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17화 (217/411)

217. 지나가던 사람

나강인은 사고 위험 경보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안 보이는데?”

- 이 도로의 우측 후방 이면도로에서 사고 위험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사고가 일어난 건 아닙니다. 자력 탈출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 띄워봐.”

AI 전지인이 버스가 다니는 도로에서 우회전하면 나오는 이면도로의 모습을 허공에 띄웠다.

나강인이 그 사진을 보며 말했다.

“저러다 잘못하면 사고 나겠다.”

버스가 정거장에 정차했다. 나강인이 버스에서 내렸다.

“가보자.”

나강인이 지나온 길을 50미터 정도 도로 걸어갔다. 그런 후에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차 두 대가 교차해서 지나갈 정도로 좁은 이면도로가 나왔다.

그 도로 옆에 손바닥만 한 공원과 나무 몇 그루가 보였다.

그런데 그 나무 중 하나에 열 살쯤으로 보이는 소년이 올라가 있었다.

나강인이 나무 아래로 가서 3미터 정도 높이의 굵은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너 거기서 뭐 하냐?”

소년이 가지에 매달린 채로 말했다.

“저기 고양이요. 데리고 내려가려고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가지 끝에 매달려 울고 있었다.

“냐아아아.”

“야. 그렇다고 네가 올라가면 위험….”

갑자기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나뭇가지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기울어집니다.

소년이 매달려 있던 가지가 갑자기 휘청였다. 가지 위에 있던 소년은 순식간에 손을 놓치고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아…. 아?”

떨어지는 소년을 나강인이 손으로 가볍게 받았다.

“위험하다고 했잖아.”

소년이 소리를 질렀다.

“우와아!”

“뭐냐? 이 반응은?”

“날 받았어요! 저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받았어요!”

나강인이 소년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리부터 미끄러졌다가 손을 놓쳤으니까 그냥 떨어졌어도 큰일은 안 났어. 다리는 좀 다쳤겠다만.”

“그래도…. 아! 우리 자두!”

소년이 떨어지는 바람이 나뭇가지가 크게 흔들렸다.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새끼 고양이가 더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툭 떨어졌다.

나강인이 오른팔을 쭉 뻗어 고양이를 받았다.

“우와아!”

“아는 고양이냐?”

“우리 고양이인데요. 집에서 데리고 나왔더니 저기로 도망쳤어요.”

고양이는 새끼보다는 조금 컸다.

“고양이나 너나 다 초딩이네. 야. 데려가.”

소년이 고양이를 두 손으로 받아 품에 안았다. 고양이가 겁을 먹고 울었다.

“냐아아.”

소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저런 데 다시는 올라가지 마라.”

“네!”

나강인이 그곳을 벗어났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요원님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람이 있습니다.

“뒷모습만 찍히게 했잖아. 그 정도로 누가 날 알아보겠냐.”

나강인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어?”

버스들이 마치 기차처럼 전용차선에 길게 정체되어 있었다.

“버스가 왜 저래?”

- 초딩과 고양이를 구조하러 갔을 때 원거리에서 충돌 소음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구나.”

나강인이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갔더니 버스가 휘말린 교통사고가 보였다.

“와…. 내가 탔던 버스하고 같은 노선 번호다.”

- 요원님이 타셨던 바로 그 버스입니다. 계속 타고 계셨으면 교통사고에 휘말릴 뻔했습니다.

“이래서 사람이 좋은 일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 꼬맹이 구하려고 버스에서 내렸더니 사고를 피했잖아.”

- 요원님의 신체 능력을 고려하면, 저 정도 사고로 다칠 확률은 희박합니다.

“말이 그렇다고.”

나강인이 더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새로운 문제를 발견했다.

“어?”

- 다른 교통사고를 발견했습니다.

교통사고에 버스만 휘말린 게 아니다. 더 앞쪽에 있던 승용차는 앞부분이 대형 트럭 밑에 끼어 있었다.

소방관이 구조 장비를 이용해 그 차의 문짝을 뜯어내려고 애썼다.

“이거 안 벌려지잖아! 고장 났어!”

“장비 다른 거 가져와!”

소방관이 고장 난 구조용 유압 장비를 나강인이 있는 쪽에 치워놓았다.

나강인이 그 장비를 보며 말했다.

“저거 수리할 수 있을까?”

-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강인이 그 장비를 가져다 놓은 소방관에게 물었다.

“제가 그 장비를 좀 봐도 될까요?”

“어? 혹시 전에 그 전문가….”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VTX-13 폭발위험 사건 때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입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위험물질 치울 때 만났었죠?”

“맞습니다. 정말 그때 그분이시군요!”

“공구만 좀 빌려주시면 잠깐 뜯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소방관이 즉시 공구 상자를 가져왔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현장을 촬영하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있습니다.

AI 전지인은 카메라가 있는 방향도 표시해주었다. 뒤쪽이었다.

나강인이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냈다.

“이거라도 쓰자.”

나강인이 구조 장비를 뜯었다.

AI 전지인이 문제가 생긴 부분을 발견했다.

- 전선이 끊어진 곳을 찾았습니다.

“확대해.”

그 부분의 사진이 순식간에 확대되었다.

“해결방법은?”

- 임시 조치로 전선을 연결하면 당분간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선이 하나 끊어졌네요. 제가 일단 이어놓을 테니까, 나중에 제대로 수리받으세요.”

선을 잇는 작업은 AI 전지인이 순식간에 끝냈다.

유압 구조 장비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고맙습니다!”

소방관이 그 장비를 들고 외쳤다.

“이거 고쳤습니다!”

“다행이다! 빨리 가져와!”

나강인이 손을 털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더 도와줄 건 없겠지?”

- 민간인이 구조 현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 가자.”

나강인이 길을 계속 걸어갔다.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 그가 가는 방향으로는 버스가 오지 않았다.

저 멀리에 지하철역이 보였다. 그는 거기까지 걸어가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철도 고장이네.”

선행 차량이 고장 나서 지하철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걸어가야겠다.”

- 하늘을 보니 곧 비가 쏟아지겠습니다.

“비 오면 택시라도 타야지.”

- 요원님은 오늘 기름값을 아끼려고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지금 택시를 타면 택시비가 기름값보다 많아집니다.

“알아.”

나강인이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가 참 평화롭지?”

- 저는 전투지원 AI입니다만, 지금 이 평화가 참 좋습니다.

“나도 그렇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나강인이 걸음을 서둘렀다.

“진짜 택시 타야겠다.”

- 방금 지나친 가게 내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강인이 뒤로 돌아섰다.

“오늘 무슨 날인가? 이번엔 또 뭐냐?”

- 누전으로 인한 화재입니다.

AR 렌즈를 통해 뒤쪽 가게 앞에 홀로그램 화살표가 표시됐다. 스쳐 지나갈 때 본 모습이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져 허공에 떴다.

그 영상에는 가게 안쪽에서 불꽃이 튀는 모습이 들어 있었다. 순식간에 차단기가 내려가면서 조명이 꺼졌다.

나강인이 그곳으로 뛰어갔다.

누전으로 불꽃이 튈 때 안에 있던 직원의 옷에 불이 붙었다. 직원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나강인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AI 전지인이 내부에 비치된 소화기의 위치를 표시했다.

그는 재빨리 소화기를 들고 직원의 옷을 향해 분사했다. 불은 순식간에 꺼졌다.

나강인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콜록. 콜록. 모, 모르겠어요.”

“일단 밖으로 나가시죠.”

나강인이 직원을 가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휴대폰 있으시죠?”

“네? 네.”

“그럼 119에 전화를 걸어서, 불은 껐는데 화상을 입었다고 해요. 화상은….”

- 흉터가 남을 정도는 아닙니다.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흉터는 남지 않을 겁니다.”

직원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진짜요? 옷에 불이 붙었었는데요?”

“진짜로 흉터 안 남아요. 이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네요.”

나강인은 가게 앞에 소화기를 내려놓고 근처를 지나가던 택시에 탔다.

“오늘따라 사건이 많다. 택시 타고 얼른 가자.”

- 셋 다 자잘한 사건들입니다.

“하긴. 총알이 날아다니진 않았으니까.”

***

박난정은 약속이 있어 나왔다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초등학생과 고양이를 올려다보는 나강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모습을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다 초등학생이 떨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움찔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초등학생은 멀쩡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 다행이다.”

잠시 후에 나강인이 떨어지는 고양이도 받았다. 그녀는 그 모습도 찍을 수 있었다.

나강인이 그곳을 떠난 후에 박난정은 꼬마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그런 후에 그녀도 약속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뒷모습밖에 찍지 못했지만 사진이 제법 잘 나왔다.

“이 사진은 나중에 내 블로그에 올려야지.”

교통사고 때문에 버스가 전진하지 못해 그녀도 나강인처럼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러다 사고 현장에서 구조 장비를 수리하는 나강인을 발견했다.

“어? 저 사람….”

그녀는 조금 전에 나강인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스마트폰으로 그 사진을 몇 번이나 본 덕분에 쉽게 알아봤다.

그녀가 스마트폰으로 장비를 수리하는 나강인을 찍었다. 이번에도 뒷모습만 찍혔다.

나강인이 수리를 마치자마자 소방관이 구조 장비를 옮겼다. 나강인은 그 현장을 떠나 시내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소방관들의 대화를 듣고 그 구조 장비를 방금 그 사람이 고쳤다는 걸 알았다. 덕분에 구조가 수월해졌다.

박난정은 감탄했다.

“와…. 쩐다.”

그녀가 앞을 보았다. 나강인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아….”

그녀는 구조 장면을 조금 더 보다가 약속장소로 걸어갔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그녀는 근처 가게 처마 밑으로 피했다. 그러다 다른 가게 안으로 뛰어드는 나강인을 발견했다.

“어머?”

그녀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미 두 번이나 한 일이라서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잠시 후에 나강인이 직원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소화기를 들고 있었다.

“불이 났었나 봐! 근데 껐나 봐! 대박!”

나강인은 가게 직원을 구출한 후에 소화기를 내려놓고 택시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그녀가 가방에서 5단 접이식 우산을 꺼내 쓰고 그 직원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직원이 가게를 가리켰다.

“갑자기 정전되면서 옷에 불이 붙었는데요. 저분이 들어와서 꺼주셨어요.”

“와….”

“진짜 대단한 분이죠?”

박난정이 자랑했다.

“이거 하나만 보셔도 대단하죠? 근데 저는요. 방금 이런 거 두 번이나 더 봤어요.”

“네?”

***

박난정의 약속장소는 그곳에서 가까운 카페였다.

그녀의 친구가 박난정을 보고 짜증을 냈다.

“너무 늦었잖아! 확 가버릴라 그랬다.”

“있어 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제인데?”

그녀가 노트북을 꺼냈다.

“일단 나 블로그에 글 하나만 올리게.”

그녀의 친구는 박난정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뭔지 몰라도 오늘은 네가 사.”

“조회수 대박 나면 언니가 크게 쏜다. 그러니까 잠깐만 조용히 해.”

***

박난정은 그녀의 개인 블로그에 오늘 나강인을 찍은 사진들과 함께 그녀가 직접 본 사건들을 올렸다.

사진 중에 나강인의 얼굴이 찍힌 건 하나도 없었다. 세 사건 다 뒷모습만 찍힌 데다가 그중 두 번은 마스크까지 썼다.

사진 속 나강인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초등학생과 고양이를 받아주고, 교통사고 현장에서는 장비를 수리했다.

그리고 불이 난 가게에서 직원을 구출했다.

마지막에 택시를 타고 쿨하게 떠나는 장면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래서 그건 설명으로 대신했다.

작성을 마친 후에는 그 블로그의 링크를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다.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 뭐야? 이 사람?

- 이게 설정이 아니라 진짜라고?

- 저 사람 무슨 히어로라도 돼?

- 악당과 싸워야만 히어로냐? 이렇게 지나가다 도와주는 사람도 히어로지.

- 세 번 연속으로 사람을 구했다는데, 이정도면 히어로 맞다.

그녀가 블로그에 올린 이야기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빠르게 퍼졌다.

***

신은하의 영화 ‘운명의 창’ 촬영은 조금 전에 끝났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촬영이 남아있었다.

그녀의 촬영은 다 끝나긴 했지만, 마지막 날인데 곧바로 집에 갈 수는 없다.

그녀가 촬영장 구석에 앉아서 문을 보았다.

“강인 오빠는 왜 아직도 안 와? 이러다 늦겠네.”

그녀는 옆에서 이보라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게시판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어머. 되게 멋진 사람이다.”

“응? 뭔데? 재미있는 거 있으면 같이 좀 보자.”

“보내줄게.”

이보라가 신은하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링크를 보내주었다. 거기에는 박난정이 블로그에 쓴 글이 있었다.

신은하가 그걸 보며 말했다.

“그러네. 멋진 사람….”

박난정은 얼굴 쪽은 찍지 못했다. 사진은 모두 뒤쪽에서 찍은 것이다.

그런데 그 뒷모습이 무척 익숙했다.

“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