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56화 (256/411)

256. 붕괴

백미소는 지구뷰티 연구소 앞에서 폭발한 게 폭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전쟁을 떠올렸다. 그녀는 저렇게 강력한 폭탄은 미사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겁이 났다.

“진짜 전쟁이 터진 거예요? 우리 다 죽어요?”

그 산속 식당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전쟁이라는 말을 듣고 겁을 덜컥 먹었다.

지구뷰티 연구소 앞에서 터진 폭발은 그 위력이 지대지 미사일로 착각할 정도로 강력했다. 게다가 폭발과 함께 분출된 파편은 옆이 아니라 위로 치솟았다가 이 식당까지 날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체감하는 폭발 규모는 실제보다 더 컸다.

거기다 백미소가 전쟁 이야기까지 꺼냈다.

식당에 있던 손님들이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당장 애들 데리고 피난 가! 어디로 가냐니! 나도 몰라! 뉴스부터 확인해!”

“야! 어디야? 파주? 당장 한강 남쪽으로 가!”

“뭐? 거긴 낙동강 남쪽이잖아! 좋겠다!”

“한산도 앞바다면 전라 좌수영으로…. 아. 그건 아니구나.”

겁먹은 얼굴로 인터넷을 검색하는 사람도 있었다.

“SNS엔 아직 전쟁 소식이 안 올라왔는데….”

“그럼 우리가 올리자!”

“미사일을 어느 나라가 쏜 건지부터 알아야지!”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미사일이 아닙니다.

“알아.”

- 폭발의 형태를 분석했습니다. 땅에 구멍을 깊게 뚫고 내부에서 강력한 폭탄을 터트린 것으로 보입니다.

나강인이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말했다.

“미사일이 아닙니다! 전쟁도 아니고요!”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나강인이 설명했다.

“폭발물 사고가 일어난 겁니다.”

“사고요? 저기서 폭발물 사고가 왜….”

“누군가 공사 도중에 실수했거나, 아니면….”

갑자기 그의 눈앞에 새로운 경고가 연달아 떴다. 그걸 확인한 나강인이 끌어당겼던 백미소를 도로 밀치며 평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젠장!”

백미소가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왜, 왜요!”

“절벽이 무너질 겁니다.”

“절벽이요? 여긴 절벽이 아니…. 아! 저 연구소 앞 절벽!”

백미소는 나강인이 이곳에 와서 그녀를 불러낸 이유를 떠올렸다.

“아까 저 절벽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

그녀가 말을 멈췄다.

절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높지는 않아도 꽤 넓은 절벽은 먼저 끝부분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절벽이 있던 곳부터 안쪽으로 땅이 점점 무너졌다. 마치 땅이 모래로 변한 것 같았다. 연구소 앞 평지는 종이에 먹물이 번지듯이 천천히 붕괴에 잡아먹혔다.

그 붕괴는 약품 창고를 잡아먹고 나서야 멈추었다.

백미소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땅이 무너지는 게 멈췄어요. 다행이다.”

AI 전지인이 보여주는 경고 표지는 여전히 붉은색과 노란색이 수두룩했다.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예?”

나강인이 백미소에게 지시했다.

“저 연구소에 전화 걸어서 당장 탈출하라고 해요.”

“끄, 끝난 거 아니에요?”

AI 전지인이 보여준 2082년 지형 데이터에는 무너진 절벽만 있는 게 아니다.

“이제 연구소 뒤쪽 산비탈에서 산사태가 일어날 겁니다. 그러면 지구뷰티의 연구소가 통째로 휩쓸립니다.”

백미소는 그 경고를 아까 들었다.

“아!”

그녀가 급히 지현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이나 가는데도 지현선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갑자기 통화가 연결되면서 지현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야! 지금 네 전화 받을 시간 없….

백미소가 소리를 질렀다.

“당장 그 건물에서 사람들을 탈출시켜! 산사태가 일어나면 그 건물이 휩쓸릴 거래!

- 넌 지금 이 상황에서 날 열 받게 하려고….

“아까 우리가 경고한 거 잊었어? 그 절벽이 무너지면 산사태가 일어날 거라고 했잖아!”

- 어? 맞아! 너 절벽이 무너지는 건 어떻게 알았어? 설마 방금 그 폭발을 네가 저지른….

“야 이년아! 헛소리는 나중에 하고 사람들부터 탈출시키라고!”

-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야 할 거 아냐!

나강인이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잡아챘다. 그런 후에 지현선에게 경고했다.

“나 아까 그 지질 전문가입니다.”

- 수맥 사기꾼?

“연구소 건물 뒤에서 산사태가 일어날 겁니다. 당장 그 건물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 그러니까 근거를….

나강인의 목소리가 커졌다.

“당신이 내 말을 안 믿고 고집만 부리면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당신 고집 때문에 사람들을 다 죽일 거야?”

- 그….

지현선이 기가 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 여기 직원들은 이미 많이 대피했는데….

“괜찮을 줄 알고 안 나가는 사람이 있을 거야! 빨리 쫓아내! 연구소 정문 밖으로 대피하라고 해! 만약 안 나가고 남아있으면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잘라버릴 거라고 협박해! 빨리!

- 아, 알았어! 사람들을 내보내러 가야 하니까 끊어! 그리고 산사태 안 일어나면 당신이 책임져!

전화가 뚝 끊어졌다.

두 사람의 대화하는 소리가 커서 백미소의 귀에도 다 들렸다. 그녀가 나강인에게 말했다.

“그만하면 경고는 할 만큼 했어요. 현선이가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 어디 가세요?”

“저곳에 가봐야겠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요.”

나강인이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갔다.

백미소는 얼른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평상 위에 올려놓았다. 음식값이 얼마인지 따질 틈도 없어서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놓았다.

그녀는 그러다 평상 위에 난 구멍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녀가 앉아 있던 위치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조금 전에 날아온 돌을 그녀가 스스로 피할 방법은 없었다. 돌이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줄도 몰랐다.

나강인이 날아오는 돌을 보고 옆에서 그녀를 끌어당긴 덕분에 살았다.

“하아악.”

뒤늦게 다급한 숨이 나왔다. 조금 전에 겁먹었을 때와는 다른 감정이 갑자기 휘몰아쳤다.

“뭔지 모르게 짜릿짜릿하다. 두근두근도 하고.”

나강인이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여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얼른 나강인을 향해 뛰어갔다.

“같이 가요!”

나강인은 백미소가 조수석에 타자마자 차를 출발시켰다.

절벽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때 날아온 파편은 산의 나무를 여러 그루 망가뜨렸다. 팔뚝 굵기의 나무도 넘어져서 도로를 막고 있었다.

나강인은 차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당황한 백미소가 소리를 질렀다.

“앞에 나무에요! 멈춰요! 멈추…. 꺄아악!”

차가 그 나무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나무가 부러지며 튕겨 나갔다.

비명을 지르던 백미소가 뒤를 돌아보았다. 가운데가 부러진 나무가 도로 옆으로 굴러가는 게 보였다.

그녀가 차의 앞을 보았다. 운전석에서는 범퍼의 상태가 보이지 않았지만 차는 이상 없이 달렸다.

“차…. 괜찮아요?”

“이 차는 이정도 충돌로는 안 부서집니다.”

도로에는 나뭇가지가 좀 더 떨어져 있었다. 그 나뭇가지들은 차가 들이받을 때마다 부러지거나 튕겨 나갔다.

차체에는 눈에 보이는 손상이 없었다. 기껏해야 페인트만 조금 벗겨지는 정도였다.

심지에 충돌 충격도 작았다.

백미소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굵은 나무와 충돌했는데 왜 충격이 거의 없지?’

차도 이상했다.

‘왜 찌그러진 곳이 하나도 안 보이지?’

백미소는 이 차에 탈 때 문이 굉장히 묵직했다는 게 생각났다. 그동안은 차가 낡아서 문도 뻑뻑한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무게감이 달랐다.

‘이 차는 뭔가 달라.’

그녀가 차의 내부를 보았다.

운전석 주변에 처음 보는 조작 버튼이 몇 개 있었다. 조수석에서는 건드리기 어려운 위치였다.

그녀가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이 차 뭐예요?”

“국산차요.”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AI 전지인이 경고를 주르륵 띄웠다. 이번에는 지구뷰티 연구소 뒤쪽의 산비탈이 문제였다.

“젠장. 벌써 무너지나.”

백미소도 나강인이 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눈에도 산비탈이 조금씩 흐르는 게 보였다.

“저 산비탈이 이상해요! 뭔가 물처럼 흘러요!”

“산사태가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은 다 대피했을까요?”

“그러기를 바라지만, 아마 시간이 부족했을 겁니다.”

나강인이 산길에서 차를 거칠게 몰았다. 그러면서 산사태 상황을 수시로 확인했다.

경고 표시가 추가됐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산사태가 본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젠장.”

산비탈이 무너지면서 대량의 흙이 아래로 밀려왔다. 토사에 나무와 바위 등이 섞여 있었다.

지구뷰티의 연구소는 폭탄이 터지고 절벽이 무너질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지반 자체가 흔들린 것도 건물에 데미지를 많이 주었다. 이미 기둥과 벽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그런 건물을 산사태가 덮쳤다.

백미소가 너무 놀라 손으로 입을 막으며 비명처럼 외쳤다.

“여, 연구소가 무너져요!”

연구소 건물이 옆으로 비틀리는 게 보였다.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위태로웠다.

나강인의 차가 연구소의 앞에 도착했다.

연구소 건물과 정문 사이에는 꽤 넓은 공터가 있었다. 건물을 탈출한 사람들은 공터를 지나 정문 바깥쪽에 모여 있었다. 정문에서 더 멀리 도망치는 사람도 많았다. 그 사람들 때문에 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가는 건 무리였다.

나강인이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내렸다.

“이제 걸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기다려요.”

“따라갈게요.”

“그러든지요.”

나강인이 탈출하는 사람들을 거슬러 연구소 정문에 도착했다. 가까이에서 보는 연구소 건물은 상태가 더 처참했다.

백미소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건물이 반쯤 무너졌어요.”

AI 전지인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 폭발 충격으로 건물이 1차 타격을 받았습니다. 절벽이 무너질 때 2차 타격, 산사태로 3차 타격까지 받았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제대로 당했네.”

- 건물 손상이 심합니다. 붕괴 위험이 있습니다.

백미소가 지현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됐다.

백미소가 급히 물었다.

“야! 너 지금 어디야? 사람들은 다 탈출시켰어?”

- 살려….

전화가 끊겼다.

“어?”

백미소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있는 거야!”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지시했다.

“아까 만난 아가씨가 이곳에 있나 확인해봐.”

- 이곳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이곳에는 없습니다.

“탈출하던 사람 중에는?”

-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강인이 기울어진 건물을 보았다.

“젠장. 그럼 저 안에 있겠구나.”

백미소가 그 말을 들었다.

“네? 뭐라고요?”

“아까 우리가 여기서 만났던 사람이 지금 저 건물 안에 있습니다.”

“어, 어떻게 해요? 119에 전화를….”

“이미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신고했을 겁니다. 그런데….”

AI 전지인은 건물의 상태를 숫자와 그래프로 표시했다. 그런데 그 수치가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저 건물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못 버팁니다.”

백미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그럼 어떻게 해요?”

“할 수 있는 걸 해봐야죠.”

“네? 어떤….”

“백 대리님은 전화연결을 계속 시도하고, 연결되면 소리라도 좀 내라고 해요.”

“소리만 내면 돼요?”

“저기서 다른 걸 할 수 있으면 이미 했을 테니까.”

나강인이 주변을 보았다.

이곳은 추가 공사가 진행되던 곳이다.

건설 자재 대부분은 붕괴한 곳에 있었지만 정문 근처에도 어느 정도는 쌓여 있었다.

게다가 현장에서 탈출한 건설 인부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 장비도 있었다.

나강인이 그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장비 좀 빌려주시죠.”

“예?”

그가 반쯤 무너진 연구소를 가리켰다.

“사람을 구출하러 가야 해서요.”

“예? 예! 뭐든지 드리겠습니다!”

나강인은 그 사람의 장갑을 받고, 망치나 니퍼, 작업용 칼 같은 공구가 있는 벨트도 챙겼다. 보안경과 안전모도 받았다.

밧줄은 한쪽에 쌓여 있는 게 많았다. 그것도 적당히 챙겼다.

백미소가 나강인을 따라다니며 물었다.

“구출팀을 만들어야죠? 사람들을 모을까요?”

“그럴 시간도 없고, 여기에 전문 구조대원이 있을 것 같지도 않군요.”

“그럼 설마…. 혼자 가려고요?”

“그러는 게 낫습니다.”

그녀가 반대했다.

“안돼요. 위험해요.”

“위험하면 바로 빠져나올 겁니다.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소중한 걸 알면 가지 말아야죠! 저 건물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데!”

나강인이 연구소 건물을 보았다. AI 전지인이 건물 상태를 실시간으로 표시했다.

아직은 시간이 약간 남아있었다.

“시도는 해봐야죠.”

나강인이 연구소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백미소가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그 건물에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따라 들어가 봤자 방해만 된다는 걸 안다.

그래도 그 근처까지는 따라갔다. 그녀가 건물 앞에서 말했다.

“제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무너질 것 같으면 기다리지 말고 튀어요.”

“네?”

나강인이 산사태로 무너진 흙을 밟고 올라갔다.

건물 1층 출입구와 창문은 산사태로 밀려온 흙과 나무로 완전히 막혀 있었다. 2층도 일부는 흙이 덮여 있었다.

나강인이 흙더미를 밟고 올라가, 2층 깨진 유리창을 통해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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