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합수부 II
합동수사본부는 사람부터 조용히 모았다.
정보기관은 이미 상황을 아는 네 명만 움직이기로 했다.
경찰은 현장을 합수부의 나강인 담당 형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같이 뛸 수사 인력은 그 형사나 합수부 간부가 추천한 사람들로 채웠다.
다른 간부들도 소속 부서로 돌아가면 현장을 뛰거나 뒤에서 지원할 사람들을 모을 예정이다.
수사와 지원팀 모두 주의 깊게 대상자를 선별했다.
합수부장은 전체 상황 지휘를 맡았다.
긴급회의가 끝난 후에, 수습요원 두 명은 진짜 과장과 함께 소속 기관으로 출발했다.
차에서 정보기관의 진짜 과장이 물었다.
“나강인 말이야. 직접 겪어보니까 어때?”
수습요원 두 사람이 앞다투어 말했다.
“미행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 확률을 실시간으로 계산해서 했습니다. 수학의 천재입니다.”
“사소한 정보만 가지고 상대의 행동을 예측했는데도 적중했습니다. 그게 왜 가능한지 이해가 안 갑니다.”
“조 부장을 어떻게 조종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에 입수한 정보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짐작도 안 갑니다.”
진짜 과장이 피식 웃었다.
“어제부터 나강인을 따라다녔으면서 어떻게 알아낸 게 하나도 없냐?”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둘 다 어깨가 처졌다.
진짜 과장이 손을 흔들었다.
“야야. 기대도 안 했어. 어깨 펴. 우리도 나강인이란 사람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데, 겨우 하루 본 너희들이 어떻게 알겠냐? 운전이나 조심해.”
“예.”
진짜 과장이 궁금해했다.
“그러면 나강인이 직접 싸우는 모습은 결국 못 봤겠네?”
이번에는 수습요원 이 과장이 대답했다.
“총권도의 창시자라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잠입과 미행만 하느라 용의자와 싸울 일은 없었습니다.”
“아쉽네. 장관이었을 텐데.”
“예?”
“나도 말로만 들었는데 누가 그러더라. 싸움이 아니라 아트라고.”
***
합수부의 수사는 며칠 동안 진행됐다.
며칠 뒤에 합수부 형사가 나강인의 제작 거점으로 찾아왔다. 형사가 말했다.
“요즘은 여기 자주 계시네요.”
나강인은 제작 거점 앞 공터 의자에 앉아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일이 좀 많아서요.”
요즘은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에 시간을 많이 쓴다.
형사가 테이크아웃 컵 네 개를 야외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넷 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커피가 네 잔인 이유는 수습요원 김 과장과 이 과장도 같이 왔기 때문이다.
나강인이 커피 하나를 꺼내며 수습 김 과장에게 물었다.
“사건 해결하니까 수습 딱지 떼 주디?”
수습요원 김 과장이 조금 실망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왜?”
“버스 탄 건 인정 안 된다고…. 기여도만큼만 판단하겠답니다.”
나강인이 피식 웃으며 빨대를 찾았다. 수습요원 이 과장이 얼른 다가와 컵에 빨대를 꽂아주었다.
“뭐냐? 이 과도한 서비스는?”
이 과장이 배시시 웃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려요.”
“가라. 나랑 엮이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굴러야 해.”
“에이. 농담도….”
합수부 형사가 수습요원 이 과장에게 말했다.
“그거 진짜인데.”
“네?”
“전쟁터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참 화려했으니까.”
나강인이 합수부 형사에게 물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뇨.”
나강인이 수습요원 김 과장에게 물었다.
“너는?”
“못 먹었습니다.”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하죠. 매운 거 못 먹는 사람?”
옆에서 이 과장이 얼른 손을 들었다.
“메뉴도 고를 수 있나요?”
“너는 그냥 먹어. 형사님하고 김 과장한테 물어본 거야.”
“왜 저만….”
“너는 며칠 전에 한우 꽃등심 먹었잖아. 쟤는 그때 쫄쫄 굶었다.”
김 실장을 미행하던 날, 이 과장이 한우 꽃등심을 시켰다. 돈은 나강인이 냈다.
나강인이 제작 거점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조리시설이 있다.
이 과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나 사범님이 요리할 줄은 아시나? 그냥 배달 시켜먹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합수부 형사가 씩 웃었다.
“먹어보면 알겠지.”
나강인은 야전 전술 요리인 갈비찜 스타일 불잡탕조림을 만들었다. 지구연합군의 전술 요리답게 조리 시간은 짧고 양은 많았다.
밥은 따로 하지 않았다. 나강인은 전자레인지에 돌린 즉석밥을 불잡탕조림과 같이 내놓았다.
이 과장은 조금 미심쩍은 눈으로 불잡탕조림을 보았다. 밥이 즉석밥이라는 것도 찜찜했다.
‘이거 먹어도 안 죽겠지?’
그녀가 조림을 밥에 얹어 한 입 먹어보았다.
그녀의 눈이 곧바로 동그래졌다.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당황할 정도였다.
합수부 형사가 조림을 맛있게 먹으면서 말했다.
“이게 그 소문이 자자한 나강인표 요리군요. 불잡탕조림은 평소에는 잘 안 하신다던데, 오늘 운이 좋습니다.”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합수부는 참 많은 걸 아네요.”
“하하하. 따로 조사한 건 아닙니다. 나강인표 요리는 연예계에서 유명하잖습니까? 제가 그쪽에 인맥이 좀 있어서요.”
김 과장도 불잡탕조림과 밥을 먹으며 말했다.
“이런 말 하면 엄마한테 미안하지만, 우리 엄마 요리보다 맛있습니다.”
이 과장은 남들이 떠드는 동안 열심히 먹었다.
합수부 형사는 천천히 맛을 즐겼다. 그가 물었다.
“요리할 때 손이 굉장히 크다고 들었는데, 많이 만드셨으면 좀 싸가도 될까요?”
“많으니까 그러시죠.”
갑자기 이 과장이 숟가락을 입에서 빼서 위로 번쩍 들었다.
“저도 이거 싸가고 싶어요!”
“너는 왜?”
“저 자취해요. 이런 거 많이 필요해요!”
“삼등분해서 밀폐용기에 담아줄 테니까 하나 가져가.”
수습요원 이 과장은 따로 챙겨준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여유 있게 불잡탕조림을 먹었다.
‘진짜 맛있게 맵다. 요리 실력 장난 아니다.’
그녀가 나강인을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친하게 지내야겠다.’
밥을 먹으면서 합수부 형사가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김 실장은 체포했습니다. 부하가 몇 놈 있었는데 싹 다 잡아들였죠.”
“오령K테크는요?”
“오령의 조 부장은 말입니다. 김 실장의 휴대폰에서 나온 사진을 들이밀었더니 자기가 작업 당했다는 걸 깨닫고 술술 불더군요.”
그 사진에는 술에 취한 조 부장이 여자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어쩌려고 했답니까?”
“조 부장과 정 이사는 장비 납품 비리로 뒷돈을 챙기는 게 목적이더군요. 이번에만 그런 게 아니라 전부터 여러 차례 비슷한 짓을 했습니다.”
“그건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둘이서 다 해먹은 거랍니까?”
“아니죠. 가담한 실무 직원이 두 명 더 있었습니다. 그 두 명은 돈만 챙긴 게 아니라 진급도 동기들보다 먼저 했더군요. 찾아낸 비리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김 실장의 목적은요?”
“김 실장은 조 부장이 그렇게 해먹는 사람인 걸 알고 일부러 접근했습니다. 오령K테크가 장비를 정상가에 사 주면 김 실장이 리베이트를 넉넉하게 챙겨주는 조건이었습니다.”
거기서 끝났다면 합수부에 비상이 걸렸을 리 없다.
“그 장비는 확인했습니까?”
“예. 알려주신 휴대폰 번호로 위치를 추적해서 창고를 찾아내고 장비를 확보했습니다.”
“뭐가 나왔습니까?”
합수부 형사가 인상을 살짝 썼다.
“장비 내부의 회로기판에 수상한 모듈이 붙어 있다더군요.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 부품인데 말이죠. 그게 말씀하신 트랩인 것 같아서 전문가들이 정밀분석에 들어갔습니다.”
“그 모듈로 우주 정거장을 어디까지 조종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없을 때는 단순히 추락시키거나 우주 공간으로 날려버리는 건 가능할 거랍니다. 일단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면 다시는 못 돌아온답니다. 물론 그 정거장에 조종할 사람이 없을 때 이야기죠.”
“그렇군요.”
형사가 나강인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장비를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걸 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냥 뭐, 합리적인 추론을 좀 했죠.”
- 제가 알려드렸습니다.
형사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우주 정거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사님 몇 분이 이번 수사를 돕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선생님이 추측하신 내용을 들려드렸더니, 꼭 좀 뵙고 싶다더군요. 가능하면 우주 프로젝트에 참여해 달라고….”
AI 전지인이 말했다.
- 참여하자마자 실력이 들통날 겁니다.
“바빠서요.”
“물론 거절하실 줄 알았습니다.”
나강인이 말을 돌렸다.
“내년에 발사하는 우주 정거장 말입니다. 태양 쪽으로 날릴 수도 있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그냥 궤도 밖으로 날리는 것만 가능하다더군요. 아니면 목적지 지정 없이 지구로 추락시키든지요.”
수습요원 이 과장이 살짝 끼어들었다.
“어느 쪽이든 우리나라 우주 산업은 치명타를 맞았을 거예요. 우리가 그걸 막았어요.”
수습요원 김 과장이 불평했다.
“사이즈가 이렇게 크니까 기여도가 낮아도 수습 딱지 정도는 떼줘도 될 텐데….”
형사가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우리가 내년까지 몰랐다면 심각한 타격을 받았겠죠. 다른 나라에서 그걸 노리고 공작한 게 아닐까 의심은 합니다만….”
나강인이 말했다.
“어딘지 못 찾아내셨군요.”
“조심해서 조사하는 중인데, 아직 나온 게 없습니다. 김 실장에게 그 장비를 넘겨준 놈은 흔적을 지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혹시 차 이사는 아니고요?”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 실장은 물건을 넘긴 놈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습니까?”
“김 실장 그 사기꾼 놈은….”
합수부 형사가 투덜댔다.
“수상한 장비라는 걸 알면서도 받았더군요. 아무리 뒷돈을 먹여도 최소한의 성능은 나와야 오령K테크에서 납품을 받을 테니까, 그 정도 성능이면 괜찮은 거 아니냐더군요.”
“수상한 줄은 알았네요.”
“다른 변명도 했습니다. 장비에 폭탄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 부하를 시켜서 확인은 했다더군요.”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우주 산업을 후퇴시킬 폭탄이 들어 있긴 하죠.”
“그러게 말입니다.”
이 과장이 옆에서 한마디 했다.
“우리를 오령K테크에 파견 보낸 청소업체 있잖아요. 상황이 정리되면 거기도 털 거예요. 서브 퀘스트 같은 거죠.”
“거긴 왜?”
“좀 알아봤는데요. 직원한테 주기로 한 돈을 이런저런 핑계로 빼돌려서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곳이에요.”
“거기 사람들이 자주 관두는 이유가 그거였네.”
식사를 마치고 진행 상황도 다 들은 후에, 나강인이 밀폐용기 세 개에 불잡탕조림을 담아주었다.
합수부 형사는 활짝 웃었다.
“이건 집에서 먹어야겠습니다.”
수습요원 이 과장도 배시시 웃었다.
“다음에 또 만들어주세요.”
나강인은 수습요원 김 과장을 따로 불러서 봉투를 하나 주었다.
“이건 너 해라.”
“이게 뭡니까?”
“이번에 쓴 도청기랑 위치추적기값에 보태. 우리 셋이 한 건 비공식 작전이라서 비용 처리 못 하잖아.”
김 과장의 얼굴이 확 펴졌다.
“감사합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다수의 도청기와 위치추적기를 중고로 인수하면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나강인도 마음 같아서는 그걸 다 중고로 넘기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그가 도청기를 넘겨받으면 그 정보가 기관에 넘어가지 않을 리 없다. 괜히 그런 거로 책잡히고 싶진 않았다.
“포기해라. 그럼 편해.”
- 방금 그 봉투 때문에 활동자금이 바닥났습니다. 일을 좀 하십시오.
“하잖아. 드래곤 플레이트.”
- 유나린 박사의 인공 근육 연구비로 다 들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 ‘운명의 창’은 오늘이 마지막 촬영입니다. 출연료는 이미 땡겨 썼습니다. CF라도 하나 하십시오.
“일단 오늘 촬영부터 끝내고 생각해보자.”
***
합수부 형사와 두 사람이 돌아간 후에 나강인도 차에 올라탔다.
“영화 촬영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 한 달간 나도 고생 많이 했다.”
- 요원님은 영화 촬영에 매일 참여하신 건 아닙니다만?
“종종 나갔잖아.”
- 거의 매일 촬영장에서 사는 김유찬이나 신은하가 들으면 욕합니다.
“은하가 욕은 좀 하지.”
나강인이 차의 시동을 걸었다.
“촬영 마지막 날 늦으면 좀 그러니까 지금 출발…. 어? 기름이 별로 없다?”
이 차에는 방탄판과 추가 모듈이 설치되어 있고 프레임이나 완충장치도 강화되어 있다. 그만큼 무게가 무겁고 연비가 나쁘다.
“이 기름으로는 종로까지 못 가겠는데?”
- 지금은 기름 넣을 돈도 아껴야 합니다.
“집으로 몰고 가서 거기서 버스 타야겠다.”
***
나강인의 동네에서 종로로 가는 대중교통은 버스와 지하철이 있다. 버스는 중앙버스차로가 있어서 이용하기 괜찮았다.
그는 종로로 가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았다.
“비가 오려나?”
- 기상청 발표에 의하면 오늘 비가 올 확률은 30%입니다.
“너 혹시 기상 예보 스킬도 있냐?”
- 그런 스킬이 왜 있겠습니까?
“전쟁터에서는 날씨도 중요한 변수잖아.”
- 하늘을 보고 ‘먹구름이 많으니까 곧 비가 쏟아지겠다.’라는 예측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건 나도 하겠다.”
- 전술적 기상 예측을 하려면 현재 위치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 기상 데이터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먼 지역의 데이터가 필요한데?”
- 최소한 반경 500km입니다. 그런데 그런 데이터를 받아볼 수 있는 환경이면, 기상청의 예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상 예보 스킬이 필요 없구나.”
- 그렇습…. 우측에 사고 위험 경보!
나강인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어디?”
- 이미 지나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