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41화 (241/411)

241. 재투성이 아가씨

팝스타 알레이나 민은 발표하는 음반마다 빌보드 상위권에 오르는 미국 팝스타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이민 간 교포라서 한국말을 잘한다. 할머니 쪽인 프랑스어도 잘한다.

한국 기자와 인터뷰할 때는 한국어로 하는 건 물론이고 한국 음식도 잘 먹고 한국 문화도 자주 즐긴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그녀의 인기는 비슷한 급인 다른 미국 팝스타보다 높다.

신은하는 가수가 아니라 배우이지만 알레이나 민이 누군지는 안다.

알레이나가 벗겨진 마스크를 얼른 고쳐 쓰고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쉿. 내가 여기 있는 거 비밀로 해줘요.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신은하가 알레이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알레이나를 방송국이나 공연장에서 만난 게 아니다. 조금 전부터 거슬리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녀가 물었다.

“진짜 이상하네요. 알레이나가 왜 하필 강인 오빠 옆집에….”

알레이나가 얼른 설명했다.

“지금 있는 집은 아는 분이 잠깐 지내라고 구해준 거예요. 저 그냥 조용히 쉬려고 온 거니까 소문내지 말아줘요. 네?”

신은하가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강인 오빠는 이 상황을 알고 있었어?”

나강인은 알레이나의 얼굴은 몰랐다. 하지만 이름은 안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듣고 당황한 상태다.

“아니. 광년이가 팝스타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동네 백수인 줄 알았지.”

AI 전지인이 말했다.

- 하필 이 시점에 이 동네로 이사 올 알레이나 민은 한 명밖에 없습니다. 광년이의 정체는 비밀 수술 대상자 알레이나 민입니다.

“이런 상황은 진짜 예상 못 했는데….”

- 그러게 말입니다.

그는 왜 알레이나가 여기서 조용히 지내는지 안다. 그래서 신은하에게 제안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냥 비밀로 해주자.”

“으응? 나야 뭐 그래도 되는데….”

신은하가 남동생 신영석을 돌아보았다.

신영석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아, 아, 알레이나 민? 와. 이거 실화야?”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우린 망했습니다. 목격자가 벌써 두 명이나 생겼습니다.

알레이나가 얼른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렸다.

“쉿. 조용히 해요. 누가 듣겠어요.”

신영석이 더듬거리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넵! 팬입니다!”

“네. 고마워요. 그런데 누구….”

“신영석입니다! 아! 은하 누나 동생입니다!”

“아! 신은하 씨 동생…. 신은하 씨가 나온 영화랑 드라마는 재미있게 봤어요. ‘햇살 좋은 날’은 아직 못 봤지만요.”

신영석이 갑자기 스마트폰을 꺼냈다.

“알레이나! 저랑 같이 셀카 한 장만 찍어주세요! SNS에 올리게요.”

“네? 나를 여기서 만난 건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는데요?”

“아. 맞다. 그러셨지. 그럼 사진은 저만 가지고 있을게요.”

“미안해요. 사진은 안 돼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우리가 망한 이유는 바로 신영석 때문입니다. 신은하는 그래도 앞뒤 가릴 줄은 아는데, 신영석은 똥오줌 못 가립니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 신영석은 인터넷에 자기 누나가 실수한 사진을 종종 올립니다.

“아. 젠장.”

- 네. 젠장.

나강인이 신은하를 옆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물었다.

“네 동생이 인터넷에 올리는 너의 실수 사진 말이야.”

“강인 오빠도 봤어? 그런 거 보지 마!”

“그 사진 혹시 네 허락 받고 올리는 거야?”

“그럴 리가 있어? 내 동생은 관종이야.”

“어?”

신은하가 신영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신영석은 알레이나에게 사진을 찍자고 조르고 있었다.

“쟤는 관심종자라서 이런 고급 비밀은 오래 못 지켜.”

AI 전지인이 말했다.

- 관종 신영석을 제거하는 것 외에는 비밀을 지킬 방법이 없습니다.

“야. 그건 너무 나갔지. 은하 동생인데.”

- 우리가 얼마나 망했는지 아시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나강인은 신은하와 신영석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알레이나도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탄 후에 갑자기 왼손으로 벽을 짚고 오른손을 가슴에 댔다.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며 혼잣말을 했다.

“조금 전에 내가 왜 뛰었을까? 그거 잠깐 뛰었다고 되게 힘드네.”

나강인은 혼자 남은 후에 외과 과장 이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정호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나강인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잠깐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밤늦은 시간이지만 이정호는 병원에 있었다.

나강인은 병원 옥상에서 자판기 캔음료를 들고 이정호를 만났다.

이정호가 말했다.

“오늘 늦게까지 수술이 있었거든요.”

“병원에 안 계시면 집으로 찾아갈까 했습니다.”

이정호가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알레이나 민 말입니다.”

이정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알레이나가 걱정돼서 찾아오셨군요. 괜찮습니다. 알레이나는 아파트를 하나 빌려서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그 아파트가 제가 사는 집 바로 옆집인 걸 알고 거기로 보내신 겁니까?”

“예? 그게 무슨…. 헉! 진짜입니까?”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옆집에 이사 온 광… 독특한 아가씨가 알레이나 민이더군요.”

이정호는 당황하긴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요? 아! 기왕 이렇게 된 거, 강인 씨가 알레이나를 잘 관리해주면….”

“제가 어떻게 알레이나의 정체를 알았겠습니까?”

“그, 글쎄요?”

“조금 전에 외부인이 알레이나를 알아봤습니다.”

“헉!”

“이제 인터넷에 알레이나가 어느 아파트 단지에 사는지 알려지는 건 순식간일 겁니다. 기자들이 조사하면 몇 동 몇 호에 사는지도 알려지겠죠. 기자가 집으로 찾아오면 당연히 옆집에 사는 사람의 인터뷰도 따고 싶을 거고요.”

이정호는 뭐가 진짜 문제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닥터 노네임의 정체를 기자들이 눈치라도 채는 날에는….”

나강인은 비밀 수술을 할 때는 닥터 노네임이라는 가명을 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과장님과 저는 체포되겠죠. 이 과장님이 연지의 수술만 했을 때는 딸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연지만 수술한 게 아니잖습니까?”

“율명바이오 사장님의 딸도 불법으로 수술했다는 것까지 알려지면, 사람들은 제 순수한 선의를 믿어주지 않겠죠. 율명바이오에도 타격이 갈 테고요.”

“그런 사태를 감수할 수는 없습니다. 기자들이 찾아오면 알레이나의 수술은 불가능합니다.”

“이해합니다. 이해는 하는데.”

이정호는 다른 걸 걱정했다.

“하지만 로버트는 멈추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압니다. 자기 딸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요.”

“큰일 났네요. 방법을 찾지 못하면 우리 모두 망합니다.”

“그래서 제가 방법을 궁리해 봤습니다.”

이정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밤중의 병원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십니까?”

나강인이 제안했다.

“알레이나가 공개활동을 하는 겁니다.”

“예?”

“알레이나가 대놓고 활동하면, 기자는 뒷조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기삿거리는 충분할 테니까요.”

“공개활동을 하면 비밀리에 수술하기 어렵잖습니까?”

“이대로 오늘이 지나가면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해집니다.”

이정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지내는 집은….”

“당연히 옮겨야죠.”

“공개활동을 할 거라면 아예 호텔로 가는 게 낫겠군요. 그것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좋은 호텔로요.”

“동의하셨으면 즉시 시작하시죠. 알레이나의 정보가 인터넷에 먼저 터지면 늦습니다.”

“지금 당장 로버트와 통화하겠습니다.”

***

알레이나는 거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집에 있을 때는 바닥에 붙어서 산다.

“미국에 있을 때는 아무리 쉬어도 하나도 안 편했는데.”

그때는 불치병으로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편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치료할 방법이 생겼다. 마음이 편해졌다.

“한국에 와서 노니까 너무 좋다.”

그렇게 굴러다니며 놀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로버트 민이었다.

“응. 아빠.”

- 알레이나. 음….

“왜? 뭔데?”

- 무슨 일 없지?

“별로 없어. 브레드가 찝쩍거리긴 했는데 쫓아버렸어. 이젠 안 나타나더라고.”

- 한국에 너 혼자 있을 때를 노렸구나. 그런데 브레드는 네가 한국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내 폰에 위치추적 악성코드를 심었나 봐.”

- 상종 못 할 놈이로군.

“이젠 아주 사기꾼이 다 됐다니까?”

나강인이 최근에 이 동네에서 청부업자들과 싸우고 룸살롱 패거리를 잡았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안다. 알레이나는 집과 피시방만 오간 데다가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다.

로버트 민이 말했다.

- 어차피 네가 공개활동으로 전환하면 브레드는 접근 못 하겠지.

알레이나가 몸을 일으켜 거실 바닥에 앉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수술받을 때까지 언론에 노출되면 안 된다며?”

로버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 후우. 그래야 하지. 그런데 말이야. 네가 이미 노출됐다는 말을 들었다.

알레이나는 당황했다.

“어? 그런 소리는 어디서 들었어? 브레드는 이 기회를 이용해야 하니까 공개할 리는 없잖….”

그녀는 오늘 아파트 앞에서 만난 사람들이 생각났다.

“아. 맞다. 있었지. 에이. 괜찮아. 겨우 세 명이 눈치챘는데, 내가 입단속 잘 시켰어.”

- 내가 알 정도면 이미 정보가 새기 시작했다고 봐야지.

“어? 아니, 그중에 누가…. 신은하? 옆집?”

의심 가는 사람이 있었다.

“셀카 찍자던 녀석이구나!”

- 누구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 곧 기자들이 알게 된다는 게 중요하지. 그러니까 그 전에, 아예 공개활동으로 전환해야 해.

그녀는 계획을 바로 이해했다.

“언론에서 날 추적하기 전에 먼저 모습을 드러내라는 거지?”

- 그래. 네가 거기서 그러고 있는 걸 보면 수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알레이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해?”

- 일단 이사부터 가라.

“이사. 알았어. 내일….”

- 지금 당장 가. 시간이 없다. 어차피 짐은 없지? 공개적으로 활동하려면 호텔이 좋겠지. 당장 그곳을 나가서 아주 크고 화려한 호텔로 가.

“알았어. 지금 나갈게.”

알레이나가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여기 올 때는 빈손으로 왔다. 집안에는 짐이 거의 없었다.

옷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이연지가 준 점퍼를 걸쳤다.

그녀가 한국에 올 때 입은 옷은 이연지가 세탁해서 큼지막한 크로스백에 담아 갖다 주었다. 그 옷은 아직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그녀가 마스크와 안경을 쓰고 모자도 눌러쓴 후에 가방을 메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거 되게 편했는데 나가려니까 아쉽다.”

그녀가 바닥에 이불을 깔아놓은 채로 현관을 열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로 가려면 먼저 옆집 현관 앞을 지나가야 한다.

그녀가 나강인의 집 현관을 보다가 벨을 눌렀다. 벨소리는 나는데 반응이 없었다.

“집에 없나?”

나강인은 지금 이정호와 밖에서 만나 대책을 논의하는 중이다.

그녀는 메모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볼펜이 없었다. 로버트 민은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이건 그녀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여기서 나강인을 기다리고 있다가 기자가 먼저 찾아오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그녀가 한숨을 내쉰 후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빨리 올라왔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에 탄 후에 나강인의 집 현관과 그녀가 그동안 지낸 집을 보았다.

“아쉽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현관문이 보이지 않았다.

***

알레이나는 운동복에 점퍼를 입고 특급 호텔에 들어갔다. 떡이 진 머리는 모자를 써서 감추었다.

그나마 얼굴에 물칠은 하고 다녀서 땟국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녀가 데스크 직원에게 말했다.

“방 하나 줘요. 전망 좋은 방으로.”

“한강이 보이는 방으로 하시겠습니까?”

이 호텔에서 한강을 보려면 남향으로 방을 얻어야 한다.

“음…. 아뇨. 남향 말고 북향으로 줘요.”

“스텐다드룸으로 하실 건가요?”

“아뇨. 스위트룸으로요.”

직원이 알레이나가 입고 있는 만 원짜리 운동복과 여고생이 입고 다닐 법한 점퍼를 확인한 후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위트룸은 가격이….”

알레이나가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나 돈 많아요.”

“아, 네.”

직원이 카드를 받았다. 그런 후에 카드를 확인하며 물었다.

“저희 호텔에는 다양한 타입의 스위트룸이….”

신용카드에는 그녀의 이름이 영어로 적혀 있었다.

“알레이나 민?”

직원이 고개를 번쩍 들고 알레이나를 보았다.

“어? 설마….”

알레이나가 마스크를 슬쩍 내렸다. 그런 후에 손가락 끝을 살짝 흔들며 인사했다.

“하이.”

“앗!”

“확인됐으면 제일 좋은 방으로 빨리 처리해주세요. 여행에서 막 돌아와서 좀 피곤해서요.”

“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짐부터 주세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냥 카드키만 줘요.”

“넷!”

알레이나는 서울 시내에 있는 특급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은 바닥에 내려놓고 창가로 갔다. 창밖에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그녀가 서울 북쪽을 보며 말했다.

“거기가 저기쯤인가?”

그동안 지냈던 곳을 보며 감상에 젖고 싶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심하게 가려웠다.

“아. 나 며칠 동안 머리 안 감았지.”

그녀가 모자를 휙 벗어서 옆으로 던지고 욕실 문을 활짝 열었다.

새하얗게 청소된 욕실이 그녀를 반겼다. 샴푸와 비누, 수건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제 좀 씻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