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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263화 (263/411)

263. 파티 II

양용준은 보안 창고 습격 사건 때 총기 무장 강도들을 나강인이 혼자 쓸어버리는 걸 똑똑히 보았다.

팔성테크의 보안 창고 사건은 그 회사도 함구령을 내렸고 정부도 공식 발표는 않았다. 창고 시설도 외진 곳에 있었다.

그렇다고 기사가 안 나간 건 아니다. 그 추측 기사에는 대테러 특수부대가 강도들을 잡았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래서 양용준은 나강인이 정부의 비밀요원이라고 착각했다.

“내가 분명히 그날 다 봤는데….”

나강인이 양용준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그날 일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면 안 되는 건 알겠지?”

양용준이 말을 더듬었다.

“내, 내가 바보인 줄 알아? 그날 일이 공개되면 난 매장된다고!”

양용준의 실수 때문에 최신 국산 대전차미사일 정보가 외국으로 넘어갈 뻔했다.

나강인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알면 귀찮게 하지 말고 가라. 손님들이 쳐다본다.”

“어? 어. 이건 네가 가라고 해서 가는 게 아니야! 내가 바쁜 사람이라서 가려고 했다고!”

양용준이 그렇게 말하며 새로 만든 디저트들을 슬그머니 접시에 담았다.

“너 뭐하냐?”

“이게 맛은 있어서.”

양용준이 접시에 디저트를 수북하게 담은 후에 일부러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 나강인 쪽을 세 번이나 돌아보았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양용준은 통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케이스입니다.

“그래도 판단한다면?”

- 또라이입니다. 그런데 겁이 많습니다.

“맞아. 고라니 같은 놈이지.”

“쳇. 그렇군요.”

양용준이 관심을 잃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백미소의 눈에 양용준이 들고 있는 접시의 디저트가 보였다. 눈에 익은 디저트였다.

그녀가 급히 물었다.

“잠깐. 그거 어디서 났어요?”

“이거? 저기서….”

그녀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강인이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다.

“어? 아니, 강인 씨가 왜 저기서 일을….”

양용준이 얼른 옆으로 다가왔다.

“저놈을 아시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공무원이 왜 여기서 디저트를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니까요.”

“강인 씨는 공무원이 아닌데요?”

“네?”

“아. 잘 모르시는구나. 됐어요. 그럼.”

백미소가 양용준을 버려두고 나강인에게 걸어갔다.

양용준이 뒤에서 그녀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아! 비밀요원 자리에서 잘렸구나! 크크크. 그래서 알바로 일하는 거였어. 크하하하.”

사람들이 양용준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급이 입을 다물었다.

“아, 험험. 내가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너무 경박하게 좋아했네.”

백미소가 디저트를 만드는 나강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강인 씨.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나강인이 대답했다.

“알바 합니다.”

“어머. 그럼 진짜로 일하는 거였어요? 아니, 강인 씨가 왜 알바를….”

“오늘 하루 뛰면 돈 많이 준다던데요.”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돈이 필요하면 저한테, 아니지. 이미 돈 꽤 많이 벌지 않아요? ‘운명의 창’만 해도 지금 대박이 났잖아요.”

“정산받으려면 아직 좀 더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래도….”

백미소는 당황한 얼굴로 나강인이 이러는 원인을 궁리했다.

그녀가 아는 나강인은 여러 분야에서 천재다.

‘화학 천재에, 지질 구조 쪽도 전문 회사가 놓친 걸 찾아낼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에, 거기다 무술감독 능력은 실전 리얼 액션이라는 고유 영역을 만들어낼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그녀는 결국 자기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

‘이게 혹시 그건가? 일반인은 천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그거?’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요. 이런 일을 하면 뭔가 무술감독으로서의 창작 작업에 도움이 돼요? 액션에 도움이 된다든지….”

“요리가요?”

“그쵸? 아니죠? 그럼 왜 이러시는 건데요?”

“돈 벌러 왔다니까요. 원래 남의 돈 벌기가 쉬운 게 아닙니다.”

***

지구뷰티 사장 딸 지현선은 파티가 중반을 넘어간 후에야 그곳에 도착했다.

‘원래는 이런 곳에 잘 안 왔는데.’

그녀는 평소에는 이런 파티에 참석하는 것보다 연구실에서 보내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 파티는 집안 체면 문제로 참석해야 하는 때만 나갔지, 이렇게 남의 회사 사장 아들이 주최한 곳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연구소 붕괴사고를 겪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때 그녀는 공부와 연구만 하면서 살았던 것을 후회했다.

‘나도 앞으로는 인생을 즐기면서 살 거야.’

게다가 이 파티는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참석해야 했다.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 내가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해.’

회사가 사고로 큰 손해를 입었고 그녀도 거기 휘말렸다는 건 이미 소문이 났다. 기사로도 나갔다.

지금 그녀는 다친 왼팔에 깁스를 한 상태다.

그런데 그 깁스는 모양에 신경을 많이 써서 멋있게 만들었다. 특히 목에 거는 팔 보호대는 유명 디자이너에게 급히 의뢰해 만든 개인 맞춤 수제품이다.

그녀가 왼팔을 보호대에 걸고 어깨에는 하얀색 코드를 걸친 채로 파티 장소 중앙을 향해 또각또각 걸어갔다. 하이힐이 그녀를 더 늘씬해 보이게 만들었다.

평소에 안면이 있던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았다.

“어? 지구뷰티의 지현선이다.”

“엄청나게 큰 사고를 당했다더니 멀쩡해 보이네?”

“팔은 그 사고로 다친 건가?”

“그런데 오늘따라 묘하게 포스가 있네.”

“그 사고에서 사람들을 지휘할 때도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더라.”

그녀는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남들의 눈앞에서 오른손으로 핑거 푸드를 집었다.

두 손을 써야 하는 음식은 다루기 불편했다. 하지만 가느다란 손잡이가 꽂혀 있는 작은 핑거 푸드라면 한 손으로 먹을 수 있다.

그녀는 일부러 손가락을 써서 한 손으로 우아하게 핑거 푸드를 집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먹고 마시는 모습을 몇 번 보여주고, 편안한 사람을 골라서 이야기도 몇 번 나누고, 사람들의 시선을 적당히 즐기다 오라고 했지.’

회사 홍보팀에서 그녀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그 부탁을 받고 이곳에 왔다.

화장품회사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지구뷰티는 연구소가 붕괴하면서 이미지에 손상을 좀 입었다. 그걸 복구해야 한다.

그래서 홍보팀은 사건 당시에 건물에 마지막까지 남아 사람들을 내보낸 지현선을 띄우려 했다.

오늘 이 파티에 참석한 것도 그 활동의 일환이다.

그녀가 디저트를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그런 후에 돌아가면 되겠….’

“어머. 이거 맛있다.”

입에 넣은 디저트가 너무 맛있었다. 그녀의 입맛에 아주 딱 맞았다.

그녀가 자리를 옆으로 옮기며 다른 디저트를 하나 더 집어 먹었다. 그것도 맛있었다.

“오늘 파티를 신경 많이 써서 준비했네.”

그녀가 디저트가 놓인 곳을 따라 움직였다. 남들의 눈을 의식해 참석한 자리인데 정신없이 먹을 수는 없다. 그녀는 다음에는 어느 걸 먹을지 고민하고 앞으로 걸었다.

그러다 그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 앞까지 갔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요리사를 보았다.

“오늘 이 디저트를 만드신 분이시…. 아니, 왜 여기 계세요?”

나강인이 그녀의 앞에 있었다. 그가 대답했다.

“오늘 이 질문을 자주 받네요. 알바 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그쪽은 수맥 전문가, 아니, 지질 구조 전문가잖아요.”

“그냥 이것저것 합니다.”

지현선이 나강인을 가만히 보며 생각했다.

‘지질학자이긴 한데, 그쪽 일자리는 잘 없나? 그래서 알바를 하나? 그럼 더 좋은 자리를 알아봐 주면 나한테 고마워하겠지?’

그녀가 나강인에게 추천할 만한 회사를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화장품회사 소속이다. 전공도 바이오 쪽이지 토목이나 건설 쪽이 아니다.

그녀는 공부와 연구만 하느라 건설이나 토목 쪽은 잘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럼 우리 회사에는 자리가….’

방금 먹은 디저트의 맛이 생각났다.

‘요리를 진짜 잘하나 보다.’

그녀의 머릿속에 요리와 관련된 자리가 생각났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요. 우리 회사 구내식당에서 일할래요? 알바보다는 안정적일 거예요.”

“됐습니다. 그냥 오늘 하루만 하는 알바라서.”

그녀가 다시 궁리했다.

‘구내식당이 마음에 안 들면…. 아!’

나강인이 그녀를 무너지는 연구소에서 구출할 때 보여준 신체 능력이 생각났다.

“그럼요. 우리 회사 보안팀은 어때요? 제가 부탁하면 정규직으로 들어올 수 있어요.”

“그것도 됐습니다.”

지현선은 귀하게 자라고 공부와 연구만 하며 살아서 연구소 일은 잘하는데, 이런 쪽으로는 상식이 조금 부족했다. 상식이 부족하다는 걸 본인도 알았다.

‘알바보다 안정적인 자리를 제안하고 싶었는데, 내가 또 뭔가 잘못 이해한 건가?’

다시 생각해봐도 그녀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보안팀에 정직원으로 들어오게 해주면 괜찮지 않나?’

그녀가 그렇게 고민하는데 뒤에서 누가 급히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영화관이나 TV에서 자주 보던 배우가 놀란 얼굴로 걸어왔다.

지현선도 그 배우를 안다. 아버지끼리 아는 사이라서 얼굴은 여러 번 보았다.

그녀는 그 배우가 자신을 보러 온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이 사람한테 내가 유명한 배우랑 알고 지낸다고 자랑 좀 해야지.’

조금 부끄럽기는 했다.

‘나 원래 이런 자랑 안 하는 사람인데.’

그래도 나강인 앞에서는 자랑을 좀 하고 싶었다.

그녀가 머리카락을 슬쩍 넘기며 배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배우는 미소 짓는 그녀를 지나쳐 나강인의 앞으로 가더니 인사했다.

“나 감독님 아니십니까?”

지현선은 당황했다.

‘응? 감독?’

AI 전지인이 과거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띄우며 보고했다.

- 촬영장에서 마주친 인물입니다.

나강인도 그 배우를 알아보았다.

“아. 전에 촬영장에서 봤지요?”

그 배우는 나강인이 무술감독을 맡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사람은 아니다. 그는 예전에 공지현이 조연으로, 이연지가 단역으로 나온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다.

나강인이 그때 촬영장에 구경 갔다가 그 배우와 서로 얼굴만 보았다.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그런데 그 배우가 지금 아주 반가운 얼굴로 나강인에게 인사했다.

“여기서 뭘…. 아! 요리하시는군요!”

“요리는 아니고 디저트를 몇 종류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 디저트가 나 감독님이 만드신 것이었군요! 어쩐지 맛있다 했습니다. 오늘 제가 이 파티에 오기를 잘했네요. 하하하.”

“뭘 그렇게까지.”

그 배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에 최진욱 피디님의 드라마에 참여하신다고 들었는데….”

“아, 예. 그렇게 됐습니다.”

배우가 활짝 웃었다.

“저도 그 드라마에 들어갑니다!”

그 배우는 아예 머리까지 숙여 인사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 감독님!”

나강인이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지금 요리 알바를 왔는데 이러시면….”

“아. 그렇죠. 오늘은 요리사시죠. 이러고 계시니까 그 유명한 촬영장의 밥차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촬영 들어가면 혹시 우리 밥차에도….”

“기회가 되면 몇 번 정도?”

“드라마도 기대하지만 그 밥차도 기대하겠습니다. 하하하.”

지현선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배우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배우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이제야 지현선을 발견했다.

“어? 지현선 씨!”

“네. 안녕하세요.”

그 배우가 그녀의 깁스한 팔을 보고 물었다.

“아. 사고로 다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팔은 괜찮으세요?”

“그걸 이제 물어보시네요?”

“어…. 그게….”

“제가 보이지도 않으셨나 봐요?”

“하하, 하. 그게….”

그 배우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다른 방향을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어? 야! 반갑다!”

그는 그러면서 도망치듯이 자리를 옮겼다.

지현선은 그 배우에게 나강인과 한 이야기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가 도망쳐버려서 그럴 수가 없게 됐다.

그녀가 나강인을 보며 생각했다.

‘비주류로 혼자 연구하는 지질학자라서, 돈이 없어서 오늘 알바를 하는 줄 알았는데….’

영화와 TV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배우가 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

그녀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분이 왜 감독님이라고 불러요? 옆에서 들어도 이해가 안 가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예요? 피디의 드라마에 참여한다고 했으니까 영화감독은 아닐 텐데, 정체가 뭐세요?”

“알 텐데요? 수맥 사기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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