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고양이와 생선
미술관 직원이 액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겨우 2mm 차이를 그냥 보고 어떻게 안다는 거죠? 그리고 이 액자는 무늬까지 제가 아는 모습 그대로인데요?”
나강인이 대답했다.
“액자의 무늬는 카메라로 찍은 후에 똑같이 만들면 됩니다. 그동안 전시는 충분히 했으니까 여러 각도로 찍어서 복제할 시간은 충분했겠군요.”
“말도 안 돼요. 여긴 사진 촬영 금지거든요?”
“당연히 카메라는 숨겨놓고 찍었겠지요. 3D로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설마 스마트폰으로 찍었겠습니까?”
미술관 직원은 여전히 나강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니까 누군가 액자 채로 그림을 바꿔치기하려고 복제품을 만들었다는 건가요? 그럼 진짜 액자는 지금 어디 있나요?”
직원이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손님 중에 액자를 들고 있는 분은 없는데요.”
“액자 프레임의 두께가 좌우 기준으로 2mm 더 두껍다니까요.”
“액자가 바뀌었다는 근거가 눈으로 구분하기도 어려운 두께 차이라면….”
“바뀐 게 아니라, 1mm 두께의 커버를 이 위에 씌웠으니까 프레임의 좌우 두께가 2mm씩 두꺼워졌지요.”
“네?”
“이건 원래 액자에 똑같은 모양의 얇은 커버를 덮어씌운 겁니다.”
뒤쪽에 서 있던 관람객이 물었다.
“말도 안 돼요. 액자에 왜 그런 짓을 한다는 겁니까?”
“그래야 가짜 그림을 액자에 표 안 나게 빨리 붙일 수 있으니까요. 접이식으로 가져온 커버를 펼쳐서 덮어씌우는 것 정도는 순식간에 해치웠겠죠. 경보기가 울리고 보안 요원이 달려오기 전에 작업이 끝났을 겁니다.”
“잠깐만요. 그림까지 덮어씌워요? 그러면 진짜 그림은 설마….”
나강인이 액자를 손으로 잡았다. AI 전지인이 촉감을 기반으로 재질을 분석했다.
- 무늬만 나무인 합성수지입니다.
나강인이 액자 커버를 잡아당겼다. 액자 커버와 그림이 벽에서 툭 떨어져나왔다.
그 속에는 원래 액자와 원래 그림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나강인이 벗긴 액자를 접어보았다. 마치 종이접기처럼 쉽게 접혔다.
“접이식 맞네. 이러면 숨기기 쉽지.”
액자 커버만 접힌 게 아니다. 가짜 그림이 액자 커버에서 쉽게 분리되었다.
나강인이 사람들에게 가짜 그림을 흔들어 보였다.
“이 그림을 쉽게 덧붙이기 위해서 액자 커버를 사용한 겁니다. 그래야 순식간에 작업할 수 있으니까요. 원본은 보다시피 원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미술관장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이 모든 상황이 누군가 장난으로 일으킨 해프닝인 거란 건가요? 그림을 훔치려고 한 게 아니라?”
나강인이 가짜 그림을 들어 보였다.
“설마요. 훔칠 것도 아닌데 이런 걸 왜 만들겠습니까? 딱 봐도 공들여 만든 건데.”
미술관장이 다급히 물었다.
“그, 그럼 범인은 누구죠?”
“이걸 접어서 코트 속에 숨기고 미술관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의심하는 게 일반적인 판단인데….”
관람객 중에 코트를 입은 사람은 세 명이 있었다.
미술관장이 그 사람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수색해!”
보안 요원들이 그 사람들을 향해 움직였다. 그 세 사람이 다급히 외쳤다.
“난 아니야! 저 사람일 거야!”
“맞아요! 저 사람이 좀 수상했어요!”
“어? 어? 왜 나한테만 그래! 난 저런 거 만들 줄도 몰라요! 그리고 이 특별 전시관에는 지금 처음 왔다고요!”
나강인이 손을 들었다.
“그렇다고 저분들이 범인이라는 건 아니고.”
미술관장이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네? 하지만 방금 분명히….”
“저분들은 원본 그림을 빼돌릴 방법이 없잖습니까? 직원들이 관람객을 모두 중앙에 모았으니까요. 두 시간이 지나고 출구가 열린 후에도 방법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겠지요.”
미술관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 어떻게 된 건데요!”
나강인이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범인은 통제실의 CCTV 제어장치를 고장 낼 수 있으면서 그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게 누구죠? 당연히 내부인이겠죠.”
“그럴 리가….”
“아까 보니까 비상 상황에서는 직원과 보안 요원이 짝을 이뤄서 같이 다니던데요. 비상 상황에서 직원이 그림을 빼돌리면 안 되니까 보안 요원과 같이 움직이게 했지요? 서로 감시하게?”
“그게 규정이라서요.”
“하지만 비상 상황이 되기 전에는 혼자서 다녔을 겁니다. 그때 직원이 먼저 그림에 커버를 조립하고 한 방에 덧씌우는 겁니다. 그러면 경보기가 작동하고, 규정대로 관람객을 로비에 모으겠지요.”
“맞아요.”
“내 몸수색을 하겠다고 서두르는 걸 보니까, 직원들 몸수색도 자체적으로 했을 겁니다. 진품은 여전히 벽에 걸려 있고 커버와 위작도 이미 덧붙였으니까 그때 몸수색을 해도 아무것도 나온 건 없을 테고요.”
“그것도 맞아요.”
“이런 상황에서 제일 비싼 그림들이 있는 전시실을 방치한다? 그럴 리가. 당연히 보안 요원을 보내서 지키겠지요. 그것도 전시 직원과 짝을 이뤄서. 그게 저기 저 두 분인데.”
나강인이 손가락 두 개를 세워 교대로 흔들었다.
“이제 이 미술관의 문은 두 시간은 안 열릴 테니까 시간은 많습니다. 여기를 지켜야 할 직원이 아까 씌워놓은 커버를 벗기고, 진품은 훔치고, 위작을 다시 덮어씌우려고 했을 겁니다. 보안 요원이 한 패면 직원이 그 작업을 하는 동안 망을 보면 되겠군요.”
“설마….”
“몸수색은 아까 했으니까 직원을 다시 의심하지 않을 테지요. 시간은 두 시간이나 있으니까 그때 훔친 그림을 확실히 숨길 수 있을 테고요. 출동한 경찰에게 도난당한 그림이 없다고 말하면, 경찰은 단순 사고로 취급하고 넘어가겠죠.”
“하지만 그림은 저기 그대로 있잖아요. 도난당하지 않았잖아요.”
“내가 그림이 위작인 걸 발견하는 바람에 바꿔칠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아….”
신은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봤어요? 누구 덕분에 그림을 지켰는지 이제 알겠죠?”
관장이 더듬거렸다.
“그럼 범인은….”
“이 특별 전시실을 지키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미리 정해져 있었겠지요? 사건이 터진 후에 급히 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야 당연히….”
미술관장이 전시실 직원을 돌아보았다.
그 직원이 당황한 얼굴로 반박했다.
“즈, 증거도 없이 모함하는 거예요! 전 아니에요!”
나강인이 말했다.
“CCTV가 고장 났으니까 증거가 없을 거다? 그런 사정이야 내부인이니까 잘 알고 있겠네요.”
“그, 그래요. 아니, 그게 아니라…. 증거도 없이 이러지 마시죠!”
“증거가 없긴 하죠.”
나강인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도 단순한 추리일 뿐이고요.”
미술관장이 다급히 외쳤다.
“저 사람을 지목했잖아요!”
“나는 저 두 분이 실제로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모릅니다. 누군가 그랬을 수도 있다고 추리만 한 겁니다.”
“그, 그럼 증거는….”
“그거야 뭐.”
나강인이 미술관장에게 말했다.
“있을 리가 없죠. 그림이 없어지지 않았는데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네? 증거까지 찾아주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왜요? 내 알 바 아닌데.”
“하지만 여기까지 해 놓고….”
나강인이 툴툴댔다.
“의심받은 것도 기분 나쁜데, 보따리를 계속 내놓으라고 하시네?”
“미안해요. 아까는 당황해서 그만…. 잘하려다가 보니까….”
“됐고요. 이후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시죠.”
미술관장이 망설이다가 다른 보안 요원들에게 지시했다.
“일단 저 두 사람은 사무실에 대기시켜. 어차피 로비의 문이 열리기 전에는 아무도 못 나가. 진실은 나중에 문이 열리고 나서 밝히면 돼. 지금은 증거가 하나도 없잖아. 이게 다 오해일 수도 있다고.”
“예.”
***
두 사람은 격리됐다. 특별 전시실에는 다른 보안 요원과 직원이 두 명씩 배치됐다.
모든 관람객은 중앙 로비에 다시 모였다.
미술관장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그래도 저는 뭔가 오해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림은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잘 지킬게요.”
관람객이 손을 들어 물었다.
“그 두 사람을 그냥 사무실에 대기시켜도 되나요?”
“없어진 그림은 없어요. 그리고 설사 그림을 잃어버려도 우리 미술관 책임이니까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뭐, 우리가 따질 일은 아닙니다만.”
나강인은 기둥을 등지고 로비 한쪽에 서 있었다.
알레이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광돌이 진짜 대단해! 추리하는 거 보면서 명탐정인 줄 알았어!”
“내가 좀 한다.”
“그림 위에 위작을 통째로 덧씌워놨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눈썰미가 좋아.”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제가 발견했습니다.
“내 눈으로 보고 발견했잖아.”
알레이나가 또 물었다.
“그림이 바뀐 건 어떻게 알았어? 멀리서 봤는데도 바로 알던데.”
- 제가 차이점을 구분했습니다.
“눈썰미가 좋다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범인이 아니면 어떻게 해? 설사 그 사람들이 범인이라고 해도, 증거가 없으면 처벌은 못 하는 거 아니야? 그림을 훔치지는 못했다면서.”
신은하가 끼어들었다.
“그건 이 미술관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해야죠. 강인 오빠가 증거까지 찾아줘야 할 필요가 있나요? 뭐가 이쁘다고.”
“하긴.”
지현선도 세 사람의 근처에 있었다. 그녀가 나강인에게 다가가며 눈을 반짝였다.
“위작을 한 눈에 알아볼 정도로 미술 쪽으로 조예가 깊으신 거예요? 이러면 정말 정체가 뭔지 궁금해지는데요?”
신은하가 인상을 썼다.
“그런데 이분은 왜 자꾸 강인 오빠한테 말을 걸지? 어떤 관계세요?”
“최근에 만난….”
“강인 오빠랑 친해요?”
“그건 아니지만, 밥도 한 번 같이 먹었고.”
“아하. 겨우 한 번. 내가 같이 먹다가 흘린 밥알만 모아도 1인분은 넘을 것 같은데.”
알레이나도 끼어들었다.
“나도 밥은 몇 번 먹었는데.”
지현선이 말했다.
“저를 구해주기도 했고요.”
신은하가 코웃음을 쳤다.
“그런 사람 많아요.”
“네?”
“구해준 사람 많다고요. 그것도 너무 많아서 다 세지도 못하겠네요.”
“그, 그래요?”
나강인이 신은하에게 말했다.
“너 지구뷰티 화장품도 쓰지?”
“응.”
“지구뷰티 연구소의 지 실장님이야. 충청도에서 무너진 연구소에서 만났어.”
“아하! 국토 여행 다닐 때 만난….”
신은하가 목소리를 낮췄다.
“뭐야. 그 영상에 나온 사람이 강인 오빠였어?”
“몰랐냐?”
“말을 해줘야 알지!”
“남들 듣는다. 살살 말해라.”
“쳇. 알았어. 내가 요즘 드라마 캐스팅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구나. 주연 배역만 잡으면 관리 좀 해야겠어.”
미술관의 모든 출입문과 창문이 차단되고 통신도 막혔지만, 그렇다고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정문을 차단한 철문에는 틈이 있었다. 그 틈에 대고 조금 크게 말하면 밖에 있는 사람과 대화가 가능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문을 부수는 방법을 제안했다.
미술관장이 반대했다.
“이 철문은 절대로 부수면 안 돼요! 이게 얼마짜리 보안 시스템인데! 그냥 우리 부소장만 오면 열 수 있다니까요?”
“언제 오신다는 겁니까?”
“늦어도 두 시간 안에는 와요! 아니다! 이제 한 시간 반!”
“휴대폰 통신 방해장치는 왜 켠 겁니까? 그거 불법인 거 몰라요? 당장 끄세요! 안에 있는 분들과 통화가 안 되잖아요!”
“끌 줄 몰라요! 그건 비밀 보안 장비라서 이 건물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요! 위치는 나도 몰라요!”
사건이 터지고 두 시간 뒤에 부관장이 도착하고 보안 철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당황한 얼굴의 부관장이 다급히 물었다.
“관장님.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다 괜찮아요.”
“우리 그림들은요?”
“그것도 괜찮고요.”
부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빌려온 그림들은 보험을 많이 들어놨으니까 우리 그림만 괜찮으면 걱정 없겠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나강인이 말했다.
“다행인 상황이 아닐 텐데. 백억짜리 그림을 훔치려는 시도가 있었잖아요.”
미술관장이 반박했다.
“그래도 다행이죠. 잃어버린 그림은 없잖아요.”
현장에는 형사들도 와 있었다. 그들이 나강인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백억짜리 그림을 훔치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강인이 안에서 확인한 미술품 도난 미수를 형사들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미술관장은 나강인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형사들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헤프닝이에요. 진짜로 훔치려 했다는 증거도 없고, 누가 범인인지 확신할 수 있는 증거도 없어요. 단순한 추측만 있죠.”
나강인이 말했다.
“범인이 누군지는 압니다만?”
“우리 직원들을 의심하는 건 아는데, 그건 조사를 해봐야지요.”
“이번 일은 그 두 명이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서.”
“네? 아까 설명할 때는 분명히….”
“아. 그거는.”
나강인이 미술관장을 보며 말했다.
“두목이 보안 요원들을 움직여서 저항하면 귀찮아지니까, 안 들켰다고 착각하게 하려고 대충 비슷하게 말한 건데.”
“뭐?”
나강인이 보안 요원 몇 명과 싸워 이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용병이나 해적이 아니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다. 심지어 보안 요원들은 누가 범인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과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싸우다가 일이 커지면 알레이나가 노출될 수도 있다. 그것도 곤란하다.
게다가 증거를 확보하려면 추가 정보를 좀 더 수집해야 했다.
그래서 나강인은 경찰이 오고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어차피 문이 열리기 전에는 아무도 도망칠 수 없었다.
미술관장이 더듬거렸다.
“그, 그게 무슨….”
“찔리나 보네.”
“내, 내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