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23화 (223/411)

223. 알레이나 민 II

이연지나 권수연은 일반인이라서 병원에 입원해도 기사가 뜨지 않는다. 기껏해야 의료진의 관심만 좀 받는다. 덕분에 두 사람은 어디서 수술받았는지 숨기기 쉬웠다.

반대로 치료 대상이 유명하면 비밀 수술을 숨기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알레이나 민은 미국 팝스타다.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했다. 다른 나라에도 팬이 많다. 한국 팬은 더 많다.

알레이나 민은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언론에 노출될 걱정을 해야 한다.

미국 의사 로버트 민이 창백해진 얼굴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 딸이 누구인지 알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몰랐습니다.”

로버트가 장담했다.

“그래도 비밀은 확실히 지키겠습니다. 우리 딸은 언론 노출 없이 한국에 들어오게 하겠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로버트도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된다고 해야만 한다.

“물론입니다. 평소라면 어렵지만 지금은 가능합니다.”

로버트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제 딸은 병 때문에 활동을 중단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습니다. 요즘은 기자도 연락 안 하고 따라다니는 파파라치도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몰래 들어올 수 있습니다.”

“수술 후에 회복을 위해 입원하면 결국 알려질 텐데요?”

“그건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지인아. 네 생각에도 다른 방법이 없지?”

- 로버트 민을 제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건 방법이 아니잖아.”

나강인이 한숨을 내쉰 후에 말했다.

“알겠습니다. 책임은 확실히 지셔야 합니다.”

로버트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으아아! 고맙습니다!”

이야기가 좋은 쪽으로 풀렸다. 분위기가 좋아졌다.

사람들은 이제야 긴장을 풀고 차려진 음식에 손을 댔다.

이곳에 차를 가져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갈 때는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로버트가 세 사람의 술잔에 한국식으로 술을 따르며 말했다.

“이 은혜는 제가 꼭 갚겠습니다.”

이정호는 치료법이 있다는 걸 그동안 로버트에게 숨겼다. 그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었다.

“친구 딸 구하는 일인데 은혜는 무슨. 서운한 게 있었으면 이걸로 퉁 치자고.”

“안 서운해!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 아니까!”

권동진도 농담을 던졌다.

“저는 뭐 돈은 많으니까 굳이 안 갚으셔도 됩니다. 음하하하.”

“언제 미국에 오시면 제가 잘 해드리겠습니다.”

“예? 미국 병원에 가라고요?”

“어? 아뇨! 뭐든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네 사람 중에서 로버트가 술을 제일 빨리 마셨다. 긴장이 풀리고 희망이 생겼기 때문에 흥분해서 마셨다.

술은 원래 빨리 마실수록 더 빨리 취한다. 조금 취한 로버트가 이정호에게 물었다.

“치료법은 어떻게 찾은 거야? 도대체 어떻게 그 저주받은 수술시간 한계를 늘린 거야?”

로버트는 착각하고 있다. 수술시간 한계는 늘어나지 않았다. 대신에 수술 속도가 빨라졌다.

이정호가 경고했다.

“알려고 하지 마. 치료법을 포함해서 모든 건 비밀이니까.”

“아니, 나도 의사니까 궁금해서….”

나강인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이정호에게 물었다.

“이 과장님이 맡은 부분을 로버트 씨와 나눠서 할 수 있겠습니까?”

“예?”

“일부분이라도 나눌 수 있으면, 수술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잖습니까?”

“로버트는 그 병의 확실한 전문가입니다. 게다가 알레이나의 케이스는 연지와 권수연 환자의 중간쯤 되니까, 잘하면 시간이 단축되겠지요.”

이정호는 다른 걸 걱정했다.

“그런데 우리 쪽 속도가 빨라지면 닥터 노네임에게 부담이 많이 걸릴 텐데요.”

AI 전지인은 묻지도 않았는데도 보고했다.

- 가능합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그건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정호가 밝아진 얼굴로 로버트에게 말했다.

“너 우리 수술에 들어와라. 네가 도와주면 수술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할 수 있어. 한 시간 안에 끝낼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그러면 당연히 해야지! 내 모든 능력을 동원…. 어? 잠깐.”

로버트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한 시간이라니? 수술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찾은 게 아니었어?”

“그랬으면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방법을 쓸 필요가 없지.”

“경증 환자는 한 시간 안에 수술할 수 있지만, 중중 환자 수술을 어떻게 저주받은 한 시간 안에….”

이정호가 나강인을 슬쩍 본 후에 대답했다.

“직접 경험해보면 알게 될 거야. 그 전에는 알려고 하지 마.”

로버트는 중요한 게 뭔지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그가 술잔의 술을 단숨에 비운 후에 눈을 빛내며 말했다.

“무슨 방법을 쓰든 상관없어. 나는 내 딸만 살리면 돼.”

***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에 나강인은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 살리는 일인데 어떻게 거절하겠냐. 잘 해결해야지.”

- 미국에 협조자를 두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할 때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갈 수 있다면 그렇겠지.”

AI 전지인이 물었다.

- 알레이나 민이 어떤 사람인지 조사하시겠습니까?

“아니. 그런다고 결정이 바뀌진 않잖아. 비밀리에 들어와서 움직이는 건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야지.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수술은 없던 일이 되는 거니까.”

그가 그녀에 대해 찾아보지 않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누군지 알면 알수록 문제가 생겼을 때 없던 일로 하기 부담스럽잖아. 그러니까 그냥 놔둬.”

***

팝스타 알레이나 민은 LA에서 로버트의 전화를 받았다.

“응. 아빠. 한국은 어때?”

- 네 병의 치료법을 찾았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어? 지, 진짜야?”

로버트의 목소리는 심각했다.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 치료를 위해서는 우리가 법을 많이 어겨야 해.

“으응? 설마 장기 밀매….”

- 다행히 그건 아니지만, 비밀이 누설되면 여러 사람이 크게 다쳐. 그러니까 네 주변 사람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서는 안 돼. 아무도 믿지 마.

문제는 또 있었다. 알레이나의 상태는 발작 위험이 예전 이연지보다는 낮지만, 그렇다고 예전 권수연만큼 천천히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 너는 이미 작은 발작을 한 번 경험했어. 두 번째 발작은 폭탄이 될 거야. 그런데 그게 언제 터질지 몰라.

“나도 알아. 그래서 몇 달째 활동 안 하고 쉬고 있잖아.”

- 만약 네 몸에 문제가 생기면 미국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여기 있어야 뭐라도 해볼 수 있지. 그러니까 빨리 한국으로 와라.

알레이나의 다른 가족들은 최근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심하게 다친 건 아니지만, 그들이 갑자기 입원 치료를 중단하고 한국으로 출국하면 기자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오늘 당장 갈게.”

그녀는 혼자 한국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그녀의 현재 상태는 발작이 일어나면 누가 옆에 있든 여기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알레이나 민이 LA 공항에서 여권을 제출하고 마스크를 내렸다. 출국자의 신원을 확인하던 직원의 멈칫했다.

“어? 알레이나 민?”

“쉿.”

“아, 네!”

직원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요즘 활동을 안 하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고마워요. 차분하게 휴식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우고 있어요.”

“역시! 그럼 이 여행도 음악을 위해서 가는 거군요.”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어디 가는지는 혼자만 알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기자들이 따라붙으면 감성 여행에 방해되니까요.”

“저만 알고 있을게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공항에서부터 전용 라운지를 이용하고 비행기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편하게 탈 수 있다.

알레이나가 그녀의 자리에 앉았다.

“후우.”

조금 피곤하긴 했다.

케이타이거 중증 환자의 증상은 사람에 따라 달랐다.

권수연은 수술받기 전에는 걷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로 체력이 낮았다.

그런데 이연지는 그때도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아픈 줄도 몰랐다.

알레이나의 증상은 두 사람의 중간에 있다. 일상생활은 평범한 수준으로 할 수 있다. 뛰는 건 어렵지만 걷는 건 너무 오래 걷지만 않으면 괜찮다.

그녀는 예전 권수연보다는 활동하기 편하지만, 대신에 예전 이연지처럼 작은 시한폭탄이 몸속에 있었다.

알레이나는 몇 달 전에 가수와 배우를 병행하다가 작은 발작을 경험했다. 그녀와 로버트 민은 그제야 그녀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게 됐다.

“힘들다.”

그날 이후로 활동을 완전히 멈췄지만 체력은 점점 떨어졌다. 아직 걷는 건 무리가 없지만 조금만 열심히 활동하면 심하게 피곤해졌다.

그런 체력으로는 장거리 여행은 무리다.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면 태평양 한복판에서 기절할 수도 있다.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해도 비행기에서는 체력이 채워지지 않는다.

비행기가 출발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녀가 로버트 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아빠. 비행기 탔어.”

- 나도 인천국제공항이다.

알레이나 민은 한국으로 가지만 로버트 민은 미국으로 와야 한다. 연구 목적을 핑계로 약과 수혈팩을 한국으로 들여오려면 로버트 민도 미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 한국에 가면 이정호가 도와줄 거야.

“나 어디서 지내야 해? 호텔은 위험하겠지?”

- 병원 근처에 아파트를 구했으니까 당분간 거기서 지내.

“알았어.”

***

비행기가 공항에 있을 때는 그나마 나았는데, 이륙해서 태평양을 가로지를 때는 퍼스트 클래스에 누워있는데도 체력이 조금씩 떨어졌다.

그녀는 체력 감소를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LA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오는 동안 잠만 잤다.

그녀는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후에 입국 심사대로 이동하면서 생각했다.

‘비행기에서 잤는데도 체력이 예상보다 많이 빠졌어. 더 늦게 한국으로 왔으면 비행기에서 기절할 수도 있었겠다.’

승객이 기절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병원으로 직행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 기자만이 아니라 미국 특파원들까지 그녀를 쫓아다닐 게 뻔하다.

그녀는 짐은 아주 작고 가벼운 핸드백 하나만 가져왔다.

그녀가 입국 심사대에서 여권을 내밀었다.

공항을 나가려면 여권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얼굴도 보여줘야 한다. 그녀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다.

담당 직원은 여권의 이름을 보고 그녀의 얼굴도 본 후에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어? 진짜 알레이나 민?”

알레이나가 한국말로 물었다.

“어머. 저를 아세요?”

“그럼요. 팬입니다!”

알레이나는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 문화에도 익숙했다. 한국 리포터가 찾아가면 모든 인터뷰를 한국어로 진행했다. 덕분에 미국 팝스타인 그녀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담당 직원은 그녀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런데 그녀를 알아본 사람이 또 있었다.

옆쪽 심사대에 있던 승객이 몸매 좋은 여자의 얼굴이 궁금해서 옆을 돌아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어? 알레이나다!”

알레이나가 얼른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썼다.

“저 지나가도 돼요?”

담당 직원도 상황을 깨닫고 얼른 대답했다.

“확인했으니까 빨리 통과하시죠.”

알레이나는 서둘러서 입국장으로 빠져나갔다. 가족이나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알레이나는 이연지와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서 그녀가 누구인지는 안다. 사진을 여러 번 봐서 얼굴도 안다.

알레이나가 이연지를 발견하고 얼른 다가갔다.

“이연지?”

“앗! 알 언니?”

“이름을 너무 많이 생략한 거 아니니?”

“그럼 레이나 언니.”

뒤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알레이나가 급히 말했다.

“나 들켰어. 튀자.”

“어? 앗! 그러면요!”

이연지가 얼른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알레이나의 몸에 걸쳤다. 이러면 옷만 보고 쫓아오는 사람의 눈을 피하기 쉬워진다.

“이쪽으로 가요.”

그녀는 알레이나를 공항 주차장으로 데려갔다. 걸음이 좀 빨랐다.

“아빠가 차를 먼저 주차장에 갖다놨어요. 직접 올 수가 없어서 제가 대신 왔고요.”

“그럴 거라고 들었어.”

이연지는 조수석에 탄 후에 몸을 낮췄다. 알레이나는 아예 뒷좌석에 드러누웠다.

“너도 의자 젖히고 누워. 그래야 남들이 못 보잖아.”

이연지가 조수석 의자를 뒤로 최대로 젖혔다.

알레이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힘들다.”

이연지가 조수석 의자에서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마이 네임 이즈 이연지.”

“그거 혹시 조크니?”

“흐흐. 저 언니 팬이에요.”

“어느 쪽?”

“당연히 가수 쪽이죠. 그쪽이 훨씬 더 유명하잖아요.”

“난 영화도 잘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더라.”

“하긴. 제가 아는 배우분들 보면 연기 진짜 잘해도 안 풀리는 사람은 안 풀려요.”

“아는 배우들이 있어?”

“당연하죠! 흐흐.”

이연지가 손가락으로 V를 만들었다.

“제가 영화와 드라마에 한 편씩 출연했답니다.”

알레이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말은 지금 처음 들었다. 그녀가 시트에 누운 채로 고개만 살짝 들고 물었다.

“너 배우였어? 대표작이 뭐야?”

“단역으로 잠깐 나간 거라서 대표작은 없어요.”

알레이나는 한국에서 대박이 난 영화는 거의 다 본다. 대박이 아니라더라도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곧잘 찾아본다.

“출연한 영화는?”

“‘운명의 창’이요.”

“못 들어본 영화다. 망했구나?”

“아직 개봉도 안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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