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아지트
총권도 수련생 박순기가 나강인에게 말했다.
“나 사범님이 실내 전투를 누구보다 잘하시는 거야 수련생인 제가 너무 잘 아는데요. 그래도 제가 저 집에 같이 들어가면 더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수제자니까 저도 한몫할 수 있습니다.”
“수제자라는 의견에 반대할 사람을 네 명이나 아는데요?”
총권도 수련생은 다섯 명이다. 그 다섯 명은 서로 친구나 선후배 사이다.
“그쵸. 반대할 사람이 많죠. 저 말고는 다들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서요. 어쨌든 경찰 소속인 제가 같이 들어가야 절차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수습하기 좋잖습니까?”
“음…. 그러시죠. 백업을 맡기겠습니다.”
박순기가 활짝 웃었다.
“제가 제일 먼저 총권도로 실전을 치르는군요! 역시 수제자!”
“그건 나중에 다른 분들 의견도 들어보고요.”
***
신은하는 지현선을 데리고 나강인의 차 안으로 들어갔다.
신은하가 시트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이렇게 누워 있어요. 유리는 방탄이 아니니까 이래야 총알이 날아와도 안 맞아요.”
지구뷰티 연구소 실장 지현선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기요.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면요. 경찰이 아니라 나강인 씨가 작전을 주도하는 거 같은데요?”
“맞아요.”
“안 이상하세요?”
신은하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왜 이상해요?”
“네?”
“이런 일 자주 있어요. 그리고 의자 젖히고 누우라니까요? 이 시트는 뒤로 완전히 젖히면 날개가 옆으로 펴지면서 평평해져요. 그러면 침대처럼 되게 편해요.”
지현선이 신은하의 시트를 보았다.
“어머. 진짜 그렇게 되네요? 이런 시트는 어디서 팔아요?”
“안 팔아요. 강인 오빠가 직접 개조했대요.”
지현선이 차에서 뒤로 누우며 혼잣말을 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신은하가 한마디 했다.
“정체가 뭐든 남의 거에 너무 관심 두지 말아요.”
***
박순기와 합수부 형사는 권총을 소지하고 이곳에 왔다.
박순기가 물었다.
“그런데 나 사범님. 저 안에 있는 놈이 반자동권총을 가지고 있다면서요. 그럼 나 사범님이 제 권총을 빌려….”
“제가 그 총을 쏘면, 이 사건이 잘 해결돼도 뒷수습이 안 될 텐데요?”
합수부 형사도 한마디 했다.
“순기야. 그런 일이 생기면 넌 오늘부로 실업자 되는 거야.”
박순기가 말을 바꾸었다.
“알죠. 제 총을 쓰지 않아도 괜찮냐고 확인 삼아 물어본 겁니다. 빈손으로 들어가시니까 좀 미안해서요.”
나강인이 말했다.
“총은 필요한 상황이 오면 저놈 걸 빼앗아서 쓰겠습니다.”
“크으. 그거죠. 총권도는 역시 총을 빼앗아 써야 제맛이죠.”
“그런데 어지간하면 총 없이 해결하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찾는 두 사람이 저 집에 없다면, 여기서 총소리가 나서는 곤란하니까요.”
“그럼 제가 백업은 확실히 하겠습니다.”
박순기는 나강인의 후방 경계와 지원을 맡았다.
합수부 형사는 밖에 남기로 했다.
“작전 중간에 다른 놈들이 나타나면 제가 밖에서 막고, 우리 쪽 지원이 오면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합수부 형사와 박순기는 이미 지원 요청을 했다. 지원팀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뿐이다.
나강인이 말했다.
“제가 먼저 진입합니다. 1분 후에 들어오시죠.”
그가 단독주택의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합수부 형사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사람이 담을 넘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네. 마치 고양이가 넘는 것 같아. 순기야. 너도 저렇게 할 수 있냐?”
“설마요.”
“왜? 너도 총권도를 배운다며. 요즘 네 실력이 장난 아니게 늘었다고 소문났더라. 그래서 교관도 하는 거잖아.”
“전 아직 병아리입니다. 삐약. 삐약. 병아리라서 약해요.”
나강인은 단독주택의 담장을 넘자마자 거실 창문 옆으로 이동해 집안에서 들리는 소리부터 확인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2명의 소음을 감지했습니다.
사람이 걸어 다닐 때는 소리가 난다. 과자봉지 속의 바삭한 과자라도 집어 먹으면 소리가 더 잘 난다.
AI 전지인은 그런 소리를 모아 벽 너머에 있는 적의 위치를 계산했다. 그렇게 알아낸 지점에 사람 모습의 3D 홀로그램을 띄웠다.
AI 전지인은 다른 것도 홀로그램으로 표현했다. TV나 냉장고처럼 소음을 내는 것은 그 위치에 사물을 그렸다.
하지만 소음이 없는 건 표시되지 않았다.
홀로그램 덕분에 마치 벽 너머가 투시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AI 전지인은 거기에 더해서 집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태의 작은 지도도 띄웠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미니맵에 인질들 위치가 안 나온다.”
- 저 두 명 외에 다른 사람이 내는 소음은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집 안에 없나?”
- 최악의 상황이라면 소음이 발생하지 않아 감지할 수 없습니다.
AI 전지인이 말한 최악의 상황은 인질이 이미 사망한 경우다.
“아직은 괜찮을 거야. 연구 능력이 필요해서 납치했을 테니까.”
- 마취제로 기절한 상태라면 상황에 따라 감지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건 가능성이 있지.”
박순기가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1분이 지났다. 그가 합수부 형사에게 말했다.
“저도 들어갑니다.”
그는 담장을 잡고 턱걸이를 하듯이 몸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눈만 담장 위로 올려 안쪽 상황을 확인한 후에 가볍게 넘어갔다. 움직임이 부드러웠다. 소리가 나긴 했지만 크지 않았다.
합수부 형사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게 어딜 봐서 병아리야.”
박순기가 담장을 넘어 나강인에게 다가왔다.
나강인이 손짓을 하며 속삭였다.
“안에 두 명이 있습니다. 저기 하나. 저기 하나.”
“인질은요?”
“파악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어느 놈을 맡을까요?”
“총소리가 나면 곤란하니까 처음 계획대로 백업을 맡아요.”
“아. 예. 그럼 문은 어떻게 여시려고….”
“부술 겁니다. 뒷수습은 맡기겠습니다.”
박순기가 씩 웃었다.
“뒷수습은 합수부가 하겠죠. 거기가 그런 거 잘하기로 유명합니다.”
나강인이 손짓했다.
박순기가 뒤로 물러났다.
나강인은 가죽장갑을 낀 손을 거실 유리창에 댔다.
“지인아. 한 방에 들어가서 바로 처리한다.”
- 최적의 동선을 제시하겠습니다.
나강인이 두 손에 힘을 콱 주었다.
대형 유리창이 박살 나면서 하얗게 부서져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부서지는 유리가 아래로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강인이 안으로 들어갔다.
오른쪽에 있던 적은 TV를 보고 있다가 유리가 박살 나는 소리에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나강인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손은 주머니에 넣었다.
그 손을 빼기도 전에 나강인이 그놈을 덮쳤다. 그는 적의 머리를 콱 잡아 탁자에 내리찍었다.
“켁!”
죽지 않을 정도로 손의 힘을 줄여서 찍었지만, 그렇다고 멀쩡할 정도로 살살 찍지도 않았다.
적의 이마가 탁자를 쾅 소리가 나게 찍고 뒤로 튕겼다. 나강인이 적의 가슴을 손으로 거칠게 밀었다.
그의 손짓을 따라 적이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가 아래로 미끄러졌다. 적은 엉덩이는 바닥에, 등은 벽에 기대고 머리를 푹 숙인 상태로 기절했다.
부엌 쪽에 있던 적은 거실보다 반응이 한 발 느렸다. 그는 허둥지둥 권총을 뽑았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보고했다.
- 사전 정찰에서 감지한 총기 조작 소음과 권총의 타입이 일치합니다.
거실에 있던 놈을 두들기는 데 쓴 탁자 위에는 유리 재떨이가 있었다. 재떨이에는 꽁초가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나강인이 재떨이를 잡아 적을 향해 던졌다. 고속으로 날아간 유리 재떨이가 적의 손을 때리고 옆으로 날아갔다. 꽁초들이 파편처럼 흩어졌다.
권총은 적의 손에서 튕겨 나와 부엌 구석에 떨어졌다.
적은 부엌으로 물러나 떨어진 권총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강인이 적을 향해 달려갔다.
적은 권총을 포기하고 왼손을 허리춤에 넣었다. 그곳에 단검이 한 자루 있었다. 칼날은 물론이고 손잡이까지 얇아서 옷 속에 숨겨두면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았다.
적이 그 단검을 잡아 뽑으려 했다.
나강인이 적의 손을 오른손으로 콱 눌렀다. 단검이 도로 칼집으로 쑥 들어갔다.
나강인이 말했다.
“칼 뽑는 게 그렇게 느려서 험한 전장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냐?”
“누, 누구냐!”
“누구겠냐? 너 족치러 온 분이지.”
나강인의 칼을 잡은 적의 손목을 비틀었다.
“으아악!”
적의 오른손은 이미 재떨이에 맞아 부러졌다.
두 손이 무력화된 놈을 나강인이 질질 끌고 가서 거실 TV 앞에 던졌다. 적이 가지고 있던 칼은 나강인이 칼집째로 빼앗았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을 모두 제압했습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백업을 맡은 박순기가 안으로 뛰어들어와 권총을 좌우로 겨누었다.
“꼼짝 마!”
나강인이 말했다.
“끝났습니다.”
“네? 아니, 벌써요?”
“방문 다 열어서 누가 있는지 확인해요.”
“예!”
박순기가 잔뜩 경계하며 방문을 살살 열었다.
나강인이 추가로 말했다.
“적은 이놈들밖에 없으니까 인질이 있는지 확인해요.”
“아!”
박순기가 즉시 실내를 뛰어다니며 문을 활짝 열었다. 그는 화장실까지 열어본 후에 말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나강인이 TV 앞에 던져놓은 사람에게 다가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야. 납치한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실토하면 살려는 준다.”
두 손이 부러진 사람이 이죽댔다.
“크크. 경찰이 사람을 죽이겠다고? 그 말을 믿으라는….”
“넌 내가 경찰로 보이냐?”
“뭐?”
“경찰이면 이런 식으로 쳐들어오겠냐? 총을 가진 놈이 상대니까 방탄조끼 입고 들어와서 기관단총부터 들이밀지 않겠냐?”
“저, 저기 서 있는 저놈은 권총을 가지고 있잖아!”
“너도 가지고 있는 게 총인데, 우리도 권총 한 자루쯤 있어도 되잖아.”
“거, 거짓말….”
나강인이 방금 빼앗은 단검을 꺼냈다. 지금 제압된 놈이 가지고 있던 단검이었다. 길이가 짧고 칼날도 얇았지만, 날이 예리하게 갈려 있었다.
나강인이 그 칼을 적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경찰이 아니니까 이런 것도 할 수 있지.”
나강인이 그 칼을 등 뒤로 숨겼다가 오른팔을 옆으로 휙 뻗었다. 단검이 화살처럼 날아가 구석에 처박힌 놈의 가슴에 박혔다.
단검 손잡이가 적의 왼쪽 가슴 위에 삐죽 솟아 있는 게 확실히 보였다.
TV 앞에 주저앉아있던 놈은 그걸 보고 기겁했다.
“으, 으헉! 주, 죽였어!”
박순기도 당황했다.
“어?”
그는 당장 참견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왜지? 용병이나 해적들과 싸울 때도 총기를 난사하는 놈들을 죽이지 않고 잡은 분인데, 이미 적을 다 제압한 상황에서 왜 굳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나서지 않고 기다렸다.
나강인이 제압한 놈에게 경고했다.
“한 번만 묻는다. 인질들 어디 있어? 대답 못 하면 이번엔 너도 죽어.”
상대는 나강인이 경찰이 아니라는 말이 진짜라는 걸 깨달았다. 겁을 덜컥 집어먹은 놈이 덜덜 떨면서 말했다.
“차, 창고로 옮겼습니다! 거기에 장비가 있습니다! 여기는 그냥 아지트입니다!”
“창고 위치는?”
“여기서 가깝습니다! 저쪽 산 아래에 창고가 있습니다. 거기 있습니다!”
“주소 불러.”
적이 얼른 창고의 주소를 불렀다.
나강인이 스마트폰에 지도 어플을 띄우고 주소를 입력했다. 그런 후에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기 맞아?”
적이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내가 여기 가봤는데 거짓말이면, 돌아와서 널 저놈처럼 죽일 거야. 마지막 기회다. 여기 확실해?”
“확실히 거기입니다! 이번 일을 준비할 때 제가 거기 가서 짐을 날랐습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이 겁에 질려 있습니다. 진실을 말했을 확률이 95% 이상입니다.
나강인이 다른 걸 물었다.
“유나린 박사는 왜 납치했어?”
“두, 둘 중에 누구….”
“그게 중요하냐?”
“두목이 시켰습니다!”
“블러드 아이스 때문이냐?”
“예? 예! 두목이 그 여자가 그걸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음?”
나강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한테는 블러드 아이스를 만들기 위해서 납치한다고 했냐?”
“예. 그야 당연히….”
“너 잔챙이구나?”
“예?”
“그래서 여기나 지키고 있던 거네.”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순기에게 말했다.
“창고로 가야겠습니다. 이놈은 잔챙이이긴 한데 일단 체포하시죠. 이것도 다 실적인데.”
적의 표정이 변했다.
“체, 체포라니? 경찰이 아니라며! 날 속였어!”
박순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놈이 살인 현장을 목격했는데 그냥 체포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놈의 얼굴이 공포로 창백하게 질렸다.
“제발 경찰이라고 해주세요!”
나강인이 박순기를 돌아보며 물었다.
“살인 현장이라니요? 어디 시체라도 있습니까? 제 눈에는 안 보이는데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