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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강인이 신은하와 이보라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며 물었다.
“편의점 앞에 있던 사람이 청부업자일 확률은?”
- 정확한 확률 계산은 불가능합니다만.
AI 전지인이 그 사람의 영상 기록을 허공에 띄웠다.
- 신체의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과체중도 아니고 근육량도 높습니다. 시선이 신은하와 이보라 쪽으로 이동한 것을 포착했습니다. 기존 정보와 통합하여 판단하면, 청부업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까 그렇게 경고해주지 그랬냐.”
- 신은하와 이보라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녀도 몸매와 스타일이 좋아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주 쳐다봅니다. 단순히 시선만으로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추적 대상은 갑자기 사라지기 전까지는 위험도가 낮았습니다.
어쨌든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 두 사람 중 누구를 보호하시겠습니까?
“그놈이 누구를 더 오래 봤어?”
- 이보라입니다.
***
이보라가 집에 들어갔다. 현관 센서등 외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그녀가 거실 전등 스위치를 켜고 밀폐용기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뭐야. 왜 집에 아무도 없어?”
그녀가 전화를 걸었다.
- 응. 딸.
“엄마. 아빠랑 왜 다 집에 없어?”
- 우리 오늘 모임 있어서 늦는다. 밥은 알아서 먹어.
“맛있는 거 가져왔는데 먹을 복이 없으시네.”
- 어? 혹시 그 요리를 또 얻어온 거야?
“이번에는 다른 요리인데, 술안주로 쓰면 딱 좋아. 그리고 이거 되게 맛있어.”
- 냉장고에 고대로 넣어둬라. 넌 많이 먹고 왔지?
“그게 딸한테 할 소리야? 엄마 맞아? 많이 먹고 오긴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잔소리를 시작했다.
- 밖에서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배우가 술 취해서 돌아다니다 사진 찍히면 좋을 거 없다.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마셨어.”
한참을 통화하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인터폰 화면을 확인했다.
“어?”
아는 얼굴이 보였다.
“엄마. 끊어. 누가 왔어.”
그녀가 전화를 끊고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런 후에 웃으며 물었다.
“박 형사님이 어쩐 일이세요?”
박기정 형사가 문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이보라의 팬이다. 이보라가 납치됐을 때는 나강인과 공조해 그녀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이보라 씨. 별일 없으시죠?”
“그럼요. 그런데 박 형사님이 우리 집에는 왜….”
박기정이 집안을 슬쩍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나강인 씨가 저에게 전화해서, 이보라 씨에게 가보라더군요.”
“네?”
“좀 수상한 정황이 있는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라서 신고하긴 애매하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형사인 제가 가서 이보라 씨가 안전한지 확인해달라고 하던데요.”
이보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머어. 강인 오빠는 제가 걱정됐나 보다. 들어오세요. 커피라도 한 잔 드릴게요. 아. 근무 중에 커피 받으시면 안 되려나?”
“됩니다! 저 이미 퇴근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아는 형사도 불러서 오고 있는데 걔도 퇴근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사적인 방문입니다.”
박기정의 집은 이곳에서 가깝다. 그래서 그는 나강인의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확인하러 올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평소에 순찰을 핑계로 이보라의 집 근처를 자주 돌아다녔다. 그녀의 부모님도 박기정이 형사라는 걸 안다.
“들어오세요. 오늘 받아온 안주…. 아. 그건 엄마 거니까 안 되겠다. 과일이라도 깎아드릴게요.”
“영광입니다!”
***
신은하도 집에 들어갔다. 그녀의 집은 거실 전등이 활짝 켜져 있었다.
그녀가 밀폐용기가 든 종이가방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엄마. 이게 뭘까?”
그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흔해 빠진 종이가방 이야기는 아닐 테고, 뭔데?”
“술안주인데, 밥 대신 먹어도 맛있어.”
“응? 그거 설마 그거니? 가끔 맛있는 밥 만들어서 보내주는 그 사람?”
“응. 맞아.”
그녀의 어머니가 손뼉을 쳤다.
“어머! 술안주도 만들 줄 안대?”
“당연하지. 요리는 뭐든 다 잘해. 이건 내가 특별히 엄마 아빠 생각나서 받아왔어. 정말 이런 효녀 없다.”
“그래. 오늘은 너 효녀 해라.”
“아빠는?”
그녀의 어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동네 어디서 술 마시고 있겠지.”
“영석이는?”
“영석이라고 다르겠니? 친구가 부른다고 나갔으니까 술 마시겠지. 그러니까 이건 우리끼리 다 먹어버리자.”
신은하가 식탁 위에 가져온 음식을 차렸다.
그녀의 어머니가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이렇게 좋은 술안주를 먹을 때는 맥주 한 캔은 괜찮잖아?”
“왜 캔이 하나야? 나는?”
“넌 이미 술 냄새가 나는데 뭘 더 마시려고. 넌 됐어.”
“왜 이러셔? 난 아직 부족해.”
신은하가 냉장고로 걸어가려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집안 조명이 모조리 꺼졌다.
“어? 정전이다.”
그녀가 손을 더듬어서 식탁 위의 스마트폰을 찾았다. 그런 후에 플래시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맞다. 아까 술 마실 때 방해 안 받으려고 무음으로 해놨지.”
그녀가 플래시 기능부터 켜서 빛을 만든 후에 발신자를 확인했다. 나강인이 3번 연속으로 전화를 건 기록이 있었다.
그녀가 왼손 손등으로 입술을 가리며 웃었다.
“어머.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전화를. 흐흐.”
그녀가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해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의 동시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그녀가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현관으로 걸어가는 사이에 전화가 연결됐다.
“잠깐만. 지금 누가 초인종을 눌러서….”
나강인이 말했다.
- 문 열지 마라.
“응?”
- 습격이다.
신은하는 나강인을 안 이후로 여러 번 위험한 상황을 겪었다. 처음 만날 때 경험한 세트장 사고는 그 이후에 겪은 사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용병이나 해적, 납치조직과 싸울 때는 총격전 한복판에 있었다.
마약조직과 싸울 때는 화살도 맞아봤다. 드래곤 플레이트 덕분에 다치진 않았지만, 맨몸으로 맞았으면 중상을 입을 뻔했다.
심지어 보석 전시장에서 화학무기 공격도 당해봤다.
신은하가 목걸이의 팬던트에 손을 댔다. 그 팬던트는 나강인이 준 호신용 무기의 열쇠다.
그녀가 얼른 주방으로 돌아가 그녀의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내 방으로 숨어.”
“응? 왜?”
“일단 숨어. 설명할 시간 없어.”
그녀는 방에 들어간 후에 옷장에서 드레곤 플레이트부터 꺼내 입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그거 방탄조끼라고 안 했어?”
“응. 맞아. 이것만 입으면 총에 맞아도 하나도 안 아파. 당연히 칼도 안 통하고.”
그녀가 지포 라이터처럼 생긴 네모난 물건에 열쇠인 팬던트를 꽂은 후에 말했다.
“나한테는 이 무기도 있으니까 엄마는 나만 믿어.”
“그건 어디서 났어?”
“누가 호신용으로 만들어줬어.”
“내 무기는?”
“으응?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
“내 것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 나도 그런 거 좋아해.”
***
나강인이 신은하의 집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 집은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집 조명이 완전히 꺼져 있습니다. 적이 전원을 차단했을 겁니다.
“침입자 확인해.”
- 집 외부에서 감시조를 발견했습니다.
AI 전지인이 감시조의 위치를 표시했다.
“내부에는?”
- 현관은 아직 닫혀 있습니다. 담장 때문에 마당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더 접근해야 합니다.
“저 거실 유리가 방탄유리는 아니겠지?”
- 한국의 평범한 주택은 거실에 방탄유리를 쓰지 않습니다. 적이 거실 창문을 깨면 집안으로 침입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감시조부터 처리하자.”
감시병은 골목에서 좌우를 번갈아 보며 누가 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나강인은 다른 집의 담장을 넘어가 적의 뒤로 조용히 이동했다. 그는 적의 바로 뒤에서 다시 담장을 소리 없이 넘은 후에 뒷목을 후려쳤다.
“켁.”
적은 작은 신음만 흘리며 고꾸라졌다.
그런데 그 신음조차 문제가 됐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의 머리카락 사이로 무전기용 무선 이어폰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적이 더 있습니다. 신음이 적에게 들렸을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망설이지 않고 골목을 가로지른 후에 신은하의 집 담장을 뛰어넘었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신은하의 집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벨을 열어도 문이 열리지 않자 거실 창문으로 이동했다. 그 남자의 손에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삼단봉이 있었다.
나강인이 담장을 넘자마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침투조를 발견했습니다.
침투조의 귀에도 무전기용 무선 이어폰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나강인이 담장을 넘는 줄도 모르고 거실 유리를 향해 삼단봉을 높이 들었다.
나강인이 마당에 착지하면서 일부러 적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들켰다.”
침투조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렸다. 나강인이 마당을 가로질러 적에게 성큼 다가갔다. 침투조가 높이 든 삼단봉을 나강인 쪽으로 내리쳤다.
나강인이 삼단봉을 슬쩍 피하며 적의 목을 손으로 콱 잡았다.
“컥!”
거실 조명이 완전히 꺼져 있어서 실내가 바깥쪽보다 어두웠다. 거실 유리가 거울처럼 골목 쪽 모습을 살짝 비추었다. 진짜 거울이 아니라 선명하게 보이는 건 아니지만, 하늘과 건물 사이의 경계선 정도는 보였다.
갑자기 그 경계선에 사람 형상이 나타났다.
AI 전지인이 다급히 경고했다.
- 석궁 사수 발견! 쏩니다!
나강인이 즉시 옆으로 몸을 피했다. 거의 동시에 석궁 화살이 날아와 거실 유리를 관통했다.
나강인이 몸을 휙 돌려 옥상을 확인했다. 석궁을 쏜 놈이 근처 건물 옥상에서 사라졌다.
- 추격해야 합니다.
“그럼 여긴?”
- 적의 목표는 신은하가 아니라 요원님입니다.
뒤에서 신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인 오빠야? 잡았어?”
손에 쥐고 있던 놈은 이미 기절했다. 그가 그놈을 마당 구석으로 던진 후에 대답했다.
“두 놈은 잡고 한 놈은 놓쳤다.”
신은하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 빨리 그놈도 잡으러 가야지!”
“그럼 넌?”
“내 방 창문에는 방범창 튼튼한 거 붙어 있어. 옷장을 옮겨서 창문을 완전히 가리고 문은 잠그면 돼. 그리고 나한테는 이 무기가 있잖아.”
신은하가 나강인이 준 지포 라이터 형태의 무기를 들어서 보여주었다.
AI 전지인이 보챘다.
- 적의 후퇴를 허용하면 재습격의 위험이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신은하가 멀리 있을 때 노릴 수도 있습니다.
나강인이 신은하에게 말했다.
“경찰에 신고한 후에 방문 잠가.”
“응!”
“수상한 소리가 들리면 바로 연락해.”
“내 걱정하지 말고 빨리 가서 그 새끼 잡아! 경찰 아저씨들은 금방 올 거야!”
나강인이 좁은 마당을 지나 담장을 다시 뛰어넘었다.
신은하는 얼른 휴대폰으로 112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다. 그런 후에 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그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은하야.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니?”
“그냥 평범한 강도야.”
“강도가 어떻게 평범해? 평범하지 않은 강도는 도대체 어떤 놈들이니? 그리고 저 사람은 또 누군데 와서 강도들을 잡아?”
“오늘 우리가 먹으려던 안주 만들어준 사람. 전에도 가끔 요리를 만들어서 보내줬잖아.”
“응? 그 사람은 요리사 아녔어?”
“엄마가 요리사 무서운 줄을 모르네. 그리고 진짜 직업은 요리사가 아니야.”
그녀의 어머니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뭐 하는 사람인데?”
“어…. 잘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중 뭘 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
나강인은 저격수가 발견된 건물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옥상은 텅 비어 있었다.
- 저격수가 아무런 단서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 옥상 난간 앞에 서면 신은하의 집 현관이 보인다.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아서 석궁 실력만 좋으면 충분히 저격할 수 있다.
“여기 있던 놈은 감시조와 침투조의 무전기를 따로 썼을 거야. 이놈만 무전기를 두 개 가지고 있어서, 감시조가 기절할 때 낸 소리를 침투조는 못 들었어. 이놈은 감시조가 낸 소리를 듣고 저격을 준비했겠지.”
- 적은 침투조를 미끼로 써서 요원님을 유인하고 저격했습니다.
“아군을 미끼로 쓰다니. 지독한 놈이네.”
나강인이 신은하의 집을 보며 말했다.
“이놈은 내가 은하네 집으로 올 줄 알고 있었을까?”
- 확신하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내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여기 매복했단 말이야. 꼼꼼한 놈이네.”
- 적이 전술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럼 이놈은 어디로 갔을까? 석궁을 남들 눈에 보이게 가지고 다닐 수는 없어. 차로 이동하거나 대형 가방을 들고 있을 거다.”
- 작전 돌입 전부터 주변 소음을 증폭해서 분석하는 중입니다. 이 건물 근처에서 차량 시동이나 급격한 가속 소음은 듣지 못했습니다.
“걸어서 도망쳤겠지. 당연히 CCTV가 없는 길로.”
AI 전지인이 허공에 이 주변 지도를 띄웠다. 여기는 나강인이 사는 동네다. 모든 골목길이 정교한 3D로 표현되었다.
“CCTV를 피해서 도보로 이곳을 빠져나가도, 어느 시점에서든 차에 타야 할 거야.”
AI 전지인이 예상 경로를 그렸다.
- 이 동네의 도로와 주차장, 이면도로 주차가 가능한 공간을 모두 분석해 적이 도주했을 확률이 높은 경로를 찾았습니다.
“가자.”
나강인이 건물 계단을 순식간에 내려갔다. 그런 후에 AI 전지인이 예상한 방향으로 달렸다.
문제가 생겼다. 그가 그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AI 전지인이 갑자기 고속음성으로 경고했다.
- 적 발견! 매복에 당했습니다! 적이 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