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30화 (230/411)

230. 하청

강남 룸살롱 사장 조정철과 부하들은 아파트 근처에 주차된 검은색 국산 준대형 승용차에 숨어있었다.

조정철이 뒷좌석에서 말했다.

“깔끔하게 오늘 일 끝내고! 바로 기획사 딱 차리고! 유화를 드라마에 딱 꽂고! 그러면 아다리가 딱딱 맞아떨어지잖아? 기획사 이름은 뭐가 좋겠냐?”

조수석에 앉아있던 룸살롱 실장이 얼른 대답했다.

“당연히 우리 가게하고 같은 이름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계열사처럼요. 이번 기회에 회장님으로 올라가시죠.”

조정철이 실실 웃었다.

“흐흐. 무식한 새끼야. 대놓고 그러면 나중에 문제 생긴다.”

“누가 감히 형님 이름을 무시합니까? 그런 새끼는 제가 그냥 콱!”

“기자나 피디를 우리 가게에 데려와서 술도 먹이고 돈도 먹이고 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룸살롱이랑 기획사 이름이 같으면 걔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냐?”

“아….”

“하여간 이 새끼는 옛날부터 상식이 없어. 실장 자리가 아깝다.”

“다른 좋은 이름을 생각하겠습니다.”

승용차 운전석에 있던 룸살롱 부장이 말했다.

“그럼 관동 엔터는 어떠십니까?”

“응? 관동? 강남이나 강북도 아니고 관동? 여기가 일본이냐?”

“형님 성함이 정철이잖습니까. 송강 정철하고 같으니까, 대표작인 관동별곡의 관동을 따서 관동 엔터로 하는 겁니다.”

“이야아. 이 새끼. 학교 다닐 때 공부 많이 했구나? 아는 게 많아.”

“제가 옛날에 공부를 잘하긴 했습니다.”

“더 있어 보이게 영어로 하자. 관동이 영어로 뭐냐?”

“예? 그건…. 아는 단어인데 살짝 가물거립니다. 나중에 찾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너 공부 많이 했으니까 기획사 차리면 네가 기획실장 해라.”

룸살롱 부장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영광입니다! 형님.”

조수석에 앉아있던 실장이 뒤를 돌아보며 항의했다.

“아니, 형님. 기획사 실장은 우리 가게 실장인 제가 해야지요. 저 진짜 잘할 자신 있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넌 본부장 해.”

“예?”

“본부장이 더 높아.”

실장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믿고 있었습니다! 형님.”

룸살롱 실장이 고개를 든 후에 실실 웃으면서 물었다.

“그런데 형님. 오늘 손봐줄 놈은 어떻게 찾습니까?”

지금 그들이 타고 있는 차는 나강인의 아파트 근처에 주차되어 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신호를 보내주기로 했어.”

“그놈 사진이 없는데요?”

“어떻게 생겼는지는 들었잖아.”

***

알레이나는 피시방에서 저녁밥까지 챙겨 먹었다.

나강인은 저녁때 피시방에 와서 밥을 주문했다. 야간 알바 윤아름이 볶음밥을 만들어왔다.

나강인은 밥을 다 먹을 때쯤에 윤아름이 다시 다가와 물었다.

“오늘은 금방 가세요?”

나강인이 빈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밥 다 먹었으니까 이제 나갈 거야.”

그 말을 들은 알레이나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먼저 피시방을 나갔다.

“오늘도 내가 뒤에서 따라가면 너무 없어 보이잖아. 이번엔 내 뒤를 따라오게 해야지.”

그녀는 집으로 걸어가며 기지개를 쭉 켰다.

“저 피시방은 진짜 나한테 딱이란 말이야. 밥도 잘 나오고 인터넷도 빠르고 너무 편해.”

브레드 밀러가 아파트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전화를 걸었다.

“내가 알레이나를 만나면 그놈이 곧 나타날 겁니다.”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이 대답했다.

- 이미 준비 끝났습니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알레이나의 복귀 공연에 고룡 엔터 소속 가수가 나오게 해줄 테니까, 잘해봅시다.”

- 물론이지요.

***

박지훈은 휴대폰 통화를 마친 후에 눈을 번뜩였다.

“알레이나가 그 아파트 단지에서 지낸단 말이지.”

그가 손을 비볐다.

“브레드는 알레이나와 계약할 때까지 찾아가서 귀찮게 할 생각인가 본데, 그런 식으로 밀어붙여서 하는 계약이라면 나라고 못할 건 뭐야.”

박지훈이 원하는 건 미국 진출이다. 그런데 꼭 브래드 밀러를 통해 진출해야 하는 건 아니다. 더 좋은 대안이 있으면 얼마든지 갈아탈 수 있다.

“경호원만 처리되면 나도 알레이나에게 쓱 접근해야지.”

박지훈은 지금 나강인의 아파트 근처에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일이 잘못됐을 때를 대비해 아예 다른 장소에 있었다.

박지훈이 대포폰으로 조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 사장. 곧 손님이 갈 거다. 잘 대접해.”

- 흐흐. 나야 일 제대로 할 테니까 박 사장도 약속은 꼭 지키라고.

***

나강인은 피시방을 조금 늦게 나와 아파트로 걸어갔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옆집 광년이가 조금 먼저 나갔습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려면 더 천천히 나오셨어야 합니다.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되잖아.”

갑자기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주변 상황이 조금 수상합니다.

알레이나나 브레드는 보이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길가에 주차된 차 두 대 위에 표시를 띄웠다.

- 평소에 이 근처에 주차된 적이 없는 차량 두 대가 나타났습니다.

“승용차 한 대와 승합차 한 대. 그것만 가지고 의심한 거냐?”

- 주차된 위치에 CCTV가 없습니다. 지금은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왜 없지? 반대편에 공사 표지판이라도 세워놓고 보행자 통제라도 하나?”

- 그럴 수도 있습니다.

“추가 정보는?”

AI 전지인의 검은색 승용차 위에 ‘정찰’이라는 글자를 추가했다.

- 검은색 승용차는 아파트에 출입하는 보행자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정찰병일 확률이 높습니다.

승합차 위에는 ‘타격부대’를 띄웠다.

- 구석에 배치된 승합차는 분대급 병력이 탑승할 수 있는 차량입니다.

“분대급 타격대의 목표는?”

- 높은 확률로 요원님입니다.

“그럼 저놈들부터 처리하자.”

나강인이 승합차 쪽으로 걸어갔다.

운전석에서 룸살롱 부장이 보고했다.

“형님. 아까 들은 것처럼 생긴 놈이 승합차 쪽으로 갑니다.”

“그래? 불나방 같은 새끼네. 이러면 일이 더 쉽지.”

조정철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 예. 사장님.

“지금 그쪽으로 걸어가는 놈 있지? 그놈이 그놈이니까 근처로 오면 처리해.”

- 그놈이 맞는지부터 확인할까요?

“어떻게 확인할 건데? 어떤 놈인지 아는 게 있어?”

상대가 질문을 바꾸었다.

- 옵션을 설정하시겠습니까?

“어디 보자.”

조정철이 진하게 틴팅이 된 승용차 창문을 통해 나강인을 보며 말했다.

“갈비뼈는 서너 대, 팔 하나, 다리 하나. 그쯤 부러뜨리면 되겠네.”

- 알겠습니다. 잔금은 일 끝나면 바로 보내주십시오.

“장사 한두 번 하나. 퀵으로 쏠 테니까 배달 사고 안 나게 잘 받아.”

강남 룸살롱 사장 조정철이 전화를 끊으며 웃었다.

“흐흐. 역시 돈이 좋아. 우리가 직접 뛸 필요 없이 하청을 쓰면 일이 이렇게 간단하잖아?”

룸살롱 실장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옛날에는 직접 뛰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이게 다 우리 가게로 찾아와서 좋은 술을 마셔주는 고객님들 덕분 아니겠습니까? 흐흐.”

“너 이 새끼. 넌 그게 됐어. 그….”

“서비스 마인드입니다. 형님.”

“그래. 그거. 흐흐…. 어?”

조정철이 자동차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그놈 어디 갔어?”

“예? 방금 저쪽에…. 어?”

나강인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운전석에 있던 룸살롱 부장이 말했다.

“저 차 뒤쪽으로 지나가는 건 제가 봤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안 보입니다.”

“도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

***

승합차에 숨어있던 놈들도 당황했다.

“어? 그 새끼 어디 갔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젠장. 눈치챘나? 뭐해? 튀어나가서 찾아!”

승합차 문이 벌컥 열렸다.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남자들이 우르르 내렸다.

“이 새끼가 어디로 갔….”

나강인이 그들의 뒤쪽에서 물었다.

“야. 누구 찾냐?”

여섯 명이 뒤로 휙 돌아섰다.

“어?”

“찾았다!”

나강인이 그 여섯 명을 쓱 훑어보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찾은 거지.”

AI 전지인이 즉시 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 적 병사 여섯을 확인했습니다. 적의 무기는 알루미늄 야구 배트 3개, 목검 2개입니다. 한 놈은 맨손입니다.

“맨손인 놈이 두목이겠네.”

- 여섯 놈 모두의 바지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로 추정되는 무기를 찾았습니다. 셋은 등 뒤쪽이 확인이 안 됩니다. 등 뒤에 추가 무기를 숨겼을 수 있습니다.

“무기가 빈약한데?”

- 셋은 과체중입니다.

“배 나온 놈이 셋이고. 이놈들 뭐지?”

두목이 검은색 가죽장갑을 손에 끼며 말했다.

“놓친 줄 알고 당황했다. 눈치채고 도망친 줄 알았더니….”

말하다 보니 찜찜했다. 두목이 주변을 재빨리 둘러보았다. 나강인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두목이 다시 나강인을 보며 계속 말했다.

“호기심 때문에 죽을 놈이로구나.”

“뭐야. 너네 혹시 나 죽이러 온 거냐?”

“거기서 무릎을 꿇으면 몇 군데 부러뜨리는 선에서 끝내주마.”

두목의 부하 다섯이 나강인을 조용히 포위했다.

나강인이 다시 물었다.

“야. 누가 시킨 거야? 자칼이야? 낙귀야? 쿠거? 아니면 다른 놈이야?”

두목이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응? 그게 누구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의 표정을 분석했습니다. 요원님이 언급한 놈들이 누군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르는 거 맞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긴 했는데, 겨우 여섯 놈이 야구방망이나 막대기 따위나 들고 왔잖아. 진검도 아니고 목검이 뭐냐?”

그가 주변을 한번 쓱 돌아보았다.

“건물 옥상에서 날 저격하려는 놈도 없고.”

- 저격수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룸살롱 사장 조정철이 숨어있는 승용차를 힐끗 보았다.

“만약 쏜다면 저쪽에서인데, 승합차 때문에 저격 각이 안 나오잖아.”

- 차의 유리가 내려가면 승합차 뒤로 확실히 피하십시오.

두목이 말했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얘들아. 좀 친다는 놈이니까 연장 써서 잡아라.”

알루미늄 배트를 든 세 명이 먼저 나강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중 한 명이 앞쪽에서 배트를 붕붕 휘두르며 나강인의 시선을 끌었다. 다른 한 놈은 옆에서 짝다리를 짚고 말했다.

“그냥 조용히 가자. 그러면 살려는 줄게.”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한 놈이 뒤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앞에서 시선을 끌고 하나가 그 옆에서 바람을 잡는 동안 다른 하나는 나강인의 뒤쪽으로 슬쩍 다가갔다.

뒤로 접근한 놈이 나강인의 뒤통수를 노리고 배트를 조용히 위로 들었다.

‘이 새끼. 잘 친다더니 이렇게 쉽잖….’

그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배에 나강인의 발이 꽂혔다.

“케에엑!”

적이 배트를 놓치며 뒤로 날아갔다. 뒤차기를 날린 나강인이 공중에 뜬 배트를 손으로 탁 잡았다.

두목이 소리를 질렀다.

“쳐!”

무기를 든 네 명이 동시에 나강인을 향해 덤벼들었다. 앞쪽에 있던 배트 두 명이 먼저였다. 한 놈은 바로 앞에서, 다른 놈은 조금 옆에서 배트를 크게 휘둘렀다.

나강인은 날아오는 적의 공격을 빼앗은 배트로 땅땅 소리가 나게 쳐내며 말했다.

“이놈들 수준이 좀 그러네?”

- 공격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나강인이 앞에 있는 놈의 이마를 알루미늄 배트 끝으로 쿡 찔렀다.

“켁!”

머리를 맞은 놈이 뒤로 자빠졌다.

나강인이 앞으로 뻗었던 배트를 옆으로 휘둘렀다. 나강인의 측면을 노리던 놈의 옆구리에 배트가 꽂혔다.

“꾸엑!”

맞은 놈의 몸이 옆으로 구부러졌다. 나강인이 그런 놈의 머리를 다시 툭 때렸다. 적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머리를 너무 강하게 때리면 죽습니다.

“살살 하잖아. 살살.”

배트를 든 놈 셋은 간단히 처리했다.

이제 목검을 든 놈들이 남았다. 그들의 목검은 단단한 나무를 장검 형태로 깎아 만든 것이다.

그들이 나강인의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 이놈들은 좀 낫습니다.

자빠진 배트 셋은 과체중인데 목검을 든 둘은 배가 홀쭉했다.

오른쪽에서 내려치기가, 왼쪽에서 찌르기가 들어왔다. 빨랐다.

나강인이 오른쪽 내려치기를 배트로 막으며 몸을 젖혔다. 왼쪽 찌르기가 바로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찌르기가 빗나간 적은 즉시 목검을 잡아당겼다. 나강인이 왼쪽으로 미끄러지듯이 이동했다.

당황한 적의 얼굴이 보였다. 적이 급히 목검을 다시 내지르려 했다.

나강인이 빨랐다. 그가 적의 목에 손날을 꽂았다.

“컥!”

오른쪽 놈이 전진했다. 이번에는 수평 베기가 들어왔다. 나강인이 적의 공격을 배트로 쳐내며 방금 손날을 꽂은 왼쪽 놈의 목을 콱 잡았다.

오른쪽 놈은 공격이 실패하자마자 뒤로 물러나며 목검을 앞으로 세웠다. 방어 자세였다.

나강인이 왼쪽 놈을 오른쪽으로 그냥 집어 던졌다.

당황한 오른쪽 놈은 목검으로 동료를 쳐서 밀어내며 옆으로 피했다.

나강인이 피하는 놈에게 바짝 접근하며 말했다.

“와. 자기만 살겠다고 아군 등에 칼 꽂는 거 봐라.”

“이 새….”

나강인의 적의 다리를 걷어찼다. 적의 몸이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다가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엎어진 놈의 얼굴을 나강인이 다시 툭 찼다.

“켁!”

다섯 놈이 무기를 들고 덤볐다가 순식간에 전멸했다.

이제 두목만 남았다.

그런데도 두목은 여유를 잃지 않고 박수를 쳤다.

“대단해. 듣던 것보다 더 실력이 좋구나.”

나강인이 두목에게 물었다.

“왜 나를 노렸냐?”

“나야 모르지. 난 돈만 받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타깃을 손봐주니까.”

두목이 손가락 하나를 슬쩍 세웠다.

“아. 따지는 게 하나 있긴 있지. 타깃이 강하면 의뢰비가 쭉쭉 올라가야 하는데.”

두목이 쓰러진 부하들을 가리켰다.

“이번 일은 적자야. 추가 수당을 요구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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