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48화 (248/411)

248. 이간의 기술

프프걸스에게는 영화의 인기보다 OST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훨씬 더 중요했다.

막내 최지혜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운명의 창’ OST 이야기를 찾아냈다. 그녀가 얼른 그 글을 클릭하며 기원했다.

“좋은 이야기! 좋은 이야기! 좋은 이야기!”

- 노래 제목도 ‘운명의 창’이더라.

- 들어보니까 좋기는 한데, 한 곡을 편곡만 해서 여러 곳에 쓴 거라 좀 아쉽다.

“엥? 아니, 좋은 이야기는?”

- 노래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버전을 만든 건 대단하지. 역시 곽찬석 작곡가.

“그러니까 우리 이야기는?”

- 메인 OST는 댕댕이 피처링 했더라. 굳이 얼굴 없는 가수를 써야 했나?

“왜 좋은 이야기가 없어?”

그녀가 다른 글이 올라온 곳이 있는지 검색했다. 다른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그 글의 댓글들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 OST만 들어도 좋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OST를 들으면 더 좋습니다. 일단 원곡이 영화랑 정말 잘 어울리고요, 각각의 편곡 버전도 영화의 상황과 너무 잘 맞습니다.

- 맞아요.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노래를 들으면 영화 속 장면이 자동으로 생각나는데, 그게 진짜 좋습니다.

최지혜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이런 좋은 이야기 더!”

- 피처링을 댕댕이 맡은 건 진짜 적절했습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갑자기 남자 목소리로 노래가 나오는데, 그때 그 비장함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 맞아요. 피처링에 댕댕을 쓴 건 신의 한 수입니다.

그녀가 실실 웃었다.

“흐흐. 우리 나 선생님이 노래를 좀 하긴 하지.”

- 근데 댕댕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 얼굴 없는 가수인데 누군지 어떻게 압니까?

최지혜는 너무 신나서 자기도 모르게 댓글을 달았다.

- 난 아는데.

- 그걸 알면 프프걸스겠지.

- 앗! 어떻게 알았지?

- 윗분. 인터넷이라고 막 뻥 치고 그러면 안 돼요.

***

나강인도 인터넷에 올라온 영화 반응을 검색했다. 그러다 AI 전지인이 댓글을 하나 찾아냈다.

- 해당 댓글 작성자가 최지혜일 확률은 90% 이상입니다.

나강인이 최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넹!

“좀 전에 올린 이 댓글 너냐? ‘난 아는데’라고 한 댓글 말이야.”

- 앗! 어떻게 알았지?

“내가 이러면 된다고 했어? 안 된다고 했어?”

최지혜가 얼른 변명했다.

- 죄송해요. 그냥 신나서 댓글을 달았는데, 바로 그걸 알면 우리라는 댓글이 달리니까 깜짝 놀라서 그랬어요. 그 후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어요.

“내 이야기에는 손가락도 까딱하지 마.”

- 넹!

“그리고 다음 체조 트레이닝 때 넌 특훈이다.”

- 악! 안돼요!

“돼.”

***

‘운명의 창’은 인터넷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인터넷에서만 좋은 게 아니라 호의적인 기사도 쏟아졌다.

예능 방송 여러 곳에서 변형찬 감독이나 배우들을 섭외했다.

그런데 섭외가 안 되는 사람도 있었다.

나강인이 신은하의 매니저인 SAH 엔터 박우섭 실장을 만났다.

박우섭이 말했다.

“요즘 강인 씨하고 자리 좀 만들어달라는 연락이 사방에서 들어옵니다. 제가 강인 씨의 파트 타임 매니저쯤으로 알려져서 그런 거죠.”

“제가 귀찮게 해드렸네요.”

박우섭이 실실 웃었다.

“흐흐. 아닙니다. 이 상황이 나름 재미있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방송국에 인사하러 다녔는데, 이젠 그분들이 먼저 제 안부를 묻더라고요.”

“음….”

나강인은 연예계 쪽에서 계약할 일이 있을 때는 박우섭에게 부탁해 처리했다. 계속 그런 부탁만 해서 좀 미안했다.

AI 전지인도 한마디 했다.

- 요원님. 우리는 활동자금이 더 필요합니다.

나강인이 박우섭에게 말했다.

“가끔은 자리를 마련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어? 그래도 됩니까?”

“드라마나 영화는 기간이 너무 길어서 어렵지만, 간단한 CF는 괜찮습니다. 물론 영화 같은 CF는 곤란하고요.”

박우섭이 활짝 웃었다.

“고맙습니다! 사실 여기저기서 압력이 없는 건 아니었거든요. 상황을 딱 정해주시니까, 연락받을 때 제가 대답할 말이 있네요. 하하하.”

“난감한 압력이 들어올 때도 자리를 마련해주시죠. 그런 경우는 제가 직접 만나서 거절하겠습니다.”

“아이고. 그렇게까지!”

“그런데 그런 일을 그냥 해주시면 회사에서 박 실장님이 난처해지실 텐데….”

“아뇨! 사장님이 강인 씨와 관련된 일은 일체 터치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서서 일을 따는 건 아니잖습니까?”

“박 실장님도 남는 게 있어야죠.”

“강인 씨 덕분에 이 바닥에서 제 이름값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연예인 매니저가 직업인 저한테는 그게 남는 거죠.”

“그래도 그건 아니죠. 방법은 은하가 있을 때 같이 찾아보시죠.”

“그럴까요? 흐흐.”

나강인이 다른 걸 물었다.

“혹시 고룡 엔터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박지훈 사장에 대해서도요.”

“고룡은 가수 전문이고 저는 배우를 주로 담당하지만, 이리저리 들은 이야기는 많습니다.”

“만약 사장인 박지훈이 없으면 고룡 엔터는 어떻게 됩니까?”

“음…. 고룡 엔터는 박지훈 사장의 개인 회사가 아닙니다. 지분을 나눠 가진 투자자가 몇 명 있으니까 다른 사람을 사장으로 세우겠죠?”

“그렇군요.”

***

나강인은 박우섭과 헤어진 후에 KMTV 최진욱 피디와 도주희 작가를 만났다.

최진욱이 자랑삼아 말했다.

“저희가 비록 ‘운명의 창’ 시사회에는 초대되지 않았지만 개봉하는 날 영화관에 가서 봤습니다. 강인 씨가 무술감독을 맡으신 영화인데 꼭 봐야죠.”

도주희 작가도 옆에서 말했다.

“개봉 첫날에는 표를 구하기 어려워서, 심야에 둘이서 봤어요.”

나강인이 물었다.

“괜찮던가요?”

최진욱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 최고였죠. 저도 그런 작품 만들고 싶습니다.”

“나중에 그러실 겁니다.”

“나중 말고 이번에요!”

“예?”

최진욱이 강하게 말했다.

“우리 드라마에도 ‘운명의 창’ 같은 액션을 원합니다!”

“어…. 드라마에 그 영화와 같은 액션은 좀 무리 아닐까요?”

“아니, 왜요? 강인 씨의 방식은 실전 리얼 액션니까 드라마의 제작 속도를 따라갈 수 있잖습니까? CG가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요.”

“그 영화에는 여러 사람이 싸우는 전투가 많았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인원을 그만큼 동원할 수 있습니까? 엑스트라나 대역이 아니라 배우가 직접 해야 하는데요.”

“어…. 글쎄요?”

“영화에서는 말을 여러 마리 동원하고, 조선 시대 배경으로 액션을 찍을 때는 전용 세트장을 썼습니다. 이 드라마도 그럴 수 있습니까?”

최진욱이 머뭇거렸다.

“어…. 그게 예산이….”

“게다가 실전 리얼 액션이라는 건, 위험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고 피지컬로 극복하면서 찍는 겁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아실 테고요.”

“알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강인 씨밖에 없고, 실수하면 대형 사고가 터진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최진욱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 영화처럼은 어렵겠지요?”

나강인이 단서를 달았다.

“영화와 똑같은 수준은 아니라도, 제가 좀 고생하면 액션을 잘 뺄 수는 있습니다만.”

최진욱이 다시 활짝 핀 얼굴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믿습니다!”

도주희도 같이 손을 흔들었다.

“저도 강인 씨의 실전 리얼 액션을 믿습니다!”

나강인이 슬쩍 단서를 달았다.

“그런데 그러려면 배우들도 최소한의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진욱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요. 그래서 저희가 오디션도 보고, 원래 잘하는 배우들은 따로 접촉하면서 신중하게 캐스팅을 진행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나강인이 물었다.

“최도화는요?”

“아…. 최도화.”

최도화는 강남 룸살롱 사장 조정철이 보낸 배우다. 공식적으로는 고룡 엔터에서 민다고 알려져 있다.

나강인이 본론을 꺼냈다.

“제가 오디션 심사 때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점수 체크조차 하지 않은 거 아시죠?”

“그럼요. 강인 씨는 연기도 엄청 잘하시는 거 다 아는데, 일부러 액션 위주로만 보셨죠.”

“연기력 쪽은 제가 평가하지 않으려고 그랬습니다만, 그래도 최도화는 진짜 아니다 싶습니다.”

최진욱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아유. 저도 최도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탈락시키려고 했는데, 고룡 엔터에서 절대로 안 된다고 해서 그런 거죠.”

최도화 캐스팅 문제는 윗선에서 협의가 이뤄진 사안이다.

AI 전지인이 제안했다.

- 플랜 A는 실패했습니다. 플랜 B로 전환해 경찰을 팔아먹으셔야 합니다.

나강인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음…. 최 피디님이나 도 작가님이 고룡 엔터의 돈을 받으셨을 리는 없고.”

최진욱이 손을 흔들었다.

“에이.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도주희도 얼른 말했다.

“제 자존심을 걸고 전 아니에요.”

나강인이 물었다.

“그럼 누구입니까?”

최진욱이 대답했다.

“아유. 그런 사람 없습니다.”

“정말 없습니까?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최진욱도 그걸 장담할 수는 없다.

“아뇨. 이 바닥에 나쁜 놈도 많으니까…. 전 안 먹었지만 먹은 놈이 있을지도 모르죠.”

나강인이 목소리를 낮췄다. 두 사람이 결정할 수 없으면 윗선이 결정하게 해야 한다.

“이건 소문내지 마십시오. 경찰 쪽에서 흘러나온 정보거든요.”

“예? 경찰이요?”

“최근에 강남 룸살롱 사장이 청부 폭행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갑자기 룸살롱은 왜….”

도주희가 옆구리를 찔렀다.

“뭐야? 최 피디 그런 데 가?”

“사람을 어떻게 보고! 난 그런 데 절대로 안 가!”

나강인이 설명했다.

“경찰이 그 사건을 수사하다가, 그 룸살롱에서 연예기획사를 준비한다는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예? 룸살롱이 기획사를요?”

“그런데 그 사장이 드라마에 출연시키려는 배우가 최도화라더군요.”

“아니, 그게 무슨….”

“최도화는 그 룸살롱에서 유화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대로 드라마에 최도화가 출연했는데, 나중에 경찰 수사 발표에 이름이나 얼굴이 나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최진욱의 표정이 굳었다.

“최도화는 대사는 거의 없지만 얼굴은 자주 나오는 배역이니까, 그걸 다 통편집하면….”

도주희가 옆에서 비명을 질렀다.

“안돼! 우리 드라마 말아먹을 거야!”

최진욱이 벌떡 일어났다.

“그건 막아야지! 당장 국장님한테 말해서 최도화는 안 된다고 하겠어!”

도주희가 옆에서 부추겼다.

“아예 고룡 엔터에서 꽂은 다른 두 명도 빼버리자!”

나강인이 말렸다.

“고룡 엔터의 가수 두 사람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몰랐을 텐데요.”

최진욱이 조금 풀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고룡에서 꽂은 셋을 다 탈락시키는 건 저도 부담이 좀 돼서…. 하하하.”

나강인이 제안했다.

“최도화만 탈락시키고 고룡 엔터의 가수 두 명은 아예 배역을 확정해버리죠. 어차피 이야기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연은 아니잖습니까?”

“그게 좋겠네요. 쳐내는 사람이 있으면 상응하는 보상도 있어야 고룡 엔터도 납득하겠죠.”

***

최진욱이 당장 국장실로 쳐들어갔다.

“국장님. 연기라고는 하나도 못 하는 최도화를 억지로 넣으면 우리 드라마는 망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걔는 대사도 별로 없잖아.”

“얼굴이 자주 나오잖습니까?”

“예쁘니까 더 좋잖아.”

“이건 경찰 쪽에서 흘러나온 소스인데요.”

최진욱이 방금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나강인에게 들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국장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 이야기 진짜야? 확실해?”

“저는 확실하다고 봅니다만, 의심스러우면 국장님이 경찰 쪽에 확인해보시죠.”

“알았어. 내가 보도국에 부탁해서 확인할게.”

최진욱이 단서를 달았다.

“대신에 고룡에서 꽂은 가수 두 명은 아예 캐스팅을 확정하려고요. 고룡하고 너무 선을 그을 필요는 없잖습니까?”

국장이 조금 펴진 얼굴로 말했다.

“이야아. 최 피디. 네가 회사 생각을 다 하는구나?”

“국장님을 생각하는 거죠. 흐흐흐.”

“야. 믿을 말을 해라.”

***

최도화는 드라마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즐길 줄 알았던 그녀는 탈락 통보를 받자마자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그 오디션은 남들 눈 때문에 그냥 보는 거라며! 대충 해도 된다며!”

그녀는 연예인이 되는 걸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경찰에 체포된 조정철이 곧 풀려나서 기획사를 차릴 거라고 믿고 있었다.

“사장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그 전에 캐스팅이 끝날 거야.”

그녀가 조정철에게 오디션 탈락 소식을 전달했다.

강남 룸살롱 사장 조정철은 변호사를 통해서 쪽지를 전달받았다. 최도화가 보낸 쪽지를 확인한 그는 소리를 질렀다.

“이건 약속하고 다르잖아!”

조정철은 고룡 엔터 박지훈에게 입을 다무는 대가로 두 가지를 요구했다. 하나는 최도화의 오디션 통과였고, 다른 하나는 박지훈이 인맥을 동원해서 조정철을 빼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도화가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조정철은 아직도 체포된 상태다.

조정철이 이를 갈았다.

“박 사장이 날 너무 호구로 보는데? 내가 손 놓고 구경만 하다가 멍청하게 당할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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