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잠입
나강인은 조금 당황했다. 인터뷰 영상을 확인했더니 청소부로 위장해도 사무실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인아. 청소부로 위장해서 침투하면 된다고 큰소리 다 쳐놨는데, 이게 뭐냐? ”
AI 전지인이 변명했다.
- 요원님이 이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자료는 네가 찾아줬잖아.”
-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정보기관 수습요원 두 명은 나강인이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혼자 심각하게 궁리하는 중이라고 착각했다.
수습요원 이 과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원래 계획으로 돌아갈까요?”
나강인이 이 과장을 쓱 보았다.
“지인아. 이 상황에서 쟤들 말대로 하면 모양이 너무 빠지지?”
- 지구연합 전략특수군의 체면이 땅에 떨어질 겁니다.
“쟤들은 지구연합군이 뭔지도 몰라. 어쨌든 이 사태를 해결은 해야지.”
- 방법이 있습니까?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내야지.”
나강인이 두 사람을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 정도는 내가 예상한 범위 안에 있어.”
수습요원 김 과장이 의심하는 눈으로 물었다.
“진짜입니까?”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너네 입장에서는 내 말이 무조건 진짜여야 할 텐데?”
“예? 그게 무슨….”
“이건 합수부의 비공식 작전이니까, 오령K테크에 문제가 없다면 조사했다는 것조차 들키지 않고 조용히 사라져야 해.”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들키면, 너희는 둘 다 소속 기관에서 잘려. 어디 수습이 감히 비공식 작전을 뛰어?”
“네? 네?”
두 사람이 정말 잘리는지는 나강인도 모른다.
“만약 단서를 찾았는데 그 회사가 본체가 아니라 곁가지라면, 그때도 들키지 않고 빠져나와야 하는 건 마찬가지야.”
잘릴지도 모른다는 말에 김 과장의 목소리에 힘이 확 들어갔다.
“맞습니다! 당연히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다 너희들 생각해서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고른 거야.”
“감사합니다!”
이 과장이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무슨 계획이 있으시죠?”
“있지.”
나강인이 이 과장에게 지시했다.
“내일 화장실 청소 열심히 해라.”
“네?”
“첫날에 그 회사의 화장실을 다 청소해. 그게 이번 작전의 핵심 중 하나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강인이 시계를 슬쩍 보았다.
“밥 먹으러 가자.”
“예? 갑자기요?”
“오령K테크 직원들이 퇴근하면 뭐하겠어? 밥 먹고 술이라도 한잔 마시기 딱 좋은 시간이잖아. 그 사람들 사이에서 먹자고.”
이 과장이 손뼉을 쳤다.
“아! 정찰을 가는 거군요!”
“맞아. 밥은 너희들이 사라.”
AI 전지인이 말했다.
-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먹는 게 남는 겁니다. 이렇게라도 남는 게 있어야 합니다. 소고기와 전통주를 먹자고 하십시오.
이 과장은 당황했다.
“예? 이번 작전은 영수증 처리가 안 되는데요?”
“응?”
“합수부 작전인 데다가 말씀하신 것처럼 비공식 임무라서요. 영수증을 제출할 곳이 없어요.”
“어…. 그렇지.”
“나 사범님은 드래곤 플레이트 제작자시니까 돈이 많으실 텐데, 저희는 아직 수습이라 월급이….”
“내가 살게. 밥은 국밥 먹고, 술은 소주 먹자.”
***
나강인은 두 사람을 데리고 오령K테크 직원들이 자주 가는 술집과 식당들을 돌아다녔다.
합수부에서는 위성 기지국 장비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따로 만들어 제공했다. 그 명단에는 사장이나 이사 같은 고위층부터 실무자까지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술집 입구에서 내부 상황을 확인해 명단에 있는 직원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집으로 옮겼다. 그러다 찾던 사람이 보이면 그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한 장소에서 오래 먹지도 않았다. 정량만 시켜 서둘러 먹고 나가 명단 속 다른 직원들을 찾아다녔다.
세 번째 술집을 나온 후에 이 과장이 배를 만졌다.
“나 사범님. 너무 배불러서 배가 찢어질 거 같아요.”
“내가 반 넘게 먹었고 네가 제일 조금 먹었어.”
“술도 너무 많이 마셨어요.”
“왜 약한 모습 보이고 그래? 앞으로 몇 집은 더 돌아야….”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오령K테크의 정문계 이사를 발견했습니다.
AR 렌즈를 통해 허공에 정문계 이사의 기본 정보가 떴다.
“주요 마크 대상이네?”
- 합수부가 제공한 명단 최상단에 있는 사람입니다.
“회식을 마치고 막 나온 분위기인데….”
나강인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쉬자. 편의점 테이블에서 커피라서 마셔.”
“네? 또 마시….”
“고기랑 술을 더 먹던가.”
“저는 아아를 마시겠습니다!”
“편의점 커피는 너희가 사라.”
나강인은 두 사람을 편의점으로 보낸 후에 따라가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정문계 이사와 주변 사람들의 음성 정보를 모두 수집해. 거리는 적당하지?”
정문계 이사는 술집 앞에서 다른 직원들과 잡담을 하고 있었다. 배웅하러 나와서 이것저것 말하는 직원도 많았다.
- 거리는 적당합니다. 주요 마크 대상자와 대화 중인 모든 사람의 음성을 개인별로 나눠 저장하겠습니다.
***
세 사람은 이튿날 조사 대상인 오령K테크로 출근했다. 얼굴은 40대와 50대로 변장한 상태였다.
수습요원 이 과장이 불평했다.
“난 아직도 소화가 다 안 됐어. 숙취 때문에 얼굴도 엉망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너 얼굴은 원래….”
“닥쳐.”
그 회사의 관리자는 청소용역 직원이 바뀐 건 문제 삼지 않았다.
“사람이 또 바뀌었네요? 게다가 이번엔 세 명이 동시에 바뀌어요?”
기껏해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도였다.
“너무 자주 바뀌네. 그 회사에서 돈을 조금 주나?”
나강인은 50대로 위장한 상태다. 그가 물었다.
“저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와서 들으면 된다던데요.”
담당자가 불평했다.
“아, 그 회사는 전에도 인수인계 제대로 안 하고 보내더니 또…. 일단 아줌마는 복도, 화장실, 엘리베이터, 계단 청소까지 맡아요.”
이 과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사무실은 그럼….”
“그것만 해도 많을 텐데 일을 더 하려고요? 아줌마 체격을 보면 힘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상한 아줌마네.”
“아뇨! 안 해도 되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사무실은 직원들이 알아서 하니까 신경 쓰지 마요.”
“예.”
“그리고 아저씨들은.”
관리자의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들어왔다. 그는 문자를 확인한 후에 건물 뒤쪽을 가리켰다.
“뒤쪽 쓰레기장 옆에 컨테이너 사무실이 있는데, 거길 쓰면 되니까 먼저 가 있어요. 아줌마 청소도구도 거기 다 있어요. 난 이것만 처리하고 금방 갈게요.”
세 사람은 일단 건물 뒤편 쓰레기장으로 걸어갔다.
나강인이 이 과장에게 말했다.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왜 굳이 물어봤냐? 괜히 의심하잖아.”
그녀가 변명했다.
“진짜로 사무실에 못 들어가는지 확인은 해야 해서….”
“네가 아직도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구나?”
“아뇨. 믿습니다.”
“화장실 청소는 점심시간 전에 끝내라.”
“네? 저 회사의 화장실이 한두 개가 아닌데 그걸 오전에 끝내요?”
“시킨 일도 그때까지 다 해놓고. 오전에 다 끝내야 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어. 그러니까 열심히 해라.”
***
건물 내부 청소는 50대 아줌마로 변장한 이 과장이 맡았다. 이 회사는 내부 청소 직원을 여자만 받았다.
오전에 건물 화장실 청소를 다 끝내려면 바쁘게 일해야 한다. 이 과장은 화장실을 열심히 청소하면서 의심했다.
“설마 일부러 나를 굴리려고 작전을 이렇게 짰나?”
합수부에서 처음에 세웠던 계획은 나강인 혼자 이곳에 침투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나강인이 요구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나강인이 회사에 침투했을 때는 외부의 안전한 곳에서 망을 보는 일을 맡기로 했었다.
그런데 나강인이 그 계획은 폐기하고 새 계획을 세웠다. 그녀에게는 모든 화장실을 청소하는 임무가 떨어졌다. 거기에 추가 임무도 있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녀는 화장실을 청소할 때마다 쓰레기통 안쪽에 도청장치를 하나씩 숨겼다. 쓰레기통이 너무 깨끗하면 위에 휴지라도 몇 장 넣어서 덮었다.
***
나강인과 김 과장은 외부 폐기물 집하장에서 일했다. 재활용쓰레기부터 망가진 기계, 깨진 유리 같은 폐기물이 그곳에 있었다.
담당자가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재활용 쓰레기는 다 분리하고, 일반 쓰레기는 저쪽으로 치우고, 폐기물은 마대자루에 넣고….”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면 바닥에 껌도 떼고, 꽁초도 줍고, 빗자루질은 당연하고. 하여간 이 건물 주변 바닥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게 두 사람 일입니다.”
그가 건물 유리창도 가리켰다.
“1층 유리도 밖에서 닦아요. 특히 건물 현관은 완벽하게 닦아야 해요. 사장님이 현관 유리가 투명한 걸 워낙 좋아하셔서.”
담당자는 컨테이너 사무실 벽을 가리켰다.
“그 외에 해야 할 일은 거기 정리되어 있으니까 보시고, 모르는 게 있으면 전화해요.”
담당자는 일을 지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김 과장이 벽에 적힌 업무 표를 보며 말했다.
“둘이서 하기엔 일이 많은데요? 이래서 많이 관두나?”
나강인이 말했다.
“그걸 알면서 왜 서 있어? 일해.”
“어디까지 제가 할까요?”
“방금 들은 거 전부다.”
“예?”
나강인이 귀에 이어폰을 꽂으며 말했다.
“나는 도청한 거 분석해야지.”
“저기…. 저만 일하면 이 회사에서 의심하지 않을까요?”
“의심할 생각조차 안 들게 진짜 열심히 해라.”
***
이 과장은 화장실 변기를 닦으며 말했다.
“그냥 도청기만 숨겨도 되는 거 아닐까? 아무래도 일부러 청소까지 시킨 거 같아.”
김 과장이 무거운 폐기물을 손으로 들어서 옮기며 불평했다.
“이 많은 걸 어떻게 혼자 다 하냐고.”
나강인은 일하는 척만 하며 도청장치에서 수신기로 넘어오는 대화 음성을 확인했다. 도청기가 많아서, 채널을 수시로 변경하다가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오면 그 소리만 따로 듣는 방법을 썼다.
세 사람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컨테이너 사무실에 모였다.
그들은 회사 구내식당은 이용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나강인이 물었다.
“화장실 청소는 다 했냐?”
이 과장이 대답했다.
“화장실이 너무 많았지만 해냈어요. 좀 대충 하긴 했는데….”
“그만하면 됐어. 일 좀 못한다고 설마 오늘 당장 자르지는 않겠지.”
“도청기는 오늘 다 설치했는데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 도청기를 다시 회수해야지.”
“네? 아니, 설마 똥개 훈련을….”
“이 작전이 들키면 너희는 잘린다니까? 도청기를 쓰레기통에 남겨뒀다가 누가 보면 어떻게 하려고?”
“당연히 회수해야죠.”
“그리고 오후에는 일단 내가 들어간다.”
“네?”
나강인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내가 너로 변장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갈 거야.”
여자 수습요원 이 과장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저랑 사이즈가 다르신데요?”
“그래서 일부러 네 덩치가 더 커 보이게 옷 속에 온갖 뽕을 다 넣었잖아.”
이 과장은 변장할 때 옷 속에 다른 보형물을 많이 넣어 덩치를 키웠다.
“얼굴은 비슷하게 꾸미고, 체형은 내가 알아서 네가 변장한 상태를 흉내 낼 거야. 화장실에서는 사람들이 얼굴을 잘 안 마주치니까 조금 달라도 그런가 보다 하겠지.”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어. 가능해. 처음부터 이러려고 너를 그 모습으로 변장시킨 거니까.”
김 과장이 얼른 물었다.
“그럼 제가 오늘 혼자 일한 건 어떤 계획 때문입니까? 제 모습으로도 변장하실 겁니까?”
“누군가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그냥 너 시켰는데?”
“네?”
***
나강인은 이 과장을 변장시킬 때 처음부터 역할을 바꿀 걸 고려해서 작업했다. 그래서 지금 그녀의 상태와 비슷하게 변장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김 과장이 변장한 두 사람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두 얼굴을 같이 보니까, 비슷하긴 한데 차이도 좀 있습니다.”
“지금 너처럼 우리 둘을 다 보게 되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누군가가 말로 인상착의를 설명할 때는 비슷하게 묘사할 거야.”
이 과장이 물었다.
“저기, 그럼 나 사범님이 처음부터 여자로 변장하고 건물에 들어가셨으면….”
AI 전지인이 말했다.
- 그랬으면 요원님이 화장실 청소를 다 하셨어야 합니다.
나강인이 둘러댔다.
“변장으로 성별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아. 시선을 피해 움직일 때는 괜찮지만, 담당자와 직접 마주 보고 이야기할 때는 위화감을 준다. 점심시간 끝나가네. 난 들어갈 테니까 이 과장은 여기서 대기해.”
나강인이 이 과장의 출입카드를 목에 걸고 건물로 들어갔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강인이 말했다.
“CCTV는 피해서 움직이자.”
- 얼굴이 정면에서 찍히지 않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