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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261화 (261/411)

261. 병원

붕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산 아래에서 용의자 다섯 명이 체포됐다고 알려주었다.

구조대장이 무너진 연구소 건물을 보고 다시 경찰관을 본 후에, 구조대원에게 물었다.

“지금 연락이 안 되는 사람도 다섯 명이라고 했지?”

구조대원이 활짝 웃었다.

“예. 이제 숫자가 딱 맞습니다. 실종자가 저 건물에 있는 게 아니라, 경찰에 체포돼서 연락이 안 된 거네요.”

구조대장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살았다.”

“대장님이 저기 들어가자고 하시더니, 속으로는 좀 무서우셨나 봅니다.”

구조대장이 밝아진 얼굴로 대답했다.

“안 무서우면 사람이냐? 난 갑자기 우리 애들 컴퓨터 업그레이드 안 해준 게 후회되더라.”

“집에 가면 해주시겠네요?”

“그건 아니고.”

구조대원이 무너진 건물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요. 저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저곳에 들어가서 생존자들을 구출한 사람이 있다면서요.”

“그렇다더라. 누군지 만나보고 싶은데….”

지현선은 긴장하고 있을 땐 그나마 버틸 만했는데,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놓자마자 온몸에 통증이 밀려왔다. 특히 다친 팔이 많이 아팠다.

그녀가 비틀거렸다.

“아파. 나 지금 온몸이 다 아파.”

마침 119구급대원들이 구급차용 들것을 가져오는 게 보였다.

“병원부터 가야겠어.”

그 구급차에는 보호자도 한 명 탈 수 있다. 연구소장과 평소에 알짱거리던 젊은 남자 직원이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지현선은 방송실 여자 직원을 데려갔다.

지현선은 병원에 도착해 기본적인 검사부터 받았다.

의사가 검사 결과를 보면서 말했다.

“엑스레이를 보면 뼈는 다치진 않았습니다. 정밀검사를 원하시면 하긴 하겠지만 일단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군요.”

“제가요. 진짜 크고 무거운 방송장비에 왼팔이 깔렸었는데요?”

“그런데도 이 정도면 운이 좋으셨네요.”

그녀는 나강인이 한 말이 생각났다. 나강인도 그녀의 팔을 보고 운이 좋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엑스레이도 없이 진단했는데, 결론이 똑같네?’

의사가 당부했다.

“그래도 팔은 당분간 조심하셔야 합니다.”

의사가 나간 후에 그녀는 병실 침대에 편하게 누웠다.

“휴우. 이제야 살았다는 게 실감이 난다. 사망자가 없는 거 확실하지?”

구급차를 같이 타고 온 방송실 직원이 옆에서 말했다.

“그럼요. 제가 다시 전화해서 확인해봤는데 다 괜찮대요.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은 많지만, 지 실장님만큼 다친 사람은 없대요.”

“다행이다.”

“근데요. 실장님이 마지막으로 구출된 분이잖아요?”

나강인이 지현선을 구출하자마자 건물이 무너졌다.

“그렇지. 내 바로 앞이 너였고.”

“우리를 구하신 그분은 누구세요?”

“응?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방송실 직원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분이 저를 구해주실 때요. 지 실장님이 어디 계신지 아느냐고 묻던데요?”

“어? 지 실장이라고 정확히 말했어?”

“아뇨.”

“에이. 난 또….”

“현선 씨가 어디 있냐고 하던데요?”

지현선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진짜?”

“당연히 진짜죠. 제가 볼 때는요. 그분은 지 실장님을 구하려고 거기 들어온 거 같았어요.”

“나를 왜…. 에이. 아니겠지.”

“그분이 무너지는 연구소에서 여섯 명이나 구출한 거 아시죠? 제가 다섯 번째였고요. 지 실장님이 여섯 번째였잖아요?”

“당연히 알지.”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그분은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그 안에서 지 실장님을 애타게 찾은 거잖아요. 그러다가 다섯 명이나 구출한 거고요.”

“그랬…나?”

“누구세요? 혹시 남자친구?”

“아냐. 그런 거.”

“그래도 그분이 지 실장님을 특별하게 생각하니까 목숨을 걸고 구한 거 아닐까요?”

“오늘 처음 만났는데….”

“네? 아! 그럼 혹시 첫눈에 반했나?”

지현선은 공부와 연구는 잘하는데 연애 쪽은 지식이 별로 없었다.

“그럴 수도 있어?”

“혹시 그분 눈에서 불꽃이 팍 튀지 않았어요?”

“그, 그랬나? 방송실에서 스마트폰 플래시를 얼굴 쪽으로 비추었을 때 눈동자에서 뭔가 반짝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진짜로 반짝이는 거 말고요.”

“응? 그건 아냐?”

“불꽃은 비유였는데요.”

“나, 나도 알아.”

방송실 직원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어쨌든 그분 덕분에 저까지 여섯 명이나 살았잖아요. 물론 방송으로 긴급 대피를 시킨 실장님 공이 제일 컸지만요.”

“나?”

“맞다. 산사태가 나서 건물이 무너질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아. 그건….”

“다들 지 실장님의 판단력에 엄청 감탄하고 있어요. 연구소 건물에서 안 나가면 지위고하와 상관없이 잘라버리겠다고 선언하신 것도 멋졌고요.”

“아니….”

“위기의 순간에 발휘된 화끈한 리더십이 진짜 멋졌어요.”

“그게 아니라….”

그 경고는 나강인에게 들었다.

지현선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연구소 앞마당에서 폭탄이 터진 후에, 우릴 구해준 그 사람이 전화로 산사태를 경고해줬어.”

“네?”

“나한테 전화해서는 사람들을 당장 대피시키라더라. 연구소 건물에서 안 나가는 사람은 잘라버린다고 말한 것도 그 사람이 알려준 팁이야.”

방송실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그분은 그런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았대요? 혹시 범인들이랑….”

지현선도 경고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점심 전에 찾아와서 우리 연구소 앞 절벽이 무너진다고 경고한 사람이 있다는 거 알아?”

“알죠. 소문 다 났는데요. 수맥 사기꾼이 그렇게 수작….”

지현선의 목소리가 커졌다.

“야! 사기꾼 아니야!”

“네?”

“그 사람은 그때도 만약을 대비해서 경고했던 거야. 그러다 사건이 터지니까 전화로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알려준 거고.”

“와…. 그럼 수맥 사기꾼이 아니라….”

“진짜 지질 구조 전문가였어. 그것도 전문 회사에서도 못 찾아낸 걸 혼자서 알아낼 정도로 대단한 전문가.”

“그래서 그분은 뭐 하는 분이세요? 어느 대학교 교수래요?”

“나도 잘 몰라. 모르는데, 누가 아는지는 알아.”

백한수려의 연구소는 지구뷰티의 연구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백미소는 그곳에 가서 사고 뒷수습을 도왔다.

그곳도 유리가 깨지거나 실험이 중단되는 등의 물적 피해는 있었지만, 사람이 크게 다치진 않았다.

그래도 다친 사람이 조금은 있었다. 그들은 병원으로 갔다.

백미소가 지구뷰티의 연구소에 갔다가 마지막에 구출됐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녀도 병원으로 보냈다.

그런데 백미소는 나강인이 공주님 안기 자세로 구출했기 때문에 긁힌 상처 하나 없었다. 당연히 병원의 간단한 검사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들 괜히 검사받으래. 난 진짜 괜찮은데.”

그녀는 병원을 나가려다가 지구뷰티의 직원들을 발견했다.

“아. 저 회사 사람들도 이 병원에 왔겠구나.”

그녀가 실실 웃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걔를 찾아가서 놀려야겠다.”

백미소는 병원 매점에서 음료수 세트를 사서 그녀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갔다.

지현선이 백미소를 보자마자 인상을 썼다.

“뭐야? 넌 왜 왔어?”

“어머어. 넌 아프냐? 난 안 아픈데.”

“놀리러 왔니?”

백미소가 음료수 세트를 들어 보인 후에 탁자에 올려놓았다.

“문병 왔지.”

“됐으니까 가.”

그녀가 실실 웃으며 놀렸다.

“그러게 아까 우리가 경고할 때 믿었으면 얼마나 좋아?”

지현선이 짜증을 냈다.

“몇 년이나 몇십 년 후에 무너질 거라며!”

“오늘 당장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잖아.”

“폭탄이 터질 건 몰랐을 거 아냐?”

“그치. 그건 몰랐지. 그래도 우리 말을 믿었으면 공사를 중단하고 조사했겠지? 그러면 폭탄이 터질 일도 없었을 거고, 너도 여기 입원할 필요가 없었겠지.”

“이게…. 너 같으면 멀쩡한 절벽이 갑자기 무너질 거란 말을 들으면 믿겠니?”

“난 믿을 건데?”

“거짓말하지 마.”

“진짜야. 즉시 그런 걸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회사를 불러서 확인했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지현선은 멈칫했다. 그녀는 백미소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왜 그렇게까지 하겠다는 건지도 깨달았다.

“아까 같이 있던 그분의 말을 믿어서?”

“당연하지. 자기가 UFO 타고 온 외계인이라고 하지만 않으면 다 믿을 수 있어.”

“그분이 도대체 누구신데?”

“그 분야 전문가라고 했잖아.”

“이름은? 연락처는?”

백미소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안 가르쳐줄 거야. 알려고 하지 마. 그냥 치료나 받고 나와.”

지현선이 나강인에 대해 아는 건 백미소가 데려온 남자라는 것뿐이다. 이름도 모른다. 몽타주를 그려 수소문할 수도 없다.

백미소가 입을 다물면 나강인이 누군지 알아내기 어렵다.

백미소는 지현선을 충분히 놀렸다고 생각하고 병실 문을 열었다.

“난 간다.”

지현선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이름이라도 말해주고 가!”

“흐흐흐. 싫어.”

***

나강인은 교수 패거리를 잡을 때 그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스마트폰으로 녹음해뒀다.

합동수사본부 회의실에서 나강인이 보내준 녹음파일이 재생됐다. 스피커를 통해 교수가 떠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합수부장이 말했다.

“이 정도면 저놈들이 지구뷰티 연구소 폭파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한 거나 마찬가지군요.”

간부가 푸념했다.

“지난번 수사가 거의 끝나가서, 조만간 합수부를 해산할 수 있나 싶었는데….”

다른 간부도 한숨을 쉬었다.

“이걸 우리가 맡게 되면 기간이 또 연장되겠는데요?”

합동수사본부는 강남 자칼 사건 때 임시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원래는 그 사건 수사만 끝나면 해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임시로 만든 합수부가 아직도 해산되지 않았다. 하던 수사가 마무리되어야 해산할 텐데, 일이 끝나간다 싶을 때마다 새로운 사건이 넘어와서 활동 기간이 계속 연장됐다.

간부들이 한마디씩 했다.

“이번 건은 사이즈가 커 보여서 우리도 건질 게 좀 있을까 했습니다만.”

“아닐 것 같군요.”

화장품회사 지구뷰티의 바이오 헬스 연구소 건물이 무너졌다. 그건 분명히 대형 사건이다. 뉴스에도 나왔다.

하지만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별로 없었다.

연구소의 위치가 도심이 아니라 산속이라 무너져도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다.

산속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 지역에서 유명하지도 않았다.

고가의 장비는 거의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연구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전이라 그곳에 있던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사망자도 없었다.

“다행히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모두 대피해서 사망자는 없습니다만….”

중상자도 없었다. 제일 심한 부상자가 왼팔을 다친 지현선이다.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저놈들이 마약 원료를 훔치려고 연구소 앞마당에서 폭탄을 터트렸다가 이 사태가 벌어진 거네요?”

“뒤에서 뭔가 더 꾸민 놈은 없어 보이죠?”

“이번에도 뒷정리만 실컷 하게 생겼군요.”

아예 대놓고 천장을 보며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었다.

“아. 빨리 합수부 해산하고 원래 하던 일만 하고 싶다.”

그들은 모두 소속 기관이 따로 있다. 그 기관의 원래 업무도 평소처럼 해야 한다. 그들은 거기다 합수부 일까지 추가로 했다. 당연히 야근이 잦았다.

야근이 많더라도 알짜 실적이 많이 남으면 승진에도 도움이 되고 힘이 날 텐데, 보통은 범인을 다 잡은 후에 사건이 넘어왔다.

“위성기지국 사건 때는 우리가 수사해서 실적 챙길 걸 많이 남겨주더니, 이번엔 어떻게 범인을 싹 다 잡고 끝내버리나. 뭘 좀 남겨줘야 우리도 그럴듯한 성과를 낼 텐데.”

“꼭 이렇게 혼자 다 해결했어야 했나….”

희망적인 관측을 하는 간부도 있었다.

“이 사건을 우리가 안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른 간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요. 이번 건도 우리한테 떨어질 겁니다. 나강인이 해결한 사건인 데다가 VTX-13으로 만든 폭탄까지 사용됐습니다. VTX-13 사건은 전에도 우리가 맡았습니다. 거기다 이미 범인이 다 잡혀서 남는 것도 없으니까요.”

합수부장이 말했다.

“남는 게 있으면 우리도 이 사건을 다른 데 안 주지요. 왜 나눠 먹겠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건 겉보기에는 덩치가 크니까, 다른 기관과 좀 나눌 수 있을 겁니다.”

간부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본부장님. 나강인에게 다음부터는 우리 몫도 좀 남겨달라고 따끔하게 이야기하시죠. 저번처럼 급한 것만 먼저 해결하고 실적 챙기기 좋은 건 나눠주면 서로 좋잖습니까?”

“과장님이 직접 만나서 따끔하게 이야기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어….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합수부가 꼭 해산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

나강인과 손태민, 변형찬이 오규철의 레스토랑 페넬로페에 모여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다.

오규철은 영업이 끝난 후에 레스토랑 문을 닫아놓고 술자리를 마련했다. 안주는 문을 닫기 전에 만들어둔 후에 가볍게 데우기만 했다.

내일은 레스토랑이 쉬는 날이라 오규철도 같이 술을 마셨다.

대표 셰프 오규철이 변형찬 감독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운명의 창’은 상영관을 더 늘렸는데도 다 매진이라면서요? 이러다 곧 천만 감독님 되시겠습니다.”

변형찬이 활짝 웃었다.

“저도 반응이 너무 좋아서 얼떨떨합니다.”

“평론가들의 평점과 관객 평점이 둘 다 굉장히 높던데요. 메시지와 재미를 다 잡았다고 감탄이 자자합니다.”

변형찬이 나강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강인 씨 도움이 정말 컸죠.”

AI 전지인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 우리가 고전 명작영화를 망치지는 않았나 봅니다.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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