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타초
나강인이 오령K테크 화장실 쓰레기통에 설치된 도청기로 알아낸 건 결정적인 정보가 아니다. 그런 건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건 목소리 정보와 특정 화장실의 위치였다.
나강인이 화장실에 들어간 후에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 과장이 청소를 진짜 대충 했구나.”
- 이런 하찮은 청소 실력이면 자기 방도 못 치울 것 같습니다.
“그러게.”
AI 전지인이 갑자기 보고했다.
- 사람이 화장실로 접근 중입니다.
나강인은 즉시 좌변기 칸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잠시 후에 누군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비공식 작전이라 공식적인 방법으로는 건물을 도청할 수도, 직원을 도청할 수도 없다.
화장실 쓰레기통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도 합수부의 결정이 아니다. 나강인이 수습들을 시켜서 한 일이다.
그는 어제 이 회사 근처 식당들을 돌며 직원들의 음성 정보를 수집했다. 특히 합수부의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작업했다. 명단의 사진과 술집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비교하면 대상자가 누군지 확인하는 건 쉬웠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화장실에서 목소리를 추가로 수집했다.
AI 전지인은 어제 수집한 목소리와 오늘 도청한 목소리 사이의 대화를 이용해, 새로 수집한 목소리의 신분도 여럿 알아냈다.
화장실에 들어온 남자가 말했다.
“오줌 좀 시원하게 눴으면 좋겠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조순철 부장입니다. 오전에 수집한 음성 정보로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합수부에서 제공한 용의자 명단 상단에 있는 사람입니다.
나강인이 속삭였다.
“비뇨기에 문제가 있어서 금방 올 줄 알았다.”
합수부는 킬러가 마포의 건물을 점령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 재단을 이용한 모든 회사를 조사했다. 그러다 이 회사와 위성 기지국 사이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걸 파악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말단 사원이 할 수는 없다.
합수부에서는 그런 일이 가능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명단을 만들었다.
그 명단만으로는 누가 범인인지 알아낼 수 없었지만, 의심 우선순위는 정할 수 있었다.
조순철 부장은 그 명단의 위쪽에 있는 사람이다.
나강인은 조순철 부장이 이 화장실을 오전에만 세 번이나 이용했다는 걸 도청을 통해 알아냈다.
나강인이 좌변기 칸에서 조순철을 불렀다.
“야. 조 부장.”
그 목소리는 조 부장의 직속상관인 정문계 이사의 목소리였다.
정문계의 목소리를 흉내 내려면 음성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 목소리는 어제 길거리에서 충분히 수집했다.
“어? 정 이사님. 목소리가 조금 안 좋으십니다.”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목소리를 정문복의 것과 비슷하게 보정했다. 그래도 약간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나오지를 않아서 그래. 끄응.”
조 부장이 아부했다.
“쾌변하십시오.”
나강인이 미끼를 던졌다.
“그보다 그거 어떻게 됐어?”
조순철 부장이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좌변기 칸은 하나만 문이 닫혀 있었다.
“이사님. 그거라면….”
“이렇게 조용히 묻는 게 뭐겠어?”
조순철이 망설였다.
“이사님. 그걸 여기서 말씀드리는 건 좀….”
AI 전지인이 말했다.
- 뭔가 있습니다.
“여긴 지금 우리밖에 없잖아.”
“아. 하긴 그렇습니다.”
조순철 부장이 마음을 놓고 대답했다.
“조용히 잘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용의자가 미끼를 물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던 정보인지 다른 짓이 걸린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조용히 넘어간다는 일이 위성 기지국 이야기라면 월척이 걸린 거지만, 전혀 다른 일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나강인이 물었다.
“우리가 걸린 건 없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시 확인해봐.”
“오늘 퇴근 후에 제가 만나서 물어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아, 그리고 회사에서는 이 이야기 꺼내지 마.”
“당연하죠. 이사님.”
조순철 부장이 볼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갔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용의자의 발소리가 멀어졌습니다. 사무실 문이 개폐되는 소음을 확인했습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강인이 변기 칸에서 나갔다. 그는 덩치가 큰 여자 청소 직원으로 변장한 상태였다.
“단서 하나는 건졌지?”
- 작전을 계속하시겠습니까?
“같은 방법을 여러 번 쓰면 소문 날 수 있어. 너무 오래 돌아다녀도 누군가 알아볼지 몰라. 일단은 여기까지만 하자.”
나강인은 청소도구를 바꾸려는 척하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는 수습요원 이 과장이 대기하고 있는 컨테이너 사무실로 가서 그녀의 출입카드를 넘겨주었다.
“다 됐으니까 들어가서 일해.”
잠깐 쉬고 있던 이 과장이 물었다.
“네? 다 되다니요?”
“필요한 거 확인했다고.”
“벌써요?”
“응. 벌써 했어. 넌 가서 일하면서 도청기 회수해. 그건 이제 거기 있으면 안 되니까.”
***
오후에 수습요원 이 과장이 모든 화장실 쓰레기를 대형 봉투에 담아 내보냈다. 그 봉투에 도청기가 여러 개 들어 있었다.
김 과장은 밖으로 나온 쓰레기를 하나하나 뒤지며 투덜댔다.
“내가 쓰레기나 뒤지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닌데.”
나강인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야. 도청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잘 찾아. 그거 다 국민의 세금으로 산 거잖아.”
“세금 아닙니다. 제가 샀습니다.”
“어? 보급받은 거 아녔어?”
“도청기를 알아서 구해오라고 하셨잖습니까? 영수증 처리도 안 되는 비공식 작전인데 회사에서 받을 순 없었습니다.”
“어…. 그거 반품될까?”
“아뇨. 신분을 숨기고 현금으로 사서요.”
***
그들은 오후에는 다른 건 하지 않고 진짜 파견직원처럼 일하면서 보냈다. 세 사람은 퇴근한 후에 근처에 세워둔 차에 모였다.
나강인이 그들의 변장을 지우며 말했다.
“조순철 부장이 오늘 저녁때 누군가를 만나서 대책을 의논할 거다.”
김 과장이 물었다.
“그 대책이 우리가 찾는 그겁니까?”
“그건 확인해봐야지. 일단 조 부장을 미행한다. 위치추적장치는?”
“주차장에 있는 조 부장의 차에 설치했습니다.”
“그것도 네가 샀냐?”
“예.”
“너 혹시 집이 부자냐?”
“인터넷 은행에서 대출받았습니다.”
“어…. 가자.”
운전은 김 과장이 했다. 이 과장과 나강인은 뒤쪽에 앉았다.
위치추적기 덕분에 조순철 부장의 차를 미행하는 건 쉬웠다.
뒷좌석에서 이 과장이 물었다.
“그런데 조 부장에게 뭘 어떻게 하셨기에 저 사람이 바로 움직이나요?”
“정문계 이사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알아서 상상하게 몇 마디 던졌지. 그랬더니 무슨 말인지 도로 묻지를 않고 목소리를 낮추더라. 둘이서 뭔가 하긴 했어.”
김 과장이 보고했다.
“조 부장이 차를 주차했습니다.”
“어디야? 술집이야? 회사야? 아니네. 이면도로 주차네.”
“어떻게 할까요?”
“그냥 지나가.”
“예?”
“조 부장은 차를 여기에 주차하고 걸어가려는 거야. 목적지에는 주차한 기록을 남기지 않을 속셈이지. 이거 점점 기대되는데?”
“그럼 어떻게 할까요?”
“조 부장이 걸어가면 우리도 걸어서 미행해야지.”
김 과장이 큰소리쳤다.
“미행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제가 하겠습니다.”
“너 수습이라며.”
“네? 네.”
“현장에서 실제로 미행한 경험은?”
“없습니다.”
“넌 운전 잘하니까 차에서 대기해.”
“예.”
“이 과장은 나를 따라오고.”
수습요원 이 과장이 눈을 반짝였다.
“저요?”
“조 부장이 술집이라도 들어갔는데 거길 나 혼자 들어가면 이상하잖아.”
“아. 네!”
나강인은 차에서 내려 조순철 부장이 어디로 갔는지부터 찾았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찾았습니다.
“거리 좀 두고 따라가자.”
미행 대상이 모퉁이 너머로 사라져도 서둘러 따라갈 필요는 없다. AI 전지인이 발소리를 증폭해 대상의 위치를 찾아냈다.
모퉁이 너머에 있는 조순철의 위치가 반투명 홀로그램으로 보였다. 나강인은 그 모습을 보며 걸어갔다.
그런데 그 홀로그램은 AR 렌즈에 나타나는 것이라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강인과 같이 걷던 이 과장은 불안해했다.
“미행 대상자가 자꾸 시야에서 벗어나고 있어요. 이러다 놓쳐요.”
“그거야 미행 하수들이나 그러는 거지.”
10분쯤 걸은 후에 AI 전지인이 말했다.
- 조순철이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나강인이 이 과장과 함께 모퉁이를 지나갔다. 앞쪽에 조용한 분위기의 식당이 보였다.
“조 부장이 저기로 들어갔다. 우리가 가자.”
“진짜요?”
“속고만 살았냐?”
“들어가는 모습을 못 보셨잖아요.”
“넌 아직도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구나.”
두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 식당은 홀이 가운데 있고 바깥쪽에 여러 개의 별실이 있는 구조였다.
이 식당은 별실에 들어갈 때 신발을 밖에 벗어놓는 구조였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조 부장의 신발을 찾았습니다. 3번 별실에 있습니다.
나강인이 종업원에게 말했다.
“별실 어디가 비어 있습니까?”
종업원이 빈 별실을 불러주었다. 나강인이 말했다.
“2번 별실로 하죠.”
2번 별실에서 자리에 앉은 후에 나강인이 말했다.
“바로 옆 방에 조순철 부장이 있어.”
찜찜해 하던 이 과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그걸 어떻게 아세요?”
“3번 별실 앞에 벗어놓은 신발을 확인했지.”
“구두인데 구분할 수 있어요?”
“네가 수습이라서 모르는 거야. 이 정도 눈썰미는 요원의 기본이야.”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저니까 구분한 겁니다.
종업원이 곧바로 들어와 주문을 받았다.
이 과장이 메뉴판을 보며 속삭였다.
“여기 한우 전문점이에요. 어떻게 할까요?”
“어…. 시켜.”
이 과장이 활짝 웃으며 꽃등심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나간 후에 나강인이 물었다.
“어제 먹은 거 소화도 다 안 됐다며?”
“저녁때가 되니까 다시 배가 고프네요. 히히.”
“작전 중에 웃음이 나오냐?”
“아뇨.”
이 과장이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요?”
“벽에 귀를 대고 엿듣자.”
이 과장이 또 의심했다.
“장비도 없이 그런다고 들릴까요?”
“해 보자고.”
두 사람은 벽에 귀를 댔다.
별실 사이에는 가벽이 세워져 있었다. 가벽이 그리 두껍지 않아서 귀를 대면 목소리가 들리긴 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요원님은 굳이 벽에 귀를 대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이러는 모습을 안 보여주면 이 과장이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 음성을 증폭합니다.
벽 너머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처음에는 쓸만한 내용이 없었다. 그러다 하나가 걸려들었다.
조 부장이 말했다.
“마포 사건이 우리 일에 영향을 있는 건 아니겠지요?”
“괜한 걱정입니다. 그건 우리랑 상관없는 놈들이 저지른 짓입니다.”
“그래도 위에서 걱정하셔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전화로 할 수도 없고 해서요.”
“우리 사업은 안전하니까 편안하게 식사나 하시죠. 대리운전 호출도 기록이 남으니까 술은 어렵겠고, 고기라도 맛있게 드시죠.”
나강인이 벽에서 귀를 떼며 말했다.
“이놈들 맞네.”
이 과장은 옆에서 벽에 귀를 바짝 대고 있었다. 그녀는 나강인을 따라서 머리를 벽에서 떼며 속삭였다.
“네? 뭐가 들리세요? 전 사람 목소리라는 것 말고는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필요한 건 다 들었어. 직원이 고기 가져온다. 네 자리로 가.”
잠시 후에 종업원이 반찬과 고기를 가져다주었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인아. 옆방 대화 전부 기록해.”
- 이미 하고 있습니다. 요원님은 고기에 집중하십시오. 무려 한우 꽃등심입니다.
나강인이 이 과장에게 말했다.
“저놈들은 오늘 술을 안 마시니까 식사시간이 길지는 않을 거다. 우리가 저놈들보다 먼저 나가서 기다려야 해.”
“빨리 먹어야겠네요. 제가 구울게요.”
“어디 한우 꽃등심에 감히 초보자가 손을 대? 귀한 거니까 내가 구울 거다.”
두 사람은 식사를 옆방보다 빨리 먹었다. 경쟁적으로 고기를 먹다가 이 과장이 멈칫했다.
“저…. 혹시 어제처럼 식당을 몇 번이나 옮겨가면서 먹어야 하는 건 아니죠?”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조 부장은 상대편을 김 실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거 먹고 나서 김 실장을 미행할 거야. 저놈이 다른 데 가서 또 먹으면 우리도 먹어야지. 그런데 또 먹을 놈이면 지금 저렇게 신나게 먹겠냐?”
“네? 김 실장이 누구인데요?”
“지금 조 부장하고 고기 먹는 놈.”
“실장인지는 어떻게 아셨어요? 성이 김 씨라는 건요?”
“방금 옆방 대화 같이 엿들었잖아.”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 뭐가 들리셨어요? 와. 귀가 무슨 박쥐세요?”
“너 지금 나 멕이냐?”
이 과장이 손을 흔들었다.
“아, 아뇨. 박쥐가 아니라 그…. 강아지요!”
“박쥐에서 개 아들이 됐네?”
이 과장이 다급히 변명했다.
“저 강아지 좋아해요! 심지어 가수 댕댕도 이름이 댕댕이라서 찾아봤을 정도예요!”
나강인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응? 댕댕이 누군지 알아?”
“아뇨. 이름 때문에 찾아봤다가 노래 듣고 팬이 됐는데, 신비주의 가수라서 누군지는 몰라요. 팬클럽 카페에서는 추측만 하고 있어요.”
“팬클럽도 있냐?”
“그럼요. 저 댕댕 팬클럽의 열혈 회원이에요.”
나강인이 알맞게 익은 고기를 이 과장의 앞접시에 옮겨주었다.
“이게 잘 익었다.”
이 과장이 그걸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며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꽃등심이 맛있긴 맛있네요. 그리고 고기 진짜 잘 구우신다.”
AI 전지인이 고기를 뒤집을 때까지 남은 시간을 초 단위로 표시해 정확히 알려주었다. 숫자가 0이 될 때 뒤집기만 하면 모든 고기가 타는 것 하나 없이 먹기 딱 좋은 수준으로 구워졌다.
“내가 계속 구울 테니까 너 많이 먹어.”
AI 전지인이 불평했다.
- 열혈 회원 팬서비스입니까?
“얘들이 장비 사려고 대출까지 받았다잖아. 고기라도 먹여야지.”
- 대출을 받은 건 밖에서 굶고 있는 수습요원 김 과장입니다만?
“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