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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280화 (280/411)

280. 트랩

나강인이 창고 담장을 넘어간 후로는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창가에서 손거울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모습도 외부에서는 관측할 수 없었다.

경특 팀장은 나강인이 만든 망원 야시경으로 창고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설마 붙잡힌 건 아니겠지요?”

합수부 형사가 대답했다.

“저분도 사람이니까 적의 머릿수가 예상보다 많거나 운이 나쁘면 잡힐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여러 번 같이 일해본 제 판단으로는, 설사 잡힌다 해도 이렇게 조용하게 잡히는 건 불가능합니다.”

경특 팀장이 야시경에서 눈을 떼고 합수부 형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싸우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겁니까?”

“총소리가 전쟁터처럼 요란하게 들리거나 뭔가 폭발이라도 해야지요.”

박순기가 작게 말했다.

“옵니다!”

경특 팀장이 얼른 다시 야시경을 확인했다. 나강인은 이미 담장을 뛰어넘어 바닥에 착지하고 있었다.

“휴우. 무사해 보이는군요.”

나강인이 담장을 넘은 후에 그들 쪽으로 달려왔다. 돌아올 때도 CCTV의 사각지대로만 움직였다.

나강인이 도착하자마자 박순기가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나린 박사님은요?”

“저 창고에는 유 박사님이나 수연이가 없습니다.”

경특 팀장이 얼른 물었다.

“외부에서만 안 보이는 거 아닙니까?”

“창문을 통해 내부를 확인했습니다”

박순기가 인상을 썼다.

“그럼 아까 잡은 그놈이 우릴 속인 건가요? 아무 데나 둘러댄 거라든지….”

“속인 건 아닙니다. 저기 있는 놈들은 그놈들과 한패가 맞습니다.”

경특 팀장이 물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두 사람이 묶여 있던 흔적을 발견했으니까요.”

“아….”

박순기가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요?”

“저놈들을 잡아서 두 사람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아내야죠. 이리로 모여보세요.”

나강인이 간이 테이블로 이동했다. 그는 그곳에서 종이에 볼펜으로 창고 내부 도면을 그렸다.

“우선 창고의 내부 구조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에 벽이 하나 있습니다. 벽을 기준으로 공간이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는 먼저 창고 내부의 벽을 쭉 그린 후에 내부의 사물을 추가로 그렸다.

“집기나 장비는 이런 형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나강인이 사물을 간단히 그리면 AI 전지인의 손의 움직임을 보정해 디테일한 부분까지 표현했다. 볼펜이 종이 위를 지나갈 때마다 내부 상황이 정밀하게 묘사됐다.

“한 놈은 여기 입구 쪽 의자에 있습니다.”

그는 창고의 안쪽도 그렸다. 대형 모니터의 4분할 화면과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도 그렸다.

“다른 놈은 여기서 CCTV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내에 버려진 쓰레기도 일일이 그렸다.

“음식 포장지의 양이 상당히 많습니다. 원래는 이곳에 더 많은 놈이 있었을 겁니다.”

박순기가 입구 쪽 남자의 옆구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 사범님. 여기 그린 이거, 또 총입니까?”

“한 놈이 권총을 갖고 있더군요. 아까 아지트에서 잡은 놈의 권총과 같은 모델입니다.”

박순기가 불평했다.

“젠장. 총이 남아도나. 요즘 왜 총을 가진 놈들이 자꾸 튀어나오지? 그 총이 다 어디서 들어온 거야?”

경특 팀장도 권총 그림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진압 작전이 시작되면 총을 쏘면서 저항하겠군요. 위험하겠지만, 그래도 인질이 없으니까 저놈들은 저희가 잡겠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대테러 전문가시니까 당연히 잘 잡으시겠죠. 알겠습니다.”

팀장이 도로 물었다.

“예? 테러요? 권총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여러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하면, 놈들이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박순기도 맞장구를 쳤다.

“제가 볼 때도 그렇습니다. 단순한 마약사범이 아닐 겁니다.”

“여차하면 쏴버려야겠군요.”

나강인이 말했다.

“납치된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가능하면 총소리를 안 내고 잡는 게 좋겠지요. 총을 든 놈만 먼저 조용히 잡으면 나머지는 쉬울 겁니다.”

나강인은 여기서는 인질구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형사팀장이 물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나강인이 종이를 한 장 더 펴서 창고 외부를 다시 그렸다.

“CCTV는 예상대로 반대편에 2개가 더 있었습니다. 그러면 모두 4개죠. 사각지대가 있긴 한데, 4분할 모니터를 보는 놈이 있어서 경특 팀이 단체로 진입하면 높은 확률로 들킵니다. 그러니까.”

나강인이 CCTV 중 하나에 X표를 쳤다.

“정문을 감시하는 CCTV를 고장 내야 합니다. 그것도 원거리에서 고장 내야죠.”

경특 팀장이 물었다.

“저격수가 쏴서 부수자는 겁니까?”

“지금은 밤이라 아무리 소음기를 써도 총소리가 들릴 겁니다. 탕 소리가 나고 CCTV가 꺼지면 놈들이 무슨 일인지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나강인이 경특 팀장에게 제안했다.

“옷을 갈아입을 때 보니까 차에 석궁이 있더군요. 그걸 좀 빌려주시죠.”

팀장이 도로 물었다.

“아. 석궁으로 부수게요?”

나강인이 그림 속 CCTV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있는 CCTV는 네 개 모두 감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걸 대놓고 부수면 다른 CCTV를 그쪽으로 돌려서 확인할 텐데, 그러면 우리 공격을 바로 눈치챌 겁니다.”

“그럼 석궁은 왜….”

“부순 게 아니라 저절로 고장 난 것처럼 만들어야죠.”

***

나강인이 빌린 석궁을 한참 떨어진 흙바닥에 쏘았다. 그렇게 세 발을 쏘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석궁의 화력과 정밀도, 예상 궤적을 확인했습니다.

나강인이 돌아섰다.

“영점은 잡았으니까, 이제 가시죠.”

나강인은 경특 대원 몇 명과 함께 움직였다. 그런데 CCTV에 걸리지 않으려면 정문 30m 밖에서 멈춰야 했다.

나강인이 그곳에서 CCTV를 석궁으로 조준했다. 화살촉은 나강인이 예리하게 갈아놓았다.

그가 작게 말했다.

“목표는 케이블.”

- 조준했습니다.

나강인이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발사음은 총소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반면에 화살은 고속으로 날아갔다.

AI 전지인이 화살의 예상 궤도를 표시했다. 석궁 화살이 정확히 그 궤도를 따라 날아갔다. 그 끝에는 CCTV가 있었다.

날카롭게 갈아놓은 화살촉이 CCTV에 연결된 케이블을 정확히 베고 지나갔다. 그러고도 힘이 남은 화살은 계속 날아가 사라졌다.

나강인이 짧게 말했다.

“지금!”

경특 대원들이 앞으로 뛰었다.

잠시 후에 다른 CCTV 카메라가 고장 난 카메라 쪽으로 천천히 회전했다.

그 카메라가 다 회전하기 전에 경특 대원들이 정문 근처 엄폐물로 이동해 몸을 숨겼다.

박기정도 그들과 같이 움직였다. 그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성공한 겁니까?”

AI 전지인이 말했다.

- CCTV의 감시 영역에 걸리기 전에 적의 시야에서 벗어났습니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안 들켰습니다.”

“휴우. 그럼 이제 창고에서 한 놈이 나오겠군요.”

“총을 가진 놈이 나올 겁니다.”

“눈치 못 챘겠지요?”

“저 CCTV의 전선은 내부는 잘렸는데 겉의 피복은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선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으니까, 다른 CCTV로 보면 겉모습은 멀쩡해 보일 겁니다. 그러면 고장이 났는지 확인하러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총을 가진 놈이 아니라 모니터를 보던 놈이 나오면요?”

“아직 CCTV가 3개나 더 있습니다. 그놈은 그걸 계속 봐야죠. 문 근처에 있는 놈이 나오는 게 정석입니다.”

잠시 후에 창고의 문이 열렸다. 거기서 남자가 나온 후에 정문으로 걸어가며 투덜댔다.

“그러니까 카메라는 국산을 사야지 왜…. 어?”

정문 근처로 와서 위를 올려다본 그의 눈에 CCTV의 케이블이 예리하게 잘려있는 게 보였다.

케이블의 내부에서 단선이 일어날 수는 있다. 그런데 외부 피복이 칼에 베인 것처럼 반쯤 잘려나가는 일은 저절로 일어날 수가 없다.

납치범이 옆구리의 권총을 잡으며 고개를 돌렸다.

“설마…. 헉!”

그가 돌아본 방향에서 경특 대원들이 기관단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총구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총을 뽑으면 즉시 벌집이 된다. 납치범도 그걸 알고 권총에서 손을 뗐다.

“사, 살….”

다른 경특 대원 세 명이 방금 그 남자가 나온 현관을 향해 뛰어갔다. 남자가 나오느라 문은 열려 있었다. 그들은 창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나강인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작전이 순조롭네요.”

***

창고에서 CCTV를 감시하던 놈은 정문 근처로 간 동료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왜 저러….”

갑자기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경특 대원 세 명이 뛰어오는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그는 당황해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

그는 총이 없다. 심지어 칼도 없다. 당황한 그가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안에 들어있는 자료가 경찰의 손에 넘어가면 처벌을 피할 수가 없다.

“파일을 다 밀어버려야….”

그가 마우스와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뛰어들어온 경특 대원이 총을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손 떼! 저항하면 쏜다!”

“히익!”

안에 있던 놈까지 체포한 후에 나강인이 박순기와 함께 창고 내부로 들어갔다.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도 뛰어왔다.

나강인은 안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확인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유나린 박사의 컴퓨터에 해킹을 시도한 장비를 찾았습니다.

“CCTV를 보던 놈이 해커였네. 비전투요원이라 여기 남아있는 거겠지. 이놈 해킹 실력이….”

- 하급입니다.

“놈들이 고만고만한 해커를 하나 끌어들였어. 그러면 이놈은 입이 가볍겠는데?”

나강인이 밖으로 나갔다. 두 놈 다 붙잡혀 있었다. 그는 먼저 해커에게 다가가 물었다.

“납치한 여자들은 어디 있냐?”

해커가 겁을 먹고 더듬거렸다.

“저, 저희는 그런 적이 없….”

“저쪽 아지트에 있던 놈들이 이미 다 불었다.”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있어. 아니면 우리가 이 창고 위치를 어떻게 알겠냐? 그리고 너 말이야. 거짓말 할 때마다 수사를 방해한 죄로 형량이 1년씩 늘어날 거야. 거기다 해킹 형량까지 더하면 교도소에 오래 있어야겠네? 기회는 한 번만 준다. 납치한 두 사람 지금 어디 있냐?”

나강인은 경찰이 아니다. 그가 한 말도 당연히 뻥이다. 그런데 해커는 그걸 모른다.

해커의 입에서 즉시 대답이 튀어나왔다.

“도, 도망쳤습니다! 협조하겠다고 하더니, 잠깐 방심한 사이에 도망쳤습니다!”

나강인이 이번에는 정문 앞에서 잡힌 놈에게 말했다.

“쟤가 너보다 형량이 짧겠네. 협조 잘하니까 쟤는 사정 좀 봐주라고 할 거거든.”

그놈도 급히 털어놓았다.

“두목이 직접 잡으러 갔습니다. 다른 녀석들도 다 따라갔습니다. 저희는 단순 가담자라서 여기 남아서 창고만 지킨 겁니다!”

다른 놈도 얼른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저희는 단순 가담자입니다! 일당 많이 준다고 해서 잠깐 도와준 겁니다!”

“지랄들을 해라. 이게 어떻게 일당받고 할 일이냐? 됐고, 그래서 두 사람은 어디로 갔어?”

“저 산으로…. 정확한 위치는 저도 모릅니다.”

“너희 따위가 알 정도면 벌써 상황이 끝났겠지.”

나강인이 산을 보며 물었다.

“추격한 놈들로부터 연락은?”

“잡아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나강인이 박순기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잡은 놈들의 대포폰에 있는 전화번호를 다 확인하고 위치를 추적해서, 이 근처 좌표가 나온 건 전부 알려주시죠.”

“어쩌시려고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제가 보유한 산악전 스킬에는 탐색과 이동, 은폐, 적 은폐 탐지 등이 있습니다.

나강인이 산을 가리켰다.

“산악전이 원래 제 특기입니다.”

박순기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산악전이 특기면 그동안 보여주신 다른 건 다 뭡니까?”

“어…. 특기가 많습니다.”

“아. 그건 그렇죠.”

박순기가 망설였다.

“근데 아시다시피 이건 경찰의 일입니다.”

“언제는 아니었습니까?”

“예전에 나 사범님이 국제 용병이나 해적과 싸울 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때는 나 사범님이 놈들이 일으킨 사건에 휘말린 건데, 이번엔…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참여하시는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총을 쓰면 문제가 된다?”

“예. 산에는 총기를 소지한 놈들이 있을 텐데, 그놈들을 쏴버리면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러니까.”

박순기가 권총을 슬쩍 보여주며 제안했다.

“같이 가시죠. 총격전이 벌어지면 나 사범님이 쏜 것도 제가 쏜 거로 하겠습니다.”

AI 전지인이 반대했다.

- 훈련병 박순기의 실력으로는 요원님의 산악전 수색 속도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총만 안 쏘면 되는 거잖습니까?”

“네?”

나강인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을 가리켰다.

“저 산에는 제가 경찰과 상관없이 혼자 들어갈 겁니다. 오늘 밤에는 달이 밝아서 산을 타고 싶네요.”

“아니, 놈들에게 총이 있다니까요? 지금 상황에서는 평소처럼 적의 총을 빼앗아서 쏘셔도 문제가 됩니다.”

“삼단봉만 빌려주시죠. 그걸로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그러다 총에 맞으면 큰일 납니다.”

“안 맞으면 됩니다.”

“안됩니다. 위험합니다.”

“삼단봉을 안 빌려주면 나뭇가지라도 들고 싸워야겠네요.”

“그….”

박순기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삼단봉을 꺼내주었다.

“진짜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지간하면 그놈들하고 싸우지 마시고요.”

“공식적으로는 달밤에 산책하러 저 산에 가는 거라니까요. 누가 들으면 싸우러 가는 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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