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52화 (252/411)

252. 여유

미국인 브레드 밀러가 한국 경찰에 체포됐다.

브레드가 사람을 써서 나강인을 공격한 건 알레이나 때문이다. 그는 나강인이 알레이나를 보호하는 경호원이거나 그 비슷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체포된 후에는 알레이나의 이름을 악착같이 숨겼다. 미국 팝스타가 이 사건의 목적이었다는 게 알려지면 좋을 건 하나도 없고 잘못하면 처벌만 커지기 때문이다.

브레드는 그것만 숨긴 게 아니다. 아예 모든 죄를 열심히 부인했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려고 한국말을 못하는 척도 했다.

브레드가 영어로 말했다.

“I don’t speak korean.”

형사 박기정이 인상을 썼다.

“한국어 잘하는 거 압니다.”

“나, 한국말, 거의 못해요.”

“되게 잘하던데!”

“쪼끔 해요. 아주 쪼끔.”

“이봐요. 브레드 밀러 씨. 당신이 한국말로 박지훈 사장과 싸우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있습니다만?”

브레드가 갑자기 유창한 한국말로 투덜댔다.

“젠장. 그건 언제 찍혔지? 하여간 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다 박 사장이 알아서 한 겁니다. 난 그냥 한국에 관광 온 겁니다.”

고룡 엔터 사장 박지훈도 이 문제가 국제적으로 커지면 엿만 더 크게 먹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박지훈도 알레이나의 이름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는 모든 걸 브레드의 책임으로 돌렸다.

“형사님! 브레드가 다 시켰다니까요? 예? 한국말을 못 한다고요? 그게 무슨 개소리입니까? 그놈은 발음만 좀 어색하지 수능 문제를 풀어도 될 정도로 한국말 잘합니다!”

나강인도 알레이나가 이런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건 반갑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알레이나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박기정이 찾아와서 공격당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그놈들이 왜 그랬는지는 나도 궁금합니다.”

박기정은 합수부와 연락하는 형사다. 그는 나강인이 해결한 사건을 많이 안다.

“늘 그렇듯이 그놈들이 먼저 공격하니까 쓸어버리셨군요.”

“어…. 그렇죠. 가만히 있는데 덤비더라고요.”

이해 관계자들이 모두 알레이나의 이름을 숨긴 덕분에, 그녀는 참고인 조사도 받지 않고 잘 지냈다.

알레이나가 미국인 친구 벤자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벤자민. 아름다운 밤이야.”

벤자민이 반갑게 말했다.

- 알레이나! 전화를 또 걸어줬구나! 고마워!

“뭐래. 우리 전화통화는 곧잘 했잖아.”

- 지난 몇 달을 통틀어서 네가 먼저 전화를 걸어준 건 이게 두 번째야! 매번 내가 걸었다고!

그때는 시한부 생명인 줄 알던 때라 먼저 전화할 기운이 없었다.

“그건…. 야! 며칠 전에는 내가 했잖아!”

- 그게 첫 번째야.

“미안. 내가 그동안은 사정이 있어서 그랬어.”

벤자민의 목소리는 계속 밝았다.

- 알레이나! 뭔지 몰라도 이제 안 그러면 되지! 그리고 목소리가 지난번보다 더 밝아졌어. 좋은 일 있어?

그녀가 방긋 웃었다.

“있지.”

벤자민의 목소리에 흥분이 섞였다.

- 혹시 복귀 결정이야? 프린세스의 귀환이야?

“브레드가 체포됐어.”

- 어?

“청부 폭행 혐의인데 아마 쉽게는 못 빠져나갈걸?”

갑자기 벤자민이 웃음을 터트렸다.

- 으하하하! 내가 브레드 그 새끼 언젠가는 감옥에 갈 줄 알았다. 그럼 이제 한국에서 너한테 시비 걸 사람은 없네?

“아마도?”

- 흐흐. 그럼 내가 한국에 갈게.

“넌 거기서 일이나 열심히 해. 어딜 자꾸 오려고 그래?”

- 휴가 내서 가면 되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 영화 액션 전문 CG 업체?

“어. 거기.

- 알아봤지. 봤는데….

알레이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떻게 액션을 CG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처리했대? 구체적으로 말해봐.”

벤자민의 목소리에는 의문이 담겼다.

- ‘운명의 창’이라는 영화의 CG를 맡은 업체는 찾았어. 찾았는데, 그 회사가 처리한 CG는 배경이나 좀 지운 정도라던데?

알레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그럴 리가 없는데? 다른 CG 업체가 또 있는 거 아냐?”

- 그것도 물어봤는데 그 영화에는 자기네만 참여했대.

“그럼 그 실감 나는 액션은 어떻게 된 거야?”

- 그것도 물어봤지. 영화의 액션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그럼 그건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 자기들이 어떻게 아냐는데?

알레이나가 입을 벌렸다.

“와. 사람 당황하게 하네.”

- 나도 당황했어. 어쨌든 그 영화는 액션을 CG로 처리한 건 아니래. 알레이나. 혹시 배우들이 몸으로 때운 거 아냐?

알레이나가 타박했다.

“지금이 무슨 채플린 시절이야?”

-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영화를 찍은 곳이 없는 건 아니잖아.

알레이나가 벤자민이 보이지도 않는데도 손가락을 흔들었다.

“네가 그 영화를 안 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액션을 모두 몸으로 때워가면서 연기하면 촬영 끝날 때쯤엔 사람 몇 명쯤은 죽어.”

- 그럼 어떻게 한 거지? 나도 궁금하네. 알아내면 정보 좀 공유해줘.

“알아내면 그럴게.”

- 그리고 나도 한국에 들어가면 그 영화를 봐야겠다. 영화를 못 보니까 어떤 액션인지 알 수가 없어.

“미국에서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 나중에 한국에서 보자고.

벤자민이 전화를 끊었다.

알레니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진짜 그 액션을 어떻게 찍은 거지?”

변형찬 감독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알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감독을 만날 수 없다. 전화를 걸어서도 안 된다. 그녀가 감독에게 연락했다는 게 알려지면, 그녀가 변형찬의 차기작에 출연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뜰 수 있다. 그러면 비밀 수술은 더 어려워진다.

“연예계 쪽 소식을 알만한 사람이….”

알레이나가 고등학생 단역 배우 이연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연지가 즉시 전화를 받았다.

- 앗! 레이나 언니!

“혼자 있어?”

- 아뇨. 친구랑 있어요.

“음….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혼자 있을 때 다시 전화할까?”

- 에이. 괜찮아요. 뭔데요?

“한국 영화계에 궁금한 게 있는데, 그쪽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입이 무거운 사람이어야 해.”

- 제가 알잖아요. 저 이제 배우랍니다.

그녀는 지난번에 이연지에게 그 영화의 액션에 관해 물어봤었다.

‘얘는 단역이라서 아는 게 없던데.’

“너 말고, 누구 더 없어?”

- 지금 같이 있는 제 친구는요? 아이돌인데.

“네 아이돌 친구는 유명해?”

- 웅…. 아뇨. 얘는 그동안은 인기 하나도 없다가 요즘 조금 떴어요.

“그럼 됐어. 내가 궁금해하는 건 모를 거야.”

- 아! 은하 언니는요?

“신은하?”

“네. 그 언니가 영화계에 아는 사람이 많거든요.”

알레이나는 신은하와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녀와 두 번을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나강인도 같이 있었다.

“흥. 신은하는 됐어.”

- 영화계를 잘 알고 입도 무거운 사람은 그럼 모르는데….

“아니다. 됐다. 내가 알아볼게. 땡땡이 계속 쳐.”

- 앗! 땡땡이친 거 어떻게 알았지?

알레이나는 전화를 끊은 후에 고민했다.

“어떻게 알아봐야 하려나….”

***

천만 영화 ‘햇살 좋은 날’의 감독 손태민이 흥분한 얼굴로 나강인을 찾아왔다.

“강인 씨! 진짜 이러기야?”

“뭐가요?”

“다음에는 나랑 영화 하기로 했잖아!”

“아. 그랬죠.”

“아? 그랬죠?”

손태민이 가슴을 두드렸다.

“와. 아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나를 버리고 드라마를 할 수 있어? 난 강인 씨가 당연히 참여한다고 보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내가 이러려고….”

나강인이 손태민의 말을 끊었다.

“‘운명의 창’은 액션이 중요한 영화인데도 제가 매일 촬영장에 나가지는 않았다는 거 아시죠?”

“알지. 액션 촬영하는 날만 나가서, 연습도 없이 바로 찍었지. 어쨌든 그 영화 끝나면 나랑 하기로 했잖아.”

“어차피 매일 나가는 것도 아니니까 그 드라마와 손 감독님 영화를 동시에 진행해도 될 텐데요.”

손태민은 멈칫했다.

“어? 그래?”

“네. 그래요. 드라마와 영화 중에 어느 쪽이 먼저 촬영을 시작할지는 모르지만, 액션 촬영 스케줄은 서로 조정하면 되죠. 드라마 쪽에서는 언제든지 스케줄을 조정해준대요.”

손태민의 얼굴이 확 펴졌다.

“그치? 그럴 줄 알았어! 믿고 있었다고!”

“안 믿던데요?”

손태민이 얼른 말을 돌렸다.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페넬로페 어때?

AI 전지인은 레스토랑 페넬로페의 요리를 제일 좋아한다.

- 얼른 가서 먹으면서 이야기하시오. 요원님.

***

페넬로페의 대표 셰프 오규철이 두 사람의 테이블에 요리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손 감독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네요. 좋은 일 있으세요?”

손태민이 실실 웃었다.

“흐흐흐. 강인 씨가 내 영화 무술감독을 맡기로 했거든.”

손태민은 방송 활동을 하는 셰프다. 거기다 연예인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 페넬로페도 운영했다. 그는 여기저기서 듣는 게 많아 정보가 빨랐다.

“어? 강인 씨는 영화가 아니라 새 드라마에 들어간다고 들었는데요?”

“흐흐. 오 셰프도 들었구나? 그 드라마하고 내 작품하고 같이 맡아주기로 했어. 강인 씨는 실시간 촬영이 가능한 실전 리얼 액션의 대가니까 두 작품 정도는 소화할 수 있지. 암.”

오규철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어…. 강인 씨. 제 방송에도 슬슬 나와주셔야 하는데 이렇게 바쁘시면….”

손태민이 물었다.

“오 셰프가 나가는 방송이 여러 개던데 어느 방송? 강인 씨는 얼굴 찍히는 거 안 좋아하는…. 아. ‘가면 셰프’ 이야기구나.”

오규철은 깜짝 놀랐다.

요리 대결 방송인 ‘가면 세프’는 출연자가 누구인지 제작진도 모른다. 방송 관계자 중에는 그 셰프를 섭외한 사람만 정체를 안다.

오규철이 손을 흔들었다.

“어? 아, 아닙니다. 손 감독님. 그게 아니라….”

“난 이미 로봇 가면을 쓴 철인 셰프가 누구인지 알아.”

“예? 그건 신은하 씨도 모르는 비밀인데 어떻게….”

손태민이 자랑했다.

“내가 이렇게 강인 씨랑 친해.”

오규철이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나강인이 설명했다.

“그 방송에서 만든 디저트는 강원도 세트장 앞에 있는 산을 묘사한 겁니다. 그런데 손 감독님이 그 산을 잘 아셔서 방송을 보자마자 알아보시더라고요.”

“예? 아니, 우리나라에 비슷한 산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어떻게 한 번에….”

손태민이 자랑했다.

“내가 누구야? 영상의 마술사 손태민이야. 영상으로 마술을 부리려면 사물과 풍경을 보는 것부터 잘해야 해.”

그쯤 설명했으면 안 믿을 수도 없다. 오규철이 물었다.

“손 감독님. 그 디저트의 산하고 실제 산이 그렇게 비슷하던가요?”

“그 짧은 시간에 산기슭의 모습까지 똑같이 묘사했더라고.”

오규철이 얼른 나강인에게 부탁했다.

“강인 씨. 그럼 우리 ‘가면 셰프’ 방송에 다시 나와주세요. 요즘 시청률이 내려가고 있어서 히어로가 필요합니다. 나와서 그런 작품 좀 만들어주세요. 바다도 있고, 섬도 있고, 우리나라에 좋은 거 많잖습니까?”

“어….”

“오늘 서비스 팍팍 드리겠습니다. 아예 식사권을 좀 드릴까요?”

식사권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AI 전지인이 얼른 말했다.

- 요원님. 한 번쯤 더 출연하는 건 괜찮잖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 세 장은 달라고 하십시오.

“무료 식사권 동반 1인 가능으로 세 장?”

오규철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오늘 가실 때 드리겠습니다. 아. 오늘 식사는 누가….”

“손 감독님이 쏘는 겁니다.”

“식사권은 다음에 오실 때부터 쓰실 수 있습니다.”

***

영화나 드라마가 촬영을 시작하려면 아직 기간이 꽤 남아있다.

나강인이 말했다.

“이제 일정에 여유가 좀 생겼지?”

AI 전지인이 대답했다.

- 인공 근육 및 의수 개발은 유나린과 오메가테크의 연구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까지는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만 너무 앞서 나가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연예계 쪽도 여유가 생겼다.

- 영화는 아직 캐스팅조차 시작 안 했고, 드라마도 주연이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촬영 시작까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다른 건?”

- 신은하가 메인이고 이연지가 보조로 출연하는 CF도 아직 날짜에 여유가 있습니다. 그 외에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럼 오늘은 좀 놀자.”

AI 전지인이 잔소리를 했다.

- 요원님은 시간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여유가 있을 때 임무를 수행하십시오.

“야. 그 본연의 임무라는 건 우리가 정한 거잖아.”

- 현재 상황을 파악하려면 그 임무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서 현지 정찰을 가십시오.

“가봐야 할 곳은 찾았고?”

AI 전지인이 허공에 건물 사진을 띄웠다.

- 충청도에 있는 태양에너지 연구소입니다.

“2082년의 연구소가 지금 시대에 있겠냐?”

- 요원님과 제가 지금 시대에 있는 것도 설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가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그건 그렇지. 알았다. 가보자. 차에 기름 넣을 돈은 있지?”

- 활동자금이 바닥을 보입니다. 해당 위치까지 왕복은 가능합니다만, 식비는 아껴야 합니다.

“연구비로 들어가는 예산을 좀 줄일까?”

AI 전지인이 반대했다.

- 유나린 박사의 인공 근육 연구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일입니다. 요원님의 기름값보다 중요합니다.

철인기공에서 드래곤 플레이트의 대가로 나오는 돈은 모두 유나린 박사의 연구에 투자했다. 그 투자금은 철인기공이 유나린에게 직접 지급하게 설정했기 때문에 그의 계좌에는 스치지도 않았다.

나강인이 말했다.

“돈이 다 떨어지면 디저트라도 좀 만들어서 팔지 뭐.”

- 그렇게 좋은 활동자금 확보 방법이 있는데 왜 안 하신 겁니까?

“음식 판매 허가를 받은 적이 없잖아.”

- 그런 건 몰래 파십시오. 연예인 중에는 비싸게 살 사람이 많습니다.

“야. 됐어. 오늘 목적지가 충청도 어디라고? 거기나 확인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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