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조사 II
형사 박기정은 아파트 앞에서 도망친 차가 강남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나강인이 그 장소로 가서 주변을 보며 물었다.
“CCTV는?”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이 주변에는 없습니다.
“그럼 이 근처 어딘가에서 번호판을 바꿔치기했겠지.”
- CCTV가 없는 길을 이용해서 저쪽 8차선 도로로 빠져나갔을 확률이 높습니다.
“어느 길로 갔는지 찾아보자.”
그는 그 근처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를 돌아다니면서 주변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돌아다닌 후에 말했다.
“지인아. 여기 상황이 묘하다. 이쪽 8차선 도로로 빠져나가야 도망치기 쉬운데….”
- 그쪽으로 이동 가능한 이면도로 상당수에 사설 CCTV가 있습니다.
“눈을 피하려는 놈들에게는 사설도 거슬렸겠지.”
- 안전한 이면도로 주행 경로를 찾아내서 이동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면도로를 다 확인해야겠다.”
그는 주변을 더 돌아다녔다. AI 전지인은 주변 사설 CCTV를 실시간으로 찾아냈다.
나강인은 조사를 마친 후에 음료수를 하나 사서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았다.
“이 지역 지도 띄워.”
AI 전지인이 미리 인터넷에서 수집한 지도 이미지를 허공에 띄웠다. 지도상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곳은 정교한 3D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우리가 확인한 모든 CCTV 위치를 표시해.”
허공에 뜬 지도에 CCTV 마크가 촤라락 소리와 함께 빠르게 늘어났다.
“이 촤라락 소리는 뭐냐?”
- 효과음을 넣어봤습니다.
“CCTV에 촬영되는 영역은 빨간색으로.”
파악된 CCTV의 예상 촬영 범위가 옅은 빨간색으로 표시되었다. 지도 전체의 크고 작은 길 곳곳에 빨간색 반원이 생겼다.
나강인이 그 지도를 보며 말했다.
“그 차가 CCTV를 피해서 대로로 빠져나가려면?”
- 경로를 표시하겠습니다.
지도 위의 빨간색 영역을 피해 파란 선이 몇 개 그려졌다.
“가능한 경로 중에 넓은 길은 하나도 없어. 다 좁은 길뿐이야. 그나마도 몇 개 없고, 한 번에 쭉 나가도 안돼.”
모든 파란 선은 꼬불꼬불 꺾인 형태였다.
“저 복잡한 경로를 파악해서 빠져나가려면 이 지역을 잘 아는 놈이겠지?”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경로를 이용하면 CCTV에 찍히지 않고 8차선 도로로 나갈 수는 있지. 그런데 8차선 도로에도 또 CCTV가 있잖아.”
AI 전지인이 도로에서 확인한 공공 CCTV의 예상 촬영 범위를 표시했다.
- 차량이 어느 경로로 빠져나가든 그 CCTV를 피할 수 없습니다.
“차의 번호판을 바꿔 끼자마자 이곳에서 빠져나갔으면 저 8차선 도로의 CCTV에 걸렸을 거야. 그러면 일이 쉬운데, 그 정도는 경찰에서 확인해봤겠지.”
- 적이 일정 시간 은폐한 후에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맞아. 차를 어딘가에 숨겨놨다가 나중에 나갔다면 저 넓은 도로의 CCTV를 확인해도 구분하기 어렵겠지.”
그 도로에는 지금도 지나가는 차가 많았다.
“그러니까, 이 안쪽 어딘가에 차를 주차할 곳이 있을 거다. 불법주차는 눈에 뜨이니까 주차장을 이용했겠지.”
나강인이 꼬불꼬불 파란 선이 몇 개 그려진 지도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 경로를 찾아낼 정도로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누굴까? 저기 사는 사람일까? 자기가 사는 원룸 건물이면, 주차장에 번호판을 바꾼 차를 몇 시간쯤 세워둬도 문제가 안 생기겠지?”
- 오늘 수색에서 원룸 주차장도 확인했습니다만, 대상 차량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빠져나갔겠지. 그런데 말이야. 원룸이 여기 있다면, 평소에 출근하는 곳은 여기서 멀지 않겠지?”
나강인이 8차선 대로를 가리켰다.
“출퇴근할 때는 저 길을 이용하겠지?”
-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
형사 박기정이 머리를 긁었다.
“그 차를 어떻게 찾나.”
후배 형사가 장담했다.
“못 찾아요. 일 년에 십만 대씩 팔리는 베스트셀러인 데다가, 색도 제일 많이 쓰는 검은색이잖아요. 거기다 번호판까지 다른데 어떻게 찾아요.”
“그치? 불가능하겠지?”
“그 차가 지금 우리 주차장에 서 있어도 못 알아볼 겁니다.”
***
나강인이 8차선 대로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 차가 이 앞을 하루에 한두 번은 지나가겠지.”
- 확률은 반반입니다.
“목적지가 이 근처면 이용할 수 있는 도로는 뻔해. 이 도로가 아니면 내일은 다른 도로를 확인하자.”
커피는 두 잔을 마시고 밥 대신에 시킨 와플도 거의 다 먹어갈 때쯤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찾았습니다.
허공에 자동차 형태의 3D 홀로그램 이미지가 떴다. 차량 여기저기에 동그라미가 쳐졌다.
- 차량의 외부 옵션, 타이어의 마모 상태, 틴팅 농도 모두 기존에 확인한 차량과 일치합니다.
그 정보들은 이 앞을 지나가는 차를 1차로 검사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그 기준에 맞는 차는 이미 여러 대가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치하는 정보가 또 있었다.
- 정밀분석 결과 차체 표면의 작은 손상 2곳, 보수 흔적 1곳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허공에 지난번에 본 차량의 확대 이미지가 추가로 떴다. 두 차량의 손상되거나 보수된 곳에 동그라미 표시가 떠 있었다.
“겹쳐봐.”
두 차량 이미지가 하나로 겹쳐졌다. 손상된 위치가 완전히 일치했다.
“같은 차 맞네.”
나강인이 창문 밖을 보았다. 신호에 걸려 서 있는 검은색 준대형 승용차가 한 대 보였다. 그 차 위에 화살표가 떠 있었다.
그 뒤쪽에 빈 택시가 보였다.
나강인이 카페 의자에서 일어났다.
“택시 타고 따라가자.”
***
검은색 중대형 승용차는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를 댔다. 그 차에서 룸살롱 부장이 내렸다.
주차 담당 직원이 얼른 달려왔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사장님은?”
“오늘 안 오셨습니다.”
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오늘은 내가 왕인가?”
“실장님은 계십니다.”
“에이. 오늘은 일찍 오셨네.”
부장이 룸살롱으로 들어갔다.
나강인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AI 전지인이 증폭해서 들려주었다.
“저기는 뭘 하는 곳일까?”
- 겉만 보고는 알기 어렵습니다.
나강인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AI 전지인이 현재 보고 있는 건물에 관한 정보를 검색했다.
- 저 건물에 대형 룸살롱이 있습니다.
“거기로 간 거네.”
나강인이 룸살롱 부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이 룸살롱 넘버 쓰리. 넘버 투가 실장. 넘버 원이 사장. 그 정찰 차량에 세 놈이 타고 있었지?”
- 그렇습니다.
AI 전지인이 그날 본 차의 이미지를 다시 허공에 띄웠다.
그 차는 틴팅이 진하고 거리도 떨어져 있어서, 저녁 시간에 지나가면서 본 것만으로 차 내부를 확인하는 건 어려웠다. AI 전지인의 이미지 분석력으로도 차 안에 세 명이 있다는 것만 파악할 수 있었다.
“저놈이 얼굴 슬쩍 보인 그놈이야?”
사장 조정철이 차 유리에 눈을 바짝 대고 외부를 잠깐 살폈을 때 얼굴이 좀 더 드러났다.
AI 전지인이 그 영상을 분석해 구분이 가능한 수준의 얼굴 사진을 만들어냈다.
- 그놈이 아닙니다.
그 사진은 그리 선명하지 않았다. 직접 얼굴을 보고 비교해야만 동일인인지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럼 확인하러 가자. 저 룸살롱에 손님으로 들어가면 되겠지.”
- 저런 곳은 술값이 비쌉니다. 예산이 부족합니다.
“쓸 때는 써야지.”
- 처음 보는 사람이 혼자서 룸살롱에 들어가면 경계할 겁니다.
나강인이 물었다.
“지인아. 좋은 대안이 있으니까 적극적으로 말리는 거겠지?”
- 저 룸살롱의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인력 채용 사이트의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룸살롱도 인터넷에서 사람을 뽑는구나. 어떤 자리야? 웨이터?”
- 주방 단기 알바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주방에서 실장이나 사장의 얼굴을 보기가 쉽겠냐? 그냥 손님으로 들어가자. 들어가서 사장 나오라고 깽판 좀 치지 뭐.”
- 다른 게시물에서, 아르바이트도 실장의 면접을 봐야 한다는 글을 찾았습니다.
“그래?”
나강인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켰다.
“그럼 변장부터 하고 주방에 들어가자. 그놈들이 아파트 앞에서 내 얼굴을 봤을 수 있잖아.”
***
룸살롱 주방장이 변장한 나강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경험은 있지?”
“그럼요. 제가 술집 주방에서 알바를 진짜 많이 했습니다.”
“그래? 뭐 할 줄 알아?”
“과일 안주 잘 만듭니다. 그걸 잘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셔서 지원했습니다.”
“맞아. 우리 과일 안주 담당이 손을 다쳤거든.”
주방장이 구석으로 턱짓했다.
“거기 칼이랑 과일 보이지? 한 번 만들어봐. 여긴 비싼 곳이라서 잘하는 사람 아니면 안 맡긴다.”
나강인이 칼을 잡았다.
AI 전지인이 물었다.
- 보조 수준으로 할까요?
“아니. 실력발휘 좀 해라. 기왕 들어왔으면 통과는 해야지.”
- 알겠습니다.
“대신에 속도는 좀 늦춰. 굳이 빨리 만들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손을 빌려 과일을 깎고 조각했다. 손이 움직이는 속도는 실력이 괜찮은 요리사 수준으로 조정했다.
대신에 과일의 모양에 신경을 썼다.
- 국제요리대회 과일 부문 수상작 사진 중에서 과일 안주와 비슷한 것들을 조합해 조각했습니다.
그 사진들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확인했다.
주방장은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입을 벌렸다.
“와….”
다른 주방 직원 중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모여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쩐다.”
나강인이 과일 안주 한 접시를 완성했다.
주방장이 감탄했다.
“이야아. 장난 아니다. 다른 요리도 잘하냐?”
“아뇨. 과일 안주 하나만 팠습니다.”
“하긴. 그러니까 이런 작품이 금방 나오겠지. 야. 들고 따라와.”
“어디로 갑니까?”
“실장님 면접 보러 간다. 여기서 사람 쓰려면 실장님 허락부터 받아야 해.”
***
나강인이 과일 안주 접시를 들고 주방장을 따라갔다.
주방장이 데려간 사무실에는 룸살롱 실장과 부장이 같이 있었다. 부장은 조금 전에 나강인이 미행한 차를 몰았던 사람이다.
부장이 툴툴댔다.
“형님. 이제 알바 뽑는 거 정도는 그냥 밑에 맡기시죠. 뭐하러 이런 것까지 일일이 면접을 보십니까?”
“야. 내가 또 사람 함부로 안 쓰잖아. 주방 보조도 확인하고 쓸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라고.”
“계열사 만들면 거기서도 그러시게요?”
“당연하지.”
실장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과일 안주를 잘한다고? 가져와 봐.”
나강인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실장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어제 확인한 얼굴이 아닙니다.
“그럼 사장만 남았네.”
나강인이 내려놓은 접시를 본 실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과일 안주를 한참 보다가 나강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 합격!”
부장이 옆에서 물었다.
“면접 철저히 본다면서 왜 그냥 합격시키세요?”
실장이 과일 안주를 손으로 가리켰다.
“야. 네 눈엔 이게 안 보이냐?”
“보이죠. 합격시켜야겠네요.”
실장이 과일 한 조각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주방장. 오늘부터 일 시켜.”
과일 안주는 손님들의 호평을 받았다. 너무 잘 만드는 바람에 추가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나강인이 말했다.
“좀 대충 만들지.”
- 이제부터라도 과일 안주의 퀄리티를 낮출까요?
“그럼 또 이상해 보이잖아.”
결국 나강인은 새벽까지 과일 안주를 만들었다. 언제 주문이 또 들어올지 몰라서 주방에서 나갈 수 있는 시간은 화장실 갈 때밖에 없었다.
“지인아. 네가 너무 잘해서 내가 고생이다.”
- 대신에 일당이 생겼습니다.
나강인은 새벽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서울 외곽의 제작 거점으로 이동했다.
그는 아까 룸살롱 부장과 실장이 있는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대용량 배터리가 장착된 구형 스마트폰을 소파 밑에 숨겨두었다.
그 스마트폰으로 도청한 모든 내용은 룸살롱 사무실 와이파이를 이용해 외부 보안 서버로 전송되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주방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스마트폰은 확실히 폐기되는 거지?”
- 물론입니다. 배터리가 10%가 남으면 중요 부품을 확실히 파괴하도록 개조했습니다.
나강인이 제작 거점의 컴퓨터를 켜고 외부 서버에서 녹음 파일을 내려받았다.
밤새도록 녹음했기 때문에 전체 녹음 시간은 상당히 길었다. AI 전지인이 컴퓨터의 오디오 편집 프로그램을 실행한 후에 녹음 파일에서 일부만 따로 추출했다.
- 사람의 음성이 감지된 부분만 잘라냈습니다. 총 녹음 시간은 20분 12초입니다.
“간밤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좀 들어보자.”
스피커에서 그곳에서 오간 대화가 흘러나왔다. 부장과 실장의 대화에서 쓸만한 게 나왔다.
나강인이 말했다.
“지인아. 이놈들이 이번엔 베테랑 청부업자를 고용해서 나를 다시 습격하려나 본데?”
- 요원님의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습니다만, 요원님이 타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기다렸다가 그 청부업자도 잡자. 박기정 형사님 실적이 늘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 이러다 박 형사 승진하겠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는 그 이야기만 나온 게 아니다. 이번에는 젊은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배우야! 배우! 미래의 탑스타 앞에서 지금 뭘 떨어뜨린 거야!
기죽은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 죄송해요. 제가 재떨이를 치우다가 실수로 컵을….
“그 뜨거운 커피가 내 얼굴에 튀어서 화상이라도 입으면 어쩔 뻔했어? 나 드라마 들어가야 한다고!
나강인이 말했다.
“이건 뭐지?”
- 분석 결과 높은 확률로 쌍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