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99화 (299/411)

299. 승부

프로게이머 다섯 명은 가벼운 마음으로 바하테크가 주최한 게임 대회에 참가했다.

프로게이머가 한 명만 참가하는 중간 보스전은 매달 열린다. 그 경기는 시간이 되는 팀원이 나갔다.

그러다 아마추어 팀이 중간 보스전을 이기고 올라오면 한 수 가르쳐주는 마음으로 경기를 치렀다. 단 한 판이라도 지는 경우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프로팀 리더 권도운은 고민했다.

‘왜 이렇게 됐지?’

그는 오늘 놀러가는 마음으로 바하테크 본사 17층에 왔다. 톱스타 김유찬이 도전자 중에 있다길래 기분 좋게 와서 인사도 했다.

권도운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사람이라 가끔 예능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한다. 그는 여기 오기 전만 해도 오늘 김유찬과 경기한 이야기를 나중에 방송 소재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렀다.

1차전과 2차전도 쉽지는 않았지만 이기긴 했다. 일단 이긴 경기는 봐주면서 한 척하며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3차전이다. 거기서 졌다. 그 패배가 팀에 끼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우리 팬이 이해해줄까?’

그는 팀원들이 걱정할까 봐, 한 번의 실수는 팬도 이해할 거라고 말했다. 그건 권도운도 그렇게 믿고 싶어서 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팬이 이해해주는 건 한 번뿐이다. 아마추어팀에게 두 번이나 지는 프로팀을 팬이 좋아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두 번이나 지면 떠나는 팬이 부지기수일 거야.’

프로는 팬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팬이 실망해서 떠나면 팀원이 몽땅 교체되거나 아예 팀이 사라질 수도 있어.’

권도운이 헤드셋 마이크를 사용해 팀원들에게 경고했다.

“이겨라. 그래야 우리가 살아.”

AI 전지인이 물었다.

- 요원님이 전술 지휘를 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처럼 유찬 씨한테 맡겨야지.”

도전팀은 3차전을 이겨서 사기가 치솟았다. 팀원들은 기운이 넘쳤다.

프로팀은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최종 보스전 4차전이 시작됐다.

도전팀의 게임 속 영웅들은 활발하게 움직였다. 운도 따랐다. 도전팀 영웅이 날린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상대에게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도전팀은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반면에 프로팀은 방어에 집중했다.

대학생 해커 안성환이 흥분해서 말했다.

“이거 할만한데요? 우리가 압박하고 있어요!”

그건 안성환의 착각이었다. 프로팀이 방어적으로 나온 건 한 방을 노리기 때문이다.

팀 리더 권도운이 짧게 말했다.

“7, F 구역에 에잇 출현 예상. 정글이 확인해.”

“확인! 에잇 발견! 내가 붙잡고 있을게!”

게임 속에서는 아군 영웅이나 센서가 있는 곳만 보인다. 그 영역만 피하면 위치를 숨기고 이동할 수 있다.

“붙잡고 있어! 내가 간다! 밑에서도 올라와서 포위해! 에잇을 잡아!”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적 정글과 접촉했습니다. 제압 들어갑니다.

게임 속 영웅은 AI 전지인이 움직인다. 이 게임을 하는 동안은 나강인이 서포터다.

AI 전지인의 영웅이 적 영웅에게 화력을 쏟아냈다. 상대도 반격했지만 AI 전지인은 쉽게 피했다. 상대의 체력 표시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나강인이 말했다.

“적이 포위하려는 것 같은데?”

- 요원님의 이 게임 등급은 심해입니다만?

“내가 게임만 하면 시야가 좁아지긴 하는데, 남이 하는 걸 구경할 때는 평소처럼 잘 보이네?”

- 즉시 탈출하겠습니다.

프로게이머 정글이 다급히 말했다.

“어? 갑자기 에잇이 물러난다!”

“붙잡고 늘어져!”

“늦었어! 벽 너머로 빠져나갔어!”

“젠장! 눈치챘나?”

“어떻게 하지? 추격해?”

“지금 달려가도 늦어! 5초만 더 있었어도 잡을 수 있었는데! 포기해! 각자 라인으로 돌아가!”

이 경기는 스트리머와 BJ가 참관인으로 들어가 중계하고 있다. 참관인과 시청자들은 양쪽 진영 영웅의 움직임을 모두 볼 수 있다.

스트리머 뇌절소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살았다! 에잇이 포위돼서 죽을 줄 알았는데.”

- 저걸 사네.

- 포위당하는 건 어떻게 알았지?

- 에잇은 피지컬만 좋은 게 아닌데?

프로팀 리더 권도운이 짧게 말했다.

“다음엔 꼭 잡는다. 이번엔 정글이 먼저 들어가서 에잇을 유인해.”

“알았어!”

프로팀이 AI 전지인의 영웅을 잡으려고 각자의 라인을 벗어나면, 원래 맡은 포지션의 아마추어 팀원은 그만큼 여유가 생긴다.

김유찬이 팀원들에게 말했다.

“잘하고 있어요! 이대로만 합시다!”

몇 분 뒤에 프로팀 정글과 AI 전지인이 다시 접촉했다. 곧바로 전투가 벌어졌다.

권도운이 말했다.

“이번엔 제대로 걸렸어! 잡아!”

이번에는 프로팀 영웅들이 텔레포트를 소모하며 날아왔다. 포위망이 조금 전보다 더 좁았다. 채팅창에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 와. 이번 매복은 지렸다.

- 라인 이득 다 포기하고 함정을 팠어.

- 저러면 죽어야지.

- 어? 뭐야?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AI 전지인의 영웅은 프로팀의 텔레포트가 완료되기 전에 전투를 중단하고 빠져나갔다.

- 어?

- 에잇이 이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속박 걸고 튀는데?

- 저걸 눈치챘다고?

- 이러면 프로팀은 텔레포트만 낭비한 거 아냐?

스트리머 뇌절소녀가 말했다.

“와. 이러면 프로팀은 텔레포트만 날린 게 아니죠. 자기가 맡은 라인에서도 손해를 봤잖아요.”

- 이거 이상한데요? 상대 위치를 볼 수 있는 핵이라도 쓰는 거 아닐까요?

- 핵이랑은 움직임이 다른데….

- 저거 오프라인 경기인데요? 바하테크 본사에서 하고 있는데 핵을 쓰면 당연히 걸리죠. 저 회사 직원이 게임 중인 모니터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요.

- 그럼 도대체 어떻게 상대의 움직임을 아는 거지?

권도운이 말했다.

“우리 전술을 읽고 있는 것 같아.”

팀원이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나도 몰라. 어쨌든 우리 포위 전술은 확실히 읽혔어.”

“누구한테?”

권도운이 상대편을 보았다.

거리가 가깝고 소음도 적당히 있어서 상대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주로 말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지휘하는 사람이야.”

말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은 김유찬이다.

“김유찬?”

“아니야. 톱스타라서 팀 리더를 맡은 거겠지.”

“제일 유명하니까 그렇겠네.”

“그럼 진짜 전술가는 누구인데?”

“에잇이 확실해. 다른 넷과는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달라.”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상대편 선수들 음성을 증폭해서 엿듣는 건 아니지?”

- 공정해야 할 스포츠 경기에서 그런 반칙은 안 합니다.

“안 하는 거 알아. 그냥 말해봤어.”

프로팀 리더 권도운이 말했다.

“전술을 바꾼다. 에잇에게는 유인 포위 작전이 안 통해. 강공으로 가자. 다른 영웅들을 유인해서 대규모 싸움을 걸어야 해.”

2분 뒤에 전면전이 벌어졌다. 위쪽에서 각 팀 영웅 넷씩 여덟이 모여 정면으로 충돌했다.

프로게이머들이 흥분했다.

“우리가 유리해!”

“상대가 도망친다!”

“추격하면 하나둘은 잡을 수 있어!”

권도운이 급히 말했다.

“너무 밀지 마! 에잇이 보이지 않아! 후방 습격을 대비해!”

“알았어! 두 번은 안 당하지!”

“에잇이 후방에 나타나면 우리도 뒤로 선회해서 잡는다!”

“반격이다!”

프로팀 영웅 넷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갑자기 게임 속 중요 몬스터 소멸 메시지가 떴다.

“어?”

“아래쪽 드래곤이 먹혔어!”

“에잇이야! 이 전투에 안 끼고 혼자 드래곤을 잡으러 갔어!”

“젠장! 이번엔 왜 저기서 나와!”

안성환이 환성을 질렀다.

“살았어! 도망쳤다고!”

알레이나도 좋아했다.

“드래곤도 우리가 먹었어!”

프로팀은 AI 전지인의 영웅 때문에 무리수를 몇 번 뒀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망친 건 아니다. 그때 본 손해는 다른 곳에서 그만큼 메꾸었다.

“차근차근 이득 보면서 밀어! 서두르지 마!”

프로팀 정글 영웅이 작은 전투 후에 뒤로 후퇴해 몬스터를 잡았다. 그러면서 골드를 벌고 체력도 회복했다.

그런데 체력을 반쯤 회복했을 때, 갑자기 AI 전지인의 영웅이 그곳에 나타나 적 영웅을 순식간에 소멸시키고 휙 지나갔다.

채팅창에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 어?

- 방금 뭐가 지나갔냐?

- 거기서 왜 죽어?

- 그 상황에서 킬각을 보고 달려온 거야?

- 아니, 그게 왜 보이지?

도전팀 선수들은 흥분했다. 다들 프로팀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운다는 것에 고무되었다.

중앙 라인에서 다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도전팀이 프로팀을 압박했다. 프로팀 영웅들의 체력이 더 많이 빠졌다.

탱커 영웅을 맡은 팀원이 흥분했다.

“내가 들어간다! 나를 따르라!”

그녀가 그렇게 외치며 돌진했다.

다른 팀원들도 뒤따라 우르르 달려갔다. 아군 정글이 달려오는 중이지만 상대편도 정글이 없었다. 다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프로팀 리더 권도운이 짧게 말했다.

“적이 유인에 걸렸다. 스킬 다 쏟아부어!”

탱커가 함정에 빠졌다. AI 전지인의 영웅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탱커가 녹아버린 후였다.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 아. 저건 아니지.

- 탱커가 저기서 왜 먼저 뛰어들어가.

- 팀원들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녹아버렸잖아.

문제는 나머지 영웅 셋이다. 이대로 가면 그 영웅들도 버티지 못하고 소멸한다.

양측 정글 영웅이 거의 동시에 전장에 뛰어들었다.

프로팀 리더 권도운이 눈을 번뜩이며 계산했다.

‘넷 다 잡을 순 없어. 저 셋을 잡으면 에잇은 못 잡아. 에잇부터 잡으면 저 셋은 놓칠 수도 있어!’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그의 눈이 전장을 훑었다. 순식간에 계산이 끝났다.

“에잇부터 잡아!”

프로팀 영웅들은 체력이 바닥인 셋은 포기하고 AI 전지인의 영웅에게 화력을 집중했다.

도전팀 팀원들이 도와주려고 방향을 틀었다. 나강인이 짧게 말했다.

“나를 버려!”

“형!”

“가!”

AI 전지인의 정글 영웅이 적진에 뛰어들어 날뛰었다. 덕분에 아군 셋은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정글 영웅이 살아나는 건 불가능했다.

AI 전지인의 정글 영웅이 소멸했다.

채팅창에 불이 붙었다.

- 에잇이 뛰어들어서 아군 다 살리는 거 봤어요?

- 와! 나 감동했어요.

- 난 왜 갑자기 운명의 창이 생각나냐.

- 근데 썬더 울프는 왜 에잇만 잡아요? 하나보다는 셋을 잡는 게 더 낫지 않나요?

후퇴한 영웅 셋은 피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김유찬이 말했다.

- 우린 다 딸피입니다! 스쳐도 죽어요! 본진으로 후퇴해요!

권도운이 지시했다.

“지금이 기회다! 셋은 상단으로 가서 버프 챙겨! 둘은 중앙 라인 쭉 밀어!”

도전팀은 그 전투에서 너무 큰 손해를 입었다. 전선은 쭉 밀려났다. 일단 밀려버린 전선은 다시 복구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강력한 버프를 프로팀이 챙겼다.

그동안 박빙으로 싸우던 전황이 프로팀 쪽에 유리하게 변했다.

도전팀은 그 이후에도 정글 영웅의 활약으로 소규모 전투 몇 번은 승리했지만, 밀려버린 전황을 뒤집을 순 없었다.

한 시간 가까이 치열하게 싸운 끝에, 프로팀이 도전팀의 본진을 부수는 데 성공했다.

프로팀 선수들은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이겼다!”

“이게 프로지!”

그들은 아마추어팀을 상대로 싸우면서 그렇게 기뻐하긴 처음이었다.

최종 보스전이 그걸로 끝났다. 3승 1패로 프로팀이 이겼다.

뇌절소녀의 개인방송 시청자들도 채팅을 쳤다.

- 아쉽다. 탱커가 그 실수만 안 했어도 몰랐는데.

- 사실 그 실수를 안 했어도 이기긴 어려웠을 겁니다. 프로게이머들이 이 악물고 한다는 게 경기에서 보이던데요.

- 그건 그래요. 온갖 전술이 쏟아져나왔잖아요. 난 세계대회 보는 줄 알았어요.

- 근데 에잇은 진짜 누구죠? 혼자 무쌍 찍던데.

도전팀의 팀원들도 크게 아쉬워하진 않았다. 프로팀을 상대로 한 번이라도 이겨봤기 때문이다.

김유찬이 활짝 웃었다.

“우리 오늘 진짜 잘했습니다. 으하하하.”

알레이나가 말했다.

“이 대회는 매달 열리잖아요. 다음 대회 때는 다를 거예요. 더 연습해서 그때는 우리가 이겨봐요.”

“그건 우리가 다음에도 이렇게 팀을 짜야 가능한 일이죠.”

“어….”

팀원들이 나강인을 보았다.

토너먼트 우승팀이 여기까지 와서 한 판이라도 이긴 건, 나강인이 같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너먼트 때는 팀이 경기마다 무작위로 매칭된다.

탱커를 맡은 팀원이 말했다.

“다음 대회 토너먼트에서 에잇 님을 상대편으로 한 번이라도 만나면…. 생각만 해도 무섭네요.”

안성환은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형이랑 또 듀오로 하면 되니까 괜찮겠지.’

김유찬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다음 달 대회에서는 나하고 듀오 하자고 해야지.’

알레이나는 고민했다.

‘광돌이가 나랑 듀오를 해 줄까? 어? 잠깐. 그때쯤이면 나 수술받고 회복 중 아니야?’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난 완치되면 공식적으로 활동해도 되잖아. 그럼 대놓고 듀오 하자고 꼬드겨야겠다!’

대회가 끝난 후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로게이머들이 다가왔다.

팀 리더 권도운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이 경기가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많이 당황했습니다.”

톱스타 김유찬이 웃었다.

“결국 저희가 졌잖습니까? 세 번이나 지면서 겨우 한 번 이겼는데요. 역시 프로는 다르더라고요.”

“저희는 개인 훈련은 물론이고 팀 전술 훈련도 정말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급조된 팀에게 저희가 지면 안 되는데….”

팀 리더가 나강인을 보며 물었다.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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