떻게 생각해도 이번 임무를 해낼 사람은 나강인 씨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나강인도 이번 일은 받을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실패해도 실망하지는 마시죠. 제가 형사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실력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하. 농담도. 실망 안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지원팀을 두 명 붙여드리겠습니다.”

“경찰에서요?”

“아니요. 합수부에서요.”

나강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서 누가요?”

“우리 합동수사본부는 여러 기관이 모여서 합동으로 수사하는 곳입니다. 그 기관 중에는 정보기관도 있습니다. 이번 건은 그 정보기관에서 인력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뭐, 그러시죠.”

***

이튿날 오전에 정보기관 요원 두 명이 제작 거점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나강인은 예전에 그 두 명을 만난 적이 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예전에 이곳에 찾아와 드래곤 플래이트를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린 사기꾼들입니다.

AI 전지인은 그 당시에 남자 요원이 했던 말을 모조리 화면에 띄웠다.

나강인이 두 사람을 보고 반갑게 웃었다.

“이게 누구야? 김 과장하고 이 과장이네?”

두 사람은 예전에 왔을 때 이름을 밝히지 않고 김 과장과 이 과장이라고만 말했다.

남자 요원 김 과장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그게….”

“전에 나보고 크게 후회할 거라고 하더니, 그 후회는 도대체 언제 하는 걸까? 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후회란 걸 하려고 쭉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아! 국가 권력을 남용해서 날 핍박하겠다고 했지? 오늘이 그날이야? 아이고 무서워라. 나 이러다 크게 다치는 거 아냐?”

“그때는 실례가 많았습….”

“아니야. 국가를 위해서 일할 기회를 특별히 줬는데 그때 내가 감히 띠껍게 굴었으니까, 내가 실례를 많이 했지.”

나강인이 그들의 뒤쪽으로 손짓했다.

“그러니까 가라.”

“예?”

“돌아가라고. 난 너희랑 일 안 해.”

남자 요원이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그건 너희가 받은 거잖아. 난 민간인이야. 가라.”

여자 요원 이 과장이 당황한 얼굴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그때는 저희가 실수했어요. 사과할게요.”

“사과하려면 그때 했어야지. 가라고.”

남자 요원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가지 않겠습니다.”

나강인이 야외 테이블 옆 의자에서 일어났다.

“야. 너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듣고 왔냐?”

“네?”

“내가 널 두들겨 패서 쫓아내겠다고 하면 막을 수는 있고?”

남자 요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아닙니다.”

“여기 밖이다.”

***

정보기관의 진짜 과장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새끼들이.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고?”

여자 요원이 변명했다.

“죄송합니다. 그 사람이 워낙 강경해서….”

과장이 소리를 질렀다.

“그럼 바지 끄덩이라도 붙잡았어야지!”

“붙잡아도 날려버릴 것 같아서….”

“너네를 훈련 시킨 담당 교관 그 새끼. 내가 그 새끼를 저번에 덜 족쳤어. 어디서 이런 폐급들을 수습으로….”

화를 내던 과장이 멈칫했다.

“어? 가만. 담당 교관 말고, 지금 너네한테 근접 격투술 가르치는 녀석을 불러야겠다.”

두 사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아니. 그건….”

“사, 살려주세요.”

과장이 전화를 걸었다.

“야. 이거 네가 좀 해결해야겠다. 무슨 일은. 우리 수습들이 사고를 쳤다. 어. 또 쳤지. 부탁 좀 하자.”

***

총권도 수련생 다섯 명 중에는 정보기관 소속 요원도 있다.

정보기관 요원 김경식이 나강인을 찾아가 사과했다.

“쟤들이 지난번에 나 사범님을 찾아가서 그렇게 싸가지없게 군 걸 알았으면, 제 선에서 족쳤을 겁니다.”

요원 두 명은 김경식의 뒤에서 창백한 얼굴로 똑바로 서 있었다.

나강인이 물었다.

“아는 사이입니까?”

“제가 요즘 요원들에게 총권도를 기반으로 근접 격투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항상 하는 건 아니고 업무시간을 조금 뺐습니다.”

“총권도를 남에게 잘 가르치려면, 경식 씨가 받는 훈련의 강도를 더 높여야겠군요.”

김경식이 얼른 손을 흔들었다.

“아뇨! 저번에 훈련 레벨 높인 거 받은 날은 월요일까지 집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습니다. 아직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그때 총권도 강화 훈련은 하루만 하고 끝났다. 지금은 평소 수준으로 돌아왔다.

김경식이 설명했다.

“총권도를 정식으로 가르친다는 게 아니라, 맛만 좀 보여주는 겁니다. 근접 격투술에 응용해서요.”

“총권도는 다른 무술에 응용하기 쉬운 게 장점이긴 하죠.”

“특히 사람 굴리는 쪽으로 응용하기 좋습니다. 하, 하하.”

김경식이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쟤들은 우리 수습요원인데요.”

“신입이라고요?”

“아니요. 신입보다 밑에 있는 수습이죠. 아직 사람이 아닙니다.”

“나한테는 어디 과장쯤 되는 것처럼 굴던데요.”

김경식이 뒤를 돌아보았다. 수습요원 두 명이 허리를 쭉 펴며 몸을 아예 일자로 세웠다.

김경식이 계속 설명했다.

“그 훈련은 따로 선정한 요원들만 받는데, 선정 기준은 제각각입니다. 쟤들은 수습요원을 총권도 방식으로 굴렸을 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 선정했습니다.”

“그래서 효과는 있었습니까?”

“좀 더 굴려보려고요.”

“다음 수련 때는 굴리기 좋은 기술을 두어 개 가르쳐드리죠.”

김경식은 당황했다.

“어…. 그거 배울 때 혹시….”

“당연히 구르면서 배워야죠. 그래야 몸에 새겨집니다.”

김경식이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오른손으로는 목을 긋는 시늉도 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이제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김경식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쟤들은 제자의 제자니까, 한 번만 너그럽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강인이 물었다.

“그 기관에 요원이 수습 두 명밖에 없는 건 아닐 텐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김경식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 사범님이 우주 정거장을 추락시켜서 서울을 폭격하는 시나리오를 이야기하셨잖습니까? 가능하니까 하신 이야기지요?”

“현재 구현된 기술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게 아니니까요.”

“위에서는 이제 나 사범님이 무슨 말을 하든 허투루 듣지 않습니다. 이번에 하신 이야기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이번 사건이 진짜 음모인지, 아니면 합수부가 단순히 착각한 건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 진짜로 나 사범님이 말씀하신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사건 사이즈가 너무 큽니다.”

나강인은 무슨 소리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기관 내부의 직원도 함부로 못 믿게 된 겁니까?”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이유는요?”

“만약 나 사범님의 예상처럼 국제 우주 정거장이 한반도를 목표로 추락하면, 설사 그게 대도시에 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작은 마을에 떨어지기만 해도 정부에 치명타가 될 겁니다.”

“그렇겠지요.”

“정치권에는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여럿 있습니다. 정치인 중에는 외국 정부의 후원을 받는 놈들도 있고요. 그런데 그 외국 중에는 겉으로는 우방국이지만 속으로는 우리나라를 눈엣가시로 보는 곳도 있습니다.”

“만약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고, 그 정치인에게 줄을 댄 정보기관 내부 직원이 있다면, 그 직원이 이번 일을 알아서는 안 되겠군요.”

“예. 누가 누구에게 줄을 댔는지는 우리도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김경식이 뒤에 서 있는 두 명을 가리켰다.

“그런데 쟤들은 수습이라 아직 그런 게 없습니다. 신원조회도 깨끗하고, 내부에서도 구박 덩어리라 누가 밀어주는 느낌도 아닙니다.”

“그런 구박 덩어리들을 지원팀으로 붙여준다? 무능한 아군이 더 위험한 거 아시죠?”

김경식이 어색하게 웃었다.

“나 사범님은 능력이 워낙 탁월하니까, 쟤들도 보조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하, 하하.”

나강인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수습요원 두 명이 침을 꼴깍 삼키는 게 보였다.

AI 전지인이 제안했다.

- 데리고 다니면서 굴리는 건 어떠십니까?

“그것도 괜찮겠다.”

나강인이 씩 웃었다.

“이번 작전이 끝날 때까지 지휘권을 저에게 주시면, 그렇게 하죠.”

“고맙습니다. 지휘권이야 당연히 나 사범님에게 있어야지요. 쟤들은 이제 겨우 수습이라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도 겨우 할 겁니다. 하하하!”

김경식이 웃다가 정색하며 부탁했다.

“그러니까 데려가서 쓰시다가 산 채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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