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이간의 기술 II
오메가테크는 각종 장비와 로봇, 군사 무기 기술을 개발하는 미국 회사다. 그 회사의 사장이자 연구 책임자인 스칼렛 켈리가 말했다.
- 그런데 강인 씨가 보내준 의수 설계도면은 인공 근육 사용을 전제로 한 거잖아요. 모터 기반으로 수정해줄 생각은 있어요?
나강인이 대답했다.
“당연히 없습니다.”
그럴 생각도 없고 관련 도면도 없다. AI 전지인도 할 줄 모른다.
- 우리는 이 좋은 설계도에 사용할 인공 근육이 없어요.
“어제 유나린 박사를 만났는데 인공 근육 연구에 성과가 있더군요. 연락해봐요.”
스칼렛이 아쉬워했다.
- 벌써요? 역시 유나린이네요. 그때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했어야 했는데.
“이미 지난 일입니다.”
스칼렛이 코맹맹이 소리를 살짝 내며 물었다.
- 강인 씨가 우리 회사로 오면 안 돼요?
나강인은 단칼에 거절했다.
“한국에서 할 일이 많아서요.”
- 내가 그것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강인 씨는 요즘 굉장히 바쁘다고 아는데, 이 의수 설계는 언제 한 거예요?
나강인이 도로 물었다.
“미국에 있으면서 내가 바쁜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 한국에 인맥이 좀 있어서 소식이 가끔 들리거든요.
“경찰 쪽에 인맥이 있다더니 거기서 들었군요.”
스칼렛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 인맥은 경찰에도 있고 연예계에도 있어요. ‘운명의 창’ 무술감독님. 영화도 찍고 나쁜 놈들도 잡으면서 어떻게 이런 신개념 설계까지 할 수 있었대요? 밤에 잠 안 자요?
“잘 거 다 자면서 합니다.”
그녀가 이번에는 살짝 끈적이는 목소리로 제안했다.
- 그냥 나랑….
“거절합니다.”
- 다 듣지도 않고!
“유나린 박사에게 연락해서 인공 근육 이야기나 해봐요.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좀 도와주고.”
- 쳇. 알았어요.
***
체포된 룸살롱 사장 조정철이 면회 온 부하에게 물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부하가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고룡 엔터 가수들이 드라마 캐스팅에 실패했는지 알아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지. 고룡에 문제가 생겨서 유화가 떨어졌으면 그놈들도 다 떨어졌어야 하니까.”
“가수 두 명이 오디션을 봤는데요. 두 명 다 붙었다던데요?”
조정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확실해?”
“시키신 대로 돈을 써서 알아봤는데요. 그 둘은 캐스팅이 확정됐답니다. 그 가수들이 그 드라마에 출연할 거라고 자랑하고 다닌다던데요.”
조정철이 화를 벌컥 냈다.
“박 사장 그 새끼가 지금 장난질을 쳐? 내가 부탁한 배우는 떨어뜨리고 자기네 가수들만 붙여? 내가 체포되니까 이제 호구로 보이지?”
조정철이 박지훈에게 청부 폭행의 대가로 요구한 건 최도화를 그 드라마에 꽂아주는 것이었다.
조정철이 체포된 후에는 입을 다무는 대가로 최도화를 드라마에 꽂아주고 그가 풀려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최도화의 연기력은 형편없었지만 KMTV는 고룡 엔터의 요청대로 그녀를 합격시키려고 했다.
그녀가 오디션에서 떨어진 건 나강인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강인은 최도화만 쳐내고 고룡 엔터의 가수들은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는 일부러 그 둘만 통과시켰다.
몸을 사려야 하는 박지훈은 체포된 조정철을 직접 만나 해명할 수 없다. 체포된 조정철도 박지훈을 찾아가 따질 방법이 없다.
조정철은 부하를 통해 확인한 것만으로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부하가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조정철의 눈빛이 독해졌다.
“씨발. 이렇게 되면 나도 혼자는 못 죽지. 내가 왜 다 뒤집어써야 해? 다 박 사장 그 새끼가 시킨 건데!”
***
형사 박기정이 조정철을 만났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부하 앞에서는 화를 낸 조정철이 형사 앞에서는 실실 웃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동안 박 사장을 너무 믿은 것 같더라고요. 이 바닥에 믿을 놈이 어디 있다고 그런 실수를 했을까 싶네요.”
박기정이 물었다.
“그럼 자백할 겁니까?”
“그 전에 담배 한 대만 핍시다.”
박기정이 밖으로 나가 담배를 가져다주었다.
조정철이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천장을 향해 내뱉었다.
“며칠 안 폈다고 맛 더럽게 좋네. 이러니까 몸에 나빠도 못 끊지.”
그가 담배를 피우며 입을 열었다.
“박 사장이 그럽디다. 그 아파트 앞을 지나가는 젊은 놈 하나만 혼내주면 우리 직원을 드라마에 꽂아주겠다고.”
조정철이 변명을 추가했다.
“그렇다고 내가 뭐 그 젊은 놈을 어쩌려던 건 아니고, 드라마에 꽂아준다니까 욕심이 나서 그냥 겁만 좀 주려고 한 겁니다. 업자들이 괜히 오버를 해서 일이 커진 거지요.”
“그러니까 모든 건 박 사장이 시킨 일이다? 박 사장의 이름은?”
“형사님도 아시잖습니까? 고룡 엔터 박지훈 사장.”
박기정도 박지훈이 시킨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나강인이 이미 상황을 다 파악하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은 증거가 없었다.
박기정이 물었다.
“증거는 있습니까?”
“녹음 파일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박 사장이 나한테 일을 시킨 증거가 들어있습니다.”
박기정이 조정철에게 청부할 때 나강인의 인상착의를 말로 설명했다. 조정철은 그 부분과 치워달라고 말한 부분을 따로 녹음해두었다.
“그 파일은 어디 있습니까?”
“인터넷에 숨겨놨으니까, 노트북을 잠깐 쓰게 해주면 바로 내려받겠습니다.”
“다른 노트북을 가져오겠습니다.”
잠시 후에 동료 형사가 노트북을 한 대 가져왔다.
조정철이 그 노트북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서 말했다.
“형사님. 난 진짜 박 사장이 시키는 대로만 한 거니까 살살 갑시다. 살살. 내가 그 사람을 죽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건 청부업자들입니다. 정작 그 사람은 기스도 안 났다던데요.”
***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은 조정철을 빼내기 위해 인맥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인맥은 그가 그동안 룸살롱에서 접대도 하고 돈도 줘가며 쌓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인맥이 그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 박 사장! 빨리 피해!
“예? 갑자기 왜….”
- 조정철이가 박 사장이 시켰다고 불었어!
박지훈은 화들짝 놀랐다.
“조 사장이 미쳤답니까? 거기서 빼내려고 노력 중인데 왜….”
상대편도 다급한 건 마찬가지였다.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혹시 잡히더라도 내 이름 말하면 내 손으로 박 사장을 끝장내버릴 줄 알아.
“아, 아닙니다.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 잘 생각해. 내가 현직에 있어야 박 사장이 체포돼도 도와줄 수 있잖아? 그러니까 내 이름은 절대로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거기까지만 말하고 전화가 뚝 끊어졌다.
박지훈이 대포폰을 가만히 보다가 확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그동안 처먹인 양주가 몇 병이고 2차 보낼 때 쓴 호텔비가 얼만데 정작 필요할 때 이렇게 나와!”
그는 화가 나서 숨을 씩씩거렸다.
“후욱. 후욱. 젠장.”
계속 화만 내고 있을 수는 없다. 그가 머리를 굴렸다.
“내가 살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그래! 나도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니잖아! 브레드 밀러가 시켜서 한 일이잖아!”
이미 회사에서 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박기정은 그대로 주차장으로 갔다. 중간에 직원이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차를 몰고 회사를 빠져나갔다. 목적지는 브레드 밀러가 지내고 있는 호텔이었다.
그는 호텔로 가면서 전화를 걸었다. 브레드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박기정이 다급히 말했다.
“브레드. 일이 틀어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 박 사장님까지 걸린 겁니까?
“예.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 호텔로 가고 있으니까 일단 만나시죠.”
브레드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난 지금 출국합니다.
“예?”
- 이미 인천국제공항입니다. 잠시 피해 있으려고 했는데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박기정은 당황했다.
“아니, 브레드. 그럼 난 어쩌라고요?”
- 내가 괜히 떠나는 게 아닙니다. 한국에 있다가 체포되면 도와줄 수가 없잖습니까? 미국에서 인맥을 동원해서 도와줄 테니까 박 사장님은 한국에서 잘 해결해봐요.
브레드 밀러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박지훈의 차가 신호등에 걸렸다.
박기정은 비슷한 소리를 조금 전에도 들었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다들 나만 버려두고 자기 살길을 찾겠다는 거야?”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소리를 질렀다.
“브레드 이 새끼야! 네가 다 시켜놓고 어떻게 혼자 도망쳐! 죽여버릴 테다! 으아아악!”
***
브레드 밀러는 부하들은 호텔에 놔둔 채 혼자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으로 걸어가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하마터면 체포될 뻔했네. 미국으로 갔다가 바로 다른 나라로 피해서 상황을 봐야겠다.”
그는 어느 나라로 피하면 이번 일로 체포당하지 않을지 궁리하며 출국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어? 뭐? 출국금지?”
나강인은 박지훈의 뒤에 브레드 밀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정보도 박기정 형사에게 미리 넘겨주었다.
박기정은 조정철의 자백을 받자마자 박지훈은 물론이고 브레드 밀러까지 출국금지를 신청했다.
브레드는 공항에 서서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아닌데….”
***
브레드는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러다 공항으로 달려온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과 마주쳤다.
박지훈은 그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브레드! 야 이 개새끼야!”
브레드가 손을 들었다.
“어? 박 사장. 진정하고….”
“네가 다 시킨 일인데 어떻게 나만 버리고 도망쳐? 이 더러운 새끼야!”
“박 사장.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까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합시다.”
박지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쳐다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박지훈이 브레드에게 경고했다.
“시발. 또 혼자 도망치면 나도 가만 안 있어! 일단 내 차로 갑시다.”
***
두 사람은 잠깐 싸웠다고 생각했지만, 한쪽에서 그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람이 있었다. 그 영상에는 음성까지 녹음되어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촬영한 사람은 그게 무슨 상황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아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그 영상을 재미 삼아 올렸다. 그 영상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인터넷에서 그 영상을 찾아냈다.
- 브레드를 엮을 수 있는 영상을 찾았습니다.
“박 형사님한테 보내자. 이걸 들이밀면 박지훈은 브레드가 시켰다고 하겠지.”
***
박지훈은 체포됐다.
브레드도 같이 있다가 체포됐다.
조정철의 자백도 있고 박지훈과 브레드가 공항에서 싸우는 모습을 찍은 영상도 있다.
심지어 그 영상은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고룡 엔터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고룡 엔터는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만들어졌다. 사장인 박지훈도 지분이 꽤 있지만, 투자자들이 모이면 전체 지분은 그쪽이 훨씬 더 많았다.
고룡 엔터의 지분을 가진 투자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즉시 박지훈을 사장 자리에서 쫓아냈다. 그런 후에 임시 사장을 세우고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
SAH 엔터 사장 서재현이 신은하의 매니저 박우섭에게 말했다.
“박 실장. 은하한테 말해서 알레이나랑 자리 좀 마련해보라니까? 시사회에 초대할 정도면 자리도 만들 수 있잖아.”
“은하가 사장님은 너무 가수들만 신경 쓰신다면서 거절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서재현이 목에 힘을 주었다.
“그랬지. 그래도 내가 사장이잖아. 사장이 부탁하는데 자리 정도는 마련해줘도 되는 거 아냐? 은하를 불러서 내가 따끔하게 한마디 할까?”
박우섭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 사장님. 은하가 나강인 씨와 친한 건 아시죠?”
서재현은 움찔했다.
“어? 나강인? 어…. 야! 내가 언제까지 나강인을 무서워할 것 같아? 나 SAH 엔터 사장이야!”
“고룡 엔터의 사장이 체포된 거 아시죠?”
서재현이 눈을 껌뻑였다.
“응? 알긴 아는데, 여기서 그 이야기가 왜 나와?”
“사장이 체포됐다는 말을 듣고 나서 생각난 건데요. 강인 씨가 최근에 저한테 고룡 엔터와 박지훈 사장에 관해서 묻더라고요.”
“어? 뭘…. 혹시 나강인이 그 회사로 갈 생각이었대?”
“아뇨. 박지훈 사장이 사라지면 고룡 엔터는 어떻게 되냐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대로 알려줬죠. 그런데 갑자기 박지훈이 따악! 체포됐습니다.”
서재현이 침을 꼴깍 삼켰다.
“혹시 나강인 씨가….”
박우섭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뭔가 관계가 있긴 있겠죠?”
서재현은 나강인이 국제 용병단이나 해적단을 박살 냈다는 걸 안다.
“나강인 씨는 역시 무서운 사람이구나. 총만 잘 쏘는 게 아니었어. 엔터 회사 사장 하나쯤은 마음만 먹으면….”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 잠깐. 혹시 나도? 박 실장. 나강인 님이 평소에 나에 대해 뭐라고 한 거 없어? 내가 사라지면 우리 회사가 어떻게 되냐고 안 물어봤어?”
“그런 이야기는 안 했는데요?”
“휴우.”
“그래도 은하한테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건 그만두시죠?”
서재현이 펄쩍 뛰었다.
“내가 하는 말은 원래 하나도 안 따끔해! 은하한테는 그냥 좋게좋게 말하려고 했어!진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