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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235화 (235/411)

235. 오디션 II

이연지의 연기를 본 최진욱 피디가 도주희 작가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잘하는데?”

“그러게. 잘하네.”

이연지와 나강인이 두 번째 연기를 시작했다.

대본에는 방바닥에 앉아서 하는 연기가 적혀 있었다. 나강인이 오디션장 맨바닥에 앉아서 말했다.

“난 이제 밥 먹을 거니까 가라.”

이연지는 한술 더 떴다. 그녀는 아예 옆에 드러누워서 팔다리를 사방으로 대충 뻗었다.

“오빠가 만든 밥이면 맛은 없겠다.”

그녀는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회색 바닥에 누웠는데도 마치 뜨끈한 방바닥에 누운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나강인이 스마트폰을 드는 시늉을 했다.

“넌 먹지 마라. 치킨 시킬 거니까.”

그녀가 얼른 몸을 일으켰다.

“우리가 언제 음식 가려가면서 먹었다고 그래요? 현장 뛰려면 아무거나 잘 먹어야지. 난 간장 치킨.”

“네가 뛰어도 되는 현장은 없으니까 가서 공부나 해.”

“예이. 예이. 얼른 주문해요.”

대본은 치킨을 먹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이연지는 방바닥에 앉아서 치킨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연기했다. 손가락을 입에 넣고 쪽쪽거릴 때는 마치 소스가 진짜로 손에 묻은 것처럼 보였다.

도주희가 대본에 표시한 부분은 거기까지였다.

연기를 마친 이연지가 벌떡 일어나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심사위원들을 보았다.

AI 전지인이 그녀의 연기를 평가했다.

- 이연지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저건 누가 봐도 평소의 이연지입니다.

나강인도 동의했다.

“알아. 좋게 말하면 생활연기인데 다르게 말하면 연기가 아니라 그냥 평소처럼 행동한 거야.”

최진욱이 도주희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잘하는데?”

“저 배역에 완전 딱이지.”

“그런데 지금 이건 오늘 오디션 보는 배역이 아니잖아. 왜 시킨 거야?”

“들어왔을 때부터 행동이나 말하는 게 대본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아서 시켜봤지. 왜? 싫어?”

“마스크도 좋고, 실제로 여고생이고…. 딱 좋지. 하나만 더 잘하면 말이야. 이 배역은 액션이 중요하잖아.”

최진욱이 이연지에게 물었다.

“액션은 좀 해요? 그러니까, 운동 좀 했어요?”

“달리기를 잘해요.”

그녀는 원래 뛰어다니는 걸 좋아한다.

“학교 체육 시간에 배운 것도 있고요.”

최진욱이 조금 아쉬워했다.

“아. 학교에서 배운 거…. 하, 하하. 그게 뭐든 좀 볼 수 있을까?”

“넵!”

이연지가 갑자기 옆으로 뛰었다. 빨랐다.

앞쪽은 벽이 막고 있었다.

그녀가 고무공처럼 탄력 있게 점프했다가 벽을 발로 밟아 밀어 차며 공중에서 거꾸로 회전했다. 발이 천장에 닿지 않도록 다리를 구부렸는데도 너무 높이 뛰어서 발끝이 천장에 스칠 뻔했다.

그녀는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한 후에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녀가 심사위원들의 앞으로 걸어온 후에 물었다.

“이런 거 했어요.”

최진욱은 당황했다.

“어? 어? 요즘 학교 체육 시간에는 그런 걸 가르친다고?”

“아뇨. 얼마 전에 선생님이 시범 보여주신 거 따라 해봤더니 되더라고요.”

“와…. 혹시 체육특기생?”

“아뇨.”

나강인이 슬쩍 자랑했다.

“얘가 전교 1등입니다.”

“와. 공부도 잘하는데 운동도 잘하는 학생…. 부모님이 좋아하시겠네요.”

최진욱이 도주희를 보았다. 도주희도 놀란 얼굴로 고개를 살짝 까닥였다.

최진욱이 이연지에게 말했다.

“네. 잘 봤어요. 오디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연지가 심사위원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나강인에게는 방긋 웃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연지가 나간 후에 최진욱이 말했다.

“연기도 연기지만, 운동은 따로 배운 것도 아니라면서 어떻게 저렇게 하지? 유연성을 타고났나 보다. 혹시 부모님이 운동선수 출신이신가?”

도주희도 감탄했다.

“쟤 보니까 나 고등학교 때 생각나네.”

최진욱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도 작가 그 시절을 다 아는데 어디서 허풍이야?”

“그거 기억에서 지워라.”

도주희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강인 씨의 연기력이 장난 아닌데요?”

“저야 그냥 대본을 읽기만 한 겁니다.”

“아뇨. 아뇨. 제가 감독은 아니지만 이 바닥에서 본 게 있는데요. 진짜 자연스러웠어요. 아예 배역 하나 맡아서 직접 뛰시는 게 어때요?”

최진욱이 얼른 맞장구쳤다.

“제가 소문을 들었는데 조만간 개봉하는 영화에서 장군과 부장 역을 맡으셨다면서요. 기왕 배우 활동을 시작하신 거, 우리 드라마에도 출연하시죠.”

나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그때는 배우가 촬영장에 오다가 교통사고로 발가락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땜빵을 한 겁니다. 이 드라마는 그런 사고는 없어야죠.”

“방금 잠깐만 봐도 연기력이 장난 아니시던데….”

“사양하겠습니다.”

최진욱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조연출에게 말했다.

“다음 분 들어오시라고 해.”

다음 지원자가 들어왔다. 젊은 여자였다. 그녀가 인사했다.

“최도화예요.”

최진욱이 눈을 반짝이며 도주희에게 작게 말했다.

“예쁜데?”

“그러게. 오늘 오디션 지원자 중에 얼굴은 최고야.”

“오늘 가벼운 마음으로 오디션 심사하다가 좋은 조연 여러 명 뽑는 거 아냐?”

“그럼 우리야 선택의 폭이 넓어지니까 좋지.”

최진욱이 활짝 웃으며 오디션 지원자 최도화에게 말했다.

“시작하세요.”

최도화는 오디션용 대본에 있는 장면을 연기했다.

최진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데는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최도화는 연기력이 너무 형편없었다. 표정은 어색하고 몸짓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대사가 문제였다. 말하는 게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대사 처리 능력이 부족한 걸 숨기려고 자주 끊어서 말했는데 그게 너무 어색했다. 발음도 좋지 않았다.

최진욱이 작게 속삭였다.

“아. 저래서….”

“저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는데도 우리가 모르는구나.”

“난 신인이라서 모르나 했지.”

나강인은 최도화를 가만히 보았다. 그가 작게 말했다.

“지인아. 목소리가 익숙하지?”

- 녹음 파일에 등장한 여성의 목소리와 일치합니다.

“찾았다.”

도주희는 이연지 때는 정식 대본을 따로 보여주며 연기력을 확인했다. 하지만 최도화의 경우는 준비해온 연기만 보고 오디션을 끝냈다.

최진욱이 말했다.

“네. 잘 봤습니다.”

최도화는 피디인 최진욱에게 눈웃음을 살짝 치며 인사한 후에 나갔다.

최진욱이 말했다.

“그래도 눈웃음 연기는 최고네.”

“그건 연기가 아니라 그냥 꼬리 치는 거야.”

나강인이 옆에서 두 사람의 심사평가 문서를 슬쩍 보았다.

‘저 여자를 이 드라마에 꽂아주는 대가로 룸살롱 놈들이 나를 습격했는데, 방송국에서는 어느 선에서 개입했을까?’

최진욱은 최도화의 외모 점수는 높게 주었다. 반면에 연기력 부분은 전부 빵점을 주었다.

도주희는 아예 이름에 X를 쳤다.

나강인이 그걸 보며 작게 말했다.

“두 분이 매수된 건 아니네. 그럼 누구일까?”

- 오디션에서 최하점을 받아도 꽂아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겁니다.

“저렇게 점수가 낮으면, 그 사람이 최 피디님에게 압력을 넣어서 꽂아주겠지?”

- 그 사람이 아는 게 있을 겁니다.

나강인이 최진욱에게 물었다.

“이 오디션이 다 끝나면 일정이 어떻게 되십니까?”

“회사에 들어가서 마무리해야죠. 국장님이 보고하라고도 하셨고요.”

“보고라…. 오디션을 볼 때마다 결과를 보고하십니까?”

“그건 아닌데요. 오늘은 하라고 하시네요. 가끔 그러실 때가 있어요.”

나강인의 눈이 반짝였다. 최진욱과 국장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제안했다.

“그럼 퇴근 후에 저녁이라도 같이 드시죠. 술도 한잔하면서요.”

최진욱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어? 혹시 저녁을 직접 만드시게요?”

“그러면 좋지만, 영업하는 식당에서 제가 요리할 순 없잖습니까?”

도주희가 얼른 손을 들었다.

“제 작업실을 쓰세요! 여기서 가까워요! 나강인표 요리는 저도 먹고 싶어요!”

“아, 예. 그럼 거기서 식사라도 하시죠.”

최진욱이 입맛을 다셨다.

“오늘 꼭 칼퇴하겠습니다.”

***

최진욱은 오디션이 끝난 후에 방송국에 들어가 국장을 만났다.

국장이 물었다.

“너 왜 실실 웃어? 오늘 오디션 결과가 그렇게 잘 나왔냐?”

“오디션이야 엄청 잘 진행됐죠. 주인공의 아는 동생역의 신인도 찾았고요.”

“잘됐네.”

최진욱이 자랑했다.

“그리고 나강인 씨가 무술감독을 맡아줄 거 같습니다.”

국장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진짜야? 확답받았어?”

“아뇨. 아직 확답은 못 받았지만, 나강인 씨가 오늘 심사위원으로 참석했거든요. 이따가 같이 식사도 할 겁니다. 술도 좀 마실 거고요.”

“그래애? 잘했어. 이야아. 걱정 많이 하더니 한 시름 덜었구나. 좋은 데 데려가서 법인카드 팍팍 쓰면서 접대해.”

“나강인 씨가 직접 요리할 건데요?”

“어? 소문의 그 나강인표 요리가 나오는 거야? 거기 어디야? 나도 갈까?”

최진욱이 손을 흔들었다.

“우리끼리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이야기하면서 꼬셔야 하는데, 국장님이 끼시면 어색해져요.”

“내가 국장인데?”

“국장님 명함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야. 나강인표 요리는 하도 소문만 들어서 맛이 궁금해서 그래.”

“제가 국장님 몫까지 잘 먹겠습니다.”

“에이. 나쁜 놈.”

국장이 툴툴대다가 일 이야기로 돌아갔다.

“방금 말한 그 신인은 어느 회사 소속이야? 주인공 아는 동생 역할 말이야.”

“소속은 없어요. 그런데 진짜 여고생이라서 그런지 연기가 딱 그 역할에 맞더라고요.”

국장은 살짝 당황했다.

“어? 여고생이야?”

“그 배역이 원래 여고생 역할입니다. 진짜 여고생을 쓰면 더 좋죠.”

국장이 찜찜했다.

“신인이고 아직 고등학생인데 되겠어?”

“여고생 치고는 연기를 잘합니다. 유연성도 장난 아니라서 액션도 잘할 거고요.”

“그래도….”

“거기다 나강인 씨하고 잘 아는 사이라니까 액션을 확실히 책임져주지 않겠습니까?”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나강인이 꽂은 거구나.”

“그건 아닙니다. 나강인 씨는 그 여고생이 오디션 보러 오는 것도 모르던데요.”

“연기가 진짜 괜찮았나 보네. 그런데….”

국장은 최진욱이 준 서류를 넘기다가 최도화가 있는 페이지를 확인했다.

“최도화를 떨어뜨렸어? 사진으로는 예쁜데 왜?”

“아. 그 지원자요? 얼굴이 예쁘긴 한데, 연기가 너무 엉망이던데요. 함부로 쓰면 발연기라고 욕먹을 겁니다.”

국장이 투덜댔다.

“쯧. 잘할 거라고 큰소리치더니…. 최 피디. 얼굴은 자주 나오는데 대사는 거의 없는 배역 있어?”

“예?”

“없으면 만들어서 최도화한테 줘. 그냥 얼굴 예쁜 병풍이라고 생각해.”

“아는 사람이세요? 국장님 얼굴 보면 친인척은 아닐 것 같은데….”

“야. 내 얼굴이….”

“두령님이시죠.”

“내가 그래도 마누라는 예쁘다.”

“아! 사모님 쪽 친척이군요?”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고룡 엔터 알지?”

“알죠.”

“고룡 소속 가수들한테 몇 자리 밀어주기로 한 것도 알지?”

“그것도 국장님한테 들어서 알죠. 연기만 잘하면 적당한 배역 주겠다고 했고요.”

“서류에는 안 적혀 있지만, 얘도 그중 하나야.”

최진욱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야기 들은 것하고 다른데요? 연기력이 개판인데요?”

“그렇게 됐다.”

“아니, 고룡은 뭐 아무나 배우로 들이민답니까? 기본은 돼야 밀어주죠. 그냥 다른 사람 보내라고 하시죠.”

국장이 손을 살짝 흔들었다.

“야야. 고룡에서 얘는 대체가 안 된대. 무조건 꽂아주래.”

“왜요? 인기 가수도 아닌 것 같은데.”

“나도 물어봤는데 안 가르쳐주더라. 사장 조카라도 되나 보지.”

“환장하겠네요.”

***

KMTV 국장이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이고. 국장님. 전화 기다렸습니다.

국장이 따졌다.

“박 사장님. 최도화가 오디션에서 잘할 거라면서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 예? 아. 무슨 문제가….

“발연기입니다.”

- 어…. 그래도 예쁘잖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최진욱 피디가 화가 많이 냈는데, 내가 잘 다독였어요. 그러니까 박 사장님도 아시죠?”

- 물론이죠. 무슨 프로그램이든 말만 하십시오. 우리 가수들을 팍팍 밀어드리겠습니다.

***

박지훈은 전화를 끊은 후에 곧바로 강남 룸살롱 사장 조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 사장. 됐다.”

- 우리 유화가 그 드라마에 출연하는 거 확실해?

“방금 국장하고 이야기 끝냈다. 연기는 더럽게 못 하는 최도화에게 대사는 거의 없지만 얼굴은 자주 나오는 배역 주기로 했다.”

- 하하하. 박 사장! 믿고 있었다고!

박지훈이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배우로 활동할 때도 유화라는 이름을 쓸 건가? 그거 조 사장네 가게에서 쓰던 이름 아냐?”

- 아! 앞으로는 나도 도화라고 불러야겠구나.

“난 약속 지켰으니까 조 사장도 지켜. 이번에는 그놈을 꼭 치우라고.”

- 걱정하지 마. 국내 최고의 청부업자에게 의뢰해 놨어. 그놈은 하루 이틀 안에 정리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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