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93화 (293/411)

293. 고릴라

박우섭 실장이 말했다.

“강인 씨도 사람인데 못 하는 것도 있겠지.”

신은하가 맞장구쳤다.

“맞아. 있더라고. 게임도 못하고, 썸도…. 아이 씨. 생각하니까 연애 고릴라 때문에 열 받네. 잠깐 기다려봐.”

그녀는 일단 김유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은하야. 왜?

“아주 주연이 확정됐다고 여유가 있으셔?”

- 그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잖아.

김유찬이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연타석으로 천만을 돌파한 영화 두 편의 주인공이 곧바로 드라마를 하겠다는데 주연을 마다할 피디는 많지 않다. 설사 피디가 거부해도 윗선에서 그러라고 놔둘 리도 없다.

게다가 최진욱 피디와 도주희 작가는 김유찬의 연락을 받고 축하주를 마실 정도로 좋아했다.

“얼마나 여유가 있으면 게임 대회를 다 나가요?”

김유찬이 웃었다.

- 으흐흐. 뉴스 보고 전화했구나? 내가 이런 사람이다. 알아서 모셔라.

“게임 대회에서 우승한 게 그렇게 자랑할 일이에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탄 줄 알겠네.”

- 게임 하는 사람에게는 자랑할 일 맞아. 너도 이 게임을 한다면서 왜 몰라?

“난 게임을 할 줄만 아는 거지, 그 정도로 열심히 하지는 않잖아요.”

그녀가 전화를 한 건 축하하려는 게 아니다. 물어볼 게 있어서다.

“혹시 중간에 강인 오빠를 만난 적은 없어요? 오늘 그 대회 참가할 거라던데.”

- 있지.

“그렇구나. 몇 번째 경기까지 갔는지도 알아요? 1차전은 넘겼어요?”

그녀는 나강인이 1차전에서 떨어졌으면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2차전에서 떨어졌으면 적당히 놀려먹고 싶었다.

- 푸하하하. 1차전이라니. 강인 씨가 들으면 서운해하겠다.

“그럼 2차전은 갔나 봐요?”

‘놀려먹을 수 있겠다.’

- 결승전에서 나랑 같은 팀이 돼서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는데?

신은하가 휴대폰을 귀에서 때고 화면을 보았다. 상대는 김유찬이 맞았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강인 오빠가 아니라 다른 사람하고 착각한 거 아녜요?”

- 강인 씨 전화를 따로 받기도 했고, 게임 도중에는 마이크 음성으로 오더까지 주고받았어. 강인 씨 맞아.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 왜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가 피시방 옆자리에서 가끔 본 나강인의 게임 실력은 토너먼트 우승이 아니라 1차전 통과를 걱정할 정도였다.

“아니에요. 일단 끊어봐요.”

그녀는 전화를 끊자마자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강인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 어. 왜?

그녀가 본론부터 꺼냈다.

“진짜로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어?”

“어? 그건 어떻게 알았냐?”

“유찬 오빠가 그러더라. 혹시 누가 버스 태워줬어? 아! 성환이하고 한다더니 걔가 태워준 거야? 성환이가 그렇게 잘해? 프로게이머야?”

- 내가 알아서 잘했다.

신은하의 게임 플레이어 등급은 나강인과 비슷했다.

“강인 오빠는 심해 티어잖아.”

- 이제는 잘해.

신은하는 요즘 바빠서 나강인이 게임 하는 모습을 못 본 지 꽤 됐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괄목상대인가? 어떻게 그새 실력이 그렇게 늘어?”

-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마음먹고 하면 이 정도는 기본이다.

“하다 하다 게임까지 잘하면서 다른 건 왜 못해?”

- 그런 게 있었나? 뭔데?

“어? 아니야. 지금 전화 받아도 돼? 대회 다 끝났어?”

- 아니. 중간 보스전이 오늘 밤에 있어.

“알았어. 거기서 딱 기다려. 내가 간다.”

어디서 게임을 하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아까 안성환이 그녀의 자리를 빌려 쓴다고 했다.

신은하가 박우섭에게 말했다.

“박 실장 오빠. 피시방으로 가요. 강인 오빠 응원하러 가게요.”

“그거 좋지! 나랑 같이 응원하자.”

***

나강인이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발신자는 알레이나 민이었다.

나강인이 전화를 받았다. 알레이나가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나 때문에 기사 난 거 아니야!

“알아. 김유찬 씨 때문이야.”

- 괜히 나를 의심할까 봐 전화했어.

“내가 그렇게 경우가 없진 않아.”

- 거짓말! 나한테는 경우가 없던데!

“너도 그게 없더라고.”

- 아. 그건 그래.

***

대학생 해커 안성환도 토너먼트 우승팀 5인에 들었다. 프로 게이머 한 명이 포함된 중간 보스팀과의 경기는 오늘 밤에 있다.

토너먼트 우승으로 일단 최신 그래픽카드는 확보했다. 그 그래픽카드의 가격은 이백만 원쯤 한다. 중간 보스팀과의 경기도 이기면 상품이 그 그래픽카드에 나머지 부품이 추가된 풀세트 PC러 바뀐다.

윤아름이 피시방에 온 박우섭 실장에게 매달렸다.

“아저씨! 대타 한 번만! 네? 한 번만!”

박우섭은 신은하를 찾으러 이곳에 가끔 들르다가 윤아름과 아는 사이가 됐다.

박우섭이 거절할 핑계를 찾았다.

“너 알바잖아. 알바가 함부로 대타를 세울 수는 없지 않나?”

“은서 언니가 허락하면 돼요! 언니! 제발!”

낮 근무인 차은서는 그냥 알바가 아니라 피시방 사장인 차동석의 조카다. 차동석은 피시방에 안 나타난 지 오래라서 실질적인 운영은 차은서가 하고 있다.

차은서가 말했다.

“내가 좀 도와드리면 되니까 괜찮기는 한데, 박 실장님이 굳이….”

“실장님! 제발! 제 알바비 드릴 테니까 제발!”

윤아름의 몇 시간 알바비는 박우섭에게 의미 있는 액수는 아니다.

“음….”

박우섭도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같이 응원하고 싶다.

그런데 나강인과 신은하의 옆은 여러 사람이 앉을 공간도 없다. 대회를 구경하려면 다른 자리에서 해야 한다.

박우섭이 협상을 걸었다.

“다음에 나강인 씨가 여기서 밥을 팔 때, 바로 연락을 준다면야….”

“이번 달에 밥파는 날이 있으면 바로 문자 드릴게요!”

“그럼 그러자.”

“아싸아! 복 받으실 거예요!”

윤아름은 신이 나서 안성환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매니저인 박우섭 실장은 피시방 카운터에 앉았다.

“내가 원래 이러려고 따라온 게 아닌데.”

원래 이 자리에는 윤아름이 있어야 한다.

사장 조카 차은서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름이가 성환이랑 친해서 응원하고 싶은가 봐요.”

“응원이 아니라,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던데요?”

박우섭은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사무실 청소나 정리는 많이 해봤다. 혼자 살아서 요리도 조금 할 줄 안다.

손님에게 뭔가를 친절하게 가져다주는 것도 방송 관계자들에게 많이 해봐서 잘한다.

어색한 몇 가지 정도는 차은서가 도와주면 된다. 그녀도 오늘 밤은 피시방에 남아있었다.

박우섭이 차은서에게 물었다.

“차은서 씨는 드라마에 캐스팅됐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일해도 됩니까?”

“삼촌이 가게에 안 와서 저라도 대신 관리해야 해요. 그래서 나온 김에 알바도 하는 거죠.”

“KMTV 드라마 오디션은 어떻게 보게 된 겁니까?”

“강인 오빠가 오디션에 자리 났으니까 경험 삼아 보라고 하더라고요. 오디션 준비는 언니들이 많이 도와줬고요.”

“은하하고 보라 씨가 같이 뭘 할 사이는 아닌데, 은서 씨가 두 사람이랑 많이 친한가 보네요.”

“어릴 때는 셋이서 놀이터에서 같이 놀고 그랬거든요. 그때는 언니들도 친했는데….”

박우섭이 신은하가 있는 쪽을 보며 말했다.

“요즘은 좀 나아졌던데요. 전에는 둘이 만나면 살벌했는데 말이죠. 하긴. 최근에 둘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사이가 좀 풀릴 때도 됐죠.”

이보라가 납치됐을 때 신은하가 나강인과 함께 그녀를 찾아내 구출했다. 그 사건도 둘의 사이가 풀리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차은서가 활짝 웃었다.

“맞아요. 그래서 진짜 좋아요.”

***

나강인은 제일 구석 자리를 사용했다. 그 옆자리는 원래 신은하의 고정석인데 토너먼트 경기 때는 안성환이 썼다.

그런데 중간 보스전도 그 자리에서 하면 신은하가 앉을 자리가 없어진다.

그녀가 말했다.

“한 칸씩 밀어.”

나강인이 신은하의 자리에 앉고, 안성환은 이보라의 자리에 앉았다.

신은하가 나강인의 고정석에 앉았다. 그런 후에 의자를 옆으로 돌렸다.

“이러면 경기 관람하기 딱 좋네.”

그 구석 자리에는 PC가 세 대뿐이다. 세 사람만 있으면 다른 손님들의 눈을 피할 수 있어서 신은하와 이보라는 이곳을 고정석으로 썼다.

신은하가 말했다.

“파티션에 문도 하나 달았으면 좋겠는데, 그건 좀 안 해주나?”

윤아름은 자리가 없어서 접이식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았다. 그녀가 응원했다.

“성환아. 꼭 승리해. 넌 할 수 있어!”

안성환은 자신이 없었다.

“저쪽에는 프로게이머도 있는데….”

그녀가 안성환의 뒤에 서서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프로는 뭐 태어날 때부터 프로였대? 넌 할 수 있어! 이길 수 있어!”

“그래! 내가 어떻게든 이겨볼게!”

“오늘 이기면 내일은 프로팀하고 본사에서 붙는 거지?”

“그렇지!”

“그럼 거기에 김유찬 님도 오시겠네?”

“그렇지! 김유…. 어? 뭐?”

“나도 따라갈게!”

“아니, 네가 거기를 왜….”

“매니저! 내일은 내가 네 매니저 할게!”

안성환이 윤아름의 손을 툭 밀어낸 후에 뒤를 돌아보았다.

“상품이 아니라 김유찬 형님이 목적이야?”

윤아름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아니야. 그냥 순수한 팬으로서 얼굴 한번 보고 싶은 거야.”

“싸인도 하고, 악수도 하고?”

“꺄아아.”

“김유찬 형님이 보고 싶으면 은하 누나한테 부탁하던가.”

윤아름이 신은하를 돌아보았다. 신은하가 말했다.

“거절한다.”

“거봐. 은하 언니는 그런 거 안 해줘.”

“야. 그래도….”

나강인이 윤아름에게 말했다.

“아름아. 너 어제 야식으로 먹은 도시락 말이야.”

“넹?”

“그거 유찬 씨가 산 거야.”

“네?”

“어제 모임에 유찬 씨도 있었는데 밥을 샀거든. 사는 김에 그 도시락까지 사더라.”

“아니, 그거 성환이하고 같이 먹었는데…. 야! 너 왜 그 귀한 걸 빼앗아 먹었어!”

안성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안 해! 집에 갈 거야.”

윤아름이 얼른 안성환의 팔을 두 손으로 잡았다.

“미안! 쏘리! 그냥 우리는 PC만 노리자.”

“진짜 상품만 노리는 거지?”

그녀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안성환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신은하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강인 오빠. 쟤들 저렇게 노는 거 보고 뭐 느끼는 거 없어?”

“하지 말라고 할까?”

“야 이…. 됐어. 게임이나 해.”

***

중간 보스전이 준비됐다.

이 대회는 방장이 게임 방을 만들면 나머지 아홉 명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방장은 회사에서 섭외한 프로게이머가 맡았다.

이 대회는 소규모라 공중파나 케이블방송국에서 방송하진 않는다. 대신에 돈이 별로 들이지 않고도 적당히 홍보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게임은 두 명의 외부 참관인을 둘 수 있다.

주최자인 바하테크는 스트리머 두 명을 섭외했다.

돈을 주고 섭외한 건 아니다.

온라인 개인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나 BJ 여러 명이 토너먼트에 참가했다가 떨어졌다. 그들은 오늘 자기들이 진행한 게임을 개인방송으로 서비스했다. 나중에는 너튜브에도 올릴 예정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하테크에 중계 요청을 했다.

이전 대회에서도 스트리머나 BJ가 중계 요청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에는 대회에 참가한 스트리머 전원이 요청했다.

바하테크에서는 그중 두 명을 참관인으로 선정했다.

한 명은 동시 시청자가 만 명이 넘어가는 유명 BJ 썬더K였고, 다른 한 명은 유명하진 않지만 꽤 높은 단계까지 살아남았던 스트리머 뇌절소녀였다.

뇌절소녀가 인터넷 개인방송을 켠 후에 말했다.

“여러분! 제가 돌아왔습니다! 5차전에서 간발의 차이로 아깝게 탈락한 제가! 보스전을 중계하러 돌아왔습니다!”

- 와. 더 유명한 스트리머들도 실패한 참관인 자리를 하꼬가 어떻게 땄지?

- 뇌절소녀가 오래 살아남았음.

- 5차전까지 간 스트리머는 몇 명 더 있는데?

- 그중에서 뇌절소녀가 제일 예쁘잖아요.

- 하긴. 말을 하기 전까지는 미녀처럼 보이지.

- 누가 봐도 소녀는 아니지만.

뇌절소녀가 채팅을 읽다가 물었다.

“영어 님. 어디 사세요?”

- 그런데 이번 중계는 경쟁이 치열했을 텐데, 이걸 땄네요.

- 그러게요. 이번 경기는 참가자가 워낙 특별하잖아요.

- 김유찬이 출전한 경기니까, 아마 토너먼트에 참가한 모든 스트리머가 참관인 신청을 했을 걸요?

- 기자들도 기사 쓰려고 참관인 신청을 많이 했을 텐데, 그 귀한 걸 뇌절소녀가 따네.

뇌절소녀가 자랑했다.

“이제 기자들은 다 제 방송을 보고 기사를 써야 할 겁니다.”

- 기자들은 뇌절소녀가 아니라 기왕이면 썬더K 방송을 보고 기사를 쓰지 않을까요?

“영어 님 어디 사시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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