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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272화 (272/411)

272. 고양이와 생선 II

미술관장이 거칠게 항의했다.

“지금 날 의심하는 건가요? 내가 누군지 몰라요? 그 발언, 책임질 수 있어요?”

나강인이 말했다.

“뭐, 책임은 아니지만, 아까 대충 비슷하게 말한 걸 제대로 알려줄 수는 있지요.”

형사가 옆에서 말했다.

“저도 좀 듣고 싶군요. 어떻게 된 겁니까?”

나강인이 형사에게 설명했다.

“방송장비가 고장 났다고 하길래 통제실에 가서 장비 상태를 직접 확인했습니다. 물론 직원이 보고 있는 상태로요.”

“뭔가 나왔습니까?”

“장비를 적당히 고장 내 외부 경보장치와 CCTV를 차단했더군요. 그것도 그냥 선을 끊거나 어딜 부순 게 아니라 고장 난 것처럼 잘 처리했습니다. 그건 도둑놈이 금방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부인의 짓입니다.”

미술관장이 끼어들어 반박했다.

“그런 건 장비를 점검하러 오는 외부 기술자들도 할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더 잘해요!”

“그렇기는 한데.”

“거봐요.”

“진짜 그림에 가짜를 덧씌우는 건 그 기술자들이 못 합니다. 오늘 여기 없었으니까. 그리고 왜 굳이 그런 방법을 썼을까요?”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랬다며! 두 시간 동안 천천히 작업하려고 그랬다며!”

“그랬어야 하는데 말이죠. 사건 초기부터 미술관장이 관람객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그림을 설명하더군요. 위작이 정교하지 않은데, 그러다 관람객 중에 알아보는 사람이 나오면 어쩌려고.”

“거봐! 난 범인이 아니니까 그런 거라고!”

“그게 아니지. 누군가 위작인 걸 눈치채야 하니까, 일부러 관람객들을 데려간 거지.”

나강인이 형사에게 말했다.

“범인은 사건이 터지자마자 그림이 도난당했다고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습니다. 관람객들은 미술 애호가니까, 그중에 가짜를 알아볼 사람이 나오겠지요. 만약 아무도 못 알아보면 관장이 직접 설명을 해서라도 알려주려고 했을 겁니다.”

신은하가 옆에서 물었다.

“그러면 강인 오빠가 가만히 있었어도 결국 위작이란 걸 들켰을 거란 거야?”

“당연하지. 그런 어설픈 위작을 아무도 구분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나. 당연히 내가 안 나섰어도 알아보는 사람이 금방 나오지. 그러라고 일부러 사람들을 거기 데려간 거니까.”

형사가 물었다.

“왜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겁니까?”

나강인이 부관장을 가리켰다.

“저분이 조금 전에 그러더군요. 빌려온 르네상스 그림에는 보험이 걸려 있으니까 문제가 생겨도 괜찮다고. 도난당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림을 빌려준 쪽은 보험사가 해결하게 하면, 100억짜리 그림이 남네요?”

미술관장이 다급히 말했다.

“하, 하지만 진짜 그림은 그 안에 있었잖아!”

“아까 일부러 하지 않은 설명이 그거야. 사건 초반에 그 그림이 위작이라는 게 알려지면, 몸수색을 통해 진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시켜줄 수 있지. 그러면서 범인은 이미 미술관을 빠져나갔다고 속이는 거지.”

신은하가 물었다.

“경찰의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그렇지. 그 후에 관람객은 모두 로비에 모아놓고 두 사람이 조용히 작업할 계획이었을 거야. 그 그림에 설치된 보안장치는 이미 작동했으니까 지금은 꺼져 있어. 내부인만 알고 경찰은 못 찾는 곳도 미리 준비해놨을 거야. 두 시간이면 작업해서 거기 숨길 시간은 충분하지.”

미술관장이 반박했다.

“아니야! 그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고!”

“나한테 그 트릭을 들켰으니까 계획을 포기했겠지. 일이 실패했을 때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만들어야 감옥에 안 가니까.”

“지금 나한테 누명을 씌우는 거야? 증거도 없이 그러면 당신 큰일 나!”

AI 전지인이 AR 렌즈를 통해 사무실에 대기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문서로 띄웠다.

나강인이 그걸 보며 말했다.

“사건 발생 후에 특별 전시실을 지키고 있던 두 사람 말이야. 누가 어디를 지키고 어디를 조사할지는 사전에 정해져 있다고 했지? 그런데 그 임무를 할당하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을까? 미술관장이겠지?”

“그건 다 우연이다!”

“당신은 직원 중에 공범들을 일부러 거기 배치한 거야.”

AI 전지인이 말했다.

- 공범 두 명이 미술관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대화를 들을 수 있는 위치입니다.

나강인이 일부러 미술관장에게 거짓말을 했다.

“난 사실 증거도 확보했어.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일부러 안 가르쳐준 거야.”

미술관장은 당황했다. 나강인이 모든 계획을 알아낸 걸 보고 겁도 먹었다. 그래서 증거를 확보했다는 거짓말에 쉽게 넘어갔다.

그녀가 사무실에 대기했다가 지금 막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을 가리켰다.

“난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든 다 저 두 사람이 저지른 짓이야!”

나강인이 문서에 뜬 대화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 여기에 관장이 지시하는 걸 녹음해뒀어. 만약 관장이 우리를 경찰에 넘기면 그걸 깔 거야.

- 그럼 그 녹음파일이 있다는 걸 미리 알려야 관장이 우리를 지켜주는 거 아냐?

- 지금은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나중에 관장에게 슬쩍 이야기하면 돼.

나강인이 그 두 명에게 말했다.

“관장은 전부 다 당신들이 저지른 짓이라는데?”

그 두 사람은 미술관장이 그들 탓을 하는 모습부터 보았다. 그 전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듣지 못했다.

“우, 우리는 그게 아니라….”

“이대로 가면 당신들 둘이 다 뒤집어써. 걸린 금액이 워낙 크니까 교도소에서 되게 오래 살아야겠네? 진짜 그러고 싶어?”

용의자 중 한 명인 보안 요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갑자기 외쳤다.

“우, 우리는 협박받은 거야! 우리가 사귄다는 걸 이용해서 협박했어! 말을 안 들으면 그걸 터트린다고 했다고!”

미술관장은 기겁했다.

“거, 거짓말이다!”

보안 요원이 USB 메모리가 달린 열쇠고리를 위로 번쩍 들었다.

“여기 녹음파일이 있다! 우리한테 일을 시킬 때 한 말이 여기 녹음되어 있다고! 우리는 협박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거야!”

같이 있던 여자 직원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관장이 협박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형사들이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형사팀장이 미술관장에게 말했다.

“같이 경찰서로 가주셨으면 합니다만.”

“내, 내가 누군지 알아?”

“거절하시면 긴급체포를 해야 하니까, 그냥 가시죠. 그게 모양이 안 빠질 텐데.”

“벼, 변호사! 내 변호사 불러!”

“그러셔야죠. 전화하셔도 되니까 가면서 부르세요. 일단 가시죠.”

끌려가는 미술관장과 부하 두 명을 보며 신은하가 말했다.

“저 관장이 진범이라서 체포되는 거 보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난 저 여자가 아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알레이나는 옆에서 감탄했다.

“와아. 광돌이 뭐야? 진짜 천재야? 멋있다!”

신은하가 얼른 사이에 끼어들었다.

“원래 멋있거든요?”

“원래는 광돌이였는데요?”

“광돌이의 광이 설마 미칠 광은 아니죠?”

“당연히 그거죠. 설마 팔광이겠어요?”

지현선은 다른 게 궁금했다.

“그런데 사귄다는 게 왜 협박당할 일이죠?”

신은하가 얼른 말했다.

“내가 드라마에서 많이 봤는데요. 저 부하 둘 중 한 명은 남편이나 아내가 있을 거예요. 유부남과 처녀, 아니면 유부녀와 총각의 불륜이죠.”

알레이나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기왕이면 두 사람 다 그런 불륜이어야 더 막장이죠!”

세 사람이 나강인을 보았다. 신은하가 물었다.

“진실이 뭐야? 저 두 사람 진짜 불륜이라서 협박당한 거야? 그럼 유부는 한 명이야? 두 명이야?”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건 난 모르겠는데?”

“쳇. 이번 사건에서 다른 건 다 알아냈으면서 어떻게 그것만 몰라. 역시 연애 고….”

“고?”

“아니, 그…. 고릴라?”

부관장이 나강인에게 다가왔다.

“저기….”

신은하가 먼저 말했다.

“이번 일에 불만 있으면 저한테 이야기하세요.”

“그게 아니라….”

부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지금 상황이 너무 당혹스러워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자기 미술관이 아니라 해도….”

“네? 저 사람이 미술관장이잖아요.”

“관장님은 곧 물러나시고 제가 관장을 맡을 예정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서 저도 난감하네요.”

나강인이 말했다.

“그러니까 관장님이 이 미술관의 소유주는 아닌 거군요?”

“당연히 그렇죠. 설립자는 따로 계십니다.”

“퇴직금으로 명화를 빼돌리려던 걸 보니까 좋게 물러나는 것도 아닐 테고요.”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이런 일을 꾸민 걸까요?”

“그거야 경찰이 밝혀내겠죠.”

부관장이 사태를 수습하러 미술관 쪽으로 걸어갔다.

나강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강인은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는다. 그런데 잠시 후에 문자가 날아왔다.

[저 유나린 교수님 연구실 대학원생인데요. 잠깐만 통화하고 싶어요.]

나강인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아! 네! 안녕하세요? 인공 근육 연구 투자자 맞으시죠?

AI 전지인이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 유나린 박사의 연구실에서 만난 적이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연구실에서 우리 몇 번 봤지요?”

- 네! 맞아요!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 교수님께 급히 연락드릴 일이 생겼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요. 투자자님이 아까 교수님을 만나셨잖아요. 혹시 지금 같이 계세요?

“유 박사님은 내일까지 쉬신다고 들었는데요.”

- 그쵸. 쉬신다고는 하셨죠. 그래서 미술관을 가신다고….

“음? 잠깐. 미술관이요?”

나강인이 미술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미술관은 여기 외에도 많다.

“어느 미술관에 갔는지도 이야기했습니까?”

- 아뇨. 르네상스 미술전을 보러 가신다고는 했는데 어딘지는 잘….

나강인이 주변을 보며 작게 말했다.

“지인아. 오늘 이 미술관에서 유나린 박사를 본 적 있냐?”

- 없습니다. 스쳐 지나가기만 했어도 보고드렸을 겁니다.

나강인이 대학원생에게 말했다.

“만약 찾게 되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저도 찾아보겠습니다.”

- 네? 앗! 네! 감사합니다!

나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에 미술관을 돌아보았다.

“설마 아직 저기 있는 건 아니겠지?”

- 지난 두 시간 동안 미술관 보안 요원들이 여러 차례 내부를 수색했습니다. 제가 파악하지 못한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정밀수색을 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미 경찰이 건물로 들어갔다. 나강인이 그 모습을 보다가 형사팀장에게 말했다.

“혹시 관람객 중에 실종된 사람이 없는지 자세히 조사해주시겠습니까?”

나강인 덕분에 범인들을 체포한 형사팀장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직 숨어있는 놈이 있는지 당연히 찾아봐야죠.”

“어딘가에 갇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자세히 확인하겠습니다.”

형사팀장이 팀원들에게 간 후에 신은하가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내가 아는 사람이 이 미술관 전시회를 보러 갔다는데, 보이지가 않아.”

“전화 걸어보면 되잖아.”

“연구실 대학원생이 계속 연락하는데 안 받아.”

신은하는 나강인의 옆에 있으면서 여러 사건을 경험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럼 또 사건인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강인 오빠 옆에 있으면 사건이 자주 생기더라고.”

“그게 다냐?”

“강인 오빠는 사건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잖아.”

“참 빈약한 근거이긴 하다만.”

이번에는 좀 찜찜하긴 했다.

유나린이 간다고 말한 곳이 백화점이나 도서관, 서점이나 극장이라면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목적지가 하필 이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 있던 모든 관람객은 아까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여기서 사건이 터졌는데, 이곳으로 간다고 나간 사람이 사라졌어. 우연은 아니겠지.”

- 설사 우연이라 해도 조사해야 합니다. 유나린 박사에게 들어간 연구비를 잃을 수는 없습니다.

“지인아. 언제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연구니까 계속 투자해야 한다더니.”

- 어감에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제가 말한 의도는 비슷합니다.

“하나도 안 미묘해. 비슷하지도 않고. 어쨌든 유나린 박사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나강인이 미술관을 보며 말했다.

“휴대폰이 고장 나거나 배터리가 다돼서 전화를 못 받는 거라면? 그러면 우리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거라도 괜찮아.

- 아무 일도 아니라 우리만 헛수고한다고 해도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유나린이 납치된 거라면? 납치할 이유는?”

- 유나린 박사가 오늘 요원님에게 인공 근육 연구에 큰 진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나린이 아까 기술적인 부분을 설명해줬지만 나강인이나 AI 전지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연구에 큰 진전이 있다는 건 안다.

“그 연구는 최근에 시작했잖아. 그런데도 성과가 어디까지 나왔는지 알아내고 납치까지 하는 놈이 있을까? 움직임이 너무 빠른데?”

- 대비는 해야 합니다.

“그래. 찾아야지.”

나강인이 미술관을 가리켰다. 경찰들이 오가고 있었다.

“하필 여기서 사건이 터진 날 사라졌단 말이야.”

- 누군가가 어떤 형태로든 의도했을 수 있습니다.

“우연인지 아닌지, 그것부터 확인해보자.”

나강인이 방금 연락한 대학원생에게 도로 전화를 걸었다.

- 앗! 혹시 저희 교수님을 찾으셨나요?

“아니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유 박사님이 르네상스 미술전에 왜 갔는지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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