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74화 (274/411)

274. 탐색

유나린의 연구실 대학원생이 설명했다.

“인공 근육 연구는 우리가 유 교수님을 서포트하고 있어요. 오메가테크도 당연히 회사 차원에서 연구하죠. 그런데 나 팀장님은 혼자서 한 축을 맡으셨대요.”

화장품회사 지구뷰티의 바이오 헬스 연구소 실장 지현선이 물었다.

“나강인 씨 혼자서요? 그러면 차이가 너무 나지 않아요?”

“그런데도 연구 진척 속도는 나 팀장님이 제일 빨라요. 이미 기초 구조 설계를 끝내셨거든요.”

“네? 혼자서 어떻게…. 혹시 개념만 설계한 건가요?”

“아뇨. 그 기초 구조 설계를 보고 우리가 인공 근육의 목표 스펙을 조정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요. 그래서 유 교수님이 감탄 많이 하셨어요.”

지현선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니, 지질학자에 무술감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천재 공학자라니….”

“네? 무술감독이요?”

“아니, 아니에요.”

지현선이 나강인을 보았다.

나강인은 유나린의 업무용 PC로 작업하고 있었다.

지현선이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세상에는 박사학위 두 개를 따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잖아. 무술감독은… 세계 정상급 스포츠선수가 과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따는 경우도 가끔 있으니까 그럴 수 있어.’

쉽게 납득이 가는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비슷한 선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젊긴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야. 스포츠선수 출신이 박사학위 두 개. 가능해.’

그녀가 스스로를 납득시킨 후에 나강인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이메일을 보낸 놈을 역추적하고 있습니다.”

“네? 그게 역추적이 되는 거였어요?”

“제가 해킹을 좀 합니다.”

“네?”

신은하가 자랑했다.

“강인 오빠는 화이트 해커예요.”

“아. 해킹을 방어하는 해커…. 그럼 실력이 어느 정도세요? 설마 이것도 잘하는 건 아니죠?”

“당연히 강인 오빠는 최고 중의 최고죠. IT 보안업체 사람들이 배워간 적도 있고, 연예인 정보를 노리던 해커들을 역추적해서 경찰에 넘긴 적도 있어요.”

지현선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거기에 해킹까지….”

운동 하나에 학문 두 개까지는 납득이 됐는데, 방금 하나가 추가됐다. 그런데 그 네 개는 완전히 다른 분야다.

‘수학과 물리학, 화학과 생물학 같은 식이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는데….’

지현선이 신은하에게 물었다.

“혹시 신은하 씨는 나강인 씨가 철인기공의 팀장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신은하가 씩 웃었다.

“훗. 당연한 거 아니에요?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팀의 팀장이잖아요.”

“드래곤 플레이트요? 그건 또 뭐예요?”

“아. 모르시는구나. 하긴. 각국 정부기관이나 일부 기업만 구매자 리스트에 있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죠. 그런 게 있어요. 되게 좋은 거예요.”

신은하도 하나 가지고 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드레곤 플레이트는 나강인이 직접 만든 수제품이라 방어력이 더 좋다.

지현선이 다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각국 정부기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각국 정부?’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또 있었다.

“아니, 그런 분이 왜 차는 그렇게 낡은 걸 타고, 옷은 또 왜 그렇게….”

신은하가 툴툴댔다.

“그러게요. 차는 개조를 많이 했으니까 아까워서 그런다 쳐.”

“차까지 개조해요?”

“옷은 내가 사준다니까 자기 취향이 아니라면서 안 입네요.”

대학원생도 말했다.

“나 팀장님이 철인기공과 오메가테크에서 로열티를 받아서 유 교수님의 인공 근육 연구에 투자하고 계시잖아요. 연구비가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게 아닌데, 그 자금이 다 나 팀장님의 로열티에서 나온다고 유 교수님이 이야기하시던데요?”

“그럼 실제로는 돈까지 많이 버는 거예요?”

신은하가 불평했다.

“아놔. 요즘 나보고 밥을 사라고 한 게, 돈을 다 연구비로 써서였어? 아니, 자기가 개발하는 거에다 쓰지 왜 남의 연구에 돈을 다….”

지현선이 급히 물었다.

“나강인 씨가 따로 개발하는 것도 있어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아니면 로열티가 어디서 나오겠어요? 강인 오빠는 혼자 쓰는 독립 연구실이 있어요.”

나강인은 그곳을 제작 거점이라고 부른다.

“와….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걸 다 잘해요? 사람 맞아요?”

신은하가 씩 웃으며 자랑했다.

“훗. 잘하는 거 더 있는데 안 가르쳐줘야지.”

“또 있어요? 뭔데요?”

“안 가르쳐준다니까요?”

나강인은 유나린이 업무용 PC에서 확인한 이메일을 역추적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상대는 포털 사이트의 기업용 이메일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서버를 해킹해 메일을 보낸 장비의 접속 정보를 역추적했습니다. 같은 장비로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도 찾아냈습니다만, 알아낸 정보가 많지는 않습니다.

“말해봐.”

- 상대는 이메일을 보낸 노트북을 외부 공간에서 사용했습니다. 접속에 사용한 망은 공공 와이파이입니다. 회원 정보는 가짜입니다.

“그게 다는 아니지? 난 널 믿는다.”

- 안 믿으시는 것 같습니다.

“있긴 있구나?”

- 마약 관련 정보가 있습니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떤 건데?”

- 메일을 발송한 후에 마약 성분을 검색한 기록이 포털 사이트의 서버에 남아있습니다.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정보입니다.

“마약이라….”

나강인은 아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유나린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게 있다.

“유나린 박사에게 블러드 아이스 업그레이드를 제안한 곳이 어디지?”

- 유나린의 PC에서 관련 정보를 찾았습니다.

AI 전지인이 제안한 곳의 명단을 보여주었다.

나강인이 지현선에게 말했다.

“지 실장님. 물어볼 게 있는데요.”

지현선은 긴장했다.

“네? 네! 저따위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면 좋겠네요.”

나강인이 지현선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왜 말을 그렇게 어색하게 하실까?”

“그, 그게 아니라요. 뭘 물어보시려고….”

“카멜 바이오 연구소, 클라우드 오션 연구소, 유나이티드 제네릭 재단, 퍼시픽 피스 재단. 이 넷 중에 아는 곳이 있습니까?”

지현선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아는 이야기여서다.

“그럼요. 카멜 바이오는 미국 제약 연구소이고요. 클라우드 오션은 유럽의 생명공학 연구소예요. 유나이티드 제네릭은 제약 관련 국제 재단이에요.”

“퍼시픽 피스는요?”

“죄송해요. 거기는 저도 잘….”

“그렇단 말이지요.”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지시했다.

“네 곳에서 유 박사에게 온 이메일이 진짜 그곳에서 발송됐는지 확인해.”

잠시 후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카멜 바이오, 클라우드 오션, 유나이티드 제네릭은 정상적인 이메일입니다.

“퍼시픽 피스는?”

- 이메일 발신자 정보가 같은 방법으로 조작되어 있습니다. 노트북을 사용했으며, 공공 와이파이로 접속해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바이오 전문가도 모르는 재단에, 이메일을 보낸 방식이 똑같잖아. 이놈이네.”

- 높은 확률로 이놈입니다.

“만약 이놈이 유나린 박사와 수연이를 납치했다면, 당연히 국내에 현장팀이 있을 거야.”

문제는 위치다. 나강인이 지시했다.

“이 PC에 해킹을 시도한 놈들을 전부 추적해. 그중에 이메일을 보낸 놈과 한패를 찾아. 할 수 있지?”

- 제가 지난번에 이 컴퓨터의 보안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일반 해커는 제가 보강한 방화벽을 뚫을 수 없습니다.

나강인이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 만약을 대비해서 AI 전지인이 이 컴퓨터와 연구용 컴퓨터의 방화벽을 강화했다.

- 그래서 방화벽을 두들겨본 놈은 다 추적할 수 있습니다. 이미 추적 중입니다.

“지인아. 너만 믿는다.”

잠시 후에 AI 전지인이 보고를 추가했다.

- 이메일을 보낼 때 사용한 공공 와이파이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시도한 해킹을 찾아냈습니다.

“그놈들을 역으로 해킹해.”

- 적의 장비가 꺼져 있습니다.

“젠장. 꼼꼼한 놈이네.”

- 해킹에 사용한 장비의 위치는 확인했습니다.

지현선은 나강인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한 사람이 저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게 가능한가?’

그녀는 살면서 똑똑한 사람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나강인처럼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한국대를 나왔으면, 내가 아는 사람하고 연결될지도 몰라. 전공이 뭘까?’

잘하는 게 너무 많아서 짐작이 가지 않았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중간에서 다리를….’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신은하가 얼른 물었다.

“뭘 좀 알아냈어?”

“의심 가는 장소가 있는데, 가봐야 알아.”

“당장 가자!”

지현선이 물었다.

“잠깐만요. 그 장소를 어떻게 찾아내셨어요?”

“이 PC에서 찾아낸 몇 가지 단서를 교차 검증해서 수상한 이메일의 발신자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네? 이메일인데 발신자 위치를 어떻게….”

“해킹을 시도한 놈이 여럿 있더군요. 그중에 이메일을 보낸 놈과 가까운 곳에 있는 놈을 찾아냈죠.”

지현선이 눈을 껌뻑였다. 설명이 너무 간단해서 어떻게 했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가 해킹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그게 보통 그렇게 금방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신은하가 자랑했다.

“강인 오빠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할 수 있죠.”

“보통 사람이 아니란 말이 무슨….”

“특별한 사람이라고요.”

“아….”

나강인이 대학원생에게 말했다.

“유 박사님은 내가 찾아볼 텐데, 혹시 연락되거나 봤다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전화해요. 단순한 헤프닝일 수도 있으니까.”

“네!”

나강인은 연구실을 나간 후에 총권도 수련생인 경찰 소속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순기가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헉! 나 사범님. 이번 주 수련은 얼마나 지옥 같길래 미리 전화를….

“유나린 박사 문제로 전화했습니다.”

- 네? 유 박사님이 왜….

“아직도 정부의 특별관리대상입니까?”

- 아니요. 유 박사님은 특별관리대상에서 해제됐습니다.

“그러면 유나린 박사가 납치돼도 경찰이 바로 알 수는 없겠군요.”

- 그렇죠. 마포 사건 때는 특별관리대상이라서 비상 신호를…. 헉! 설마 유 박사님이 납치됐습니까?

“아직 모릅니다만, 그럴 가능성이 있어서 제가 찾는 중입니다.”

- 나 사범님이 그렇게 판단하셨으면 사실일 확률이 높겠지요. 제가 움직이겠습니다. 일단 위치추적 협조 요청부터 하겠습니다.

“유 박사님 휴대폰의 마지막 접속 지점을 알면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그리고 유 박사님과 같이 있던 사람의 전화번호를 보낼 테니까 그것도 추적해 주시죠.”

- 알겠습니다. 다른 건 또 도와드릴 게 있습니까?

“블러드 아이스라고 아십니까?”

대답이 곧바로 나왔다.

- 어? 그건 신종 마약인데요?

“그 마약에 특이한 점이 있습니까?”

- 저는 잘 모르지만, 알 만한 녀석이 있습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통화가 끝난 후에 신은하가 물었다.

“단순한 헤프닝일 수 있다더니, 아닌 거야?”

“아닐 경우를 대비하는 거야.”

지현선도 물었다.

“잠깐만요. 정부 특별관리대상이라니요? 그게 전화 한 통으로 바로 알 수 있는 거였어요?”

신은하가 대신 대답했다.

“강인 오빠는 수사기관 쪽에 아는 사람이 좀 있어요.”

“과학자가 왜 수사기관에 그런 인맥이….”

나강인은 한국대학교에 있는 권수연의 연구실도 찾아가 박지혁을 만났다.

“그 르네상스 미술전에 관해 수연이가 이전에 말한 적이 있습니까?”

연구실 후배 박지혁이 대답했다.

“아니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을 겁니다. 유나린 교수님의 연락을 받고 나서, 좋은 전시회가 있다고 저한테도 가자고 했으니까요.”

“같이 안 간 이유는요?”

“실험 데이터를 확인할 게 있어서요. 그런데 왜….”

“별것 아닙니다.”

나강인이 그 연구실을 나온 후에 작게 말했다.

“수연이는 적의 타깃이 아니야.”

- 연구의 가치는 권수연의 이라미드 태양전지가 훨씬 더 높습니다.

“그런데 그걸 아는 건 우리뿐이지. 수연이가 단순히 말려든 것뿐이라면, 적의 목적은 역시 블러드 아이스인가?”

-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박순기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강인이 전화를 받았다.

“뭔가 알아냈습니까?”

- 마지막으로 위치가 추적된 장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유나린 박사님과 같이 알아봐 달라고 한 번호 말입니다. 같은 장소에서 휴대폰 신호가 끊겼습니다.

“그 지역 CCTV 자료를 좀 보내주시죠.”

- 지금 자료 협조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들어오는 대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블러드 아이스 말입니다.

“정보가 있습니까?”

- 이건 확실한 게 아니라 떠도는 소문인데….

“뭐든 괜찮습니다.”

- 슈퍼 솔져 프로젝트의 실패한 결과물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강인은 멈칫했다.

그는 군용 신체 강화 시술을 받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갖고 있다. 게다가 그의 소속은 지구연합 전략특수군이다.

“슈퍼 솔져 프로젝트가 뭐지요?”

- 과거 냉전 시대에 어느 국가에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병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더군요. 물론 실패했는데, 그때 개발된 약물이 블러드 아이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거는 있는 겁니까?”

- 그냥 이쪽 세계에 떠도는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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