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무료 나눔
나강인과 수습요원 이 과장은 옆방의 조 부장과 김 실장보다 먼저 식사를 마쳤다.
이 과장이 물었다.
“지금 나갈까요?”
“옆방에서 나갈 분위기가 보이면 그때 빠지자. 하나라도 더 들어야지.”
AI 전지인의 음성 선별 증폭 능력 덕분에 옆방의 대화는 아주 잘 들렸다.
이 과장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네? 옆방 말소리가 들리세요? 그 정도면 사람 귀가 아닌데….”
“어….”
나강인이 벽에 다가가 귀를 댔다.
“내 말은, 지금부터 듣자고.”
AI 전지인이 말했다.
- 열혈팬과 팬미팅을 더 하려고 이런 핑계로 시간을 끄십니까?
“그런 거 아니야. 말실수를 수습하려고 잠깐 듣는 시늉만 하는 거야.”
이 과장도 다가와 벽에 귀를 대려고 했다.
“진짜 들리나?”
나강인이 벽에서 떨어졌다.
“됐다. 나가자.”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걸어가며 수습요원 김 과장을 불렀다.
잠시 후에 김 과장이 두 사람 앞에 차를 세웠다. 두 사람은 얼른 차에 올라탔다.
김 과장이 차를 출발시킨 후에 코를 킁킁댔다.
“이건… 소고기 냄새다.”
이 과장이 자랑했다.
“응. 한우.”
“뭐?”
“그것도 꽃등심.”
“난?”
이 과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행하느라 둘이서 소고기를 먹을 때 김 과장은 굶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어…. 저 집 한우는 포장이 안 되더라.”
“나도 한우 좋아하는데. 비싸서 못 먹는 건데.”
AI 전지인이 말했다.
- 수습요원들이 빠져서 밥 타령이나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밥 타령은 네가 제일 많이 하더라.”
- 요원님도 같이 먹었잖습니까?
나강인이 김 과장에게 지시했다.
“차를 몰고 이 근처를 짧게 돌아. 김 실장의 차를 미행해야 하는데, 어느 차인지 몰라서 위치추적기를 심을 수가 없다.”
수습요원 김 과장이 물었다.
“네? 김 실장이 누구입니까?”
“방금 조 부장하고 고기 먹은 놈. 마포 사건을 언급했어. 아직 얼굴도 몰라. 누구인지는 지금부터 알아내야지.”
김 과장이 큰소리쳤다.
“맡겨주십시오. 제가 운전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합니다.”
그들이 탄 차는 다시 식당 앞으로 이동했다. 조 부장과 인사하는 사람이 보였다.
“저놈이 김 실장이네.”
차가 조 부장을 지나간 후에 나강인이 말했다.
“난 내려서 김 실장을 따라갈 테니까 부르면 바로 와라.”
“네?”
나강인은 차가 골목으로 천천히 들어가자마자 문을 열고 휙 내렸다.
“어어?”
“위험해요!”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이 과장이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나강인은 평범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 과장이 뒷자리에서 김 과장에게 물었다.
“우리 방금 속도 얼마였어?”
“시속 20킬로.”
“그 정도면 자전거 탈 때 속도 아냐? 근데 왜 차에서 내릴 때 안 넘어져?”
“그러게?”
***
나강인은 김 실장을 미행하며 말했다.
“지인아. 내 위치를 기준으로 우리 차가 대기할 장소를 추천해.”
곧바로 허공에 주변 지도가 뜨며 추천 위치가 나타났다. 나강인이 그 주소를 김 과장의 휴대폰으로 보냈다.
김 과장이 톡에 뜬 주소를 확인했다.
“여기로 가라는데?”
“얼른 가.”
그런데 그 주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새로운 주소가 날아왔다. 거리는 가까웠지만 다시 이동해야 한다. 주소 변경은 그 후에도 한 번 더 있었다.
김 과장이 그 주소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불평했다.
“설마 똥개 훈련을….”
나강인이 갑자기 나타나 차 문을 벌컥 열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김 과장은 깜짝 놀랐다.
“헉! 이 차 지금 움직이고 있는데….”
나강인이 짧게 말했다.
“차 번호 조회해.”
이 과장이 얼른 전화를 걸었다.
“말씀하세요.”
나강인이 차량 번호를 불러주었다. 그런 후에 운전하는 김 과장에게 지시했다.
“저 도로로 나가.”
“예? 예.”
그는 차가 도로로 나가자마자 다시 앞을 가리켰다.
“앞에 저 차 보이지? 김 실장 차다. 미행해.”
이 과장이 잠시 후에 보고했다.
“차량 번호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녀가 앞쪽에 있는 차를 가리켰다.
“대포차입니다.”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이 정도 정황이 나왔으면 단순 거래는 아니라고 봐야지? 합수부의 의심이 틀린 게 아니야. 저놈들이 뭔가 저지르고 있어.”
“합수부에 연락해서 본격적으로 수사하라고 할까요?”
“저 차가 대포차면 휴대폰도 대포폰이겠지. 지금쯤 꺼놨을 수도 있어. 우리가 여기서 빠지면 합수부가 할 일이 많아져. 그런데 말이야.”
나강인이 이 과장을 돌아보았다.
“민간인인 나한테 수습인 너희들을 붙인 이유가 뭐겠냐? 정보가 새지 않게 하려는 거야. 수사 규모를 키워서 움직이다가 저놈이 눈치채면 그냥 사라질 수 있어. 그럼 못 찾아.”
“그러면 어떻게 하죠?”
“조용히 따라가서 저놈 소속이 어디인지 정도는 알아내고 넘겨야지.”
김 과장이 콧김을 뿜으며 외쳤다.
“제가 차량 미행은 자신 있습니다. 이번 임무 확실히 성공해서 수습 딱지 떼겠습니다. 가즈아!”
나강인이 물었다.
“이거 성공하면 수습 딱지 떼 준데?”
“사건 사이즈가 크면 그러지 않겠습니까?”
“사이즈가 작으면 실망하겠네.”
***
김 과장의 큰소리는 아주 허튼소리는 아니었다. 그의 운전 실력은 꽤 괜찮았다.
하지만 나강인의 눈에 차지는 않았다.
“너희 기관에서는 미행하는 법을 가르치긴 한 거냐?”
“교육 내용은 말할 수 없습니다.”
“앞차하고 거리 띄우라고. 넉넉하게. 시야에서도 가끔 벗어날 정도로.”
“하지만 그러다 앞차를 놓치면….”
나강인은 스마트폰으로 주변 지도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도로 상황을 분석해서 예측하면 돼.”
김 과장이 앞차와의 거리를 벌렸다.
“알겠습니다.”
겨우 5분 뒤에 문제가 생겼다. 김 과장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 우회전했는데 용의차량이 안 보입니다! 거리를 너무 멀리 띄운 것 같습니다!”
AI 전지인이 방금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이 근방 지도를 입체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허공에 띄웠다.
그 입체 지도에는 추적 차량의 예상 이동 코스 세 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중 하나는 좁은 골목길이었다.
대상 차량이 각 코스로 갔을 확률은 바로 옆에 표시되었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보고했다.
- 신호등 주기를 고려하면 추적 대상 차량은 좌회전으로 시야에서 사라질 수 없습니다. 전진했으면 여전히 보여야 합니다.
나강인이 수습요원 김 과장에게 말했다.
“우회전했어.”
- 1번 코스로 갔으면 주행속도를 높여 다음 교차로에서 우회전하자마자 보여야 합니다. 거기가 아니라면 그다음 교차로에서 우회전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2번 코스가 그다음 교차로로 가는 경로다.
“속도 높여. 100미터 앞에서 우회전해. 거기서 안 보이면 그다음 교차로에서 좌회전. 그래도 안 보이면 다시 우회전. 그럼 보일 거다.”
“알겠습니다!”
김 과장이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다. 차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 두 코스 모두 틀렸다면, 3번 코스인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거나 인근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갔다고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말한 대로 해도 안 보이면, 목적지가 이 근처라는 뜻이야. 그러면 이 근방에 주차된 차를 찾아보면 돼.”
첫 교차로에서 우회전했는데도 대상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나강인이 손짓했다. 김 과장이 그 손을 따라 좌회전했다가 다시 우회전했다.
앞쪽에 미행하던 차가 보였다.
“찾았습니다! 진짜 저 앞에 있습니다!”
“속도 줄여. 너무 빨리 따라가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알겠습니다!”
이 과장이 뒤에서 물었다.
“어떻게 아신 거예요? 저 차에는 추적장치도 없는데요.”
“이 주변 도로 구조와 신호등 점등 주기를 계산한 거야.”
“우와아! 역시 드래곤 플레이트 제작자!”
“이 정도야 간단한 수학이지.”
- 제가 계산했습니다. 간단하긴 했습니다.
***
김 실장의 차는 10분 뒤에 4층짜리 작은 건물에 도착했다.
세 사람이 탄 차는 그 건물을 지나간 후에 좁은 골목에서 우회전했다.
김 과장은 차를 이면도로에 세웠다. 그러는 동안 이 과장은 방금 본 건물에 있는 회사 간판을 모조리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하나 찾았어요.”
“뭐 하는 곳이야?”
“기지국 관련 장비를 개발하는 곳이에요. 그런데 여기….”
이 과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마포 그 재단을 통해서 연구비를 받은 적이 있어요.”
“연구비를 준 곳은?”
“오령K테크요.”
나강인이 씩 웃었다.
“제대로 찾아왔네. 저 회사는 국적이 어디야? 우리나라야?”
“공식적으로는 우리나라 회사이지만, 실소유주는 확인하지 못했어요.”
“일단 내가 둘러볼 테니까 너희는 차에서 대기하면서 계속 조사해.”
“예.”
나강인이 차에서 내려 건물로 걸어갔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건물 외부를 감시하는 CCTV를 발견했습니다. 사각지대 경로를 안내하겠습니다.
CCTV를 피해서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곧바로 나타났다. 나강인이 그 방향으로 조용히 접근했다.
이 과장이 찾아낸 회사는 3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강인이 3층에 올라간 후에 말했다.
“회사 규모가 생각보다 작다.”
- 사람이 있는 곳은 하나뿐입니다. 김 실장이 서랍을 열었습니다. 휴대폰을 켰습니다. 다른 인물과 통화를 시작합니다.
AI 전지인이 김 실장의 목소리를 증폭했다.
- 오령 쪽 놈들이 몸을 사리는 눈치야.
- 지금 잡아놓은 약점으로는 부족할 수 있어. 뒷조사는 꾸준히 해야지.
- 물건은?
- 테스트 끝나면 잘 숨겨둬.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통화가 끝났습니다. 서랍을 다시 닫았습니다. 김 실장이 사무실을 나오려 합니다.
나강인이 화장실 쪽으로 몸을 숨겼다. 계단을 이용하려면 반대로 가야 한다.
문제가 생겼다.
- 김 실장이 화장실로 오고 있습니다.
“젠장.”
나강인이 주변을 슬쩍 보았다.
좌변기 칸은 두 개다.
“다른 사무실은 다 불이 꺼졌는데 한밤중에 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의심하겠지?”
- 물론입니다. 다른 피할 곳을 찾아야 합니다.
나강인이 화장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저기로 올라갈까?
- 너무 낮아서 천장에 붙어 있어도 보일 수 있습니다.
김 실장이 화장실로 들어와 소변을 보았다.
“조 부장 그 새끼. 내가 친 약 때문에 오줌 못 누는 병에 걸린 거 아냐?”
김 실장이 스마트폰을 열어 사진을 확인했다. 조 부장이 술에 취한 채로 여자와 침대에 누워 있는 사진이 찍혀 있었다.
“다른 여자로 약을 칠 걸 그랬나? 오늘 고기 같이 먹었다고 설마 나한테까지 병 옮는 건 아니겠지? 괜히 찜찜하네.”
김 실장이 몸을 흔들며 말했다.
“집에나 가야겠다.”
나강인은 화장실 창문 바깥 외벽에 붙어 있었다.
이 건물이 대로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한밤중이다. 벽에 붙어서 사람들의 눈을 잠깐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김 실장이 화장실을 나갔습니다. 계단으로 이동했습니다.
나강인이 살짝 열려 있는 화장실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손을 털며 말했다.
“스마트폰에 여자 사진이 있는 것 같지? 약점 잡아놓은 게 저거였네.”
- 사진을 손에 넣으시겠습니까?
“귀찮게 뭐하러. 나중에 경찰이 압수한 다음에 알아서 하겠지. 사진 들이밀면 조 부장이 술술 털어놓긴 하겠다.”
나강인이 복도로 이동해 그 회사 사무실 문앞에 섰다.
“경비회사의 동작감지기는 없고…. 이건 그냥 자물쇠네?”
나강인이 자물쇠 해제 도구를 꺼냈다.
“열자.”
AI 전지인이 자물쇠를 간단히 해제했다. 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휑한 거 봐라. 이게 어떻게 연구소야?”
나강인이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 재단을 통해서 연구비 받을 때는 가짜 서류를 냈겠어. 그런데 서류만 보고 연구비가 나왔을 리는 없단 말이야.”
- 오령K테크에서 이곳에 실사를 나온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야 합니다. 공범일 겁니다.
“조 부장이겠지.”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느 서랍이야?”
AI 전지인은 김 실장이 방금 열었다가 닫은 서랍을 표시했다. 그 서랍도 잠겨 있었다.
서랍 자물쇠는 구조가 간단해서 문보다 더 쉽게 잠금이 풀렸다.
나강인이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구형 휴대폰 세 개가 들어 있었다.
나강인이 하나씩 만져보며 말했다.
“어느 걸까?”
- 온기가 남아있는 휴대폰을 찾았습니다.
나강인이 그 휴대폰을 켰다. 마지막 통화 시간이 조금 전이었다.
그는 재발신 기능을 이용해 김 실장이 방금 통화한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 예. 형님.
나강인이 김 실장의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 냈다.
“너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 예. 잘하고 있습니다.
“잘하기는. 너 지금 뭐 하는지 똑바로 말해봐.”
- 예?
“너 딴짓 하는 거지?”
- 아닙니다. 저 지금 일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
- 공짜로 받은 장비니까 기본 테스트는 꼭 하라면서요. 넘길 땐 작동하는 상태로 보내야 탈이 안 난다고 하셨잖습니까?
나강인이 휴대폰의 마이크를 막았다.
“위성 기지국용 우주 통신 장비도 무료 나눔을 하냐?”
- 개도 안 믿을 소리입니다.
“이놈들은 믿나 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