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73화 (273/411)

273. 실종

대학원생은 나강인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 르네상스 미술전에 가는 거야 유 교수님 마음이니까….

“그게 아니라, 누가 추천했다든지, 어디서 광고 전단을 받았다든지, 이메일로 받았다든지.”

- 아! 홍보 이메일을 받으셨대요.

“역시 누군가가 그 미술관에 가라고 소개를 했군요.”

- 근데 원래 그림 보는 걸 좋아하셔서 그런 이메일을 자주 받으세요.

나강인이 생각했다.

‘취미를 파악하고 르네상스 전시회를 미끼로 유인한 건가?’

“그 전시회는 아직 며칠 남았는데 하필 오늘 간 이유는 압니까? 혹시 누가 오늘 가라고 했습니까?”

‘그놈을 찾으면 일이 쉬워질 텐데.’

- 요즘 연구실에서 계속 사셔서, 그 전시회를 보고 싶은데 갈 시간이 없다고 하셨거든요. 내일까지는 휴가 쓰겠다고 하셨으니까 오늘 가신 거겠죠.

나강인이 오늘 유나린을 만나서 좀 쉬라고 말했다.

“아. 나구나.”

“네?”

“아닙니다. 잠시만요.”

나강인이 궁리했다.

‘적어도 하필 오늘 미술관에 간 건 누군가 의도한 게 아니야. 그러면 이 그림 도난사건과는 상관이 없다는 건데….’

상황을 짚다 보니 다른 부분이 걸렸다.

“잠깐. 연구실에서 계속 살다니요? 그러면 그동안 거기서 먹고 자고 했다는 겁니까?”

- 교수님이 여기서 잠까지 주무신 건 아니고요. 잠은 교내에 있는 임직원용 숙소에서 주무세요.

“집에는 한 번도 안 가고요?”

- 집은 팔아서 그 돈을 저번 연구에 다 쓰셨어요. 그래서 집이 없으세요.

“연구 투자금을 보냈으니까 월세라도 새로 얻은 줄 알았는데요.”

- 아니에요. 투자해주신 돈도 다 연구비로 쓰셨어요. 식사는 구내식당에서 하셨고요. 아. 저희 수당은 좀 챙겨주셨죠.

“그럼 최근에는 학교를 벗어난 일이 없다는 겁니까?”

- 글쎄요? 유 교수님이 학교 밖으로 나가신 건 꽤 오랜만일 걸요?

나강인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유 박사님은 미술관에 혼자 갔습니까?”

- 잘 모르겠어요. 근데 어쩌면 수연이 언니랑 갔을지도 몰라요.

나강인은 멈칫했다. 대한민국에 수연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유나린은 한국대학교의 교수다. 권수연도 전공은 다르지만 한국대학교에 다닌다. 예전에 권수연은 유나린과 친하다는 말을 나강인에게 했다.

“권수연?”

- 어머. 아세요? 네. 맞아요. 그 언니도 지금 전화를 안 받거든요. 같이 있나 봐요.

“젠장.”

나강인이 전화를 끊은 후에 권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다급히 말했다.

- 권수연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생존해야 하는 인물입니다.

“알아. 수연이하고 친하던 연구실 후배 연락처 띄워봐.”

AI 전지인이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를 보여주었다.

- 권수연의 연구실 후배 박지혁입니다.

나강인이 그 번호를 누르고 박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수연이 친구 나강인입니다.”

- 아! 학부생 때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분!

“수연이가 오늘 미술관에 갔습니까?”

- 어? 그걸 어떻게 아세요?

“르네상스 미술전?”

- 네. 맞아요.

“젠장.”

- 네?

“수연이가 그 미술전을 보러 간 이유를 압니까?”

- 친한 교수님이 보러 가자고 하셨다던데요?

“유나린 박사님?”

- 네. 다 아시네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왜 그런지 알게 되면 알려드리죠. 지금은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나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유 박사님과 수연이가 둘 다 전화를 안 받아. 지금 미술관에서 조용히 그림을 감상 중이면 그럴 수 있는데.”

나강인이 미술관을 보았다. 오늘 여기서 100억짜리 그림 도난 미수 사건이 터졌다. 모든 관람객은 밖으로 나왔고 미술관은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아니잖아.”

- 경찰이 건물을 수색 중입니다. 외부인의 출입은 통제되었습니다. 유나린과 권수연이 이곳에 있을 확률은 낮습니다.

“여기엔 없겠지. 중간에 사라졌어. 계획을 바꾼 거면 다행인데….”

나강인이 부관장에게 걸어갔다. 부관장은 상황 수습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나강인이 부관장에게 질문했다.

“이 르네상스 미술전을 홍보할 때 이메일도 이용했습니까?”

부관장이 바로 대답했다.

“저희가 직접 한 건 아니고요. 외주 홍보 업체가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럼 홍보 이메일을 보낼 대상자는 어떻게 선정합니까?”

“우리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연락처를 남겼거나, 아니면 온라인으로 회원가입을 한 분들이죠.”

“그 명단은 여기서 제공하시고요?”

“물론이죠. 홍보 업체가 우리 관람객 명단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 명단, 제가 좀 볼 수 있습니까?”

“네?”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어…. 그런 건 원래 보여드리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딱 잘라 거절하긴 어려웠다. 나강인 덕분에 관장의 범죄를 막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부관장이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에 부관장의 스마트폰으로 문서가 한 장 들어왔다.

“이게 저희가 홍보 대행사에 보낸 엑셀 파일입니다. 그런데 제 폰에서 보기만 하셔야 합니다. 외부 유출은 좀 곤란해서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나강인이 부관장의 스마트폰 화면에 뜬 고객 목록을 빠르게 넘겨 유나린의 이름을 찾았다.

마지막 명단이 나오자마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없습니다.

미술관에서 홍보 대행사에 보낸 명단에는 유나린의 이름이 없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나강인이 스마트폰을 돌려주고 일행에게 돌아가며 말했다.

“누군가 유나린 박사를 학교 밖으로 유인하려고, 그 홍보물을 복사해서 이메일을 따로 보낸 거야.”

- 그놈을 잡아야 합니다.

“지인아. 네가 이메일을 보낸 놈을 역추적해야겠다.”

- 해킹은 요원님의 신분 위조 같은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해킹 방어는 그런 제한이 없잖아. 그쪽 명분을 만들어줄게.”

-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주십시오.

신은하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상황이 심각해?”

“아는 사람이 연락이 안 된다고 했잖아? 내 친구도 같이 있다가 연락이 같이 끊겼어.”

“잠깐. 강인 오빠 친구는 유찬 오빠밖에 없는 거 아녔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손 감독님은 친구로 맞먹기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잖아.”

“얘는 대학 친구야.”

“아아.”

“난 지금부터 학교에 가서 조사를 좀 해야겠어. 넌 집에 가라.”

신은하가 팔을 걷었다.

“무슨 소리. 내가 같이 가서 도와줄게.”

“굳이….”

“응. 굳이 그러려고.”

“그래라.”

나강인이 알레이나를 보았다. 알레이나가 손을 들었다.

“나도 같이 갈까?”

“넌 집에 가.”

“아, 왜 나만!”

“이번 일에 잘못 엮이면 뉴스에 네 이름이 나갈 수 있다.”

그러면 수술 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앗! 그럼 안…. 응? 광돌이가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것 같은데?”

“넌 집에나 가라고.”

“쳇. 알았다고. 그리고 집 아니고 호텔이라고. 집에는 당분간 못 돌아가.”

그녀가 말한 집은 나강인의 옆집이다.

신은하가 끼어들었다.

“어? 잠깐. 그 집으로 돌아가게요? 아예 떠난 거 아녔어요?”

“월세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 있잖아요. 상황이 좋아지면 돌아갈 수 있어요.”

“와 씨….”

알레이나가 속으로 생각했다.

‘거기 있을 때 되게 편했잖아. 수술받고 건강해지면 아예 사버려야지.’

나강인에게 지금 급한 일은 그게 아니다. 그가 주차장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그쪽에는 지구뷰티 연구소 실장 지현선이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저도 집에 가야겠네요.”

“음….”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인아. 네가 역추적할 때 바이오 분야 전문가가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

- 역추적할 회사나 단체를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는 그쪽 전문 이론을 이해할 머리가 없습니다.

“아프다. 팩트로 때리지 마라.”

나강인이 지현선에게 말했다.

“저를 좀 도와줬으면 합니다만.”

“네? 제가 도울 일이 있어요?”

“지금 찾는 분이 생화학자라서요.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지현선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러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알레이나만 호텔로 돌아갔다. 세 사람은 나강인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목적지가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강인은 목적지가 한국대학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신은하가 조수석에서 손으로 앞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와. 저기 앞에 한국대학교다. 저기는 공부만 하는 범생이들만 다니나?”

뒷좌석에서 지현선이 말했다.

“저도 한국대학교 나왔는데….”

“앗!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었어요. 대단하세요! 우리 셋 중에 공부 제일 잘하셨네요! 그것도 엄청!”

나강인이 차를 운전해 한국대학교 정문을 통과했다.

신은하가 물었다.

“어? 왜 여기 들어와? 저분 모교라서 들르는 거야?”

“내가 말한 친구가 여기 박사과정에 있어.”

“응? 학교 친구라며? 고등학교 친구였어?”

“아니. 대학 친구.”

“아. 대학…. 으응?”

신은하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뭐야? 설마 강인 오빠 한국대학교 나왔어?”

“그렇다더라.”

“왜 비밀로 했는데?”

“비밀로 한 적 없다. 유찬 씨도 알고 연지도 알아.”

“남들 다 아는 걸 왜 나만 모르냐고!”

“그러게. 근데 은하야.”

“으응?”

“지금 이 차에 탄 사람 중에 네가 공부 제일 못했어.”

“아놔. 나만 바보가 된 거 같아.”

“응. 너만….”

“메이야?”

“아니다.”

***

나강인은 유나린 박사의 연구실로 찾아갔다. 미리 연락받은 대학원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나 팀장님.”

나강인은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유 박사님이 이메일을 받는 데 쓰는 PC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연구용은 안 되지만 그건 업무용이고, 유 교수님이 나 팀장님께는 최대한 협조하라고 하셨으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쓰실 수 있게 해드릴게요.”

“음? 비번을 압니까?”

나강인은 필요하면 그것도 해킹해서 뚫을 생각이었다.

“제가 교수님 대신에 이걸로 행정 서류 작업을 가끔 하거든요.”

신은하와 지현선도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신은하가 마스크와 안경을 벗었다.

연구실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어? 신은하?”

“우와아! 팬입니다!”

“야. 조용히 해. 지금 교수님이 연락이 안 되는데 팬 소리가 나오냐?”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 그냥 쉬는 동안 휴대폰을 꺼놓으신 거겠지.”

신은하가 사람들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신은하예요. 지금은 우리가 일하는 중이니까 나중에 이야기해요.”

“넵!”

지현선은 다른 이유로 놀랐다.

“나강인 씨가 찾으신다는 분이 유나린 박사님이에요?”

나강인이 유나린의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유 박사님을 아시나 봅니다?”

“팬이에요!”

“유 박사님은 연예인이 아니신데.”

“저랑 비슷한 분야의 천재시잖아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이쪽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유 박사님일 거라고 믿고 있어요.”

나강인이 모니터 너머로 지현선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 박사님은 노벨상을 탈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이룰 겁니다. 그러니까 빨리 찾읍시다.”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작게 말했다.

“지인아. 누군가 이 컴퓨터로 이메일을 보내 유 박사님을 학교 밖으로 유인했다. 그러면서 해커가 컴퓨터에 뭔가 심었을지도 몰라. 보낸 놈을 역추적하자.”

- 명분으로는 조금 부족하지만, 유나린과 권수연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니 진행하겠습니다.

“손의 권한을 넘겨줄 테니까 시작해.”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손을 빌려 USB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았다. 그 메모리에는 AI 전지인이 만든 역추적 프로그램이 들어있었다.

지현선은 지금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원생이 나강인을 부른 호칭이 생각났다.

‘나 팀장? 혼자 일하는 무술감독이고 혼자 연구하는 지질학자인데, 왜 팀장이라고 부르지?’

그녀가 대학원생에게 물었다.

“왜 나강인 씨를 나 팀장님이라고 부른 거예요?”

“그거야 당연히 철인기공의 설계팀장님이시니까요.”

“네? 어디요?”

“철인기공이요.”

“잠깐만요.”

지현선이 스마트폰으로 철인기공을 검색했다. 당연히 땅이나 건설과 관련된 회사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회사 홈페이지에 나온 내용은 전혀 달랐다.

“군과 경찰용 장비를 만드는 회사?”

대학원생이 말했다.

“네. 그쪽 분야에서 굉장히 유명한 회사래요.”

“지질학자가 왜 여기서 설계를 해요? 벙커 같은 걸 만드나요?”

“네? 지질학자라니요? 저는 기계공학자라고 들었는데요?”

“그럴 리가 없어요.”

“진짜예요. 나 팀장님은 유나린 박사님이랑 오메가테크와 같이 인공 의수를 연구하고 계시니까요.”

“네? 오메가테크요? 거긴 또 뭘 하는 곳인데요? 영양제 만드는 회사예요?”

“미국 회사인데요. 각종 장비나 군사용 무기, 그리고 로봇을 만드는 곳이래요.”

지현선이 오메가테크를 검색했다. 영어로 된 기사가 주르륵 나왔다. 그중에는 사장인 스칼렛 켈리의 연구 성과도 많았다.

“로봇을 만드는 회사…. 여기 나온 대로면 기술력이 대단한 곳이네요?”

“맞아요. 우리 교수님은 요즘 인공 근육을 연구하고 계세요. 오메가 테크는 신경 신호 전달 체계를 맡았고요. 나 팀장님은 인공 의수의 구조를 설계하셨어요.”

“잠깐만요. 나강인 씨가 뭘 설계해요?”

“인공 근육을 사용하는 최첨단 의수를 세 곳에서 협업으로 개발하고 있거든요. 그 연구의 한 축인 구조 설계를 맡은 분이 나 팀장님이세요.”

“그러니까 나강인 씨가 유나린 박사님과 최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라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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