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매복
AI 전지인이 AR 렌즈에 전투지원 정보를 뿌렸다. 매복한 적의 위치와 무기의 확대 이미지, 화살이 발사됐을 때의 예상 궤적이 허공에 순식간에 그려졌다.
적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은 고속으로 줄어드는 빨간색 게이지로 알려주었다.
거기에 음성 경고도 추가했다.
- 쏩니다!
AI 전지인의 경고와 동시에 적이 석궁을 발사했다. 화살이 나강인의 가슴을 정확히 노리고 고속으로 날아왔다.
그런데 나강인은 권총도 정면에서 단발로 쏘면 탄두가 날아오는 방향을 예상해 피하는 사람이다. 석궁 화살이 아무리 빨라도 총탄보다는 느리다. 게다가 예상 궤적도 허공에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나강인은 그 화살을 피해서는 안 된다.
AI 전지인이 보여준 정보는 또 있었다. 약 30m 뒤쪽에 사람이 있었다. 나강인이 화살을 피하면 그 사람의 몸에 석궁 화살이 꽂힌다.
나강인이 날아오는 화살 쪽으로 오른팔을 뻗었다. 화살을 손으로 잡으려고 그런 게 아니다.
그는 팔뚝으로 석궁 화살을 막았다.
지금 그의 팔뚝에는 드래곤 플레이트 기술로 만든 보호대가 장착되어 있었다.
화살이 고속으로 날아와 드래곤 플레이트에 충돌했다. 보호대의 작은 구조물들이 소리를 내며 충격을 흡수했다. 보호대의 내구도가 감소했다.
석궁 화살은 드래곤 플레이트 팔뚝 보호대를 뚫지 못하고 그의 앞에 툭 떨어졌다.
나강인이 위로 들었던 오른팔을 내리며 말했다.
“며칠 전부터 팔뚝 보호대를 하고 다니길 잘했네.”
- 제가 권했습니다.
일반 석궁은 재장전 시간이 길다. 권총과는 비교도 할 수 없고 활보다도 훨씬 느리다. 이 거리에서 화살이 빗나갔으면 재장전은 포기해야 한다.
나강인이 적을 향해 걸어갔다.
“저놈이 도망쳤을 줄 알았는데.”
여기에 매복한 이유는 짐작이 갔다.
“이놈들은 은하가 누군지 알고 온 게 아니야. 나와 접촉한 걸 보고 인질로 쓰려고 미행한 거야. 그래서 저놈은 이 주변 CCTV 정보를 자세히는 몰라.”
- 지형지물 정보 없이 급히 도주하면 나중에라도 추적당할 수 있으니까, 쫓아오는 요원님부터 제거하고 안전하게 빠져나가려 했을 겁니다.
“여기서 매복하면 나를 잡을 자신이 있었겠지.”
AI 전지인은 적이 공격하기 직전까지는 매복을 감지하지 못했다.
“숨어서 쏘는 실력이 꽤 되지?”
- 은신에 능숙한 저격 능력자로 추정됩니다.
청부조직 두목은 도주를 포기했다. 그는 석궁을 버리고 숨어있는 곳에서 나오며 말했다.
“손목에 철판을 두르고 다니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다.”
두목은 이제 석궁이 아니라 장우산을 들고 있었다.
나강인이 물었다.
“우산? 어디 비 오냐?”
- 우산은 위장입니다.
두목이 우산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장우산 안쪽에서 폭이 좁고 길이는 긴 칼이 나왔다.
“장검을 평소에 들고 다니려고 만든 가짜 우산이구나.”
두목이 말했다.
“가짜는 아니다. 펼치면 비를 막을 수 있으니까.”
나강인이 물었다.
“야. 어차피 나중에 경찰서에서 다 불겠지만, 미리 좀 알자. 누가 시켰냐?”
두목이 칼을 옆으로 늘어뜨린 상태로 나강인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며 대답했다.
“고객의 비밀을 누설하는 건 하급이나 하는 짓이다. 고객의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니까 내가 최고인 거다.”
“지난번에 덤빈 놈도 비슷한 소리 하던데, 그놈이 어떻게 된 줄 아냐? 지금 경찰서에서 설렁탕 먹고 있어.”
“나는 그런 어설픈 놈들하고 다르다.”
“네 부하들은 다 잡혔고 너도 곧 유치장에 갈 텐데 뭐가 달라? 거기 가면 옆방에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갇혀있으니까 외롭진 않을 거다.”
두목이 서늘하게 웃었다.
“내가 비록 타깃의 목숨은 거두지 않는 영업방침을 가지고 있다만, 내가 위험한 상황에서까지 그 방침을 지키지는 않는다.”
“그게 나한테 석궁을 두 번이나 갈겨댄 놈이 할 소리냐? 다른 사람이면 죽었어.”
“처음에는 급소를 피해서 쐈다. 그래도 죽는다면 그건 네 운이겠지.”
“방금은 석궁으로 내 가슴을 노렸더라?”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그러긴 했다. 그런데 차라리 그 화살을 맞지 그랬나. 병원으로 곧장 이송됐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두목이 나강인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하지만 이제 늦었다. 넌 죽는다.”
“아. 나 지금 위험한 거야? 나 겁먹어야 하냐? 아이고. 무서워라.”
“너는 빈손이고 나는 검을 들고 있다. 마지막 기회다. 저항을 포기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하여간 청부업자 두목 놈들은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까? 아! 너 지금 쫄리나 보다?”
“멍청한 놈. 살 기회를 걷어차는구나.”
가만히 있던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 지휘관의 음성 데이터를 충분히 수집했습니다.
나강인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제 네 목소리는 충분히 들었으니까 들어와라.”
“목소리를 들어?”
“그런 게 있다. 들어오라니까? 아니면 내가 들어간다?”
“와라.”
나강인이 두목이 향해 성큼 걸어갔다. 한 걸음의 보폭이 워낙 커서 마치 육상 선수가 멀리뛰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두목은 그 속도에 깜짝 놀랐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서 있지는 않았다. 그는 즉시 장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칼이 빨라서 허공에 선이 그어지는 것 같았다. 칼날이 지나가는 경로에 나강인의 목이 있었다.
나강인이 날아오는 칼을 팔뚝 보호대로 막았다.
두목은 칼날이 튕겨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튕겨 나오는 힘을 이용해 칼날의 거리를 띄웠다가 아래로 움직여서 다시 베면….’
그런데 칼날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다. 칼날은 팔에 박히지도 않았고 튕겨 나오지도 않았다. 예상한 반발력이 거의 없었다.
두목은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나강인이 두목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두목은 다급히 칼을 잡아당기며 뒤로 피하려 했다.
늦었다. 이미 나강인이 칼등 쪽을 손으로 잡았다. 칼날은 마치 바위에라도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목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칼 손잡이를 놓으며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허리 뒤의 단검을 뽑아 나강인의 팔을 아래에서 위로 베었다.
나강인이 두목의 목을 잡기 위해 뻗던 팔을 도로 당겼다. 두목의 단검은 허공을 갈랐다. 나강인이 다시 팔을 뻗었다. 팔을 뻗었다 당기고 뻗는 움직임이 마치 권투선수가 잽을 연달아 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강인이 적의 목을 콱 잡았다. 적이 위로 높이 든 단검을 다시 내리치려 했다.
나강인이 먼저 두목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케에엑!”
시멘트로 포장된 이면도로에 등부터 떨어진 두목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나강인의 두목의 손을 툭 찼다. 단검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나강인이 두목의 앞에 꾸부정하게 앉았다.
“어? 이놈 기절했네.”
- 대놓고 내리찍으셨잖습니까? 그러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좀 세 보이길래 이쯤은 버틸 줄 알았지.”
- 이놈은 탱커가 아니라 딜러입니다. 공격력은 제법 있지만 맷집이 약합니다.
나강인이 두목의 옷을 뒤졌다. 스마트폰이 하나 나왔다.
그는 스마트폰을 켰다. 잠금화면은 두목의 엄지손가락을 대자마자 풀렸다.
나강인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를 확인한 후에 도로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상대편이 전화를 받았다.
- 어떻게 됐어?
“제압했다.”
두목의 목소리는 조금 전에 충분히 수집했다.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목소리를 두목의 목소리로 변조했다.
상대편이 웃었다.
- 흐흐. 역시 최고의 실력자는 다르군. 잔금은 퀵으로 보내주겠다.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상황이 조금 변했다.”
- 무슨 소리지?
나강인은 지금 통화 상대의 위치를 찾고 있다. 그가 스마트폰의 마이크를 손으로 막고 작게 말했다.
“이놈은 지난번에도 이곳에 와서 일이 진행되는 걸 확인했어. 이번에도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야.”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스마트폰으로 들리는 소음을 증폭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계속 움직이면서 말을 시키십시오.
나강인이 스마트폰에 대고 말했다.
“그놈을 처리하다가 우리 애들이 좀 다쳤다.”
- 괴물처럼 강한 놈이니까 철저히 준비하라고 했잖아.
“치료비가 필요해.”
- 응? 의뢰비로 그 많은 돈을 받으면서 치료비라니? 그까짓 거 얼마나 된다고….
“많이 다쳤다. 수술비도 들 거야.”
- 이거 내가 들은 명성하고 좀 다른데? 이봐. 미리 약속된 대로 깔끔하게 하자고. 난 잔금을 퀵으로 보내주고, 넌 그거 받고. 그러면 우리 거래는 끝. 오케이?
근처에서 자동차 경음기 소리가 들렸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방금 들은 경음기 소리를 스마트폰 통화에서도 포착했습니다.
“놈의 위치는?”
AI 전지인이 허공에 지도를 띄웠다. 그 지도에 빨간 원이 표시되었다.
- 예상 지역을 원으로 표시했습니다.
원 안쪽에 다시 삼각형 표시가 추가되었다.
- 예상 지역 내에서 외부인이 의심받지 않고 차를 주차할 수 있으며 유사시 탈출하기도 쉬운 곳은 삼각형으로 표시했습니다.
거기까지 가는 최단 경로는 파란색 선으로 표시되었다.
나강인이 스마트폰에 대고 말했다.
“알았다. 잔금만 받기로 하지. 마무리 짓고 다시 연락할 테니까 현재 위치에서 기다려라.
- 그렇지. 마무리는 깔끔하게 지어야지. 아 참. 원하는 옵션이 있는데 말이야.
“말해라.”
- 팔다리 정도는 확실하게 부러뜨리라고.
***
룸살롱 사장 조정철이 통화를 끊고 나서 말했다.
“흐흐흐. 그 괴물 같은 놈을 처리했다.”
실장이 조수석에서 감탄했다.
“비싼 청부업자를 쓰니까 역시 다릅니다. 지난번에는 여섯 놈이 그놈 하나한테 깨졌는데 말이죠.”
그들은 습격이 또 실패하면 이번에는 더 안전하게 도망치려고 전투 현장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에 근처에서 대기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부장이 걱정했다.
“혹시 그놈을 죽인 거 아닐까요?”
사장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에이. 폭행 전문 청부업자인데 설마 죽이겠냐? 실수로 몇 명 죽였다는 소문은 있지만 말이야.”
“찜찜해서 그러죠.”
“설사 죽였다 해도 그건 그놈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야. 경찰은 우리가 누군지 절대로 알 수 없어. 이 대포폰만 처리하면 증거는 아무것도 안 남….”
갑자기 뒷좌석 유리창이 박살 났다. 유리 파편이 차 안으로 쏟아졌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두목이 두 팔로 머리를 보호하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 뭐야!”
나강인이 두목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놈 맞냐?”
AI 전지인이 두목의 얼굴 옆에 지난번에 찍은 사진을 띄웠다. 흐릿한 사진이지만 얼굴을 알아볼 만큼은 됐다.
- 지난번 습격 때 정찰 차량 창문에 얼굴을 대고 바깥을 살핀 놈이 확실합니다.
나강인이 차 내부를 슬쩍 보았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부장과 실장이 있었다.
“저놈들도 맞네.”
세 사람은 나강인을 알아보았다. 뒷좌석의 두목이 소리를 질렀다.
“추, 출발해!”
부장이 차의 시동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나강인이 운전석 창문을 박살 내며 부장의 목을 콱 잡았다.
“켁!”
그는 부서진 창문을 통해 잠금장치를 해제한 후에, 문을 활짝 열고 부장을 차 밖으로 끌어냈다.
조수석에 있던 실장이 다급히 시동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이거 왜 안 걸려!”
이 차의 스마트키는 부장이 갖고 있다. 그런데 부장은 방금 차 밖으로 끌려나갔다. 스마트키도 밖에 있다.
실장이 차 안에서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나강인이 끌어낸 부장을 옆으로 던졌다.
차의 시동을 걸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은 실장이 조수석 문을 황급히 열고 내렸다. 사장도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나강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얼굴은 안다.
나강인은 그들이 누군지 안다. 실장과 부장은 룸살롱 주방에 변장하고 침투했을 때 만났다. 사장 조정철은 지난번에 확보한 사진과 얼굴을 대조해 확인했다.
옆으로 날아갔던 부장이 허겁지겁 일어나 조정철의 옆에 섰다. 그런 후에 삼단봉을 꺼내 쭉 폈다.
실장도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손에 잭나이프가 잡혔다.
조정철이 가운데서 호통을 쳤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아냐고!”
나강인이 대답했다.
“룸살롱 사장.”
“헉! 아는구나.”
“그러니까 도망칠 생각 마라. 여기서 튀어봤자 결국 잡힌다.”
“제, 젠장.”
나강인이 룸살롱 사장 조정철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누가 시켰냐?”
조정철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좌우에 있는 실장과 부장도 겁을 먹고 같이 물러났다.
조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생각해내려고 눈알을 부지런히 굴리는 게 보였다.
나강인이 다시 물었다.
“고룡 엔터 박 사장이냐?”
사장은 화들짝 놀랐다.
“허억! 도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야!”
“다 알고 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
“넌 박 사장이 시키는 일을 왜 하는 거냐?”
“그, 그건….”
“여자를 드라마에 배우로 꽂으려고?”
“으허억!”
조정철은 귀신이라도 보는 것처럼 나강인을 쳐다보았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의 표정과 음성, 호흡, 기타 반응을 모두 분석했습니다. 세 놈 다 진심으로 놀라고 있습니다.
나강인이 히죽 웃으며 세 사람에게 말했다.
“무섭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