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76화 (276/411)

276. 추적 II

나강인의 요청을 술집 주인이 난감한 얼굴로 거절했다.

“여기가 영업하는 가게라서 남의 복잡한 문제에 얽히면 우리 가게만 피해를 봅니다. 그리고 경찰도 아닌 사람을 어떻게 믿고 CCTV를 보여줍니까? 무슨 일에 쓸 줄도 모르는데.”

“음….”

AI 전지인이 제안했다.

-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방법이 없으면 잠시 제압하고 확인하는 방안도 고려하십시오.

“야. 그건 최후의 수단이지.”

- 상대를 매수할 자금은 없습니다.

나강인이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누가 매수한다고….”

벽에 걸린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은하?’

신은하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 벽에 걸려 있었다.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라 홍보용으로 나간 사진이었다. 그런데 사진 속 모습과 배경이 눈에 익었다.

나강인이 그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사진은 뭡니까?”

술집 주인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가 밝아진 표정으로 자랑했다.

“영화사에서 나온 ‘운명의 창’ 한정판 사진입니다. 싸인도 인쇄가 아니라 진짜로 한 겁니다. 아무나 구할 수 없는 건데 제가 신은하 씨의 찐팬이라서 경쟁을 뚫고 어렵게 손에 넣었죠. 하하하.”

“아. 그러시구나.”

지금 가게 밖에 세워둔 차에는 신은하가 있다. 나강인이 가게 문을 열고 바깥쪽을 향해 손짓했다.

잠시 후에 신은하가 지현선과 함께 가게로 들어왔다. 신은하는 마스크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술집 주인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 일행이 계셨군요. 그래도 CCTV는 곤란합니다.”

그녀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밖에서 대기하라더니?”

“이분이 네 팬인데, CCTV를 보여줄 수 없다고 하시네?”

그녀가 상황을 눈치채고 안경과 마스크를 벗었다.

“어머. 내 팬이시면 우리 일에 협조 안 하실 리가 없는데?”

술집 주인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헉!”

신은하가 팬 관리용 미소를 지었다.

“어머어. 안녕하세요. 신은하예요.”

“안녕합니다! 아이고. 귀한 분이 오셨는데 어디 자리라도….”

“저희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요. CCTV 좀 볼 수 있을까요?”

“그야 당연….”

술집 주인이 나강인을 보며 다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은하 씨께 보여드리는 건 괜찮은데, 저분은 좀….”

“저는 되는데 왜 강인 오빠는 안 돼요?”

술집 주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최근에 불륜 사건 때문에 CCTV를 보여줬다가, 상대편이 가게에 와서 왜 그걸 보여줬냐면서 다 때려 부수는 바람에 한동안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어머나. 뭐 그런 놈이 있어요?”

“놈이 아니라 년이….”

“아….”

“그래서 누가 CCTV를 보자고 하면 걱정부터 돼서요.”

“이분은 그래서 오신 게 아니에요. 운명의 창 무술감독님이시거든요.”

술집 주인의 눈이 커졌다.

“헉! 그 명품 액션을 만드신 분?”

나강인이 물었다.

“저를 아십니까?”

“영화를 봤으니까요. 진짜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아니, 영광은 좀….”

“실례가 안 된다면 싸인 좀….”

“제가 싸인은 사정이 있어서 좀….”

술집 주인의 어깨가 살짝 처졌다.

“아….”

나강인이 제안했다.

“대신에 이 가게가 영화나 드라마에 배경으로 나올 수 있게 감독님이나 피디님에게 말을 해줄 수는 있습니다. 물론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요.”

술집 주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아이고! 그래 주시면 정말 고맙지요! 제가 진짜 그 불륜 사건 이후로 재수가 없어졌는지 장사가 안돼서, 광고지라도 돌릴까 하던 중입니다.”

“대신에 저도 CCTV 영상 좀 볼…. 아니지. 여기서 그걸 보고 있으면 영업에 방해될 테니까 파일만 복사해도 되겠습니까? 오늘 거로 두 시간 분량이면 됩니다.”

“그럼요. 당연히 해드려야죠. 그런데 그건 왜….”

이번엔 거부하려고 묻는 게 아니다. 술집 주인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혹시 그 영상을 영화 참고 자료로 쓰시려고요?”

“어…. 쓰일 날이 있을지도 모르죠.”

“당장 복사해드리겠습니다!”

나강인은 휴대폰 신호가 끊긴 시간을 기준으로 앞뒤 한 시간씩 영상을 복사했다.

그동안 신은하는 벽에 걸려 있는 사진에 추가 싸인을 했다. 하얀 A4용지에도 가게 이름과 함께 싸인을 남겼다. 그런 후에 나강인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 가게가 배경으로 나오게 말이라도 해준다는 거 말이야. 드라마는 이번 드라마 이야기지?”

“그렇지. 결정은 최 피디님이 하시겠지만.”

“그럼 영화는? 영화는 하는 거 없잖아.”

“손태민 감독님이 차기작을 같이 하자고 하시잖아. 그거 하게 되면 물어나 보려고.”

신은하가 눈을 반짝였다.

“손 감독님 영화 캐스팅 때는 나 좀 밀어주나? 그때도 주연 경쟁이 치열할 것 같은데.”

“난 힘 없다.”

“힘 있을 거 같은데! 힘 되게 셀 것 같은데!”

그들은 CCTV 파일을 USB 메모리에 복사한 후에 승용차로 돌아왔다.

나강인이 노트북을 켜고 USB 메모리를 꽂았다. 그런 후에 영상을 32배속으로 재생했다.

지구뷰티 연구소의 지현선이 뒷좌석에서 그 화면을 보며 물었다.

“영상을 그렇게 빨리 돌려보면 뭐가 뭔지 구분이 돼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찾았습니다.

나강인이 화면을 정지시켰다.

“내가 눈이 손만큼 빨라서.”

- 제가 빠른 겁니다.

나강인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유 박사님은 수연이 차를 타고 왔구나.”

신은하가 물었다.

“이 차가 그 친구분 차야? 박사과정 학생이라고 안 했어? 차가 학생이 타기엔 좀 비싸 보이는데? 따로 일하는 게 있나?”

“집이 부자야.”

“아하.”

“그래서 수연이가 적의 목표일 가능성도 확인했는데, 아까 수연이 연구실에서 들어보니 아니더라고.”

나강인이 영상을 조금 더 넘겼다.

“여기를 봐. 수연이 차가 CCTV 사각지대로 들어갔다가, 2분 후에 이곳을 벗어났어. 이 2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조금 멀리서 찍힌 데다가 차 유리의 틴팅도 진해서 영상만으로는 내부에 탄 사람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차량의 움직임이 2분 전 영상과 조금 다릅니다. 탑승 인원이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은하가 물었다.

“2분 동안은 아무것도 안 찍혔는데 그럼 이제 어떻게 해?”

“그 사이에 사람이 더 탔어. 아는 사람을 태운 게 아니라면 범인이 탄 거겠지.”

나강인이 총권도 수련생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 후에 이곳 상황을 설명했다.

“차량 번호와 사진을 보내드릴 테니까 수배 좀 해주시죠.”

- 바로 추적하겠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의심 가는 장소가 있어서 거기 가보려고요.”

- 저도 갈까요?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로 처리해주셔야 하는 일이 많으니까, 확실해질 때까지는 계속 분산해서 움직이는 게 낫습니다. 그 장소는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 사범님이 직접 가시니까…. 알겠습니다.

나강인이 차를 몰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신은하가 물었다.

“이번엔 어디 가는 거야?”

“유 박사님의 컴퓨터에 해킹을 시도한 놈은 한둘이 아니야. 워낙 유명한 박사님이니까 그런 거겠지. 그걸 다 역추적했더니, 르네상스 미술전 홍보 메일을 보낸 놈과 가까운 장소에서 해킹한 놈이 있더라.”

신은하가 손뼉을 쳤다.

“아까 말한 그거구나? 역시 화이트 해커! 그래서 그다음엔?”

“지금은 해킹 장비가 꺼져 있는데, 그 해커가 있었던 곳이 우리가 지금 가는.”

나강인이 앞쪽에 보이는 2층짜리 낡은 건물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야.”

뒷좌석의 지현선은 그 건물을 보고 혼잣말을 했다.

“아까 연구실에서 잠깐 조사했을 뿐인데, 진짜로 해커를 역추적해서 위치까지 알아냈어.”

신은하가 대신 자랑했다.

“우리 강인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요. 막 전문기관에서도 도와달라고 한다니까요?”

“아니, 그래도, 전문 분야가 많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

나강인이 건물 근처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2층 사무실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신은하가 따라와서 물었다.

“뭐야? 아무도 없는데?”

“해커의 장비가 꺼져 있는 걸 확인했을 때부터 예상한 상황이야. 여기서 해킹을 하다가 원래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다 튄 거지.”

“그럼 단서가 끊긴 거야?”

“남은 흔적을 보면 짐을 갑자기 뺐어. 이곳이 맞는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걸 기반으로 다른 단서를 확인해야지.”

나강인이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의 휴대폰 신호가 끊긴 장소 근처에 있었던 모든 휴대폰 번호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여기 오기 전에 그 장소를 확인하고 CCTV 영상도 손에 넣었다.

박순기가 의문을 가졌다.

- 그렇게 찾으면 대상 번호가 너무 많을 텐데요?

“그리고 제가 지금 해커가 활동하다 빠져나간 곳에 있는데, 이 장소에 있었던 휴대폰 번호도 전부 다 필요합니다. 기간은….”

AI 전지인이 술집 외부 CCTV 영상에서 확인한 시각을 표시했다. 휴대폰 신호가 끊긴 시점과 비슷했다.

“휴대폰 신호가 끊긴 곳은 그때 기준으로 앞뒤 두 시간.”

유나린의 PC에 해킹이 시도된 날짜와 이메일을 받은 날짜도 보여주었다.

“여기는 지난 3일간의 기록이 필요합니다.”

- 어? 혹시 양쪽 리스트를 비교하시게요?

“예. 양쪽에서 동시에 사용된 폰을 찾아야죠. 겹치는 놈이 있을 겁니다.”

- 빨리 처리해야겠군요. 저 혼자 하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이런 일을 잘하는 곳에 연락하겠습니다.

“그런 곳이 있습니까?”

- 합수부가 있잖습니까?

“아. 거기는 여러 기관이 모인 곳이니까 이런 일은 처리가 빠르겠네요.”

- 제가 협조 요청하겠습니다.

***

합수부 간부가 입에서 불을 뿜었다.

“아니, 왜 또 우리인데!”

다른 간부도 외쳤다.

“도대체 왜 우리는 해산할 수가 없는 거야!”

경찰 소속 간부가 말했다.

“별거 아닐지도 모릅니다. 얼른 통화목록만 받아서 넘겨버리죠.”

다른 간부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항의했다.

“그동안 나강인이 우리와 엮인 일 중에 별것 아닌 사건이 얼마나 있었다고 그럽니까? 일단 넘어왔다 하면 대형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경찰을 통해서 들어온 요청이라고 편드시는 겁니까?”

“이럴 거면 또 나강인 혼자 다 해결하지 말고 우리 실적도 좀 챙겨 주…. 어? 잠깐만요. 이거 경찰 측을 통해서 들어온 요청이잖아요. 경찰은 실적 좀 챙기겠는데!”

“그래서 빨리 자료를 보내주자는 거였군요! 혼자만 이러기 있습니까?”

***

합수부 사람들은 불평은 많이 했지만 일은 순식간에 처리했다.

박순기가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 휴대폰이 끊긴 장소 주변의 공공 CCTV를 분석했습니다만, 같은 번호의 차량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수연이의 차 번호판을 근처에서 바꿔치기했군요.”

- 저도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이놈들,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같은 차종을 추적해 보셨습니까?”

“그 차는 꽤 많이 팔렸고 색도 흔한 색입니다. 찾으려면 찾을 수는 있겠지만 오래 걸립니다.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휴대전화 리스트는요?”

- 합수부가 확보했습니다.

“그중에 중복되는 번호는요?”

- 합수부에서 두 위치의 접속번호 리스트를 검사 프로그램에 넣고 돌렸더니 같은 번호 열 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중 세 개가 지금은 꺼져 있습니다.

현대인이 휴대폰을 껴놓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상 휴대폰의 30%가 꺼져 있다면, 우연일 리가 없습니다. 아마 대포폰일 테고요. 그 세 대가 켜져 있었을 때의 모든 접속 위치를 분석해야 합니다.”

- 합수부에서 그 작업도 했습니다. 휴대폰 세 대가 마지막으로 켜졌을 때 각자 이동한 경로를 분석해서, 목적지가 어느 동네인지는 알아냈습니다. 다만, 도착하기 전에 꺼져서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상황보고를 하며 이동하다가 목적지 근처에서 휴대폰을 껐겠죠. 제가 거기로 가서 찾겠습니다. 위치를 보내주십시오.”

- 저도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합수부의 지원을 받기로 했으니까 저만 여기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빨리 오시죠. 그런데 합수부가 일을 많이 했네요?”

- 합수부도 남는 게 있어야죠.

박순기는 곧바로 주소를 보냈다.

나강인이 차를 출발시켰다. 신은하가 옆에서 물었다.

“찾았어?”

“놈들이 어느 동네로 갔는지 정도만.”

목적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박순기가 알려준 주소에 도착한 후에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지인아. 여기까지 오는 길에 공공 CCTV가 있었냐?”

-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놈들, 꼼꼼하네.”

신은하가 옆에서 물었다.

“여기는 집이랑 건물이 너무 많은데 이제 어떻게 해?”

“찾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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