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 산악 수색
유나린과 권수연이 산에 들어갔다는 게 알려졌다. 두 사람을 뒤쫓는 놈들도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도 산을 오르기로 했다.
하지만 바로 수색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어디를 어떻게 수색할지 정도는 정해야 했다. 거기다 적이 총으로 무장했다고 가정하고 수색팀을 짜야 했다.
나강인은 그런 절차를 생략했다. 그는 혼자 먼저 먼저 산으로 들어갔다. 옷은 여전히 경찰특공대에서 빌린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총은 없었다. 나강인이 총을 가져가면 일이 복잡해진다. 박순기는 나강인이 적의 총을 빼앗아 쏜다 해도 이 상황에서는 문제가 될 거라고 판단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박순기의 지적은 타당합니다. 이 사건에서 총기를 사용해 문제가 생기면 요원님의 원래 임무에 지장을 받습니다.
“알아. 그래서 삼단봉만 챙겼잖아.”
무기는 총 대신에 박순기의 삼단봉을 받았다.
- 훈련병 박순기가 도움이 될 때가 다 있습니다. 보상으로 다음에는 한 단계 높은 훈련을 시켜야겠습니다.
“좋아할까?”
- 신병 수준으로 능력이 올라가면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결과는 좋아하겠지. 과정을 싫어하겠지만.”
유나린과 권수연이 산에 올라기는 모습이 CCTV에 찍힌 건 아니다. 두 사람이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은 찍혔지만, 그것만으로는 정확한 방향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납치범들이 산 방향을 가리키며 화를 내거나 당황하는 모습은 CCTV에 남아있었다. 그들이 그쪽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영상을 보면 확인할 수 있었다.
나강인은 그들이 이동한 방향으로 빠르게 걸었다. 창고의 위치가 산자락 밑이라서 산속으로 들어가는 건 금방이었다.
그런데 한밤중의 산속은 너무 어두웠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하늘의 달빛과 도시의 불빛만으로는 산속 시야가 제한됩니다.
하늘에 달이 꽤 밝게 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산속의 사물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시의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도 있지만 숲을 뚫고 들어올 정도는 아니었다.
“지인아. 좀 보이게 해봐.”
- 야간 이동 모드를 사용하겠습니다.
AI 전지인은 나강인이 눈으로 본 것을 이미지로 만든 후에 명도와 채도 등을 높였다. 그렇게 수정한 이미지에서 앞을 막고 있는 나뭇가지처럼 주의해야 할 사물들을 찾아냈다.
AI 전지인은 그렇게 찾아낸 이미지들만 잘라내 나강인의 눈에 있는 AR 렌즈에 다시 표시했다.
“잘 보이네.”
나강인의 눈에 보이는 산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런데 산길이나 바로 앞의 나뭇가지 등은 잘 보였다. 마치 어두운 숲에서 사물 몇 개만 밝게 색칠한 것 같았다.
세상이 평소에 보이는 모습과 조금 달라서 어색하긴 하지만, 이제 어두운 산속에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통상적인 보행로를 벗어난 곳에서 최근에 풀을 밟고 이동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풀을 밟은 자국은 명도와 채도를 높이는 방식을 쓰지 않았다. 아예 3D 이미지를 새로 만들어 바닥 쪽에 표시했다. 3D 이미지는 명도와 채도만 강조한 사물의 모습과는 달라서 구분하기 쉬웠다.
“발자국도 있네?”
- 선명한 발자국을 찾았습니다. 흔적이 많습니다.
나강인이 산속을 이동할수록 3D 이미지로 그린 발자국이 점점 늘어났다.
지금 나강인의 눈에는 맨눈으로 보는 어두운 산속 모습 위에, 구분하기 쉽게 강조된 사물과 3D로 그린 흔적들이 다양하게 겹쳐 보였다.
나강인이 지시했다.
“지인아. 저 중에서 유 박사나 수연이의 발자국을 찾아.”
- 발견한 발자국은 모두 260 이상 사이즈입니다. 두 사람의 신발은 더 작습니다.
“그럼 이 길로 올라온 건 아니란 건데….”
- 두 사람이 산의 어느 방향으로 진입했는지는 CCTV 정보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저중에 뛰는 놈이 있냐?”
- 보폭과 발자국의 형태를 분석했습니다. 산의 초입에서는 뛴 흔적이 있습니다만, 속도가 점점 느려졌습니다. 이 지점에서는 걷는 속도로 변했습니다.
“그놈들은 두 사람이 산으로 들어가는 걸 보긴 했는데, 정확한 위치가 아니라 어디쯤인지만 봤겠지. 그래서 뛰어왔는데, 산에 들어오고 나선 놓친 거야. 그래서 이동 속도가 느려졌어.”
- 그렇게 판단됩니다.
“몇 놈인지 구분할 수 있냐?”
- 여섯 놈입니다.
“CCTV 영상 속에서도 여섯 놈이었지? 아지트에 두 놈. 창고에 두 놈. 산 수색에 여섯 놈. 분대 규모구나.”
-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여섯 명이 전부 다 이 산으로 들어왔단 말이야. 밑에서 대기하는 놈이 없어.
- 모든 병력을 수색에 동원하는 건 전술적으로는 미련한 짓입니다. 산 아래에 일부 병력을 매복시켜야 했습니다.
나강인이 산속에서 위쪽을 보았다.
“놈들은 두 사람이 이 산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아. 그러면 미련한 놈들이 어떻게 하겠어?”
- 적의 발자국이 흩어졌습니다. 적이 산을 넓게 포위하며 올라갔습니다.
“맞아. 빠른 수색을 위해 병력을 분산하겠지.”
- 각개격파하시겠습니까?
“당연한 거 아냐?”
-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한 놈 골라보십시오.
나강인이 제일 왼쪽에 있는 발자국을 가리켰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잡자. 저 발자국을 추적해.”
***
백가면의 부하들은 창고에서 유나린의 앞에 서 있을 때는 흑가면을 썼다. 지금도 그들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언제 마주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산속을 돌아다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손전등 없이 달빛과 도시의 불빛만으로 산을 타야 해서 더 힘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가면까지 쓰고 있었다. 가면이 시야를 더 좁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어두운데 가면 때문에 더 불편했다.
“그래도 여자 둘이서 멀리 가지는 못했을…. 억!”
그가 미처 못 본 나뭇가지가 그의 얼굴을 때렸다. 흑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다치지는 않았지만 짜증이 치솟았다.
그가 가면을 벗으며 불평했다.
“산에서는 가면을 벗어도 되잖아. 그년들을 찾아내면 그때 써도 되는 걸 말이야.”
그의 등 뒤에서 나강인이 말했다.
“그러게 왜 이 어두운 곳에서까지 그걸 쓰고 다니냐. 안 힘드냐?”
납치범을 갑자기 들리는 사람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로 팽이처럼 돌아섰다.
“헉! 누…. 켁!”
나강인이 돌아서는 적의 목을 콱 잡았다. 손가락이 목을 파고들었다. 납치범은 목소리는커녕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나강인이 말했다.
“너희는 왜 이런 일을 저질러서 여러 사람 귀찮게 하냐?”
“케켁.”
“하는 꼴을 보면 유 박사와 수연이가 어디 있는지 모르나 보다. 그럼 다른 놈들은 상황이 어떨까?”
나강인이 적의 몸을 뒤졌다. 구형 휴대폰이 하나 나왔다.
“무전기는 없고 휴대폰만 있네? 이 아마추어 새끼들 장비 열악한 거 좀 봐라.”
그가 한 손으로 휴대폰을 켜 통화 내역을 확인했다.
“뭐야. 산에 들어온 후로는 서로 연락도 안 했냐? 두 사람을 찾으면 찾았다는 걸 어떻게 알리려고?”
나강인이 납치범의 대답을 듣기 위해 목을 잡은 손을 살짝 풀었다.
“헉헉. 누, 누구….”
“네가 그걸 물어볼 입장은 아니잖아. 두 사람을 찾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납치범이 눈알을 굴리며 대답했다.
“오, 오해가 있으신가 봅니다. 나는 그냥 산에 산책을 나온….”
“한밤중에 산에서 산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 요원님은 산책 핑계를 대고 이 산으로 들어왔습니다. 박순기를 핫바지로 생각하신 겁니까?
“오해다.”
나강인이 납치범에게 말했다.
“너희 아지트에 있던 두 놈하고 창고에 있던 두 놈은 이미 체포돼서 다 불었어. 너 혼자 버티면 네 형량만 올라간다.”
납치범의 눈동자가 다시 흔들렸다. 아지트에 두 명, 창고에 두 명이 있다는 걸 나강인이 알고 있다.
‘진짜 다 잡혔구나.’
게다가 본인도 지금 잡힌 상태다.
납치범이 즉시 태도를 바꾸었다.
“그, 그게…. 한 시간 뒤에 다 같이 휴대폰을 켜서 확인하기로….”
“그러냐. 그럼 넌 아는 게 아무것도 없네?”
납치범이 협상을 걸었다.
“제가 다른 사건의 범인을 압니다만….”
“그런 건 경찰한테 이야기해.”
“예?”
납치범이 나강인의 옷을 보았다. 그는 지금 경찰특공대의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경찰이신 줄 알….”
“응. 아니야.”
나강인이 적의 목을 다시 콱 눌렀다. 적은 잠시 버둥거리다가 기절했다.
나강인이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는 박순기였다.
나강인이 전화를 받았다.
“뭔가 나왔습니까?”
박순기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휴대폰 한 대가 켜졌습니다! 위치 확인했습니다!
“그거 제가 켰습니다.”
- 네?
“위치가 확인된 곳으로 사람을 보내서 한 놈 잡아가시죠.”
박순기의 흥분한 목소리가 좀 진정됐다.
- 아! 납치범 중에 한 놈을 잡으셨군요. 유나린 박사님은 혹시….
“이놈도 두 사람을 찾던 중이더군요.”
- 다행입니다.
“CCTV에 나온 여섯 놈이 모두 산에 들어왔습니다. 한 놈 잡았으니 다섯 놈 남았네요.”
- 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놈이 벌써 자백했습니까?
“산 초입에서 놈들의 발자국 종류가 몇 개인지 셌습니다.”
- 네?
“이 기술을 배우고 싶으면 다음 수련은 같이 산을 타면서 할까요? 총권도에는 산악전 기술도 있는데.”
박순기의 당당하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 어…. 저는 경찰이라 산악전까지는 굳이…. 괘, 괜찮습니다.
“다음 놈 잡으러 가야 하니까 통화는 여기까지 하죠.”
- 네? 다음 놈이라뇨?
“한 놈 잡고 끝내려고 산에 올라왔겠습니까? 이놈은 기절시켜놨으니까 조용히 데려가시죠. 다른 놈들이 지금 상황을 눈치 못 채게.”
박순기가 제안했다.
- 차라리 산으로 서치라이트를 비추면서 대규모로 수색해서, 놈들이 두 사람을 찾는 걸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이 낫지 않습니까? 지금 그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이미 붙잡혔으면요?”
- 아…. 그 경우가 문제긴 한데요.
“이놈들은 무전기가 없습니다. 휴대폰으로 서로 연락하는데, 그마저도 지금은 꺼놓았습니다. 휴대폰이 다시 켜지기 전까지는 놈들이 방심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두 사람이 이미 잡혔어도 구할 수 있습니다.
- 서치라이트는 안 되겠군요. 조용히 움직이겠습니다.
***
박순기가 전화를 끊었다.
조금 뒤에 서 있던 신은하가 물었다.
“잡았대요?”
- 나 사범님이 일단 한 놈 잡았답니다.
신은하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했다.
“강인 오빠한테 걸리면 그까짓 놈들이야 순삭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인질의 안전 때문에 조심하시더군요.”
“사람이 이렇게 정이 많…. 어? 왜 나한테만 정이 부족한데?”
옆에서 지현선이 물었다.
“정이 부족하다니요?”
“애정 말이에요.”
“아….”
***
나강인이 산을 이동했다. 그는 옆쪽으로 완만한 나선을 그리며 이동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을 발견했습니다.
동시에 적의 모습이 강조된 이미지로 표시됐다.
두 번째 납치범은 큼지막한 돌에 앉아서 불평하고 있었다.
“씨발. 내가 달밤에 뭐하는 짓이야?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는 흑가면을 벗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우. 그래도 이번에 한탕만 하면 하와이로 떠서….”
나강인이 뒤에서 말했다.
“밤에 켜는 담뱃불은 멀리서도 보인다는 거, 군대에서 안 배웠냐?”
납치범은 동료와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말한 내용이 충고처럼 들리는 데다가, 이 산에서 동료 외에 남자 목소리가 들릴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야. 두목한테는 말하지 말…. 헉! 누….”
나강인이 적의 목을 콱 잡았다.
“켁!”
나강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놈들이 너무 당나라 병사인데?”
- 적진에 고립된 민간인을 징병해도 이놈들보다는 유능할 겁니다.
“하는 짓을 보면 두목은 꼼꼼한데 말이야. 두목이 현지조달한 놈들인가?”
나강인은 그놈에게 산 밑에 있던 놈들을 이미 잡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놈의 반응은 첫 번째 놈과 비슷했다.
나강인이 질문했다.
“야. 너희 두목하고 얼마나 일했냐?”
나강인이 손을 조금 풀었다.
이미 패거리가 잡혔다는 소리를 듣고 그놈도 첫 번째 놈처럼 쉽게 입을 열었다.
“한 달….”
“역시 그러네.”
나강인이 첫 번째로 잡은 놈이 있던 곳을 본 후에 물었다.
“수색 방향은?”
“두목이 부채꼴로 퍼지면서 수색하라고….”
“그럴 거 같더라.”
나강인의 납치범의 목을 다시 꽉 쥐었다. 그놈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기절했다.
그는 납치범의 휴대폰도 켜서 확인했다. 산에 오른 후에는 통화한 기록이 없었다.
“이것도 예상대로고.”
그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박순기의 연락이었다.
- 나 사범님. 휴대폰이 하나 더 켜졌습니다. 혹시….
“위치 확인된 곳으로 사람 보내서 체포해요. 기절시켜놨으니까.”
- 역시…. 그런데 나 사범님 혼자만 너무 높은 곳까지 이동하셨습니다. 저희 쪽도 특수부대 출신들을 모아서 산을 타고 있는데, 조명 없이 이동해야 해서 좀 느립니다.
“두 사람이 잡히기 전에 이놈들을 잡아야 하니까 바로 다음 놈에게 이동하겠습니다.”
- 다음 놈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이미 잡은 두 놈의 간격을 확인했습니다. 부채꼴로 퍼지면서 산을 오르고 있다니까, 어디쯤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나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말했다.
“방금 잡은 두 놈 다 흑가면을 쓰고 있었어. 이놈들은 유 박사님과 수연이를 죽일 생각은 없나 보다. 인질에게 자기들 얼굴을 안 보여주잖아.”
AI 전지인이 다른 의견을 냈다.
- 놈들이 유나린 박사를 납치한 건 마약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이 성공하는 날이 죽는 날이라는 걸 알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결국엔 죽일 생각이면서, 지금은 일을 시키려고 살려주는 척하는 거다?”
-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