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하청 II
청부조직 두목이 나강인을 가리켰다.
“내 부하 다섯이 순식간에 당할 정도로 강한 놈이 타깃이면, 단가를 그렇게 책정하면 안 되지. 동그라미 하나는 더 붙였어야지. 이건 의뢰인 잘못이다.”
나강인이 물었다.
“그 의뢰인이 누구냐니까?”
“내가 왜 비싼지 아나? 고객에 대해 아무것도 안 물어보기 때문이야. 가장 깔끔한 청부사. 그게 바로 나다.”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그래. 누가 시켰는지 굳이 내가 물어볼 필요가 있겠냐? 경찰에 넘기면 거기서 알아서 찾아내겠지.”
두목이 실실 웃었다.
“흐흐. 나를 경찰에 넘겨? 어떻게? 네가 제법 강하긴 하다만, 내 상대로는 부족하지.”
AI 전지인이 조언했다.
- 상대의 신체 조건은 평범합니다. 자신감의 근거는 특수 무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강인이 두목에게 물었다.
“너 뭐 숨겨둔 거 있냐?”
두목이 웃었다.
“크크크. 실력이 좋은데 눈치까지 빠르군. 하지만 그게 네 한계다. 우리 애들은 무기가 부실해서 패배했지. 하지만.”
두목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이게 상대라면 어떨까!”
두목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허리 뒤로 넣었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경고했다.
- 어깨와 팔의 움직임을 분석했습니다. 칼이 아닙니다. 권총입니다!
두목이 허리 뒤에서 권총을 꺼냈다.
나강인이 손에 쥔 알루미늄 배트를 휙 던졌다.
금속 배트가 날아가 두목의 이마를 정확히 때렸다. 맑은 쇳소리가 났다.
“켁!”
두목이 뒤로 자빠졌다. 오른손에 쥔 권총은 바닥에 넘어질 때 손에서 빠져나갔다.
나강인이 두목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들면서 총을 뽑으면 난 뭐 그냥 보고만 있겠냐?”
나강인이 권총을 발로 툭 찼다.
“겨우 이런 거 한 자루로…. 음?”
발에 닿은 느낌이 일반적인 권총과 달랐다. 나강인이 발로 권총을 툭툭 건드렸다.
“이거 느낌이 좀 이상한테?”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형 권총입니다.
나강인이 입에 거품을 문 두목을 보며 말했다.
“어쩐지 입을 열심히 턴다 싶더니, 이 권총이 진짜라고 믿게 하려고 그렇게 무게를 잡은 거구나.”
- 적이 뻥카를 치다 걸렸습니다.
***
강남 룸살롱 사장 조정철과 부하 두 명은 승용차에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조정철은 싸움이 시작될 때만 해도 신나 있었다.
“흐흐. 아무리 잘 싸워도 다구리 앞에 장사 없지.”
“형님. 싸웁니다!”
“그래! 그거야! 뒤에서 쳐…. 어?”
나강인의 뒤통수를 노린 놈은 뒤차기에 맞고 날아갔다.
“어어?”
알루미늄 배트를 든 두 명도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어어어?”
목검 둘도 바로 뻗었다.
싸움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조정철의 눈에는 다섯 명이 순식간에 갈려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두목은 남아서 실실 웃는 얼굴로 나강인에게 말을 걸었다. 조정철은 거기에 희망을 걸었다.
“그래! 두목이 믿는 게 있….”
두목은 모형 권총을 뽑다가 이마를 맞고 나자빠졌다.
“어….”
룸살롱 실장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형님. 이제 어떻게 하죠?”
조정철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 없어. 튀어!”
“예!”
룸살롱 부장이 차의 시동을 걸었다. 조정철이 다급히 지시했다.
“저 새끼가 우리까지 눈치채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라고!”
***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 정찰 차량이 도주하고 있습니다.
“저것까지 쫓아가기엔 늦었지.”
- 포로 여섯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나강인이 두목을 발로 툭툭 찼다. 두목은 겨우 정신이 들었다.
나강인이 물었다.
“야. 마음이 바뀌었으면 지금 말해라. 누가 시켰냐?”
두목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화를 냈다.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알아?”
“그래. 그런 걸 말하라고. 너 누구냐.”
“그, 그게….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아냐!”
“이야아. 협조적으로 나오니까 참 좋네. 뒤에 누가 있는데?”
“그, 그건….”
“새끼가 자꾸 말을 하다 말아. 됐다. 전문가한테 맡겨야겠다.”
나강인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그 지역 관할 경찰서의 형사 박기정이 전화를 받았다.
- 아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우리 동네 히어로 나강인 씨 아니십니까?
“잘 지내셨지요?”
- 하하하. 전에 챙겨주신 실적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우리 동네에서 어떤 놈들이 갑자기 저를 습격하네요?”
여유롭던 박기정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변했다.
- 상황이 어떻습니까? 얼마나 많이 쳐들어왔습니까?
“여섯 놈입니다.”
- 생각보다 적군요. 테러리스트입니까? 국제 용병입니까? 해적입니까? 아니, 해적이 왜 우리 동네에….
“이놈들 실력은 그렇게 국제적인 게 아니라 동네 양아치 수준입니다.”
- 예?
박기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러니까 겨우 동네 양아치 여섯 놈이 나강인 씨를 습격했다는 겁니까?
“그렇죠.”
- 아니, 왜요? 죽으려고 환장했답니까? 어? 설마 다 죽인 건….
“안 죽였습니다.”
- 아, 그렇죠. 하, 하하.
“그리고 실력은 동네 양아치인데, 하는 짓이나 말하는 걸 보면 폭행 청부업자로 보입니다.”
박기정의 목소리가 커졌다.
- 어? 청부조직이군요!
“모형 권총도 하나 있는데 겉모습은 실물이랑 똑같습니다. 총기 전문가도 손에 쥐어보기 전에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합니다.”
- 거기다 유사 총기까지!
“이놈들을 맡으실 거면 오시고, 바쁘시면 다른 곳에 넘기려고요.”
- 아이고. 당연히 제가 맡아서 처리해야죠. 제가 또 민중의 지팡이 아닙니까? 하하하.
***
형사 박기정이 차를 운전하면서 실실 웃었다.
“그 청부업자들을 잡으면…. 으흐흐흐.”
후배 형사가 조수석에서 물었다.
“그 여섯 놈을 잡은 건 우리가 아니라 시민이잖아요. 그거 실적으로 챙기지도 못하는데 뭘 그렇게 좋아하세요?”
“뭐? 너는 형사라는 새끼가!”
후배 형사가 말실수를 깨닫고 얼른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형사가 범인을 잡아야지 실적이 안 된다고 불평하면 안 되는데….”
“형사라는 새끼가 이게 얼마나 푸짐한 실적인지 몰라?”
“예?”
“두목이 자기 뒤에 누가 더 있다고 주장했다더라. 상황을 지켜보다가 도망친 놈도 있고, 아마 망을 보거나 바람을 잡은 놈도 있겠지.”
“이야아. 우리가 잡을 놈이 많네요?”
“당연하지. 입을 열 놈이 여섯이나 있으니까 다른 놈들도 다 찾아내서 잡아야지. 이것만 잘 해결해도 우리 팀 전체가 배부를 거다.”
“우와아!”
“그런 좋은 자리에 널 데려간다. 알아서 모셔라.”
“에이. 현장에 우리 팀 다 가잖아요. 우리야 근처에 있어서 먼저 가는 거고요.”
“넌 여기서 내릴래? 이번 사건에서 빠지고 싶어?”
“기정이 형. 내가 형 사랑하는 거 알죠? 저번에 고기 구울 때도 잘 구워진 건 형 자리에 놨다고요.”
“난 삼겹살은 바짝 굽는 게 좋다.”
“넵! 다음에는 과자처럼 구워드리겠습니다!”
후배 형사가 경례하는 시늉을 한 후에 물었다.
“그런데 신고한 사람은 도대체 뭐죠?”
“으응?”
“습격당한 그 사람요. 여섯 명이 습격했는데도 멀쩡하다면서요. 어디 격투기나 검도 챔피언이라도 된대요?”
합수부가 가진 나강인에 관한 자료는 이 경찰서에서는 박기정 혼자 읽어보았다.
그런데 같은 팀 형사들은 나강인의 얼굴을 안다.
박기정이 말했다.
“어…. 전에 방화살인범 몽타주 그려준 사람 있잖아?”
“아! 그 건물 사이에서 외줄 타기도 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그 사람이요?”
“어. 신고자가 그분이야.”
후배 형사가 감탄했다.
“이야아. 그때 사람을 두 팔로 안고 외줄 타기로 불이 난 건물을 빠져나갔다는 말을 듣고, ‘아. 이분은 한 무술 하시겠구나’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예상이 딱 맞았네요.”
“우리 일에 도움을 종종 주는 분이니까 현장에서 만나면 막 대하지 마라.”
“아유. 당연하죠. 나중에 제 초상화라도 한 장 부탁드려야겠네요. 화가로 대성하시면 액자로 만들어서 원룸 벽에 걸어놓게.”
***
나강인이 청부조직을 쓸어버리는 동안 브레드는 알레이나를 만났다.
브레드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알레이나.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텐데?”
알래이나는 인상을 썼다.
“너랑 계약할 일은 없으니까 꺼져.”
브레드가 은근히 압박했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걸? 여긴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잖아.”
알레이나가 주변을 힐끗거렸다.
브레드가 실실 웃으며 물었다.
“왜? 지난번 그놈을 찾나? 찾아봐야 소용없다. 그놈은 지금쯤 땅바닥을 기고 있을 테니까.”
“뭐? 너 설마!”
알레이나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브레드 너 이 새끼! 그 사람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흐흐흐. 무슨 짓을 했을까?”
“그 사람이 없으면 난 이제 어디서 밥을 먹으라고!”
브레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 밥이라니? 그걸 어디서 먹는데? 둘이 무슨 사이냐!”
“무슨 사이인지 네가 알 것 없잖아!”
“당장 말해! 아니면 그 새끼가 다시는 밥숟가락도 못 들게 손을….”
브레드의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야? 이럴 때.”
그가 스마트폰을 끄려고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런데 발신자가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이었다.
브레드가 여유를 되찾고 알레이나를 향해 실실 웃어 보였다.
“지금 이 전화가 뭔지 알아? 그놈을 잡았다는 전화다.”
그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마침 연락 잘했습니다. 내가 추가 주문할 게 생각났는데, 그놈 손을….”
- 당했습니다!
브레드가 눈을 껌뻑였다.
“어? 뭐요?”
- 그놈한테 보낸 놈들이 도로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괴물을 치워달라고 한 겁니까?
“어? 아니, 내가 그래서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 당장 튀어요! 거기 있다가 그놈에게 걸리면 죽습니다!
“히익!”
브레드가 전화를 서둘러 끊고 부하 두 명에게 급하게 말했다.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자!”
***
박기정과 후배 형사는 현장에 먼저 도착했다. 다른 팀원들은 아직 오는 중이다.
청부조직 여섯 놈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앞에는 알루미늄 배트와 쇠파이프, 모형 권총이 굴러다녔다.
여섯 명 다 나강인에게 맞아서 꼴이 엉망이었다.
박기정이 그놈들을 보며 감탄했다.
“이야아. 화끈하게 하셨네요. 이놈들이 그놈들입니까?”
나강인이 설명했다.
“과체중 셋은 배트를 썼습니다. 저 둘은 목검을 썼는데 검도 유단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저놈이 두목인데 모형 권총으로 협박했고요.”
박기정이 모형 권총을 보며 감탄했다.
“권총이 진짜하고 똑같이 생겼네요.”
“손으로 들어보면 무게중심이 이상하다는 게 느껴질 겁니다.”
“예? 혹시 저 증거물을 손으로 만지셨습니까?”
“아니요. 발로 밀어보고 알았습니다.”
“와. 발로 했는데도 아시는군요.”
두목이 눈치를 보다가 갑자기 박기정을 향해 외쳤다.
“형사님! 억울합니다! 우리가 피해자입니다!”
박기정이 두목을 돌아보았다.
“뭐?”
“우린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저놈이 우리를 이렇게 팼습니다!”
“혼자서 여섯 명을?”
“형사님! 저건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은 저렇게 못 싸웁니다!”
박기정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저놈은 자기가 누굴 건드렸는지도 몰랐나 봅니다. 제가 철저히 조사해서 저놈을 처넣겠습니다.”
나강인이 휴대폰을 흔들었다.
“두목이 저놈들에게 습격하라고 명령하고, 권총을 꺼내기 전에 저한테 떠든 말을 모두 녹음했습니다. 조사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유. 그 정도면 충분하죠.”
나강인이 녹음 파일을 박기정의 휴대폰으로 전송한 후에 두목을 향해 돌아섰다.
녹음 파일이 있다는 말을 들은 두목은 이미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나강인이 손가락 두 개를 세워 두목을 가리켰다.
두목은 화들짝 놀랐다.
“히익!”
다른 형사들도 도착했다.
박기정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이놈들은 저희가 끌고 가서 싹 처리하겠습니다. 나중에 서에 오셔서 조서 쓰는 것만 좀 도와주십시오.”
“나중에 가겠습니다. 그리고….”
나강인이 박기정을 옆으로 데려가 조용히 말했다.
“이놈들이 왜 저를 노렸는지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박기정은 합수부와 연락하는 형사다. 그래서 나강인이 그동안 어떤 놈들과 싸웠는지 안다.
“물론이죠. 뒤에 용병이나 해적 같은 놈들이 있는지 제가 철저히 알아보겠습니다.”
***
브레드 밀러가 도망친 후에 알레이나가 초조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냈다.
“아. 옆집 사람 전화번호를 모르지.”
그녀가 발을 굴렀다.
“어쩌지?”
그녀는 비밀 수술을 받을 때까지는 사건이 생겨도 경찰에 신고하기 어렵다.
그녀가 제자리에서 몇 번 맴돌면서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미국에 있는 로버트 민이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급히 말했다.
“아빠. 정호 아저씨한테 말해서 경찰에 신고 좀 해줘!”
- 뭐? 무슨 일이냐!”
“여기 지금 누가 위험…. 어머?”
저쪽에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 나강인이 보였다.
- 알레이나? 알레이나! 무슨 일이야!
“아니야. 내가 착각했나 봐. 아무 일도 아니야.”
- 놀랐다. 별일 아니라니까 다행이다. 그런데 명심해라. 경찰 신고는 안 돼. 일이 잘못되면 수술을 못 받아.
“알아. 잠깐 착각한 거야.”
그녀가 전화를 끊은 후에 나강인의 멀쩡한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브레드 이 사기꾼 새끼. 저 사람을 반쯤 죽여놓은 것처럼 말하더니 이번에도 거짓말이었어. 내가 너무 착하고 순수해서 또 속을 뻔했잖아.’
나강인은 집으로 걸어갔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옆집 광년이가 요원님을 보며 화를 내고 있습니다.
“나한테 화났대?”
- 설마 저에게 화났겠습니까? 옆집 광년이의 눈에는 요원님밖에 안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