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29화 (229/411)

229. 청부

이튿날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이 강남 룸살롱 사장 조정철을 만났다.

조정철이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낀 채로 손을 슬쩍 들었다.

“여어. 박 사장. 오랜만이야.”

박지훈이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이군.”

조정철이 실실 웃으며 물었다.

“박 사장이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하셨나? 우리 사이에 정산 다 끝났다고 칼같이 끊을 땐 언제고?”

“회사가 어려울 때 조 사장이 투자금 도로 빼가겠다면서 부하들 데려와서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잊었어? 그때 그 돈 마련하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흐흐. 그때는 고룡 엔터가 망할 줄 알았지. 이렇게 잘 풀릴 줄 누가 알았나.”

조정철이 물었다.

“그래서 이제 내 돈을 다시 투자받게? 얼마나 필요해? 내가 크게 한 장 투자할까?”

“이제 우리 회사가 꽤 컸어. 급전이 필요할 땐 은행에서 대출이 잘 나와.”

조정철이 인상을 쓰며 등받이에 등을 삐딱하게 기댔다.

“뭐야. 돈 이야기가 아니면 나를 왜 보자고 한 건데?”

두 사람이 만난 곳은 고급 술집의 별실이다. 박지훈은 어제 바로 이곳에서 미국인 브레드 밀러를 만났다.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이 목소리를 깔았다.

“조 사장이 애들 시켜서 손봐줬으면 하는 놈이 있다.”

조정철이 얼굴을 찡그렸다.

“박 사장이 나한테 부탁할 정도면 하꼬는 아닌가 본데? 그런데 말이야. 연예계에서 잘나가는 놈들은 나도 좀 껄끄러워. 괜히 건드렸다가 TV 뉴스에라도 나오면, 어휴, 생각만 해도 짜증 나네.”

박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연예인은 아니야.”

‘경호원처럼 데리고 다니는 아는 사람이겠지.’

박지훈은 그렇게 알고 있다.

문제는 팝스타 알레이나의 반응인데 그건 걱정하지 않았다.

‘그놈만 치워놓으면 알레이나는 브레드가 알아서 해결한다고 했으니까.’

박지훈이 말했다.

“물론 어디서 한자리하는 놈도 아니고.”

조정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일반인이야? 그럼 왜 굳이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고룡 엔터에는 조용히 움직일 사람이 없어?”

“그놈이 싸움을 잘해. 아주 잘해. 한두 명이 덤벼서는 어림도 없어.”

조정철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흐흐흐.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 전문가가 필요해서 날 찾아왔구나. 그러면 말이야.”

조정철이 입맛을 다셨다.

“그놈 손봐주면 고룡 엔터 지분 좀 나한테 파나? 옛날에 내가 샀다가 도로 넘긴 그 가격에 말이야.”

“지분은 안돼. 그냥 현금을 받아.”

“얼마나?”

“오천.”

“흐음….”

조정철은 만족한 얼굴이 아니었다.

박지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한 놈 손봐주는데 오천이면 아주 좋은 조건일 텐데?”

강남 룸살롱 사장 조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현금은 나도 많으니까, 그런 거 말고 다른 거로 하자.”

“지분은 안된다고 했잖아.”

“여자애 하나만 드라마에 꽂아줘.”

박지훈은 당황했다.

“응? 그게 무슨….”

조정철이 새끼손가락을 까닥였다.

“걔가 원래 배우를 하려다가 우리 가게로 왔거든? 근데 얼굴이 진짜 예뻐. 드라마에 나오면 아마 금방 뜰걸?”

박지훈이 인상을 찌푸렸다.

“기획사라도 차려보게?”

“박 사장이 성공했는데 나라고 못할 거 있나? 난 일단 예쁜 배우 하나만 데리고 작게 시작하는 거지. 일단 걔가 뜨면 그 이후부터는 뭐 쉽겠지.”

“흐음….”

연예계를 잘 아는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이 생각했다.

‘조 사장이 연예계에 어설프게 들어왔다가 말아먹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데….’

고룡 엔터는 가수 쪽인 주력인 기획사이지만 배우를 관리하는 팀도 하나 있다. 소속 아이돌이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할 때는 그 팀의 지원을 받는다.

박지훈이 물었다.

“드라마 조연 정도면 되겠지?”

조정철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아무 드라마나 대충 꽂으면 쓰나. KMTV에서 저번에 방송한 ‘푸른 하늘’이 그렇게 인기가 있었다며? 예능 방송에서 봤는데 그거 만든 피디랑 작가가 곧 새 드라마 만든다고 하더라. 거기 꽂아줘.”

박지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 사장. 우리 회사가 그 드라마에 들어간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조정철이 두 손을 슬쩍 들며 실실 웃었다.

“흐흐흐. 이런 우연이 있나. 나야 몰랐지.”

“끄응. 미리 말하는데 잘나가는 피디와 작가의 드라마에서 신인이 비중 있는 조연을 맡기는 어려워. 내가 아무리 밀어도 피디나 작가가 대놓고 까면 안 된다고.”

“흐흐. 대사는 별로 없어도 TV에 얼굴만 자주 나오면 돼. 걔가 얼굴이 예뻐. 아주 예뻐. 흐흐흐.”

박기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내가 손봐달라는 놈은? 서둘러 처리해야 하니까 드라마 배역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조정철이 큰소리쳤다.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다구리 앞에 장사 없지. 누군지만 알려주면 내일이라도 처리해주지.”

“만약 일이 잘못되면….”

“내가 아마추어야? 쓸데없는 걱정은. 현장 뛰는 애들은 박 사장이 누군지도 모르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

팝스타 알레이나는 점심때 일어나서 피시방으로 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밥을 시켜먹은 후에 인터넷을 하며 놀았다.

그녀는 지금 LA에 있는 척해야 했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연락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공식 활동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중단했다. 그때 작은 발작을 겪으면서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가끔 주변 사람을 만나기는 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날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그녀가 간만에 이메일을 확인했다. TV 등에서 출연해달라고 제안하는 이메일이 여러 개 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몇 달 전부터 TV 출연이나 공연 같은 행사를 하나도 잡지 않았다. 기존에 잡아놓은 것도 취소할 수 있는 건 모두 취소했다. 그럴 수 없는 건 규모라도 줄였다.

기존 소속사와의 계약 기간은 이미 만료됐다. 그것도 갱신하지 않았다.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이런 걸 어떻게 하냐고.’

그녀는 정중한 거절 이메일을 하나씩 보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나강인의 고정석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녀가 고개를 슬며시 들어보았다. 그녀처럼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그쪽에 앉았다.

‘아니구나.’

신은하는 요즘 영화 홍보로 바쁘다.

여기는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나 마치고 오는 길에 들렀다. 그녀가 피시방 고정석에 앉아서 옆자리를 보았다.

“강인 오빠가 요즘 묘하게 바쁘단 말이야.”

그녀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갔다. 알레이나 민 이야기가 올라와 있었다.

“알레이나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문은 결국 착각으로 결론 났나 보다.”

피시방 사장 조카 차은서가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언니. 혹시 강인 오빠도 와요?”

“아니. 드라마 피디랑 약속이 있대.”

“우와. 강인 오빠 이번엔 드라마 찍어요?”

“모르지. 저쪽에서 하도 보자고 해서 만나러 가는 거니까.”

“멋있다.”

신은하가 차은서를 돌아보았다.

“너도 옛날에는 연예인 하려고 했잖아.”

차은서가 손을 흔들었다.

“에이. 저는 재능의 한계를 깨닫고 일찌감치 접었죠.”

***

KMTV 방송국의 피디 최진욱과 드라마 작가 도주희가 조용한 카페에서 나강인과 만났다.

최진욱이 웃으면서 말했다.

“강인 씨는 영화 촬영도 끝나셨을 텐데, 더 바쁘신 것 같습니다. 참 뵙기가 어렵네요. 하하하.”

“요즘 하는 일이 좀 있어서요.”

인공 근육을 이용한 의수 개발은 유나린 박사와 오메가테크, 그리고 나강인의 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인공 근육은 나강인이 개입할 게 없지만, 기본 골격 설계는 오메가테크와 할 이야기가 많다.

알레이나 민의 수술도 해야 한다. 그나마 그건 사전에 준비할 게 많아서 당장 수술하는 건 아니다.

드래곤 플레이트는 설계량을 두 배로 늘렸다.

원래 하던 정보 수집 임무는 계속 수행하는 중이다. 거기에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거기다 조만간 CF도 하나 예정되어 있다.

최진욱 피디는 그런 사정은 하나도 모른다. 그가 웃었다.

“하하하. 그래도 영화 촬영이 끝났으니까 좀 쉬셨지요?”

“예, 뭐.”

드라마 작가 도주희도 말했다.

“저번에 우리 드라마요. 청춘 드라마로 시작했는데 나강인 씨 덕분에 청춘 액션 드라마 됐잖아요. 시청률도 많이 오르고요.”

“저야 그냥 거든 것뿐이죠.”

“그런 분이 본격 액션 영화의 무술감독을 맡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 많이 했어요. 그 영화 정말 멋지게 나오겠죠?”

“배우와 스태프분들이 모두 열심히 하셨으니까 결과도 잘 나오면 좋겠네요.”

최진욱이 웃었다.

“제가 아는 감독님이 몇 분 계셔서 소문을 좀 들었습니다. 영화 촬영할 때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다던데요. 다들 명품 영화가 나올 거라고 기대 엄청 한다더군요.”

지금까지 열심히 밑밥을 깔았으니 이제 본론을 내놓을 때다.

도주희가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며 말했다.

“명품 액션 영화를 만드셨으니까, 이제 명품 액션 드라마도 하셔야죠? 제가 이번에 새로 쓴 드라마 대본인데요. 액션 로맨스 드라마예요.”

최진욱이 손뼉을 쳤다.

“맞아. 맞아. 영화 하나 하셨으니까 이제 우리 드라마 차례지.”

그가 나강인에게 말했다.

“아주 그냥 영화 같은 드라마 한 번 만드셔야죠. 두 시간짜리 영화가 아니라 16부작 드라마에서 멋진 액션을 실컷 보여주시죠. 상상만 해도 기대됩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요즘 좀 바빠서요.”

“아유. 스케줄이 문제시면 저희가 맞춰드려야죠. 주연배우 스케줄보다 강인 씨 스케줄을 우선하겠습니다.”

“제가 그 정도는 아닌데요.”

“아유. 그 정도 맞으십니다.”

AI 전지인도 한마디 했다.

- 요원님. 우리는 활동자금이 필요합니다.

“손태민 감독님도 같이 영화 하자고 하잖아.”

- 만약 촬영 기간이 겹치면 그냥 둘 다 하십시오. 제가 잘 서포트하겠습니다.

“우리 지인이가 출연료에 눈이 멀었구나.”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시죠.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일이 또 있어서.”

“그럼요. 저희도 지나가다가 잠깐 뵙자고 한 건데요. 바쁜 일 있으면 가셔야죠.”

나강인이 카페를 나간 후에 최진욱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도 작가. 느낌이 어때?”

도주희가 커피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딱 잘라 거절하진 않았잖아.”

“그치? 여지를 남기고 갔지? 잘 조르면 될 것 같지?”

도주희가 대본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잘 조르면이 아니라 무조건 강인 씨랑 해야지. 이 대본의 액션은 나강인 씨가 없으면 절대로 못 찍어. 와이어가 아니라 전부 CG로 처리해도 그 리얼 액션의 느낌은 못 살린다며.”

“어차피 다 CG로 할 만큼 기간과 예산이 많지도 않아. 우리가 무슨 할리우드야?”

“그러니까 꼭 잡아야지.”

최진욱 피디가 나강인이 나간 방향을 보며 말했다.

“다음엔 한우 꽃등심이라도 대접할까? 아니면 최고급 레스토랑?”

“음…. 먹을 거로 넘어올 레벨은 아니잖아. 본인이 이미 넘사벽 요리사인데. 차라리 친한 배우들을 드라마 배역에 넣어주겠다고 하는 게 더 효과가 있을 걸?”

최진욱이 박수를 쳤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강인 씨와 친한 배우가 누가 있지?”

도주희가 손가락을 꼽았다.

“내가 듣기로는, 김유찬, 신은하, 이보라….”

“도 작가 돌았구나?”

“내가 왜!”

“김유찬은 우리가 제발 나와달라고 사정해도 섭외하기 어려운 탑스타잖아. 사심이 너무 담긴 거 아냐?”

“못 먹는 감도 찔러는 볼 수 있잖아.”

“신은하랑 이보라도 그래. 이번 영화가 성공하면 팍 뜰걸?”

“그러니까 김유찬은 몰라도 신은하와 이보라는 못 먹는 감이 되기 전에 찔러봐야지.”

“우리는 지금 찔러보는 게 아니라 꽂아준다고 딜을 해야 하는 입장이야.”

“아. 맞다.”

최진욱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강인 씨가 적당한 조연급이랑 친하면 좋겠는데. 그래야 딜이 가능하니까.”

***

강남 룸살롱 사장 조정철이 휴대폰으로 여자와 통화하며 실실 웃었다.

“네가 말한 그 드라마 신작 있잖아.”

- 최진욱 피디랑 도주희 작가의 신작 드라마요?

“그래. 내가 너 거기 꽂아준다.”

- 어머나! 진짜요?

“오늘 내가 일 하나만 깔끔하게 처리하면 너를 그 자리에 꽂아주기로 이야기 다 됐어.”

그 이야기는 최진욱이나 도주희가 아니라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과 했다.

- 사장님 나이스!

“흐흐. 내가 기획사 차리면 넌 나만 믿고 연예계에서 활동하라고. 널 그냥 내 기획사의 간판스타로 만들어 줄라니까.”

- 당연히 사장님만 믿죠! 항상 믿었어요!

“오늘부터 가게 나가지 마라. 이제 이미지 관리 들어가야지.”

- 네에!

룸살롱 사장 조정철이 전화를 끊은 후에 부하들에게 물었다.

“야. 이번 일 끝내고 기획사 차리면 회사 이름은 뭐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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