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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289화 (289/411)

289. 대회 참가

미국 팝스타 알레이나 민이 생글생글 웃었다.

“왜? 오랜만에 나를 보니까 막 반갑고 그래?”

나강인이 투덜댔다.

“그러겠냐? 네가 이 동네를 떠나서 속이 다 시원했다. 다시 돌아온 건 아니라고 해줘라.”

나강인이 닥터 노네임이다. 알레이나 민이 예전에 지냈던 집으로 돌아왔다가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 옆집에 사는 닥터 노네임이 알려질 위험이 있다.

‘광년이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그런 사고를 칠 수도 있어.’

알레이나가 왼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아는 동생 만나러 왔다가 예전 생각 나서 오랜만에 들른 거야. 무슨 계획이 있어서 온 게 아니라고. 그런데 와보니까 이 자리가 우연히 비어 있네?”

그녀가 말한 아는 동생은 이정호의 딸 이연지다.

나강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고정석으로 이 자리를 산 건 아니고?”

이 피시방은 요금만 충분히 내면 원하는 자리 하나를 고정석으로 만들어준다. 그런데 그 비용이 제법 비싸서, 고정석을 쓰는 사람은 나강인과 신은하, 이보라밖에 없었다.

“조사하면 다 나오니까 솔직히 말해라.”

알레이나가 씩 웃었다.

“히히. 이 자리는 내가 언제 오든 항상 준비되어 있었으면 해서.”

“고정석 맞네.”

“근데 말이야. 여기 말고도 고정석이 세 개나 더 있더라?”

“안다. 내 자리도 고정석이니까.”

신은하와 이보라는 고정석 이용료를 다 내고 있지만, 나강인은 피시방에 도움을 주는 일이 많아서 대폭 할인된 요금을 내고 이용한다.

나강인이 알레이나를 여기서 쫓아낼 수는 없다. 이 피시방에 고정석을 팔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남이 보기엔 이상하다.

나강인이 말했다.

“기왕 고정석을 쓸 거면 자리가….”

남들 눈에 안 뜨이는 자리가 좋다. 나강인도 그런 이유로 구석 자리를 쓴다.

그런데 알레이나가 앉아 있는 자리는 구석인 데다가 기둥 뒤라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다.

“아니다. 놀다 가라.”

“금방 갈 거야.”

“그럼 더 좋고.”

나강인이 그의 자리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하이 캐슬 게임대회를 검색했다.

“바하테크에서 진짜 이런 대회를 하네. 사장이 이 게임을 좋아하나?”

나강인이 게임대회 홈페이지의 참가 신청 페이지를 열었다.

신청 절차는 간단했다. 게임 계정 이름만 등록하면 다른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건 프로 선수가 참전해도 된다는 건가?”

- 대회 공지사항에 참가 자격이 아마추어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전직 프로나 연습생도 안 됩니다.

“온라인에서는 확인할 방법은 없잖아.”

-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조치하겠다고 합니다. 게다가 최종 보스전은 프로팀과 오프라인에서 싸웁니다. 동종업계 출신은 그때 발각될 겁니다.

“그냥 누가 참가하든 크게 신경 안 쓰는 분위기네. 어쨌든 아마추어 위주니까 최후의 5인에 드는 건 어렵지 않겠네?”

- 요원님의 게임 실력으로는 최종 5인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동안 게임을 대충 해서 그렇지 진심으로 하면 잘할걸?”

- 대회 참가자를 운동장에 모아놓고 현실에서 주먹으로 배틀 로얄을 하면 쉽게 최종 5인에 들 겁니다. 그런데 이건 온라인 게임입니다.

“알았다고. 네가 내일 게임 실컷 해라. 내 계정 전적 망쳐놓지 말고 네 계정으로 해.”

-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심해 티어가 최종 5인에 들면 의심받습니다.

나강인이 AI 전지인의 계정으로 참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AI 전지인의 게임 속 이름은 ‘지원전문가에잇’이었다.

알레이나가 나강인의 자리로 다가왔다가 모니터를 보고 물었다.

“광돌이 뭐해? 하이 캐슬 게임대회? 이런 것도 해?”

“그냥 심심해서.”

“실력이 안 되지 않아?”

“네가 내 게임 실력을 어떻게 아냐?”

“전에 게임 하는 거 우연히 봤거든. 티어가 심해던데?”

나강인이 알레이나를 돌아보았다.

“광년아. 너 집에 안 가냐?”

“난 집이 저 멀리 미국에 있다고.”

“그럼 호텔로 꺼져라.”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가는 김에 인사나 하는 건데 아주 그냥 말하는 게 못됐어.”

“빨리 가라고. 너 여기 있다가 기자들 눈에 뜨이면 피곤해진다.”

“간다고. 나도 조심하고 있…. 응? 내가 기자를 피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

“하는 짓을 보면 뻔하잖아.”

“광돌이가 평소에 내 기사 찾아보나 봐. 흐흥?”

“꺼지라고.”

“간다고.”

알레이나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피시방을 나갔다. 팝스타가 부르는 콧노래는 굉장히 듣기 좋았다.

“저게 저렇게 조심을 안 한다.”

나강인이 툴툴대며 참가 신청 페이지를 다시 보았다. 신청 버튼을 누르는 단계만 남았다.

“지인아. 내일 경기 이길 수 있지?”

- 저만 믿으십시오. 토너먼트 최후의 5인에 드는 건 가능합니다.

“프로 게이머가 지휘하는 중간 보스팀도 잡아야 돼. 그래야 하이 캐슬에 들어가지.”

- 지난 열한 번의 경기에서 참가자들은 두 번이나 중간 보스를 잡았습니다. 제가 들어가면 그 팀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중간 보스 잡고 하이 캐슬에 들어가면 내부에서 시스템을 해킹하고 자료를 빼내자.”

AI 전지인이 반대했다.

- 그건 불가능합니다.

“응?”

- 제 스킬은 해킹 방어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공격적 해킹은 요원님의 위장 신분을 만드는 용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정보 수집 목적으로는 쓸 수 없습니다.

“야. 아까랑 이야기가 다른데? 몰래 보면 된다며?”

- 잠입 침투 작전은 원래 몰래 침투해 임무를 수행합니다. 제작 시설을 확인하고 그 액자의 흔적을 찾는 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킹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이라미드 태양전지 최초 개발자 수연이ㄱ 납치됐었어. 차 이사 때문이야. 그럼 누군지 찾아내서 잡아야지. 이런 명분이 있는데도 안 되냐?”

- AI에 의한 해킹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이것도 해킹 방어인 척…. 이번엔 그럴 명분이 없네. 쉽게 되는 법이 없다.”

나강인이 참가 신청의 마지막 단계는 잠시 미루고 대회 규정을 확인했다.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쓸만한 걸 하나 찾아냈다.

“잠깐. 이 대회는 듀오 신청도 되는데? 두 명까지는 팀을 먹어도 된다는데?”

- 그렇습니다.

“알고 있었으면 말을 해줘.”

- 단독 임무인 줄 알았습니다.

“가서 총 쏠 거 아니면 단독으로는 답이 없잖아.”

나강인이 일어서서 카운터 쪽을 보았다. 윤아름과 웃고 떠들면서 도시락을 나눠 먹고 있는 안성환이 보였다.

“성환이가 해킹을 잘하더라.”

- 저에 비하면 하찮은 실력입니다.

“너는 해킹은 제약이 걸려 있어서 거의 못 하면서 무슨.”

- 해킹 방어 실력 이야기였습니다.

“지인아. 게임 하수를 한 명 넣어도 5인 안에 들 자신 있냐?”

- 안성환의 실력이 요원님처럼 심해 티어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심해만 아니길 바라자.”

나강인이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성환아.”

윤아름과 놀고 있던 안성환이 돌아보았다.

“네?”

“너 전설의 레전드 할 줄 알아?”

“당연하죠.”

“너 나랑 게임대회에 듀오로 나가자.”

“네? 게임대회에 나갈 실력은 아닌데….”

“못해도 돼. 심해만 아니면 괜찮아. 내가 끌고 갈 테니까. 그래서 티어가?”

“다이아인데요.”

다이어 등급은 전체 게이머 중 상위 3%에 들어야 딸 수 있다.

“어? 뭐?”

“다이아요.”

“게임대회 나갈 실력이 아니라며?”

“에이. 다이아로 어떻게 대회에 나가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다이아가 못 나가는 대회를 심해인 요원님은 나갑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너 하이 캐슬 게임대회 알아?”

“아. 그거 알아요. 거기 듀오로 나가자고요?”

“어.”

안성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건 상위 10% 안에만 들어도 마우스 같은 거 보내주니까 재미 삼아 해도 되겠네요.”

“그래. 지금 나랑 듀오로 신청해서 내일 하루….”

윤아름이 얼른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왜?”

“성환이를 부려먹으려면 제 허락을 받으셔야죠!”

“아. 그러니까 네가 그거냐? 노예상인?”

“켁. 당연히 아니죠!”

“그럼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공주? 그건 마음에 드는데요?”

안성환이 반박했다.

“나 바보 아니다.”

“야. 강인 오빠랑 협상하는데 협조 좀 해봐. 맨입으로는 안 돼. 강인 오빠. 성환이를 원하면 잡탕 과자라도 좀 내놓으시죠?”

나강인이 말했다.

“네가 먹고 있는 도시락 말이야. 페넬로페라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들어준 거다. 그걸 먹고 있는 입에서 어떻게 맨입이라는 말이 나오냐?”

“페넬로페 거였어요? 어쩐지 맛있더라.”

윤아름이 안성환의 등을 두드렸다.

“야. 내일 꼭 이겨. 상품으로 하루 일당 정도는 타서 밥 사.”

“응. 나만 믿어. 내가 우승….”

안성환이 나강인을 본 후에 말을 바꾸었다.

“우승은 당연히 못 하겠지만, 상품은 꼭 좋은 걸 타낼 테니까.”

나강인은 자리로 돌아가 안성환의 것까지 참가 신청을 했다.

“네 게임 닉네임이 뭐냐?”

“아름다운성환이요.”

“어?”

“아름다운성환.”

나강인이 안성환을 돌아보았다.

“네가 어디가 아름다운데?”

“대회 참가 안 할래요.”

“넌 마음이 아름답지. 그렇고말고.”

***

나강인은 그날은 집에 가서 자고 이튿날 오전에 피시방으로 나왔다.

그는 우선 신은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신은하가 평소보다 높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 그러니까 성환이하고 같이 게임을 할 건데, 걔를 내 자리에 앉히겠다고?

“어. 오늘 하루만. 그래야 게임 진행이 원활해지거든.”

신은하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주연 자리 따내려고 피 튀기게 싸우고 있는데, 강인 오빠는 성환이하고 게임이나 한다고? 그것도 내 자리에서?

“어…. 사실 여기에는 사정이….”

- 게임을 해야만 하는 사정이 엄청 중요한 건가 봐? 막 세계평화가 걸려 있고 그래?

“세계평화까지는 아니지만.”

이건 차 이사를 찾으려고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평화에는 조금 도움이 될걸?”

신은하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게임으로 나라의 평화를 지킨다는 말을 믿을 리 없다.

- 죽는다.

“야. 진짜야.”

- 됐고, 깨끗하게 써. 다 쓰고 나면 청소 깨끗이 하고, 물티슈로 광나게 닦아놓고.

“네가 쓸 때도 광은 안 났….”

- 쓰읍.

“잘 닦을게.”

- 근데 강인 오빠. 진짜 이 드라마 캐스팅에 힘이 없나?

“없다. 난 주연 캐스팅에는 참여를 안 했어.”

- 쳇. 단호박 고릴라. 알았다고.

전화를 끊은 후에 나강인이 안성환에게 말했다.

“은하가 그 자리 다 쓰고 나면 청소 깨끗이 하고 물티슈로 광나게 닦아놓으란다. 너보고 하래.”

“에이. 여긴 은하 누나가 쓸 때도 그렇게 깨끗하게 쓰진 않았는데요?”

“나중에 검사할 거래.”

“어…. 네.”

나강인은 하이 캐슬 게임대회 사이트에 들어갔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1,214명이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천 명이 넘네. 좀 많긴 하다.”

- 단판 토너먼트이므로 여덟 번만 이기면 최종 5인에 들어갑니다.

대신에 한 번만 져도 탈락이다.

“첫 경기는 몇 시야?”

- 9시에 시작됩니다.

안성환이 옆에서 말했다.

“대회 등록이 자유라서 신청만 하고 안 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탈락시키고 대진표를 짜니까 실제 참가자는 천 명쯤일 걸요?”

“그래도 많네.”

“기왕이면 부전승이 걸리면 좋을 텐데요.”

“부전승?”

“팀은 경기마다 랜덤으로 편성되는데, 참가자가 매번 다섯 명 단위로 끊어지진 않을 거잖아요. 그러다 보면 짝이 안 맞는 사람이 생기죠. 그런 경우는 부전승으로 올려줘요.”

“그러면 다음 경기도 짝이 안 맞을 수 있잖아.”

“그렇죠. 그래서 운이 좋으면 한 번쯤 부전승이 걸린대요.”

아홉 시가 되었다.

두 사람은 게임 준비 버튼을 눌렀다. 대회 홈페이지 화면이 바뀌면서 같은 편과 상대편의 닉네임 열 개가 자동으로 떴다. 나강인과 안성환은 듀오로 편을 먹었기 때문에 같은 팀으로 편성됐다.

“첫판은 부전승은 아니네.”

게임을 치를 방은 방장으로 지목된 사람이 만들었다. 방의 이름을 어떻게 만들지, 그 방의 비밀번호는 뭐로 할지도 홈페이지에 적혀 있었다.

나강인은 미리 실행해둔 게임을 통해 그 방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속속 들어와 순식간에 열 명을 채웠다.

이 대회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절반씩 탈락한다.

나강인이 안성환에게 물었다.

“마지막 여덟 번째 게임에서 짝이 안 맞으면 어떻게 되는데?”

“그런 일은 안 생겨요. 마지막에 열 명으로 딱 떨어지게 중간에 부전승 숫자를 자동으로 조정한대요.”

“그러면 되긴 하겠다.”

게임이 시작됐다. 나강인이 손을 비볐다.

“일단 여덟 판부터 스트레이트로 이기자. 보스 얼굴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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