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75화 (275/411)

275. 추적

총권도 수련생 박순기는 블러드 아이스가 과거 냉전 시대 슈퍼 솔저 프로젝트의 실패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 정보의 신뢰도는 도시 전설 수준으로 낮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지구연합 전략특수군 소속인 나강인에게는 그 말이 도시 전설로 들리지 않았다.

통화를 마친 후에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블러드 아이스가 지구연합군의 군용 신체 강화 시술에 사용되냐?”

AI 전지인은 단호했다.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검증된 약만 써도 위험한 시술입니다. 부작용이 심한 마약을 그 시술에 쓰면 그냥 죽습니다.

“그 시술에 무슨 약을 썼는지는 너도 모르잖아.”

- 위험한 마약을 쓰면 안 된다는 건 상식입니다.

“우리 지인이가 상식이 있구나.”

-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인터넷을 많이 한 거겠지. 어쨌든.”

나강인이 다른 걸 물었다.

“그럼 블러드 아이스가 슈퍼 솔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냐?”

- 중독시키면 공포를 모르고 통증도 제대로 못 느끼면서 날뛰는 버서커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버서커? 효과가 있긴 있구나?”

- 대신에 중독된 병사는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집니다. 그래서 지구연합군에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럼?”

- 테러리스트나 범죄조직에서 사용합니다.

나강인이 혀를 찼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약을 쓰는 놈들은 비슷하구나.”

박순기가 유나린과 권수연의 스마트폰 신호가 끊긴 곳의 주소를 보내주었다.

나강인이 문자 메시지로 날아온 주소를 확인하며 말했다.

“여기부터 들렀다가 해킹이 시도된 곳으로 가자.”

- 주소를 확인했습니다. 떨거지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강인이 신은하에게 말했다.

“넌 집에 가라. 아니면 회사로 가든지.”

“응? 왜? 사람들을 찾을 때까지 계속 같이 조사해야지.”

“이제부터는 경찰과 협조해서 움직일 거야. 네가 말려들면 너만 곤란해져.”

“잘됐네! 형사님들이 오면 더 안전해지잖아. 그러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 가즈아!”

“어…. 그래. 네 고집을 누가 꺾겠냐.”

- 떨거지 2호라도 보내십시오.

나강인이 지현선에게 말했다.

“지 실장님은 가셔도 됩니다. 확인이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할 테니까 전화 꼭 받아요.”

“네? 네?”

그녀가 신은하와 나강인을 번갈아 보다가 손을 들었다.

“괜찮으시면 저도 같이…. 제가 도와드릴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음…. 나중에 내 탓 하기 없기입니다.”

나강인은 두 사람과 같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운전은 차의 주인인 나강인이 했다.

AI 전지인이 물었다.

- 박순기와 같이 움직이실 겁니까?

“아니. 지금은 따로 움직이면서 조사해야 유 박사님과 수연이를 더 빨리 찾지.”

***

유나린과 권수연은 의자에 묶여 있었다.

권수연이 사과했다.

“유 교수님. 죄송해요.”

유나린이 겁먹은 목소리로 도로 물었다.

“뭐, 뭐가 죄송해? 혹시 네가 저놈들하고 한패….”

“저놈들이 저를 납치하다가 유 교수님까지 말려든 거니까요.”

“아. 그 이야기구나. 응? 너를 왜 납치하는데?”

“우리 집이 좀 많이 부자거든요. 분명히 몸값을 노리는 거예요.”

“그런 거야?”

“아마도요?”

유나린이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그럼 너희 부모님이 몸값을 내주실까?”

“당연하죠. 딸인데.”

“나까지 2인분을?”

“네?”

“난 지금 거지거든?”

“어…. 주, 주시겠죠?”

실내가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두 사람은 다시 바짝 긴장했다.

하얀색 가면을 쓴 남자가 들어와 두 사람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 뒤에는 권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검은색 가면을 썼다.

백가면이 말했다.

“유나린 박사. 이렇게 만나니 반갑군.”

유나린은 바짝 긴장했다.

“나, 나? 나를 알아요?”

“모르면 이렇게 공들여서 납치할 리가 있나?”

유나린이 권수연을 돌아보았다.

“목적이 너라며?”

당황한 권수연이 다급히 물었다.

“그럼 난 왜 납치한 거야!”

백가면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나한테 반말을 할 상황이 아닐 텐데? 내가 기분이 상하면 별 가치도 없는 넌 내 부하들 총에 죽어.”

“난 왜 납치한 건데요!”

“넌 그냥 유나린 박사와 함께 있다가 딸려온 덤이지.”

권수연이 유나린에게 말했다.

“교수님 때문이라는데요? 그럼 몸값 대신 내주는 건 없던 이야기로….”

“으응?”

“몸값이 목적이 아닌 것 같아요. 유 교수님은 돈이 없잖아요.”

“몸값이 아니면….”

유나린은 화들짝 놀랐다.

“내, 내 몸?”

“설마요.”

“아니야? 근데 설마가 무슨 뜻이야?”

“어….”

백가면이 웃었다.

“하하하. 유나린 박사. 생각보다 여유가 있군.”

유나린이 숨을 토해냈다. 겁은 먹었지만 머리는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괜찮은 결론도 하나 나왔다.

“내가 목적이라는 건 나한테 원하는 게 있다는 소리고, 내가 가진 건 능력밖에 없으니까, 죽이진 않을 거잖아요.”

“흐흐. 이거 이야기가 쉽겠어.”

유나린이 협상을 걸었다.

“그럼 수연이는 보내주면 안 돼요?”

“그거야 유 박사가 하기에 달렸지.”

“내 기존 연구는 이미 실패했고, 새로 하는 연구는 아직 완성된 게 아닌데 뭘 하라는 거예요?”

백가면이 피식 웃었다.

“퍼시픽 피스 재단 기억하나?”

“앗! 설마!”

권수연이 다급히 물었다.

“거기가 어딘데요?”

유나린이 대답했다.

“어딘지는 나도 몰라. 그런데 블러드 아이스를 업그레이드해달라고 제안한 곳 중 하나야.”

“블러드 아이스가 뭔데요?”

“신종 마약.”

권수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히익! 그, 그럼 마약조직….”

백가면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오해가 있군. 내가 유나린 박사에게 원하는 건 그 마약이 아니야. 블러드 아이스는 우리도 만들 수 있으니까.”

권수연이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업그레이드해달라면서요! 마약을 업그레이드하면 더 강한 마약이 되잖아요!”

“무식하긴.”

“나 안 무식한데. 박사 딸 건데.”

백가면이 유나린을 돌아보았다.

“유 박사. 슈퍼 솔져 프로젝트라고 아나?”

“아니. 몰라요.”

“냉전 시대에 연구되다가, 냉전이 끝나면서 폐기된 프로젝트지. 머리는 공포를 모르고 신체 능력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한 슈퍼 병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지.”

“그런 게 될 리가 있어요?”

“냉전 시대의 기술력으로도 절반은 성공했어. 그런 효과가 있는 약이 나왔으니까. 그게 블러드 아이스지.”

“그래 봤자 마약이잖아요.”

“맞아. 문제는 부작용이지. 투약 초반엔 슈퍼 솔져 효과가 약하고, 원하는 효과가 나올 때쯤이면 사람이 마약중독 폐인이 돼. 그래서 그때는 실패로 판정받고 폐기됐지.”

“개선할 방법이 없으니까 폐기된 거예요.”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최근에 그 폐기된 제조법이 유출됐어. 전 세계 여러 조직에서 그 제조법을 이용해 약을 만들어 팔았지.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운데도 선호도가 높아.”

“누가 그런 짓을 한 거죠?”

백가면이 히죽 웃었다.

“글쎄. 누굴까?”

그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중요한 건 누가 유출했냐가 아니야. 정말 많은 사람이 블러드 아이스를 스스로 자기 몸에 집어넣고 있잖아. 지금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에도 실험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체 실험 데이터가 쌓이고 있지.”

“그 데이터를 이용해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건가요?”

“그렇지. 냉전 시대의 기술로도 블러드 아이스 단계까지는 만들었잖아? 천재인 당신이 21세기의 기술로 연구한다면 실전에 쓸 수 있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지. 그러면 슈퍼 솔져를 만들 수 있어.”

유나린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 마약의 부작용을 없애는 건 불가능해요. 부작용이 없어지면 약효도 없어지니까요.”

“정말인가?”

“확실해요. 이미 검토해봤어요.”

백가면이 혀를 찼다.

“쯧. 아쉽군.”

권수연이 옆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너무 단호하게 말하지 마세요. 필요가 없으면 죽이겠다고 나오면 어떡해요?”

유나린이 얼른 말을 바꾸었다.

“세상에 확실한 게 어디 있겠어요? 다시 검토해볼게요!”

백가면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협조적으로 나오니까 참 좋잖아? 그런데 말이야. 단점을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도 있어.”

“무슨….”

“블러드 아이스로 공포를 모르고 힘이 세지려면 중증 중독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약을 너무 오래 해야 해. 그 과정에서 정신까지 피폐해지고 원래 목적을 잊게 된다고.”

“당연하잖아요. 마약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

“그래서 업그레이드를 해달라는 거잖아.”

“네?”

“중간 과정 없이 그 단계로 갈 수 있으면, 바로 쓸 수 있는 슈퍼 솔져가 생기지.”

“설마….”

백가면이 실실 웃었다.

“내가 차선책으로 원하는 건, 한 방에 중증 중독자가 되는 블러드 아이스 2.0이라고.”

유나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니까 부작용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강화하는 거지.”

그녀가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그런 건 절대로 만들 수 없어요!”

“오호. 조금 전하고는 반응이 다른데? 가능하다는 건가?”

“그런 건 안 해요! 연구를 시작하지도 않을 거예요!”

“유 박사는 블러드 아이스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니까 죽일 수 없는데 말이야.”

백가면이 옆에 묶여 있는 권수연을 보았다.

“저 아가씨의 목숨은 어떨까? 저 아가씨가 유 박사 대신 죽어도 고집을 부릴 건가?”

유나린이 소리를 빽 질렀다.

“나쁜 놈아! 수연이는 상관없잖아!”

“인질로서의 가치가 이렇게 큰데 왜 상관이 없어?”

백가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할 때까지 두 시간 주지. 두 시간 뒤에도 거절하면 저 아가씨는 죽어.”

백가면과 흑가면들이 그곳을 나갔다.

권수연이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유 교수님. 어떻게 해요?”

유나린이 심각한 표정으로 권수연을 보았다. 권수연이 죽게 놔둘 자신은 없다.

“마약을… 만들까?”

권수연은 반대했다.

“안돼요. 저 사람들 아무래도 테러리스트 같아요.”

“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런 약이 나오면, 말단 부하에게 먹이고 자살테러를 시킬 수 있잖아요. 세상이 지옥이 될 거예요. 그런 약은 만들면 안 돼요.”

유나린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럼 어떻게 하지?”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유나린이 눈을 반짝였다.

“내가 아는 분 중에 인질구출 전문가가 있어.”

“그분 실력이 좋아요?”

“세계 최고야. 마포에서는 그분 혼자서 악당들을 다 처리했어.”

“아. 전에 이야기하셨던 그분이요?”

“응. 내가 실종됐다는 게 알려지면 그분이 나설 거야.”

“하지만 우리는 오늘 르네상스 미술전에 갔다가 술 마시기로 했잖아요. 우리 둘 다 오늘은 놀겠다고 말하고 나왔는데, 우리가 납치된 걸 누가 알아요?”

“아….”

“그리고 교수님은 이제 정부의 특별관리대상이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아….”

권수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전 이제 죽나요?”

“연구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끌어봐야겠지? 언젠가는 우리가 실종된 게 알려질 테니까.”

“그게 통할까요?”

“그, 글쎄?”

“저 불치병에 걸려서 죽어가다가 겨우 건강해졌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아요. 살려주세요.”

***

나강인은 유나린과 권수연의 휴대폰 신호가 끊긴 곳으로 이동했다.

그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학교에는 CCTV도 있고 목격자도 많아. 놈들은 그곳에서 유나린 박사를 몰래 납치할 자신이 없으니까 학교 밖으로 유인했겠지.”

- 용의주도한 놈들입니다.

“여기는 한국대학교에서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야. 여기 매복하고 있었을 거야.”

- 여기서 납치하려면 일단 차를 세우게 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접촉사고를 냈거나, 누가 다친 척하고 도와달라고 했거나, 차로 길을 막고 시비를 걸었거나, 아니면 경찰인 척했거나.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야. 여기서 납치했다는 게 중요하지.”

나강인이 주변을 보았다.

“차만 세울 수 있으면 사람을 납치하기 쉬운 곳을 골랐네. 문제는 여기는 경찰 교통 CCTV나 공공 보안 CCTV가 없다는 건데.”

나강인의 방금 한 말은 신은하에게도 들렸다. 그녀가 옆에서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

나강인이 주변을 둘러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이 위치를 촬영하는 사설 CCTV는?”

AI 전지인이 지도를 띄우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가게에 화살표를 달았다.

- 저 술집에서 외부 CCTV를 발견했습니다.

“저 위치에서 여기가 찍혀? 가게가 직접 보이지는 않는데?”

- 이곳은 장애물에 가려져 있어 촬영할 수 없지만, 주변 상황은 촬영됐을 겁니다. 외부 CCTV가 있는 곳은 저곳이 유일합니다.

나강인이 신은하에게 말했다.

“너는 지 실장님하고 차에서 대기해. 내가 근처 가게에 가서 조사하고 올 테니까.”

“나도 같이….”

“기다려.”

“쳇. 알았어.”

나강인이 차를 그 술집 근처에 주차한 후에 혼자만 내려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시간이 일러 손님은 없었다.

술집 주인이 물었다.

“한 분이세요?”

“아닙니다. 사정이 있어서 가게 외부의 CCTV를 좀 보고 싶은데요.”

술집 주인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경찰….”

“경찰은 아닙니다.”

“그럼 그건 좀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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