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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215화 (215/411)

215. 합수부

나강인이 건물을 조사하는 동안 정보기관 수습요원 김 과장과 이 과장은 차에서 대기했다.

운전담당 김 과장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 사범님 말이야. 도대체 정체가 뭘까?”

이 과장이 노트북을 사용해 자료를 조사하며 대답했다.

“뭔지는 몰라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넌 어떻게 소고기 사줬다고 당장 평가가 바뀌냐?”

나강인과 이 과장은 아까 식당에 들어간 조 부장을 미행하면서 소고기를 먹었다.

“그냥 소고기가 아니라 한우 꽃등심이었다.”

“맛있었겠다. 나쁜 년아.”

이 과장이 고개를 들고 째려보았다.

“이 새끼가 어디서 욕을.”

“나만 굶었어.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훈련받을 때 많이 굶어 봤잖아. 겨우 한 끼 가지고 지랄은.”

“그땐 옆에서 소고기 기름 냄새 풍기는 년이 없었지.”

“이 새끼가 또 욕을 하네? 죽고 싶냐?”

김 과장이 갑자기 자세를 똑바로 했다.

“야. 온다.”

나강인이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김 실장 퇴근했다.”

김 과장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미행할까요?”

“아니. 집에 가더라.”

나강인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뭐 좀 알아냈냐?”

이 과장이 뒷좌석에서 당당하게 대답했다.

“오령K테크에서 저곳에 연구비를 지원할 때 담당자가 누군지 알아냈어요.”

“조순철 부장이지?”

“예. 조순철…. 어? 예? 이미 알고 계셨어요?”

“아까는 몰랐는데 저길 보고 나니까 알겠더라.”

나강인이 스마트폰으로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디처럼 보이냐?”

“사무실이 휑한 게 다단계 사기 회사처럼 보여요.”

“이게 저 회사 내부 모습이다. 누가 봐도 기업체의 지원금을 받을 수준의 연구실은 아니지?”

“전혀 아닌데요? 이런 휑한 곳에 연구 예산이 나갔으면 횡령이죠.”

“그런데도 연구비가 나갔어. 실사 담당자가 조 부장이고 위에서 결재하는 사람이 정 이사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수습요원 이 과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이게 그놈들이 저지른 짓의 정체군요! 연구비 횡령!”

수습요원 김 과장도 뿌듯해했다.

“사이즈가 생각보다 작기는 하지만, 저희 첫 임무부터 배부를 수는 없지요. 전 만족합니다.”

“겨우 이걸로? 아니지. 연구비 횡령은 서브 퀘스트 같은 거야.”

“네?”

“저놈들한테는 진짜 사업에 딸려온 짭짤한 부수입이라고.”

“그럼 저놈들의 진짜 목적은….”

나강인은 조금 전에 김 실장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다른 패거리와 통화했다. 그때 캐낸 정보가 있다.

나강인이 말했다.

“조 실장 패거리의 진짜 목적은 위성 기지국용 장비를 오령K테크에 납품하는 거다.”

두 사람이 침을 꼴깍 삼켰다.

김 과장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위성 기지국 장비 납품 비리 사건입니까?”

“어. 조 부장과 정 이사는 저 회사의 장비를 납품받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먹었을 거야. 돈을 먹었으니까 당연히 장비에 문제가 좀 있어도 대충 검수하고 넘어갔겠지.”

수습요원 김 과장이 흥분했다.

“리베이트 몇 푼에 눈이 멀어서 우리나라 우주 산업의 미래가 걸린 일에 불량장비를 썼단 말입니까!”

“조사하면 증거는 쏟아질 거야. 조 부장이 리베이트를 먹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닐 테니까.”

“네? 이런 일이 또 있습니까?”

“난 그렇게 본다. 김 실장은 조 부장처럼 전부터 뒷돈을 먹던 놈을 일부러 찾아서 접근했을 테니까.”

“치밀한 놈들이군요.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다행입니다. 합수부에 연락해서 조 부장과 정 이사, 그리고 저 김 실장 패거리를 전부 다 체포하겠습니다.”

이 과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한 놈도 놓치지 않겠어요.”

나강인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야. 아직 진짜가 남았다.”

“네?”

“오령K테크에서 장비를 검수하고 보냈어도 기지국을 만드는 쪽에서 다시 확인하겠지.”

“그야 당연히….”

“그런데 그렇게 들어오는 장비가 한두 개가 아닌데, 기지국 쪽에서 모든 장비를 다 분해까지 하면서 확인할 수는 없잖아? 당연히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는 한계가 있겠지.”

여기까지는 방금 김 실장의 부하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통화에서 다른 게 튀어나왔다.

AI 전지인이 통화 내용 중 몇 개를 문장으로 띄워놓았다.

- 조 부장하고 정 이사에게 돈을 좀 더 꽂아주면 되잖습니까? 어차피 이 물건은 원가가 빵 원인데요.

- 완전히 산타클로스죠. 산타클로스. 하하하.

나강인이 인상을 쓰며 설명했다.

“김 실장은 그 장비를 직접 만들거나 산 게 아니야. 누군가에게 받았어.”

이 과장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리베이트의 뒤에 또 리베이트가 걸려 있군요.”

“공짜야.”

“네?”

“김 실장은 그 장비를 공짜로 받았어. 그걸 준 사람이 누군지는 김 실장 부하도 몰라서 산타클로스라고 부르더라.”

두 사람은 당황했다.

“아니, 그러면….”

수습요원 김 과장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나 사범님 말씀은, 누군가 김 실장을 브로커로 써서 장비를 오령K테크에 넘긴 이유가….”

“돈을 벌려는 게 아니야. 위성 기지국에 그 장비가 설치되게 하려는 거야.”

“설마 그렇게 하는 이유가….”

나강인이 단언했다.

“그 장비에 트랩을 심어놨겠지. 평소에는 숨어있다가 우리나라의 우주 정거장이 발사돼서 궤도에 올라갈 때쯤 작동하는 그런 트랩.”

“그럼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 예상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는 겁니까?”

“글쎄다.”

나강인도 그것까진 모른다.

“우주 정거장에 사람이 있으면 지상 기지국에서 수작을 부려도 그 사람이 해결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그 전에, 우주 정거장이 무인으로 발사돼서 아직 원격제어 상태일 때, 우주 밖으로 날려버리거나 지구로 추락시키려던 게 아닐까?”

“그럼 서울 타격도….”

“이것만으로는 그렇게 정확히 추락시키는 건 무리 아닐까 싶다. 궤도 폭격 계획은 너무 나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전문가들에게 맡겨서 확인은 해봐. 어쨌든 누군가 우리나라의 우주 정거장 프로젝트가 실패하길 바라는 건 확실하니까.”

이번에는 이 과장이 물었다.

“누구일까요? 개인이나 기업이 저지르기엔 스케일이 너무 커요. 역시 다른 나라일까요?”

“그건 이제부터 합수부에서 알아봐야지?”

“네?”

“뭐야? 이쯤 해줬으면 난 할 만큼 한 거 아냐? 나보고 더 도와달라는 건 아니지?”

이 과장이 배시시 웃었다.

“더 도와주시면 안 돼요?”

“응. 안돼. 가라. 확 쫓아내기 전에.”

이 과장은 미소 작전을 썼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이번에는 김 과장이 요청했다.

“그럼 자료라도 좀 부탁드립니다.”

“무슨 자료?”

“방금 알아내신 그 정보 말입니다.”

“내가 방금 말한 게 다야.”

“네? 녹음 파일이나 빼돌린 서류, 해킹한 데이터 같은 그런 거….”

“없어.”

같이 잠입하고 미행할 때 얻은 정보는 두 사람도 알고 있었다.

방금 설명한 건 김 실장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전화 한 통화로 알아냈다.

그가 전화번호를 메모지에 적어주었다.

“이건 조 실장의 부하 전화번호야. 이거로 휴대폰 위치추적이라도 해라. 놈들은 그 장비를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이놈이 지금 거기 있다.”

“헉! 이게 핵심이군요!”

김 과장이 얼른 그 메모지를 받았다.

나강인이 메모지를 넘겨주며 단서를 달았다.

“명심해. 이건 민간인인 내가 우연히 알아내서 익명으로 신고한 거야.”

“네? 이번 작전을 직접 지휘해서 알아내셨….”

“민간인 익명 신고로 처리 안 하면 말이야. 작전은 성공해도 수습요원인 너희는 잘리는 수가 있다.”

이 과장이 얼른 대답했다.

“공식적으로는 익명 신고로 처리할게요. 저 대출금 갚아야 해요. 잘리면 안 돼요.”

“쟤는 도청기 사려고 대출을 받았다던데, 넌 무슨 대출이냐?”

“학자금 대출이요.”

“어…. 잘리지 마라.”

***

합동수사본부는 강남 자칼 사건 때 임시로 만들어졌다가 아직도 해체되지 않았다. 합수부 간부 중에는 정보기관 과장도 있다.

수습요원 두 명이 직속상관인 진짜 과장을 찾아갔다. 그들은 나강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과장에게 그대로 전했다.

과장이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환장하겠네. 야. 너희들 차 가져왔지? 운전해.”

“예? 어디로….”

과장은 휴대폰을 꺼냈다. 그가 전화를 걸면서 말했다.

“어딘 어디야. 합수부지. 아. 본부장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합동수사본부장이 물었다.

- 무슨 일입니까?

“나강인이 진행한 일 있잖습니까?”

- 그건 어제 오후에 맡긴 일이잖습니까? 왜요? 아무리 나강인이라도 어렵답니까?

“아뇨.”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본부장이 물었다.

- 설마 아니지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나오셔야겠는데요.”

- 상황이 어느 정도입니까?

“비상 거셔야 합니다. 합수부 간부 다 부르셔야 하고요. 제가 어제부터 나강인을 따라다녔던 우리 애들을 데려가서 브리핑하겠습니다.”

- 후우. 알겠습니다. 합수부 회의실에서 만납시다.

과장이 전화를 끊은 후에 수습요원 두 사람에게 말했다.

“왜 그러고 있어? 시간 없으니까 빨리 차 있는 데로 가자.”

***

한밤중에 합수부 회의실에 간부들이 모였다.

수습요원 두 명이 바짝 긴장한 상태로 어제부터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설명이 모두 끝난 후에 몇 사람이 탄식했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군요.”

“그건 아니죠. 현실이 되기 전에 알아냈잖습니까?”

“맞습니다. 우리나라 우주 정거장은 아직 공장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우주에는 떨어뜨릴 게 없어요.”

“나강인도 궤도 폭격 계획은 아닐 거라고 했다면서요? 우리나라 우주 산업을 방해하는 게 목적일 거라면서요? 거기 요원들. 그렇지요?”

수습요원들이 얼른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합수부장이 말했다.

“이번 일을 내년에 사건이 터질 때까지 몰랐다면 정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을 겁니다. 다행히 우리는 놈들의 계획을 압니다. 그놈들을 싹 다 잡아들여서 이번 사건을 깔끔하게 끝냅시다. 실적도 좀 챙기고요.”

몇 사람의 눈이 빛났다.

간부 중 한 명이 물었다.

“그 창고 위치는 파악했습니까?”

수습요원 이 과장이 대답했다.

“그 창고에 있는 인물의 전화번호를 확보했습니다. 창고가 있는 위치는 통화 내역을 조회하면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창고로 특공대를 보내서 쓸어버립시다.”

정보기관 간부가 손을 들었다.

“이번 일에 다른 국가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건 방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그 국가가 적대국이 아니라 겉으로는 우방일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단순한 우방이 아니라 동맹국 중 하나가 배후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간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 그 말씀은?”

“아무 팀이나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정치인이나 외국에 연줄이 전혀 없고 정말 믿을만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 조건을 걸면 쓸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다. 정보기관 내에서는 더 적다. 누가 줄을 댔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가 수습요원들을 가리켰다.

“쟤들처럼 이런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팀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 작전 초반에는 무슨 상황인지 숨길 수 있습니다. 물론 정치권이나 외국 정부에 줄을 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인원이어야 하고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합수부는 여러 기관의 사람이 모인 곳이다.

합수부장이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각자 소속 부서의 최상급자한테만 직통으로 보고하고 비빌 작전 승인을 받으세요.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는 분은 보고 생략하시고요. 이번 작전 인원은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인원을 최소한으로 선발한 후에, 정보가 새기 전에 빠르게 해결합시다.”

합수부장이 정보기관 과장에게 물었다.

“그쪽 기관에는 이번 일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간부가 수습요원을 가리켰다.

“쟤들 둘, 총권도 수강생 하나, 그리고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번 작전에 우리 기관에서는 이렇게 넷만 참여하겠습니다.”

“그쪽 기관의 정보가 필요할 때는요?”

“다른 핑계를 대고 받겠습니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경찰 간부가 손을 들었다.

“우리도 총권도 수련생과 지역 경찰서 형사들을 동원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괜찮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사건을 빨리 해결하면 정보 유출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겁니다.”

다른 간부들도 소속 기관에서 어떻게 지원을 받을지 발언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합수부장이 말했다.

“자자. 지금부터 하는 일은 다 우리 실적입니다. 그것도 사이즈가 아주 큰 실적이지요. 우리가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번에는 남는 게 있어야지요?”

경찰 간부가 활짝 웃었다.

“이번엔 많이 남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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