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BOOM!
화장품회사 지구뷰티의 사장 딸 지현선은 경쟁회사인 백한수려의 사장 딸 백미소를 만나 들은 이야기를 박 대리에게 전했다.
그중에 좋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백미소가 수맥 탐사 사기꾼에게 걸려 정신을 못 차린다고 말하고, 그 사기꾼이 지현선까지 털어먹으려고 해서 쫓아냈다고 했다.
박 대리는 지현선과 헤어지자마자 팀으로 달려갔다.
“대박! 다 모여봐요!”
그는 즉시 그 이야기를 팀원들에게 알렸다. 그대로 전달한 건 아니고 조미료를 좀 치기는 했다.
팀원들은 다시 그 이야기를 단톡방을 통하거나 아니면 직접 찾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연구소 사람 중 몇 명은 사장 딸이 의도를 가지고 소문을 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부러 더 적극적으로 그 이야기를 퍼트렸다.
나강인과 백미소가 지현선을 찾아가 붕괴 위험을 경고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연구소 전체로 퍼졌다.
그 소문은 하도 파다하게 퍼져서, 연구소 외부에 추가 시설 공사를 하러 온 건설사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다.
그런 공사는 건설회사 직원들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건설사 직원보다 하청 업체나 외부에서 임시로 고용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온 인부 중에는 공사가 아니라 다른 게 목적인 사람 다섯 명이 있었다.
그들은 점심시간에 한쪽에 따로 모여서 밥을 먹으며 정보를 교환했다.
그중 한 명이 주변을 힐끗 확인하며 말했다.
“교수님. 오전에 약품 창고에 들어갔을 때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그들은 리더를 교수라고 불렀다.
교수가 손을 내밀었다.
“사진 좀 보자.”
동료가 스마트폰을 넘겨주었다. 거기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교수가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창고에 있는 약품을 확인했다.
“이거, 이거, 이거 다 있네. 예상대로야.”
“그거면 충분합니까?”
“그래. 이것들만 있으면 블러드 아이스를 만들 수 있다. 다른 재료는 돈만 주면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는 이거만 챙기면 돼.”
블러드 아이스는 신종 마약이다. 이곳에 모인 다섯 명은 모두 그 마약 중독자였다.
중독자들이 활짝 웃었다.
“드디어!”
“실컷 할 수 있겠어!”
교수가 사진을 넘겨보다가 멈칫했다.
“응?”
그는 스마트폰의 사진을 확대했다.
“이런. VTX-13이 있군.”
동료 중독자가 물었다.
“그게 뭔데요?”
“백한수려에서 만든 피부재생 화장품 원료야. 이거 묘하네. 백한수려에서 외부에 나간 VTX-13을 다 회수했다고 들었는데….”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 옆에서 보면서 말했다.
“그건 한 통이 있던데요?”
“지구뷰티에서 분석이나 실험용으로 쓰려고 반납 안 하고 따로 챙겨놨나 보군.”
“이것도 우리 약을 만드는 데 쓰나요?”
교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건 우리한테는 필요 없어.”
교수가 다른 동료에게 물었다.
“보안은 어때?”
보안 상황을 확인하기로 한 사람이 대답했다.
“건물은 새로 지었는데 보안시스템은 아직 설치가 덜 됐습니다. 구멍이 여럿 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서 일부러 공사 중인 이곳에 인부로 위장해서 들어온 거니까. 그럼 출입구 CCTV는?”
“저 창고의 출입문 쪽에는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따로 손댈 것도 없습니다.”
교수가 실실 웃으며 손을 문질렀다.
“그럼 물건을 빼내는 건 문제가 없겠어.”
보안시스템을 확인한 사람이 물었다.
“교수님. 우리가 물건을 빼돌렸다는 걸 어떻게 숨기죠? 창고에서 뭐가 사라졌는지 알면 경찰 마약반이 움직일 텐데요.”
교수가 인상을 살짝 썼다.
“증거를 없앨 방법이 문제긴 해. 지금 상황에서는 창고에 불을 질러서 화재 사고로 위장하는 것밖에 없는데….”
“창고에 CCTV는 없는데, 화재 방지 시설은 제대로 있습니다. 지구뷰티에서 창고에 물자를 넣기 전에 그것부터 만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불을 질러도 흔적이 남을 겁니다.”
“젠장.”
구석에 있던 동료가 말했다.
“교수님. 그냥 저질러 버리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죠. 저는 약이 떨어졌습니다. 약을 새로 만들려면 저 창고의 원료들이 꼭 필요하다면서요.”
그들이 리더를 교수라고 부르는 건, 그가 화학 합성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화학 능력은 재료만 있으면 신종 마약 블러드 아이스를 고품질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뛰어나다.
다른 중독자 동료도 말했다.
“맞습니다. 공사를 핑계로 저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교수도 중독자다. 그는 마약이 필요한 사람 몇 명을 모아서 이곳을 털 생각이다.
“젠장. 그 마약 파티만 경찰에 걸리지 않았어도.”
“다른 놈들은 청평에서 사고 쳐서 싹 다 체포됐습니다. 그놈들만 멀쩡했으면 약을 구할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그 두 곳이 원래 그들이 마약을 구하던 루트다. 그런데 그 조직들이 모조리 체포되면서 그들의 마약 구입 루트도 막혔다.
다른 마약이라면 여전히 파는 놈이 있다. 그런데 이 다섯 명이 원하는 마약은 블러드 아이스다. 그걸 취급하는 마약상은 흔치 않고, 이들은 그런 마약상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교수의 제안으로 그 약을 직접 만들어 쓰기로 했다.
게다가 그들은 이번 일에 기대가 컸다.
동료 중독자들이 말했다.
“오늘 일만 성공하면 우린 평생 쓸 약을 손에 넣을 겁니다. 그냥 집에 쌓아놓고 즐길 수 있단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그냥 뽕이 아니라 블러드 아이스입니다.”
“교수님. 이번에 한 방 제대로 하면 블러드 아이스를 평생 즐길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위험을 감수할 수 있잖습니까? 그냥 저지르죠?”
교수는 망설였다.
“다른 방법이 없으면 그래야겠지만, 그 전에 방법을 좀 더 찾아보자고. 뭐 새로 들은 소식은 없어?”
중독자 동료가 절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 절벽이 무너질 수 있다던데요?”
사장 딸 지현선이 박 대리에게 한 이야기는 이제 공사하러 들어온 인부들에게까지 소문이 났다.
그런데 소문이란 건 원래 전달되면서 변하기 마련이다.
지현선이 말했을 땐 경쟁 회사의 백미소를 비웃는 반쯤 농담 같은 이야기였는데, 소문이 퍼지면서 그 이야기가 여러 가지 버전으로 바뀌었다.
중독자 동료가 들은 건 위험성이 강조된 이야기였다.
교수의 눈이 번뜩였다.
“그 이야기 자세히 좀 해봐.”
“글쎄요. 저도 들은 게 별로 없습니다만, 지질 전문가가 와서 붕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갔다던데….”
“절벽만 무너진대?”
“그럴 거라던데요? 저 회사 건물은 땅을 다 조사하고 지어서 절대로 무너질 리가 없다던데요.”
“연구소 건물이야 제대로 지었으면 그렇겠지. 그런데 말이야.”
교수가 그들의 목표인 창고를 향해 턱짓을 슬쩍 했다.
“저 창고 쪽은? 저건 지하실도 없는 단층 창고잖아. 위치도 절벽에서 가까운데, 저기까지 지질조사를 했을까?”
“예? 그건 저도 잘….”
“그게 중요한데….”
다른 동료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어? 그럼 그게 그건가?”
“뭔데?”
“오전에 저 창고 앞쪽에 구멍을 몇 개 깊게 팠거든요. 그런데 그중 하나가 다른 것보다 땅속으로 쉽게 푹푹 들어가서요. 왜 그러지 했는데….”
“거기가 급소인가?”
교수가 잠시 고민하다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말이야. 그 구멍에 폭탄을 터트리면, 저 절벽이 무너질까?”
“예?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죠. 제가 지질 전문가는 아닌데요.”
다른 동료가 말했다.
“전문가가 저 절벽은 그냥도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니까, 폭탄이 터지면 당연히 무너지지 않을까요?”
“그렇단 말이지….”
교수의 눈빛이 번뜩 빛났다.
“좋은 생각이 났다.”
“어떤….”
“절벽을 무너뜨리자.”
“예?”
교수가 목소리를 낮추고 설명했다.
“우리 원래 계획은 말이야. 약 원료를 훔쳐서 차에 싣고 빠져나가는 거였잖아.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면 걸릴 위험이 너무 커. 창고에 불을 질러봤자 금방 꺼질 거라며. 그럼 어떤 원료가 사라졌는지도 알게 될 거야.”
“그렇죠.”
“그런데 저 창고가 절벽과 함께 무너진다면 뭐가 없어졌는지 어떻게 알겠어? 없어진 건 흙 속에 파묻힌 줄 알겠지.”
다른 네 명은 당황했다.
“예? 교수님. 그러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연구소 건물 쪽은 지질조사를 하고 지어서 괜찮을 거라며. 절벽에 가까운 창고는 휘말리겠지만, 사람들이 있는 건물은 괜찮겠지.”
“그, 그런가요?”
“다들 연구소 쪽에서 밥 먹고 있잖아. 점심시간하고 휴식시간이 끝나기 전에 절벽을 무너뜨리면 창고만 파묻어버릴 수 있어.”
“창고를 파묻으면….”
“뭐가 없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니까? 그게 최선이다.”
약 기운이 떨어져 가던 사람이 독한 눈빛으로 변했다.
“난 할 거야. 하겠습니다. 절벽만 무너뜨리면 되는 거잖아요.”
다른 중독자도 동의했다.
“우리가 원료를 훔쳐서 교수님이 약을 만들어도, 우리 중 하나라도 체포되면 그 약을 써보지도 못하고 빵에 가야 해. 빵에서 약을 어떻게 구해? 나도 할 거야.”
다들 마약이 부족해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그 일에 걸린 게 워낙 컸다.
교수가 말했다.
“이번 한 건만 제대로 하면 우리는 평생 쓸 약을 공짜로 구할 수 있어. 그것도 블러드 아이스로. 그러니까 하자.”
다른 중독자가 물었다.
“그런데 교수님. 폭탄은 어디서 구합니까?”
교수가 조금 전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건 나니까 아는 정보인데, VTX-13을 가공하면 아주 강력한 폭탄이 되지. 이걸 쓰면 돼.”
“절벽은 어떻게 무너뜨리죠? 폭탄이 터진다고 해서 저 넓은 절벽이 무너질 것 같진 않은데요.”
“구멍을 팔 때 이상하게 물렀다던 게 어느 구멍이야? 거기 집어넣고 터트리면 돼.”
“터트렸는데 절벽이 안 무너지면요?”
교수가 멈칫했다.
그는 VTX-13이 폭발물의 재료라는 건 알지만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VTX-13을 많이 터트리면 되겠지.”
다섯 명 중에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이 동료들을 보며 생각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마약에 뇌가 절어서 미친 거 같아.’
그렇지만 그나마 제정상인 그 사람조차 이 계획을 반대하진 않았다. 그는 원래 인생을 막살았다.
‘인생 뭐 있나. 한탕 크게 하는 거지.’
점심시간은 휴식시간을 포함해 넉넉하게 잡혀 있었다. 그들은 그 시간이 끝나기 전에 움직였다.
교수가 먼저 동료들과 창고에 들어갔다. 아직 원료가 다 들어온 게 아닌데도 물량이 제법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그중에 몇 개를 골랐다.
“저거, 저거, 저거는 따로 챙겨서 우리 차에 실어 놔. 터트리기 전에 빠져나가야 하니까.”
“양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죠?”
“저 정도면 3대가 약을 해도 될 만큼 충분히 만들 수 있어.”
그는 창고에 있는 원료를 확인해 VTX-13과 다른 약품을 골랐다.
“저 두 개는 이쪽으로 가져와. 지금 여기서 폭탄을 만들 테니까.”
“그게 그렇게 빨리 됩니까? 휴식시간이 끝나기 전에 터트려야 하는데요.”
“내가 누군지 몰라? 금방 만들 수 있어.”
***
나강인은 백미소와 함께 근처 산골 식당 평상에 앉아서 음식을 먹었다.
“맛있네요.”
그 식당은 산채도 맛있고 밥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었다. 된장찌개도 좋았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이번 현장 확인 임무는 대성공입니다. 밥이 참 맛있습니다.
“넌 임무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
-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잖습니까?
“지구연합을 위해서 일하는 거 아녔냐?”
- 살아있어야 더 일할 수 있습니다.
“좋은 핑계다. 사실이기도 하고.”
백미소가 자랑했다.
“이 식당 음식이 맛있긴 한데, 이 좋은 경치를 보면서 먹기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거겠죠. 제가 이곳으로 안내했답니다.”
그 식당 평상에서는 화장품회사 지구뷰티의 바이오 헬스 연구소와 그 앞의 절벽이 보였다.
백미소가 말했다.
“그래도 저는 전에 나강인 씨가 만들었던 요리가 더 맛있었어요.”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저는 여기가 더….”
갑자기 그의 눈앞에 경고 표시가 주르륵 떴다.
동시에 저쪽에 보이는 절벽 위에서 섬광이 터졌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경고했다.
- 대규모 폭발 확인! 파편이 날아옵니다! 회피하십시오!
나강인이 재빨리 외쳤다.
“숙여!”
백미소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눈만 껌뻑였다. 그녀는 왜 절벽 쪽에서 빛이 번쩍였는지도 몰랐다.
몇 초 뒤에 천둥소리 같은 폭발음이 들렸다. 거의 동시에 충격파가 그들을 덮쳤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꺅!”
파편 여러 개가 하늘을 덮었다. 그중에서 주먹만 한 돌멩이 하나가 백미소를 향해 날아왔다.
나강인이 백미소의 어깨를 잡고 옆으로 확 끌어당겼다. 날아온 돌멩이가 그녀가 있던 곳에 내리꽂혔다. 평상에 구멍이 뻥 뚫렸다.
돌멩이 몇 개가 더 날아와 식당 벽과 지붕에 퍽퍽 박히거나 아예 관통했다.
근처에 세워둔 승용차에 꽂히는 것도 있었다. 그 차에서 경보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백미소는 이제야 절벽에서 뭔가 폭발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겁을 집어먹고 나강인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나강인이 앞을 가리켰다.
“연구소 앞 절벽에서 폭탄이 폭발했습니다.”
“왜, 왜, 왜요? 미사일이 떨어진 거예요? 저, 전쟁이 터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