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82화 (282/411)

282. 백가면

AI 전지인이 주장했다.

- 납치범들이 가면을 썼다고 해서 유나린과 권수연을 살려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일을 시키는 게 목적이면 총으로 협박하는 게 더 간단하잖아.”

- 유나린은 현시대 최고수준의 과학자입니다. 유나린이 열심히 연구하는지 아니면 하는 척하는지를 구분할 능력이 적에게 없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연구에 성공하면 살려줄 것처럼 속이려고 가면을 썼다?”

- 그래야 유나린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너 오늘따라 왜 이리 단호해?”

-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겁니다.

“근데 네 말이 맞긴 맞다. 빨리 찾아야겠다. 좀 긁히더라도 뛰자.”

***

유나린과 권수연은 산속 덤불 아래에 숨어있었다.

산은 넓고 산꼭대기는 그곳보다 높다. 그들이 멀리 이동할수록 납치범들은 한밤중의 산속에서 그들을 찾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동할 수가 없었다. 부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나린이 작은 소리로 사과했다.

“수연아. 미안해. 도망쳐야 하는데 나 때문에….”

그녀는 어두운 산을 오르다 미끄러져서 발목을 다쳤다. 그런 발목으로 야간에 산을 조용히 타는 건 어려웠다. 무리해서 산을 타면 소리를 많이 내게 되는데 그러면 들킬 위험이 커진다.

권수연이 속삭였다.

“괜찮아요. 여기 숨어서 아침까지 기다리면….”

갑자기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백가면이 그들이 숨어있는 덤불 옆을 쓱 지나갔다. 그들은 들키지 않으려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발소리가 사라졌다.

두 사람은 일 분쯤 더 기다렸다.

유나린이 권수연의 귀에 대고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갔을까?”

권수연도 목소리를 죽였다.

“그런 거 같….”

갑자기 그들의 뒤쪽에서 백가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은 이미 들켰다.”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백가면이 뒤쪽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웃었다.

“흐흐흐. 겨우 여기까지 왔나?”

권수연이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 우리를 어떻게 찾아냈지? 지금은 밤중인데 어떻게 산에서….”

적이 가면의 이마 부분에 달아놓은 것을 아래로 내려 눈 위에 썼다.

“이건 야시경이고 하는 거다. 밤을 낮처럼 보게 해주지.”

“그, 그런 걸 왜 민간인이….”

백가면이 권총을 흔들었다.

“나한테는 권총도 있는데,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야시경 하나 없을까?”

백가면이 좌우로 손을 뻗었다.

“너희들이 옆으로 샐 때를 대비해서 부하들을 좌우로 흩어지게 해 산을 수색했다. 그런데 그건 만약을 대비한 거고, 난 너희가 이렇게 똑바로 올라올 줄 알고 있었지.”

그가 눈 위에 덮어쓴 야시경을 손으로 건드렸다.

“그래서 이 길을 내가 직접 올라왔다. 난 야시경이 있으니까 내가 제일 빨리 찾을 수 있거든.”

그가 주머니에서 권총용 소음기를 꺼냈다.

“유나린 박사. 창고에서 연막을 터트렸을 때는 깜짝 놀랐어. 블러드 아이스를 연구하겠다면서 마음을 놓게 하더니, 순식간에 연막탄을 만들어서 그런 깜찍한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거든.”

유나린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 연기는 건강에 나쁘지는 않은데….”

“왜? 독가스라도 만들고 싶었는데 재료가 부족했나?”

연막을 터트리면 유나린과 권수연이 그 연기를 제일 많이 마셔야 해서 몸에 나쁘지 않게 만들었다.

“독가스는 안 만들었으니까 봐주면 안 될까?”

“그럴 수야 있나.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백가면이 권총의 앞에 소음기를 끼웠다.

“유나린 박사. 당신은 연구를 해야 하니까 죽일 수 없어. 그래서 말인데.”

백가면이 권총으로 권수연을 겨냥했다.

“네가 대신 총에 맞아야겠어.”

유나린이 급히 몸을 옆으로 젖혀 권수연의 앞을 막았다.

“안돼!”

“그러게 내가 일을 시켰으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어야….”

갑자기 숲 속에서 나뭇가지가 연달아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백가면이 권총을 권수연을 겨눈 채로 옆으로 돌아섰다.

나강인이 앞을 막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고속으로 달려왔다. 빨랐다. 마치 땅 위를 나는 것 같았다.

나강인은 백가면이 돌아서자마자 근처의 바위를 발로 밟아 달리는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그런 후에 바닥을 강하게 찍으며 착지했다. 그 주변은 수풀의 높이가 낮아 상대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나강인이 유나린과 권수연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살아있냐?”

- 두 사람 다 살아있습니다만, 적의 총구는 아직도 권수연을 향하고 있습니다.

“휴우. 어쨌든 안 늦었네.”

나강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에 백가면에게 말했다.

“야. 갑자기 사람한테 총을 겨누니까 내가 놀라잖아. 왜 산에서 뛰게 만드는데?”

백가면은 야시경을 쓴 채로 나강인을 보고 있었다.

“경찰?”

나강인은 경찰특공대의 전투복을 빌려 입었다. 그 옷에는 경찰 패치가 붙어 있었다.

“경찰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너는 내가 경찰로 보이냐?”

유나린이 그 말을 잘못 알아듣고 비명을 질렀다.

“히익! 귀신!”

“한밤중에 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꼭 귀신인 건 아닙니다. 그리고 무슨 과학자가 귀신을 믿습니까?”

“깜깜한 곳에서 그런 말 하니까 무섭잖아요!”

백가면이 야시경을 위로 쓱 올렸다. 그가 가진 야시경은 시야가 좁은 타입이라 거리가 멀지 않으면 맨눈으로 보는 게 나았다.

백가면은 이미 나강인의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그가 물었다.

“총이 없군. 뭘 믿고 비무장으로 여기까지 왔지?”

나강인이 박순기에게 빌려온 삼단봉을 흔들었다. 봉이 접혀 있어서 손잡이만 있었다.

나강인이 삼단봉의 끝을 잡고 옆으로 쭉 당기며 말했다.

“난 이게 있잖아.”

삼단봉이 길어졌다.

백가면이 그걸 보고 웃었다.

“흐흐. 권총 앞에서 칼도 아니고 삼단봉? 미친놈이군. 뭐가 널 그렇게 미치게 했을까?”

지금은 한밤중인 데다가 유나린이 앞을 가리고 있어서, 권수연은 나강인의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익숙한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권수연이 유나린을 옆으로 밀며 나강인을 확인했다. 어두워서 얼굴은 식별하기 어려웠지만 체형이 익숙했다.

‘강인이?’

상대가 누군지 깨닫고 그녀는 감동했다.

“날 구하러 온 거야?”

“너도 구하고 유 박사님도 구하고.”

유나린도 이제야 나강인이 누군지 깨달았다.

“앗! 나 팀장님?”

“뭐야? 귀신 이야기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한 말입니까?”

백가면이 그 모습을 보며 실실 웃었다.

“흐흐. 너 말이야. 유 박사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가? 그래서 무기도 없이 혼자 뛰어온 건가?”

“둘 다 아는 사이라서 열심히 뛰어왔다.”

“네 야간 산악 추적 기술은 대단하다만, 전술 판단 능력은 애송이로군. 비무장으로 여기 나타나다니.”

“삼단봉이 있는데 이 새끼가 왜 자꾸 비무장이래? 너 삼단봉에 맞아본 적 없냐? 제대로 맞으면 대가리 깨진다.”

두목이 인상을 썼다.

“나한테 반말을 할 상황이 아닐 텐데? 내가 기분이 상해서 너한테 총을 쏘면 어쩌려고? 좀 더 공손하게 말해라.”

두목은 여전히 권수연을 겨누고 있었다.

나강인이 말했다.

“반말이 맘에 안 들면.”

그가 가슴을 두드렸다.

“날 쏘든가.”

백가면이 야시경을 다시 내리고 나강인의 전투복을 확인했다. 그가 피식 웃었다.

“당당하게 굴어서 방탄조끼를 입고 왔나 했더니 아니군. 그럼 죽어야지.”

백가면이 갑자기 권수연을 겨누고 있던 권총을 나강인 쪽으로 휙 돌렸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보고했다.

- 유인했습니다!

AI 전지인은 두목이 권총을 움직이기 전에, 어깨에 힘을 줄 때부터 경고 표시를 띄웠다. 권총이 발사됐을 때 날아올 총알의 예상 궤도도 홀로그램 직선으로 그렸다.

권수연을 향하고 있던 그 선이 옆으로 휙 움직여 유나린을 지나간 후에 나강인을 향했다.

나강인은 그 선이 유나린을 넘어서는 순간 앞으로 돌진했다.

백가면의 움직임도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나강인을 향해 총구를 돌린 후에 방아쇠를 당겼다.

백가면의 권총에 들어있는 건 아음속탄이다.

아음속탄은 장약이 적어서 위력이 약하고 총탄의 속도도 느리다. 대신에 소음기를 사용하면 총성이 확실하게 줄어든다.

나강인은 정면에서 쏘는 단발 권총탄 정도는 총구의 방향을 보고 피할 능력이 있다. 그런데 그가 총탄을 피하면 적이 총구를 다시 권수연이나 유나린에게 돌릴 수 있다.

나강인은 피하지 않았다. 총탄이 돌진하는 나강인의 가슴에 정확히 박혔다.

드래곤 플레이트는 얇은 두께의 방어 장비라서 옷 속에 입으면 표가 나지 않는다. 나강인은 평소에도 차 트렁크에 드래곤 플레이트를 넣어놓고 다닌다. 지금은 그걸 꺼내 입은 상태다.

소총탄도 방어하는 장비를 아음속 권총탄 따위가 뚫을 수는 없다. 뚫기는커녕 충격조차 주지 못했다.

나강인은 일부러 총탄에 맞고 비명까지 지르며 백가면을 향해 돌진했다.

“으악!”

백가면은 첫발이 제대로 명중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나강인이 달려왔다. 그는 확실히 상대를 제압하려고 뒤로 물러나며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두 번째 총탄도 나강인의 몸통에 박혔다.

그 총탄도 드래곤 플레이트를 뚫지 못했다.

“으악?”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보고했다.

- 적의 사격이 빠르고 정확합니다. 주의하십시오.

백가면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권총탄을 두 발이나 맞은 사람이 비틀거리지조차 않고 계속 돌진해왔다. 비명도 조금 이상했다.

그는 두 발의 총탄이 나강인의 가슴에 명중했을 때 착탄 지점에서 불꽃이 튄 게 생각났다.

백가면은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닫고 경악했다.

‘설마!’

그가 다급히 권총을 위로 들었다. 이번에는 나강인의 얼굴을 노렸다.

늦었다. 이미 나강인이 너무 가까이 접근했다.

그가 백가면의 권총을 왼손으로 잡고 위로 더 밀었다. 총구가 하늘로 올라갔다. 적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탄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나강인이 오른손의 삼단봉으로 적의 머리를 쳤다.

백가면은 급히 왼팔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삼단봉이 더 빨랐다.

“켁!”

강력한 충격이 머리를 때렸다. 백가면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굴에 쓴 가면은 두 조각이 나서 바닥에 떨어졌다. 야시경도 가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가면이 부서지면서 삼단봉의 충격을 조금 줄여준 덕분에 두목은 기절하진 않았다.

나강인은 두목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은 후에 탄창을 분리하고 슬라이드를 당겨 약실의 탄약도 빼냈다.

그런 후에 물었다.

“이제 삼단봉이 무기라는 게 믿기냐?”

권수연이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초, 총에 맞았어!”

“안 맞았어.”

“내가 봤어! 가슴에서 불꽃이 두 번이나 튀었잖아!”

“총에 맞긴 맞았는데, 방탄조끼를 입었어.”

“어? 아…. 그럼 괜찮아?”

“당연하지. 따끔하지도 않아.”

백가면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가 나강인의 몸통을 확인했다.

나강인의 전투복에 구멍이 두 개나 나 있었다. 하지만 피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금속 재질이 보였다.

백가면은 저렇게 얇고 방어력도 우수한 장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설마 드래곤 플레이트?”

나강인이 백가면을 보며 말했다.

“이걸 아는 놈이 있네?”

AI 전지인이 말했다.

- 그동안 팔린 양이 좀 됩니다. 철인기공이 세미나에서 기술 발표도 했습니다. 적이 드래곤 플레이트의 소문을 듣는 건 가능합니다.

백가면이 비틀거리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구했지? VIP가 쓸 것도 부족해서 경찰에게 갈 물량이 없을 텐데?”

나강인이 대답했다.

“오다가 주웠다.”

나강인은 드래곤 플레이트가 누구에게 팔렸는지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나강인은 설계만 하고 생산과 판매는 철인기공이나 오메가테크가 알아서 했다. 철인기공은 구매자를 엄선해서 정하기 때문에 이 물건이 용병이나 테러리스트에게 벌써 넘어가기는 어렵다.

나강인이 드래곤 플레이트를 직접 만드는 경우는 그 제한에서 벗어나지만, 그렇게 만든 건 판매용이 아니다. 직접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 외에는 선물용이다. 신은하가 가지고 있는 드래곤 플레이트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나강인이 백가면에게 물었다.

“너 저 두 사람을 왜 납치했냐?”

유나린이 얼른 일렀다.

“마약을 업그레이드해달라고 했어요!”

“블러드 아이스?”

“네! 부작용을 없애 달래요!”

나강인이 피식했다.

“슈퍼 솔져 프로젝트를 다시 살리려는 놈이 다 있네. 그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데.”

“네! 슈퍼 솔…. 어? 아니, 왜 그것까지 알고 계세요?”

권수연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네가 그 프로젝트를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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