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42화 (242/411)

242. 공개활동

신은하의 동생 신영석은 같은 동네에 미국 팝스타 알레이나 민이 산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알레이나는 그에게 그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말했다.

신영석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다. 신은하와 나강인이 그러자고 했고, 알레이나도 몇 번이나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다른 생각이 났다.

“남들 반응이 보고 싶다.”

그는 그동안 신은하가 실수한 사진을 인터넷에 몇 번 올렸다. 아예 엉망인 사진은 후환이 두려워서 공개하지 않았다. 적당히 웃고 넘어갈 만한 사진만 사용했다.

“이걸 올리면 우리 누나 사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반응이 올 텐데, 나만 알고 있으려니까 너무 아깝다.”

그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이발사의 심정이 지금 아주 절절히 이해가 갔다.

방법이 하나 생각나긴 했다.

“누군지만 말하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그냥 유명 가수라고 하면 누군지 어떻게 알겠어?”

일단 그 생각이 들자 자제하기 어려워졌다. 신영석은 한참 동안 침대에서 구르거나 컴퓨터 앞에서 멍하니 있다가, 결국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하나 썼다.

목격담을 자세하기 적지는 않았다. 그저 미국 팝스타가 같은 동네에서 사는 걸 알게 됐다는 정도만 적었다.

“이러면 너무 약한가?”

그는 그 팝스타가 한국말을 잘해서 즐겁게 이야기했다는 말도 추가한 후에 글을 올렸다.

신영석은 그런 후에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이름을 말한 것도 아니고 우리 동네가 어딘지 말한 것도 아니니까 이쯤은 괜찮잖아?”

잠시 후에 댓글이 달렸다.

신영석이 얼른 댓글을 확인했다.

- 님이 말하는 사람이 설마 알레이나 민은 아니겠지요?

신영석은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한 방에 눈치챘지? 에이. 알고 물어본 건 아니겠지. 그냥 떠본 거겠지.”

그는 얼른 댓글을 썼다.

-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는 말해줄 수 없습니다. 말 안 하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거든요.

약속한 건 사실인데 새끼손가락을 걸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도 댓글을 썼다.

- 사진 없으면 구라지.

신영석이 즉시 반박했다.

- 비밀로 해달라는 사람하고 사진을 어떻게 찍냐고요. 근데 진짜라고요.

- 알레이나 민이 호텔에서 목격됐다는 기사 봤구나? 그걸 보자마자 이런 소설을 쓸 생각을 하다니. 관종인가?

신영석은 관종이라는 말에 짜증이 확 났다.

“호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가 즉시 댓글을 달았다.

- 아닌데? 알레이나 민 지금 우리 동네에 있는데?

“어떠냐! 우리 동네가 어디인지 궁금해 미치겠지?”

그 뒤에 붙은 댓글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 알레이나가 지금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블루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있는 사진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나도 지금 이 호텔에 있거든요. 여기 야경이 좋아서 구경하러 왔다가 알레이나를 발견했습니다. 이거 방금 내가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다른 댓글도 붙었다.

- 나도 기사 봤는데, 알레이나는 그 호텔 스위트룸에 있답니다.

신영석이 눈을 껌뻑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내가 직접 봤는데? 나 안 미쳤는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은하의 방문을 연달아 두드렸다.

“누나! 잠깐만!”

신은하가 짜증 난 얼굴로 문을 활짝 열었다.

“왜 한밤중에 난리야? 죽고 싶냐?”

“아까 나랑 같이 봤지? 내가 헛것 본 게 아니지?”

“누구? 강도 놈들? 넌 그때 나가서 술 마시느라 못 봤잖아.”

“그게 아니라 알레이나 민 말이야! 나랑 같이 봤잖아!”

“봤지.”

신영석의 표정이 환해졌다.

“역시 내가 미친 거 아니구나! 누나! 빨리 SNS에 우리 동네에서 알레이나를 봤다고 올려줘. 얼른!”

“너 미쳤니? 비밀로 해주기로 약속했잖아!”

“알레이나가 지금 호텔 스위트룸에 있대! 그래서 아무도 내 말을 안 믿는다고!”

신은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 말? 그러니까 그새를 못 참고 알레이나 목격담을 인터넷에 올렸다?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으응? 아니, 난….”

신은하가 피식 웃었다.

“알레이나가 네가 관종이라는 걸 알았나 보다. 네가 어차피 다 공개할 걸 아니까 너한테 정체를 들키자마자 바로 호텔로 간 거야.”

그녀가 신영석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밀었다.

“바로 너 때문에 간 거라고.”

“어? 나 때문에? 그런 거였어? 아….”

신영석의 어깨가 조금 처졌다.

“내가 잘못했구나.”

신은하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잠깐. 알레이나가 강인 오빠 옆집에 계속 있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잖아.’

신은하가 활짝 웃으며 신영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니야. 잘했다.”

“응? 잘했어?”

“자. 수고비.”

“어? 겨우 만 원?”

“용돈이 적어서 안 받게?”

“아니. 고맙다고. 근데 왜 밤중에 갑자기 용돈을….”

“근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올린 글은 빨리 지워. 그리고 내 소식도 인터넷에 올리지 좀 마!”

“난 누나 홍보해주려고 그런 거라고.”

“넌 내가 실수한 거만 인터넷에 올리잖아! 그게 어떻게 홍보야? 조회수에 눈이 먼 거지!”

***

알레이나 민은 이튿날 오전에 스위트룸 침대에서 일어났다.

“집이 아니라서 그러나? 이상한 전쟁 꿈만 꿨어.”

멍하니 앉아 있던 그녀가 머리를 흔들었다.

“앞으로 며칠은 공개활동 열심히 해야지. 영화부터 보러 가야겠다.”

공개활동을 하려면 같이 다니면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녀는 지난번에 한국에 왔을 때 개인 경호를 맡아준 사람에게 연락했다.

그런 후에 나갈 준비를 했다.

떡이 진 채로 지내던 머리카락은 어젯밤에 스위트룸의 샴푸와 린스로 감았다.

“어제 씻었으니까 그냥 나갈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머리를 다시 흔들었다.

“아냐. 공개활동이니까 꽃단장은 못 해도 깨끗하게는 하고 다녀야지.”

그녀는 욕실에 들어가 샤워부터 했다.

옷은 운동복이 아니라 한국에 들어올 때 입었던 것을 가방에서 꺼내 입었다.

최소한의 화장품은 입국할 때 갖고 있던 가방에 들어있었다.

“쇼핑도 좀 해야겠다.”

영화 ‘햇살 좋은 날’은 극장에서 내려가기 직전이라 상영하는 곳이 몇 군데 없었다. 그중 하나가 이 특급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준비를 마친 그녀가 스위트룸을 나갔다.

***

알레이나가 호텔 로비에서 방긋 웃었다.

“오랜만이야. 영희 언니. 이번에도 내 경호 잘 부탁해.”

총권도 수강생인 민영희가 불평했다.

그녀가 불평했다.

“고객님이 잘나가는 팝스타인 건 아는데, 나를 고용하고 싶으면 미리 예약을 하라고. 나도 바쁜 사람이야.”

“에이. 언니도 오늘 스케줄 빈다면서.”

“내가 놀아서 스케줄이 비는 게 아니야. 요즘 새로 배우는 무술을 혼자서도 수련하느라 스케줄을 많이 줄여서 그래.”

“언니 원래 바쁜 거야 알지. 차는 가져왔지? 내가 한국에 몸만 가지고 들어와서 차가 없거든.”

“돈도 많으면서 하나 사라. 금방 나갈 거면 렌트를 하던가.”

“아. 좋은 생각이야. 쇼핑할 때 차도 한 대 사야겠다.”

“오늘 스케줄은 뭐야?”

“영화 보러 갈 거야. ‘햇살 좋은 날’.”

민영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아직도 영화관에서 안 내려갔나?”

“아직 하는 극장이 몇 개 있더라. 진짜 다행이지. 언니는 봤어?”

“봤지. 아는 사람이 그 영화에 참여했거든.”

알레이나는 민영희가 연예인 경호를 종종 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 말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럼 나랑 한 번 더 봐. 나 이 영화 많이 기대했단 말이야.”

“고객님이 보라고 하시면 당연히 봐야지. 돈 받으면서 영화 보는 건데.”

***

나강인은 외과 과장 이정호와 병원 옥상에서 만났다.

이정호가 말했다.

“알레이나는 어젯밤부터 공개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특급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야경을 배경으로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이 많을 겁니다. 오늘은 오전부터 영화관에 갔습니다. 역시 목격자가 많겠지요.”

“위치가 확실히 드러나게 움직이니까, 이 동네를 알아내서 찾아올 기자는 없겠군요.”

“지난 며칠 동안 어디를 여행했는지 알아내는 건 굉장히 어렵지만, 알레이나가 앞으로 뭘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

알레이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중했다.

그녀는 영화가 끝난 후에 근처 카페에 앉아서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영화가 영상이 참 예쁘다. 로맨스도 아름답고. 기대했던 이상이야.”

민영희가 맞장구쳤다.

“그 영화 감독님이 로맨스 쪽으로 유명하대. 그리고 영상미도 그렇게 좋다더라.”

그런데 알레이나가 진심으로 감탄한 건 따로 있었다.

“영상미도 좋은데 액션이 진짜 좋았어. 무슨 액션 특수효과가 어색한 표가 하나도 안 나?”

“그거 특수효과가 아닌데?”

알레이나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언니가 잘못 아는 거야. 특수효과가 아니면 그런 액션을 어떻게 찍어?”

“이상하다. 실전 리얼 액션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야. 내가 할리우드에서 연기해봐서 아는데, 방금 본 영화의 액션을 특수효과 없이 찍으려면 몇 명쯤 죽어야 돼. 그러니까 그건 불가능해.”

민영희는 연예인 경호를 종종 하긴 하지만 연예계 사람은 아니다. 그 업계 이야기를 일하다 주워듣는 건 있어도 내부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굳이 반박하지는 않았다.

알레이나가 부러워했다.

“‘스파이 셰프’의 액션 특수효과가 저렇게 완벽한 수준이었으면 망하진 않았을 텐데.”

알레이나의 본업은 가수이지만 영화에도 가끔 출연한다. ‘스파이 셰프’는 알레이나가 조연으로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다.

민영희가 물었다.

“그 영화가 액션 때문에 망했어?”

“아니. 찍을 때는 괜찮았는데 영화관에 걸리고 나서 보니까 총체적 난국이었어. 그래도 액션이 저렇게 잘 나왔으면 본전은 건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민영희가 주변을 슬쩍 보았다.

“고객님. 사람들이 점점 모이고 이미 널 알아본 사람도 몇 명 있어. 사람이 더 늘어나면 접근하는 사람이 나올 거고, 그다음에는 여기 있는 사람 절반이 너한테 다가올 거야. 그런데도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아니. 얼굴 충분히 팔렸으니 이동해야지. 우리 점심은 뭐 먹을까?”

“고객님이 사는 거겠지?”

“당연하지.”

민영희가 입맛을 다셨다.

“페넬로페라는 레스토랑이 있어. 거기 가자. 전화해서 고객님 이름 대면 테이블 하나는 만들어줄 거야.”

***

페넬로페의 사장이자 대표 셰프인 오규철이 활짝 웃으며 알레이나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오규철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알레이나의 노래, 저도 참 좋아합니다. 하하하.”

두 사람은 오규철이 따로 만들어준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에 애피타이저부터 요리가 하나씩 나왔다.

페넬로페는 요리를 손님이 주문해서 먹는 방식이 아니라, 그날그날 바뀌는 메뉴를 주는 대로 먹는 곳이다.

서비스도 셰프 마음대로 나간다.

손님이 원하면 못 먹는 재료가 들어가는 요리를 아예 제외할 수는 있다. 하지만 특정 재료만 빼고 요리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알레이나가 요리를 하나씩 맛보며 말했다.

“여기 맛있다.”

민영희는 열심히 먹었다.

“나도 소문만 들었는데 맛있다.”

“영희 언니는 나 경호하러 온 게 아니라 먹으러 온 거야?”

“고객님. 이런 걸 꿩도 먹고 알도 먹는다고 한단다.”

오규철이 메인 요리를 직접 가져와 두 사람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고기를 주재료로 쓰고 다양한 채소를 곁들인 요리였다.

오규철이 설명했다.

“이 요리의 이름은 전장의 불꽃입니다.”

알레이나가 먼저 요리의 맛을 보았다.

“어머! 이거 진짜 맛있다.”

그녀는 포크로 고기를 다시 집어 먹었다.

“진짜 맛있어. 그런데….”

이 요리에서 나강인이 나눠준 불잡탕조림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보다는 조금 덜 맵지만, 느낌이 되게 비슷하다.’

불잡탕조림은 밥과 비벼 먹어도 맛있다. 그런데 전장의 불꽃은 밥이 같이 나오지는 않았다.

오규철은 나강인의 불잡탕조림을 참고해서 이 요리를 만들었다.

직접 먹어보고 조리법을 개발한 건 아니다. 먹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구해서, 조리법은 다르지만 느낌이 꽤 비슷한 요리를 만들어냈다.

알레이나는 ‘전장의 불꽃’을 먹으면서 지난 며칠간의 일이 생각났다.

‘거기 참 편했는데.’

특급 호텔 스위트룸보다 그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그 근처 피시방에서 놀 때가 더 좋았다. 나강인이 만든 밥도 생각났다.

‘신은하의 남동생. 걔 때문에 내가 그 편한 곳을 떠난 거잖아. 다음에 만나면 혼내줘야지.’

***

나강인은 최근에 동네에서 청부조직을 쓸어버리고 룸살롱 사장 조정철과 부하들도 잡았다. 그 소식이 합동수사본부에 들어갔다.

합수부장은 움찔했다.

“설마 또 나강인이 우리에게 그 일을 넘기….”

경찰 소속 간부가 얼른 설명했다.

“아닙니다. 이번엔 폭행 청부조직 사건인데, 우리한테 넘어올 규모가 아닙니다. 총격전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요.”

그 말을 듣고 간부 몇 명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위성기지국 사건 수사도 아직 안 끝났는데, 사건을 추가로 맡아야 하는 줄 알고 놀랐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합수부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간단한 사건이라니까, 관할 기관에서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응원이나 합시다. 하하하.”

***

관할 경찰서 형사 박기정이 나강인을 만나 말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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