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46화 (246/411)

246. 시사회 II

시사회장에서 영화가 시작됐다.

‘운명의 창’은 조선 시대와 현대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다.

같은 배우가 조선 시대에는 창칼을 들고 치열하게 싸우는 무사의 모습으로 나왔다가, 현대에는 와이셔츠를 입은 직장인의 모습으로 나왔다.

두 시대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비슷한 사연이나 사건들이 겉으로 보이는 형태만 바뀌어서 일어났다.

영화가 중후반을 넘어가면 시대와 환경은 달라도 등장인물들이 가는 길은 같다는 걸 관객들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영화에 빠져들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이야기도 좋았다. 관객들은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실전을 보는 듯한 액션이 나올 때면 상영관에서 잡담 한 마디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사람을 진짜로 벤 것처럼 보일 때는 놀라는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모든 장면이 진지한 건 아니다. 유머도 적당히 섞여 있었다.

복경산 장군이 죽을 때는 탄식이 들렸다.

두 시간짜리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상영관에 불이 들어왔다.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와아….”

“이건 진짜….”

“나 못 일어나겠다.”

“나도. 긴장하면서 봤더니 몸에 힘이 빠졌어.”

배우들은 촬영 도중에도 액션을 간단히 맞춰본 영상 정도는 보곤 했다.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 주연배우 김유찬이 활짝 웃으며 두 주먹을 번쩍 들었다.

“내가 이 명작의 주인공이다!”

신은하도 옆에서 오른손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나도!”

이 영화의 주인공을 한 명만 꼽으라면 김유찬밖에 없다. 이야기는 창의 주인인 김유찬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렇다고 다른 배우들이 들러리를 선 건 아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 사이의 여러 갈등과 특별한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배우들은 각자 맡은 배역에서 그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신은하는 여자 등장인물 중에서는 제일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공식 여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김유찬이 고개를 뒤로 돌려 관객들이 감탄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이 영화를 찍은 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어.”

신은하가 맞장구를 쳤다.

“나도요. 난 강인 오빠가 무술감독을 맡는다길래 그냥 한다고 한 건데, 대박이 났어요.”

“사실 나도 강인 씨가 한다고 해서 이 영화를 시작한 거야.”

김유찬이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인 건 나강인이 액션을 맡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시나리오를 확인한 후에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는 영화 제작을 위해 THO 엔터 사장 이태호를 만났다. 투자자를 모을 때 도움이 되려고 시나리오밖에 없을 때부터 주연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신은하가 물었다.

“우리 영화, 천만 넘겠죠?”

김유찬이 씩 웃었다.

“관객 천만? 그건 기본으로 깔고 가야지. 이 영화는 한국 시장이 문제가 아니야. 두고 봐라. 난 이 명작 영화로 칸에 갈 거다.”

“앗! 그럼 나도 가야지!”

이보라가 옆에서 말했다.

“그럼 나도 가나?”

이보라는 이 영화에 출연한 여자 배우 중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 영화 속 그녀는 신은하의 대칭점에 서서 경쟁하고 싸웠다.

신은하가 이보라를 돌아보았다.

“글쎄? 칸은 인원 제한이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남녀 주연 두 명만 초청한다든지.”

“야!”

“농담이야.”

신은하가 김유찬을 돌아보았다.

“유찬 오빠는 러닝 개런티 받기로 했죠? 축하해요. 부자 되겠어요.”

“난 이미 부자야.”

“더 부자가 될 거라고요.”

이보라도 웃었다.

“흐흐. 우리 영화가 대박이 나면, 나도 다음에는 주연 노려볼 수 있나? 흐흐흐, 으흐흐흐.”

신은하가 같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주연을 맡았으니까, 잘만 풀리면 너도 가능할지도 모르지.”

이보라가 눈을 반짝였다.

“강인 오빠가 다음에 들어가는 작품은 뭐지? 난 거기 도전해야겠다.”

“야. 꺼져. 그 드라마는 내 거야.”

“어? 드라마? 무슨 드라마? 너 뭐 아는 게 있나 보다?”

“꺼지라고.”

KMTV 최진욱 피디와 도주희 작가의 신작에 나강인이 참여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꽤 있다. 주연급 배우 중에는 방송국에 빨대를 꽂아놓고 나강인의 참여가 확정되기만 기다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소식을 아는 건 아니다. 이보라는 그 드라마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녀가 신은하에게 물었다.

“드라마 제목이 뭔데? 조사하면 다 나오니까 얼른 말하지?”

“싫거든? 안 가르쳐줄 거거든?”

모든 사람이 지금 상황을 좋아한 건 아니다.

오세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완전히 빠져들었다가, 상영관이 밝아진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그녀의 앞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을 하고 싶었는데.”

그녀도 이 영화의 주연을 원했었다.

그녀가 출연한다고 하면 신인감독 중에는 주인공 자리를 두 손으로 바칠 사람이 많았다. 그녀는 이 영화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가 참여 의사를 밝힌 건 이미 영화 제작이 확정되고 투자까지 다 받은 후였다.

반면에 신은하와 이보라는 영화 제작이 결정되기 전부터 신인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했다.

변형찬 감독도 오세나가 주연을 맡으면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건 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연은 제작이 확정되기 전부터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신은하와 이보라도 원했다. 변형찬은 그 자리를 나중에 나타난 오세나에게 그냥 갖다 바칠 수는 없었다. 양심에 찔려서 그러지 못했다.

반면에 투자자들은 오세나를 원했다.

결국 누구를 주연으로 할지는 오디션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오세나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 오디션은 오세나가 교통사고로 팔을 다치는 바람에 무산됐다.

그녀가 이 영화에 나중에라도 참여하려고 했던 건, 나강인이 무술감독을 맡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을 다친 상태로 액션이 많은 이 영화에 참여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이렇게 대단한 영화인 줄 알았으면, 내가 깁스를 하고 찍는 한이 있더라도 주연을 맡았을 텐데!”

여자 주연 자리는 결국 신은하가 차지했다.

“진짜 이 영화 칸에 갈 거 같은데? 그럼 신은하도 가겠지? 거기가 원래 내 자리였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부러워해 봤자 소용없었다. 이미 영화는 완성됐다.

그녀가 머리를 굴렸다.

“변 감독은 차기작 찍으려면 멀었을 테니까, 강인 씨가 들어가는 다음 작품에는 내가 꼭 주연을 맡을 거야.”

그 작품이 뭔지는 안다. 이미 드라마 제작진과 접촉 중이다.

그녀가 독하게 마음먹었다.

“이번에도 교통사고가 나면 환자복을 입고서라도 찍을 거야. 그 드라마 주인공은 내 거야!”

미국 팝스타 알레이나는 영화를 보면서 감동했다.

“대박이다. 이 영화.”

그녀는 액션 장면이 처음 나왔을 땐 경악했다. 그 후에는 액션이 나올 때마다 감탄했다.

“저렇게 진짜 같은 액션은 할리우드에서도 보기 힘들어.”

팝스타 알레이나는 가수가 본업이지만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경험이 몇 번 있다. 할리우드의 액션 특수효과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도 안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돈을 얼마나 많이 퍼부었길래 저 많은 액션이 전부 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보여?”

알레이나는 영화가 끝난 후에 손을 펴 보았다. 주먹을 꽉 쥔 횟수가 너무 많아서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누른 자국이 많이 남아있었다.

“도대체 그 액션들을 어떻게 찍은 거야? 누가 특수효과 담당자야? 액션은 또 왜 그렇게 멋있어?”

그녀는 그 액션이 CG로 만들어낸 건지, 아니면 현장 특수효과 담당자가 대단한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 실감 나는 전투를 설계했을 무술감독도 대단해. 정말 엄청나게 궁리하고 연구했을 거야.”

무대 위로 감독과 배우 네 명이 올라갔다.

변형찬 감독이 먼저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재미있었냐는 말에는 관객들의 박수와 환성이 터져 나왔다.

배우들도 마이크를 넘겨받으며 한마디씩 인사했다.

그런 후에 질문 시간이 찾아왔다. 기자 여러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알레이나도 액션 장면을 누가 만들었는지 물어보려고 손을 들려다가 멈칫했다.

“가만. 이건 적당한 수준의 공개활동이 아닌데?”

그녀는 이 시사회에 공식 행사로 온 게 아니라 그냥 놀러 왔다. 기자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여야 하고, 기사도 딱 그 수준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드레스가 아니라 청바지를 입고 이곳에 왔다.

“근황 기사 정도만 나가게 조절해야 기자들이 나한테서 점점 흥미를 잃을 텐데.”

그녀가 여기서 손을 들고 질문하면 그 이야기가 기사로 나갈 게 뻔하다. 기사에서 할리우드까지 언급되면 일이 너무 커진다.

그녀가 생각을 바꿔먹었다.

“저 영화에 연지도 나왔으니까, 나중에 따로 조용히 물어봐야지. 걔는 저 액션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겠지.”

***

시사회가 끝났다.

THO 엔터 사장 이태호는 기자들을 초대할 때 영화 내용은 개봉 전까지는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영화 내용을 유출하거나 유출된 걸 옮기는 기자에게는 상영 후에는 기사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잘 지켜주는 기자에게는 따로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기자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게 예의를 갖춰서 좋게 말했다.

이태호의 조치는 효과가 있었다.

시사회가 끝난 후에 기사가 연달아 올라왔다.

[‘운명의 창’. 기대를 한참 넘어선 대작.]

그 기사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옮겨졌다. 댓글도 바로 붙었다.

- 나 이 영화 예고편 보고 기대 많이 했는데 드디어 나오는군.

- 에이. 이런 기사야 립서비스지. 아직 개봉한 것도 아닌데.

- 그래서 내용이 뭐죠? 대작이라는 말만 있고 내용이 없어요.

- 개봉도 안 한 영화의 내용이 벌써 기사로 나오면 안 되죠.

- 이 영화가 어떻게 벌써 나오지? 제작 기간이 너무 짧은 거 아냐?

- 빛 좋은 개살구일지도.

[김유찬. 천만 영화 이후 선택한 후속작도 대박 기대감.]

- 이건 좀 오버 아닌가? 아직 개봉도 안 한 영화인데.

- 김유찬 주연인데 대박은 몰라도 쪽박은 아니겠지.

[천만 감독 손태민의 제자 변형찬. 천만 계보 잇나.]

- 와. 홍보팀 일한다.

- 천만? 아주 김칫국을 사발로 드링킹 하네.

조금 더 구체적인 기사도 올라왔다.

[스토리, 몰입도, 액션 모두 근래에 본 영화 중 최고였다.]

- 잠깐. 이 평론가는 영화평이 박하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 혹시 대중성은 포기한 예술영화를 찍은 거 아닐까요?

- 그럼 액션 이야기가 빠져야지요. 액션이 잘 나왔다는 기사가 한두 개가 아닌데.

THO 엔터는 영화 제작 도중에도 예고편을 뿌렸다. 예고편만으로 스토리의 깊이나 영화의 수준을 확인하긴 어렵지만, 액션이 어떤 수준인지는 감을 잡을 수 있다.

예고편을 보고 영화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시사회 기사를 보고 액션 기대감을 더 높였다.

THO 엔터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초반 상영관을 많이 잡지는 않았다. 반응을 보면서 상영관을 늘릴 계획이었다.

미리 잡아놓은 상영관의 예매권이 기사가 나가면서 빠르게 소진됐다.

THO 엔터 사장 이태호가 예매 상황을 보고받고 활짝 웃었다.

“내가 이번 영화 성공할 줄 알았어. 알았다고.”

팀장이 말했다.

“영화가 처음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나왔습니다.”

이태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김유찬 주연에 나강인 무술감독. 거기다 감독이 직접 쓴 좋은 시나리오. 영화가 잘 나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단한 작품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분명히 대박이 날 겁니다.”

“우리 회사 영화가 연타석 천만 가면 진짜 좋겠지요?”

“사장님한테 신의 손이라는 별명이 붙을지도 모릅니다.”

이태호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왜 아부하고 그래요?”

“그래도 좋으시죠?”

“흐흐. 좋지요. 천만 가즈아!”

이태호가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인 씨. 식사라도 하면서 영화 예매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시간 되십니까?”

- 아. 죄송합니다. 지금 선약이 잡혀서 거기 가는 중이라서요.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오늘만 날입니까? 내일 뵈면 되죠. 하하하.”

***

영화사 THO 엔터는 고룡 엔터를 시사회에 초대하지 않았다. 일부러 배제한 게 아니라 평소에도 교류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은 룸살롱 사장 조정철이 잡히는 바람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건 남의 영화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드라마 캐스팅이다.

나강인이 고급 식당 별실에 들어갔다. 박지훈과 지원팀장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이 웃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나 박지훈입니다.”

나강인이 일부러 손을 내밀었다.

“나강인입니다.”

악수는 흔한 인사다. 박지훈이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박지훈의 표정과 손바닥의 땀, 체온, 맥박을 분석했습니다. 박지훈은 요원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강인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내 얼굴을 모를 거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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