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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244화 (244/411)

244. 경쟁

이튿날 SAH 엔터 사무실에서 신은하의 매니저 박우섭이 말했다.

“은하야. 최진욱 피디 새 드라마 말이야.”

신은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거기서 뭐래? 자리 남아있다지?”

“주연이나 중요 배역은 아직 확정된 건 없다더라.”

신은하가 씩 웃었다.

“그럼 얼른 미팅 좀 잡아줘. 차기작은 그 드라마로 하자. 기왕이면 주연으로.”

“근데 그게 말이다.”

신은하가 멈칫했다.

“응? 그 표정 그거, 박 실장 오빠가 일이 꼬였을 때 짓는 표정인데?”

“미팅 시간 잡기가 쉽지 않다.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엥?”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 이제 급이 좀 되지 않아? 드라마를 쪽대본에 쫓기면서 찍는 중이면 또 몰라. 아직 촬영 시작도 안 했으면서 나랑 미팅할 시간도 없대?”

“이틀만 일찍 연락을 줬으면 미팅할 시간이 있었는데, 상황이 변했대. 그 드라마에 주연급 배우들이 갑자기 몰려서 이미 미팅 약속을 쫙 잡아놨다더라.”

“어? 아니, 왜 갑자기 주연급이 몰리는데?”

박우섭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보가 제일 빨라야 할 우리가 너무 늦은 거지.”

“그러니까 무슨 정보!”

“강인 씨가 무술감독을 맡는다는 정보.”

“여기서 강인 오빠가 왜 나와?”

박우섭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거봐. 바로 이게 우리 실수라니까? 우리는 남들하곤 다르게 강인 씨를 쉽게 만날 수 있잖아. 그래서 본인에게 직접 들었는데도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거야.”

박우섭이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서 알아낸 걸 설명했다.

“주연급 배우 중에는 액션으로 이미지 변신할 기회가 있으면 하려는 사람이 많아. 좋은 작품으로 변신하면 더 좋고, 최상급 액션까지 쉽게 뽑아낼 수 있다면 최고의 기회지.”

“그래서 강인 오빠가 무술감독을 맡는 드라마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어. 강인 씨의 기존 작품들이 대단했잖아. 거기다 아직 개봉도 안 한 ‘운명의 창’에서 어떤 명품 액션을 만들어냈는지 아는 사람도 많더라.”

“하지만 강인 오빠가 그 드라마를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전부터 있었잖아. 왜 갑자기 지금?”

“그동안은 강인 씨가 참여할 수도 있다는 정도만 알려졌었지. 반대로 조금 도와준 것뿐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그랬지.”

“만약 배우가 그 드라마를 한다고 했는데 강인 씨가 다른 작품, 예를 들면 손태민 감독님 영화를 한다고 하면, 그때 가서 갈아탈 수는 없잖아.”

“그래서 그동안 간만 본 사람이 많았다?”

“그치. 아예 방송국에 빨대를 꽂아놓고 확정되기만 기다렸다더라. 그러다 강인 씨 섭외에 성공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즉시 미팅부터 잡았대.”

“정작 강인 오빠한테 그 소식을 직접 들은 우리는 느긋하게 하루 지나서 연락했고?”

“어. 그래서 우리 미팅 순번이 한참 밀렸다.”

“아니, 박 실장 오빠? 그럼 왜 어제 바로 전화 안 한 거야?”

“나도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신은하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 피디님이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 아냐? 강인 오빠가 하는 드라마인데 당연히 내가 주연을 맡아야지!”

“그 논리의 근거는 뭐냐?”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거지.”

“문제는 또 있어. 그 드라마에 네 출연이 결정된다 해도, 네가 주연을 맡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신은하가 손으로 기다란 머리카락을 휙 넘겼다.

“이거 왜 이래? 나 옛날의 신은하가 아니야. 이제 천만 영화 ‘햇살 좋은 날’의 주연급 배우야. 그럼 그 드라마에서 주연 맡아도 되는 급이잖아.”

박우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세나가 어젯밤에 최 피디랑 도 작가가 회의하고 있는 곳에 쳐들어갔다더라. 여주인공 자리 달라고.”

신은하는 당황했다.

“어?”

신은하는 ‘햇살 좋은 날’에 주연급 조연으로 출연했다. 영화가 천만을 돌파할 정도로 대성공하면서 그녀의 인기도 높아졌다.

그런데 오세나는 그 영화의 주연급이 아니라 공식 여자 주연 배우다.

박우섭이 말했다.

“천만 영화의 여주인공 오세나가 직접 피디와 작가를 찾아가서 차기작으로 그 드라마를 선택했다고.”

“아, 아니, 천만 영화 주연이라고 그냥 프리패스 하란 법 있어? 어? 있냐고!”

“오세나의 경쟁력이 어디 그거 하나냐? 미모는 여신급이지.”

“나도 예쁘다고!”

“오세나가 어디 얼굴만 예쁘냐? 연기는 또 얼마나 잘해? 연기력도 최상급이지. 상대가 너무 강해.”

“박 실장 오빠는 지금 누구 편이야? 나도 연기 잘해!”

“물론 너도 예쁘고 연기도 잘하지. 필모가 오세나한테 한참 딸려서 그렇지.”

“나도 주연으로 찍은 영화 있다고!”

신은하는 신인 감독 변형찬의 영화 ‘운명의 창’에서 주연을 맡았다.

“‘운명의 창은’ 아직 개봉도 안 했어. 객관적으로 보면 네가 오세나한테 많이 밀려.”

신은하는 더 따지고 싶은데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녀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불평했다.

“아놔. 그 언니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 그럴 급이 아니잖아!”

“오세나가 말이야. ‘운명의 창’ 때 감독이 엎드려 주연 자리를 바칠 줄 알고 느긋하게 왔다가 실패했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소식 듣자마자 달려든 거 같아.”

그때는 신은하와 이보라가 먼저 참여해 주연 경쟁 중이었다.

“저번이랑은 입장이 반대로 된 거지.”

“하여간 그 언니는 쪼잔하다니까. ‘운명의 창’ 때도 신인 감독 영화에 그 언니가 왜 끼냐고. 그거 다 다른 꿍꿍이가 있….”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 잠깐. 이번에도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전부터 강인 오빠 보는 눈이 수상했는데? 옥상 파티에서 드론이 폭발했을 때는 강인 오빠가 그 언니를 구해주기도 했잖아.”

박우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오세나가 같이 작품을 하면서 유혹하면 안 넘어가 남자가 없….”

“야! 박 실장 오빠는 진짜 누구 편이야!”

“난 사실만 말한 거다.”

***

미국 팝스타 알레이나 민은 공개적으로 활동했다. 백화점을 가거나 영화관을 가는 식으로 가벼운 기삿거리가 될만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로버트 민이 미국에서 전화를 걸어 말했다.

- 그렇다고 너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어.

“공연은 안 하잖아.”

- 공연이라니. 큰일 날 소리를. 이제 치료 방법이 생겼는데 조급하게 그러면 안 돼.

알레이나 민이 지난 몇 달간 무대 공연을 하지 않은 건,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서였다.

- 너무 활발히 활동하지 마. 반복되는 일상만 노출하면 네 기사가 점점 줄어들 거야.

“이미 효과가 있어. 며칠 이러고 다녔더니 이젠 기자들이 보이지도 않아.”

로버트 민이 다른 걸 걱정했다.

- 알레이나. 거기서 뛰거나 한 적 없지?

“어….”

최근에 나강인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잠깐 뛰었던 게 생각났다. 로버트가 알았다면 기겁했을 일이다.

“당연하지. 조심하고 있어.”

***

외과 과장 이정호가 나강인에게 설명했다.

“알레이나의 상태는 권수연이 수술을 받기 전보다는 낫습니다. 그런데 예전 연지처럼 발작 리스크가 있습니다. 그때의 연지만큼 심한 상태는 아니지만, 일단 터지면 죽는다는 건 같습니다.”

“상태가 수연이와 연지의 중간쯤이군요.”

“예. 그래서 알레이나는 걷는 건 괜찮은데 뛰면 안 됩니다.”

나강인은 며칠 전에 신은하, 신영석 남매와 함께 동네를 걷다가 알레이나를 만났다.

“그때 뛰던데….”

“예?”

“아닙니다.”

이정호가 계속 설명했다.

“활동량은 로버트가 수시로 통화하면서 조정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활동은 어느 정도입니까? 지금도 인터뷰 요청은 많이 받을 텐데요.”

“인터뷰는 다 거절하고 있습니다만, 카메라 앞에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서 대화하는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너무 오래 하지만 않으면요.”

두 사람은 다른 것도 논의했다.

나강인이 말했다.

“이 동네에서 알레이나를 목격한 사람이 또 있을 겁니다.”

그는 알레이나가 분식집을 이용했다는 걸 안다. 구석에서 밥을 먹긴 했지만, 마스크를 벗었을 때 식당 주인이 그녀의 얼굴을 봤을 수도 있다.

게다가 알레이나는 피시방 죽순이였다. 그곳에서 밥을 먹을 때도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 구석 자리를 이용하긴 했지만 손님 중에 누군가가 얼굴을 봤을 수도 있다.

나강인이 제안했다.

“그러니까 알레이나가 이 동네에서 목격될만한 이유를 만들어둬야 합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거군요.”

***

신은하가 동생인 신영석을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신영석이 불평했다.

“누나가 공원에 운동하러 가는데 왜 나까지 데려가냐고.”

“내가 따라오라고 시켰냐?”

“엄마가 시켰지만 누나 때문이잖아.”

그녀의 어머니는 최근 겪은 강도 사건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신은하가 운동하러 나갈 때 보디가드 대신에 신영석을 붙여주었다.

“내가 누나 운동하는 거나 따라다녀야 해? 나도 바쁜데?”

“왜? 또 술 마시러 가게?”

“아니, 오늘은 술보다 밥 위주인데, 저번에 얻어먹어서 이번엔 내가 사기로 했거든. 근데 내가 지금 돈이 없네?”

“밥은 네가 돈 벌어서 사.”

“대학생이 어디서 돈을 버냐고.”

“남들처럼 알바라도 하든가.”

신영석이 멈칫하다가 갑자기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지금 하잖아. 누나 경호 알바.”

“말이나 못 하면. 강인 오빠 곧 올 거야. 그때까지만 있어.”

“어? 저번에 그 형?”

“어.”

신영석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 보이는데…. 아! 저기 온다!”

나강인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신영석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나강인이 손을 슬쩍 흔들어준 후에 신은하에게 물었다.

“왜 보자고 한 거야?”

신은하가 웃었다.

“나 운동하는데 보디가드가 필요해서.”

나강인이 신영석을 보았다.

“보디가드는 이미 있잖아.”

“얘는 갈 거야. 야. 빨리 가.”

신영석이 눈을 껌뻑였다.

“응? 내가 가기로 했어?”

“친구들한테 밥 사기로 했다며?”

“에이. 돈도 없는데 뭘. 됐어. 누나랑 형이나 따라다닐게.”

신은하가 오만 원짜리 한 장을 주며 말했다.

“옛다. 용돈.”

신영석이 용돈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맞다. 얘들한테 짜장면하고 탕수육 쏘기로 했지. 흐흐…. 어?”

신영석이 공원에서 새로운 사람을 발견했다. 신은하처럼 마스크와 모자, 뿔테 안경까지 쓴 여자였다.

그런데 그는 비슷한 모습을 최근에 본 적이 있다. 게다가 신은하도 지금 비슷한 방식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신영석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알레이나 민?”

알레이나가 나강인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광돌!”

“광돌은 또 뭐냐?”

“광식이라고 부르면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서. 광놈이는 좀 그렇고 광돌 정도는 해야 비슷하지.”

신은하가 옆에서 짜증을 냈다.

“저번에도 그렇고, 진짜 이 친근한 호칭은 뭐지?”

신영석이 다급한 표정으로 알레이나에게 말했다.

“알레이나!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날 우리 동네에서 본 거 제가 터트린 거 아니라고요!”

그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말은 미국에 있는 로버티 민이 전해주었다. 알레이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거처를 호텔로 옮겼다.

그녀는 그동안 신영석이 범인이라고 의심했다.

“네가 소문낸 거 맞잖아!”

“네?”

“아니면 내가 왜 호텔로 옮겨?”

“나 아닌데….”

신은하가 끼어들었다.

“영석이가 안 그랬어요.”

신영석은 당황했다.

“누나가 내 편을 드는 거 실화야?”

“얘는 관종이에요.”

“으응?”

“얘가 소문냈으면, 소문낸 사실 자체를 또 자랑할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럼 진짜 아니에요. 얘는 남이 안 알아주면 이불을 걷어차는 바보거든요.”

“어…. 누나?”

“그러니까 아니에요.”

알레이나는 신은하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다.

‘진짜인가 봐.’

그녀가 사과했다.

“미안해요. 듣고 보니 제가 착각한 것 같아요.”

신영석은 당황했다.

“뭐지? 오해가 풀려서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싫어해야 하나?”

그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알레이나가 우리 동네에 살았다는 거, 제가 소문내지 않았다는 걸 믿는 거죠?”

알레이나가 도로 물었다.

“네? 제가 여기 살았어요?”

“예?”

“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신은하가 신영석의 옆구리를 찔렀다.

“비밀로 해달라는데 파고들면 좋아하겠냐?”

“아! 맞다! 알레이나는 여기 안 살았죠. 제가 잘 압니다!”

신은하는 그녀가 아니라 옆에 있는 민영희에게 말을 걸었다.

“영희 언니가 왜 알레이나랑 같이 다녀요?”

민영희는 총권도를 배우는 체육관에서 신은하를 여러 번 만났다. 그녀가 대답했다.

“내가 연예인 경호도 종종 하잖아요. 고객님이 한국에 있는 동안 경호를 맡았어요.”

“요즘 시간 없다면서 왜요?”

민영희가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비벼 보였다.

“우리 고객님은 페이가 세요.”

“아. 돈 많지.”

신영석이 민영희를 보며 신은하에게 물었다.

“누나. 이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연상의 누님은 누구셔?”

“너 따위는 5초면 접어버릴 수 있는 무술 고수 언니. 총도 잘 쏜대.”

“그냥 물어만 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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