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11화 (211/411)

211. 비공식

총권도 수련생 김경식은 정보기관 수습요원 두 명 만 남겨두고 돌아갔다. 그 두 사람은 차렷 자세로 나강인의 앞에 서 있었다.

나강인이 말했다.

“너희들의 이름은… 나한테 말해준다고 해도 본명이라는 보장이 없지. 그냥 부르기 편하게 김 과장과 이 과장으로 하자.”

“예!”

여자 요원 이 과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진짜로 총권도의 창시자세요?”

“몰랐냐?”

“네.”

“그럼 아까 쫓아낼 때는 왜 그냥 쫓겨났어?”

두 사람이 처음 찾아왔을 때는 구박만 받고 쫓겨났다.

이 과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희 따위는 10초면 순삭당할 거라는 경고를 몇 번이나 듣고 와서….”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10초나 걸리진 않을 것 같은데?”

“한 명이 아니라 저희 두 명 다 당하는 시간입니다.”

“그니까.”

“예?”

나강인이 손가락을 두 사람에게 향했다.

“구체적은 계획은 너희가 가져왔다고?”

남자 요원 김 과장이 큰소리쳤다.

“예! 제가 확실히 브리핑하겠습니다!”

나강인의 제작 거점은 서울을 살짝 벗어난 경기도 외진 곳에 있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그 거점의 앞마당이다.

나강인이 야외 의자에서 일어났다.

“안으로 들어가서 듣자.”

두 사람은 나강인을 따라 제작 거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예전에 드래곤 플레이트를 따로 주문하러 이곳에 방문했었다.

여자 요원 이 과장이 감탄했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장비가 많이 늘어났네요?”

“장비가 좋아야 몸이 편해지니까.”

“드래곤 플레이트가 전에는 여성용이 걸려 있었는데, 이번에는 남성용…. 어머!”

그녀가 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보며 감탄했다.

“이번엔 헬멧도 있어! 신제품인가 봐!”

“너 관광하러 왔냐?”

“앗! 아닙니다!”

나강인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기관에서 왜 구박을 받는지 알겠다.”

그가 김 과장을 먼저 가리켰다.

“하나는 너무 심각하고.”

이 과장도 가리켰다.

“하나는 너무 산만해.”

이 과장이 말했다.

“저는 아닌데 쟤는 그런 말을 많이 듣….”

“장비 연결해서 브리핑이나 해.”

“예!”

김 과장이 스마트폰을 꺼내 대형 TV와 무선으로 연결했다. 그런 후에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문서를 TV 화면에 띄웠다.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김 과장이 먼저 그 회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위성 통신 기지국에 장비를 납품하는 오령K테크가 우리 타깃입니다.”

화면에 그 회사가 납품하는 장비들의 사진이 주르륵 떴다.

“이곳에 우리 요원을, 그러니까 나 사범님을 침투시켜 좀 더 확실한 단서를 찾아내거나, 혹시 배후가 있다면 그걸 알아내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입니다.”

“침투 방법은?”

“이 회사는 현재 기술 개발 부서 경력직 직원을 찾고 있습니다. 나 사범님의 경력을 해당 조건에 적합하게 위조한 후에 들여보내려 합니다.”

“내 경력?”

“이 회사가 원하는 스팩 그대로 경력을 위조하겠습니다. 관련 신분은 저희 쪽에서 직접 위조하므로 신원조회가 들어와도 발각되지 않습니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그럼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가서 실제로 일을 해야 하는 거잖아. 지인아. 너 저런 장비를 개발할 수 있냐?”

- 고립된 전장에서 통신 장비가 모두 파괴되면, 만들어서라도 써야 합니다.

“만들 수 있구나?”

- 그럴 때는 파손된 장비들의 부품을 모은 후에 조립해 사용합니다. 새로 개발하는 건 무리입니다. 저기 들어가면 요원님의 실력이 곧바로 들통날 겁니다.

“혹시나 했다. 그럼 개발자 시나리오는 제외하고 들통 안 날 길을 찾아야겠네. 그런데….”

나강인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저기 들어가서 뺑이치면서 단서를 찾는 동안 너희들은 뭘 하는데?”

김 과장이 대답했다.

“저희는 나 사범님의 조사 임무가 끝날 때까지 외부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어…. 그러니까 나는 안에서 뺑이칠 때, 너희는 근처 편안한 호텔에서 쉬면서 기다리겠다?”

“그 근처에는 호텔이 없어서 모텔….”

“내가 일할 때 너희는 거기서 데이트라도 한다고 하지?”

“그, 그런 사이 아닙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쟤들은 굴리려고 받으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랬지.”

- 이 작전을 받으면 요원님이 구를 때 쟤들은 모텔에서 꽁냥꽁냥할 겁니다.

“그래서 계획을 바꾸려고.”

나강인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네가 가져온 계획대로면 먼저 면접부터 보고 합격 통보도 받고, 그런 후에 이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 천천히 상황을 파악해야 하네?”

“그렇습니다.”

“어느 세월에?”

“네?”

“이거 비공식 작전이잖아.”

김 과장이 변명했다.

“비공식은 아니고, 규정의 빈틈을 이용해 절차를 약간 우회한… 그런 작전입니다.”

“그런데도 장기 프로젝트로 간다고? 미친 거 아냐?”

“제가 듣기로는, 나 사범님을 그 회사에 침투만 시키면 일주일 안에 알아내실 거라고….”

나강인이 김 과장의 말을 끊었다.

“일주일도 길어. 됐으니까 네가 가져온 자료 다 내놔. 내가 직접 봐야겠다.”

김 과장이 반항했다.

“자료 유출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 회사 정보가 무슨 대단한 자료라고 금지야? 이번 일은 너희처럼 하면 답이 없어.”

두 사람이 가져온 계획대로 하면 나강인은 면접조차 통과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자료 내놔.”

이 과정이 눈치를 보다가 USB 메모리를 내밀었다.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여기 있습니다.”

나강인이 USB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았다.

AI 전지인이 간단히 점검한 후에 말했다.

- 요원님의 컴퓨터를 해킹하려는 시도는 없습니다.

“그런 바보짓을 설마 하겠냐.”

나강인이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서들을 열었다.

드래곤 플레이트 제작용으로 쓰는 컴퓨터에는 대형 고해상도 모니터 네 대가 연결되어 있다.

그는 모니터 한 대에 문서를 띄운 후에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두 사람은 그 모습을 보며 속닥였다.

“왜 문서를 읽지도 않고 그냥 넘기는 거지?”

“몇 페이지나 있는지 보는 건가?”

“페이지 숫자는 아래쪽을 보면 그냥 나오는데?”

AI 전지인은 문서를 고속으로 읽는 능력이 있다.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만, 못 읽고 놓치는 문장은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읽은 문서는 모두 메모리에 저장해둔다. 한 번 읽은 문서는 언제든지 불러올 수도 있고, 기존에 조사한 다른 문서의 내용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는 그 문서들만 보는 게 아니다. 문서에 나오는 내용 중에 따로 조사가 필요한 건 다른 모니터에 인터넷 창을 여러 개 띄워서 검색했다.

그렇게 사용된 인터넷 창은 그대로 놔두기 때문에 요원 두 명도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어? 지금 검색하는 저 정보들….”

“우리가 가져온 문서에 있는 것들인데?”

나강인은 그러다 쓸만한 정보를 찾아내면 또 다른 모니터에 따로 모아놓았다.

원본 문서들은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면서 보고 있지만, 다른 모니터에 따로 모이는 문서는 그대로 띄워놓은 상태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 모니터의 문서를 읽을 수 있었다.

요원들의 눈이 모니터들 사이를 오갔다.

이 과장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설마 진짜로 읽고 조사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우리 문서를 저 속도로 읽고 분석하는 건,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해. 그냥 문서만 띄워두는 거겠지.”

“다 관련이 있는 내용인데 저게 어떻게 그냥 하는 거겠어? 읽어보고 찾는 거야.”

“하지만 그건 불가능….”

나강인이 마지막 문서까지 순식간에 확인한 후에 두 사람에게 말했다.

“하나 찾았다.”

그는 따로 분리한 문서 중 하나를 대형 TV로 보냈다. TV가 문서가 크게 확대되어 나타났다.

“오령K테크는 청소를 외주 파견업체에 맡겨. 청소 직원의 숫자는 세 명. 그런데 여기 인력이 자주 바뀌네?”

김 과장이 문서와 인터넷 검색 내용을 번갈아 보았다. 검색창에는 구직 사이트의 정보가 떠 있었다.

“지, 진짜네요?”

“기존에 근무하던 세 사람이 거길 그만두게 하면, 외주 파견업체는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그 회사에 보내겠지. 이 방법을 쓰면 내일 당장 우리 셋 다 오령K테크에 침투할 수 있다.”

이 과장이 물었다.

“세 명이나 그만두게 하는 건 어떻게 하죠? 우리 작전은 일반인이 알아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더 좋은 일자리에 꽂아줘야지. 그래야 자연스럽게 그만두잖아.”

김 과장이 반대했다.

“바깥 청소만 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회사 내부에 들어가야 합니다.”

“너 문서 제대로 안 보냐? 이 업체에서 건물 내부 청소도 맡잖아. 안쪽에 한 명은 넣을 수 있어.”

“하지만 청소 직원은 기술 정보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상관없어.”

“네?”

***

나강인의 요구는 곧바로 정보기관으로 전달됐다.

수습들은 어리바리했지만, 그들이 소속된 정보기관의 상관인 진짜 과장은 일 처리가 빨랐다. 이번 요청은 진짜 과장이 직접 움직여 해결했다.

김 과장이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대상 인원 세 명에게 다른 회사에서 직접 고용하는 일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세 명 모두 즉시 제안을 수락하고 기존 업체에 그만둔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제 그 빈자리에 우리가 들어가야지.”

“문제가 있습니다.”

김 과장이 세 명의 사진을 TV에 띄웠다.

“대상자들의 나이가 저희와 많이 차이 납니다.”

이 과장도 문제점을 말했다.

“젊은 사람 세 명이 그 용역업체에 일하겠다고 찾아가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누가 젊은 사람이래?”

“예?”

“우리가 저 세 명과 비슷한 나이로 변장해야지.”

나강인이 안쪽에서 변장 도구가 들어 있는 상자를 가져왔다. 이건 나중에 정체를 숨기고 활동해야 할 때를 대비해서 챙겨둔 거였다.

그렇다고 그렇게 설명할 순 없다. 그는 영화 핑계를 댔다.

“내가 요즘 영화계에서 일하는 건 아냐?”

이 과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못 들었습니다.”

“내가 거기서 이것저것 하는데, 특수분장 일도 가끔 해. 이건 그걸 연습하려고 가지고 있는 거야. 그리고 옷은….”

나강인이 모니터 속 사진을 본 후에 종이에 필요한 것을 적었다.

“이걸 구해오라고 전해.”

나강인이 먼저 이 과장의 얼굴에 변장 기술을 썼다.

AI 전지인이 뿌듯해했다.

- 이 변장 기술은 역시 이런 침투 작전용으로 써야 합니다. 배우 메이크업용이 아니라 작전용으로 쓰니까 기술이 더 잘 들어갑니다.

“이번엔 잘 안 지워지게 오래 가는 거로 해.”

- 그러면 피부에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백한수려의 화장품 세트 받아놓은 거 있잖아. 그거라도 주지 뭐.”

- 알겠습니다.

AI 전지인은 변장 재료를 아끼지 않고 썼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얼굴을 40대와 50대로 바뀌었다. 김 과장이 40대였고 이 과장은 50대였다.

두 사람은 거울을 보며 당황했다.

“갑자기 나이를 먹은 기분이다.”

“난 지금부터 피부관리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강인은 거울을 보고 그의 얼굴에도 변장한 후에, 세 사람의 얼굴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들을 너희 기관에 보내서 우리 경력을 만들어. 저 용역업체가 신원조회를 할 것 같진 않지만, 만약에 한다 해도 아무 문제 안 생기게.”

김 과장이 장담했다.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

청소용역 업체에 들어가는 건 쉬웠다.

정보기관에서 위조한 경력에는 기업체에서 청소용역으로 근무한 이력이 여럿 들어 있었다.

세 사람은 따로따로 용역 회사를 찾았다. 세 번째로 이 과장이 그 회사에 찾아갔을 때는 용역업체 사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같은 회사에 보냈던 세 명이 갑자기 그만둬서 당황했는데, 이게 이렇게 풀리네.”

그는 기존에 근무하던 세 명이 동시에 그만둔 이유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랑했다.

“그 세 사람이 다른 회사에 한 세트로 스카우트된 것 같더라고.”

그들은 이 용역 회사를 그만둘 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사장이 그렇게 짐작했을 뿐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좋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열심히 일해.”

***

나강인이 물었다.

“원래 그 회사에서 일했던 세 사람이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왔어?”

이 과장이 아까 소속 기관에 연락해 정보를 받아왔다.

“세 사람에게 원래 하던 일은 모두 확인했어요. 정리된 문서를 보여드릴게요.”

“핑계는 잘 댔냐?”

“면접을 볼 때, 새 직장에서 업무를 맡기려면 마지막 회사에서 한 일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상은?”

“예?”

“면접 잘 보려고 실적을 과장했는지 어떻게 알아?”

“영상도 있을 거예요. 바로 보내달라고 할게요.”

이 과장이 기관에 연락해 영상을 추가로 받았다.

영상 속에는 이 과장이 변장한 모습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이 오령K테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카메라의 위치는 조금 옆으로 치우쳐 있었다.

이 과장이 설명했다.

“촬영 중인 걸 저 사람이 모르게 했어요.”

나강인이 영상 속 모습과 서류를 비교했다.

“복도와 화장실, 엘리베이터 청소까지는 진짜야.”

그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얼굴 근육과 눈동자의 움직임에서 이상 반응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업무를 자기가 했다고 거짓말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아줌마가 사무실 내부까지 청소했다는 건 거짓말이야.”

“예?”

“건물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연구실은커녕 사무실도 직접 볼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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