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준비
합수부 형사가 다급히 물었다.
- 차 이사의 대포폰 번호를 도대체 어떻게 알아내셨습니까? 차 이사 끄나풀을 체포할 때 알아낸 번호는 있지만, 그건 쓸모가 없었는데요.
연락처를 가진 사람이 체포되면 차 이사는 그 대포폰을 다시는 켜지 않았다. 합수부에서는 차 이사가 해당 대포폰을 폐기했다고 판단했다.
- 살아있는 번호를 도대체 어떻게 입수한 겁니까?
나강인이 대답했다.
“바하테크 17층 독립 서버에서 찾아냈습니다.”
- 거긴 오늘 들어가서 잠깐 해킹하셨다면서요.
“잠깐 뒤져보니까 나오던데요.”
-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나올 리가…. 혹시 가짜 아닙니까?
“신경 써서 꼭꼭 숨겨둔 문서에서 찾았으니까 진짜일 겁니다.”
나강인은 그 번호가 복잡한 문서 속에 어떤 형태로 숨겨져 있었는지 설명했다.
- 잠깐 뒤져보셨다면서요? 그게 어떻게 잠깐 찾아보고 알아낼 수 있는 겁니까?
AI 전지인은 두 장의 문서를 놓고 차이점을 비교하는 것 정도는 순식간에 해낼 수 있다.
“되던데요.”
- 아, 예. 그러시겠죠. 생각해보니까 말이 안 되는 일을 한두 번 하신 게 아닌데…. 아니, 그래도 이건 종류가 다른데….
나강인이 설명했다.
“아마 차 이사의 그 대포폰은 평소에는 꺼져 있겠지만, 연락이 왔었는지 확인하려면 일단 켜야겠지요.”
합수부 형사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 그 번호를 계속 감시하고 있다가, 켜지는 순간에 휴대폰의 위치를 확인하면 거기에 차 이사가 있겠군요.
“그렇죠. 그 일을 합수부에서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며칠이면 될 겁니다.”
그 일은 민간인이 직접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합수부라면 방법이 있다.
- 저희 쪽에서 확실히 감시하겠습니다.
“차 이사의 위치가 확인되면 저에게도 바로 연락 주시고요. 같이 움직일 수 있으면 더 좋으니까요.”
-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나오시니까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차 이사 그 새끼! 이번에는 잡을 겁니다!
“대포폰 번호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나강인이 전화를 끊고 문자를 보냈다.
“며칠이면 되겠지?”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적이 며칠 내로 대포폰을 켜서 연락이 왔는지 확인할 겁니다.
“어떤 놈인지 면상이 보고 싶다.”
***
총권도 수련생인 경호원 민영희는 알레이나를 호텔로 데려다준 후에 1층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녀가 대형 거울 앞에 섰다. 그녀의 얼굴은 나강인이 변장술로 살짝 손봐준 상태였다.
“이 얼굴 진짜 마음에 드네.”
그녀는 호텔 밖으로 나와 그곳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그런 후에 그 사진을 총권도 수강생 단톡방에 올렸다.
곧바로 박순기가 물었다.
- 얼굴 고쳤냐?
민영희가 피식 웃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 지난번 수련 후에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새 고쳤겠냐? 이게 나다.
- 웃기시네. 어떻게 한 거냐?
- 나 사범님이 화장해줬다.
- 어? 나 사범님이 왜 네 얼굴을 고쳐?
- 오늘 알바 한 건 뛰었거든.
- 아! 변장이 필요했구나?
- 그게 다가 아니야. 짜쟌!
그녀가 왼팔을 사진으로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곧바로 반응이 왔다.
- 헉! 드래곤 플레이트냐!
이번에는 박순기만 물어본 게 아니다. 다른 수련생들도 앞다투어 메시지를 보냈다.
- 그게 왜 너한테 있어?
- 드래곤 플레이트 손목보호대 버전은 팔지도 않는 건데 왜 너 따위한테!
- 아니, 잠깐. 무늬가 다른데?
- 남수 형. 진짜 달라?
- 우리 쪽에 들어온 게 있어서 알아. 달라.
- 그럼 이거 짝퉁이네!
- 어? 이게 짝퉁이 존재할 수 있나? 드래곤 플레이트는 물량이 부족해서 각국 정부나 일부 기업 VIP가 아니면 팔지도 않는데? 짝퉁도 원본이 있어야 보고 따라 만들잖아.
- 그럼 이건 뭔데?
- 야! 민영희! 해명해라!
민영희가 씩 웃으며 메시지를 날렸다.
- 우매한 것들아. 이건 짝퉁이 아니다. 다만 드래곤 플레이트가 아닐 뿐이다.
- 그러니까 뭐냐고!
- 와이번 플레이트 세트의 팔뚝 부분이다.
- 와이번? 그런 게 있었어?
- 너희는 이런 거 처음 보지? 오호호호!
박순기가 물었다.
- 어디서 난 거야?
- 어디서 났겠냐? 나 사범님이지.
- 왜 너한테! 혹시 알바비 대신이냐?
- 아니. 그냥 조르니까 주더라.
- 조르면 되는 거였어?
- 나도 졸라야지!
- 나도!
- 나도!
민영희가 코웃음을 쳤다.
- 와이번 플레이트를 받은 사람은 내가 처음이다. 단 한 번도 판매된 적이 없는 거라고. 이건 그만큼 귀한 거야. 아무나 조른다고 되는 거 아니니까 꿈 깨라.
- 너 따위도 됐는데 나도 되겠지!
- 순기야. 체육관으로 와라. 오늘 나랑 뜨자. 너 오늘 너무 까칠하다.
***
알레이나는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로비를 지나가는 동안 변장한 그녀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들도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장기 투숙 중인 호텔방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앉았다.
“진짜 다른 사람 얼굴이 됐다.”
나강인은 그녀의 눈 주변을 고치고 헤어스타일을 바꿔주었다. 코와 입은 마스크로 가렸다.
그렇게만 했는데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우리 엄마도 못 알아보겠다.”
그녀는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가만. 이 변장을 했을 때는 아무도 날 못 알아보니까….”
지금은 그녀가 너무 유명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제한된다.
“이러면 자유가 생기는 거네? 그럼 당장 놀러 가야…. 아. 지금은 너무 지쳤어. 오늘은 안 되겠다.”
오늘은 이미 체력이 바닥났다. 민영희가 운전하고 그녀는 경기만 했지만, 그 경기에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체력 소모가 심했다.
그래도 그녀의 표정은 밝았다.
“내일도 광돌이한테 가서 얼굴을 고쳐달라고 하면 되겠다! 내일도! 모래도! 가만? 그러면 집에 다시 들어가도 되잖아!”
그녀가 두 손을 위로 번쩍 들었다.
“아싸아! 문제 해결! 이제 집에 돌아가서 예전처럼 막살아도 돼!”
***
이튿날 아침에 알레이나가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광돌아! 나 오늘도 변장해줘!”
- 그거 재료비 비싸다.
“얼마야? 얼마면 되겠어? 나 돈 많아!”
- 넌 오늘은 얼굴을 남에게 보여줄 일이 없잖아.
“어제처럼 변장만 하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 나 그거 해줘!”
- 광년아.
“응!”
- 호텔에서 게임이나 해라.
알레이나가 멈칫하다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나 집에 왔는데?”
알레이나가 말하는 집은 나강인의 옆집이다.
나강인이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 너 거기 가만히 있어라. 내가 지금 옆집에 가서 확인할 테니까.
그녀가 다급히 말했다.
“아니, 잠깐! 아직 집은 아니고….”
그녀는 아직 호텔에 머물고 있다.
- 어디서 개수작이야?
“그럼 내가 지금 집으로 가면 해줄 거야?”
- 나도 지금 밖이다. 일하러 나왔다.
“어? 옆집에 가서 확인한다며? 옆집이 우리 집인데?”
- 너만 뻥 치냐? 나도 뻥 쳤다. 광년아. 넌 너무 쉽게 읽혀.
“아이 씨. 이게 아닌데….”
- 게임 열심히 해라. 넌 아직 멀었더라.
***
며칠이 지났다.
총권도 수련생들이 체육관에 모였다. 프프걸스와 천사전사단은 스케줄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다.
대신에 오늘은 신은하와 이보라, 차은서, 이연지, 공지현이 체육관에 왔다. 신은하 외에는 모두 KMTV 드라마 출연이 확정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여기 온 건 촬영 전에 액션을 미리 연습하기 위해서다.
총권도 수련생들이 나강인에게 다가왔다.
나강인이 물었다.
“눈빛들이 오늘따라 기운이 넘치네요? 잘됐습니다. 오늘은 훈련 강도를 높여서 가보죠.”
박순기가 다급히 말했다.
“나 사범님. 그게 아니라요! 영희한테는 와이번 플레이트 기술로 만든 팔뚝 보호대를 줬다면서요?”
“그랬지요.”
“왜 영희만!”
“영희 씨는 혼자서 개인 경호를 종종 하니까 필요하겠다 싶어서?”
“저는요!”
“영희 씨가, 다른 분들은 필요 없을 테니까 하나만 있으면 된다던데요?”
네 사람이 동시에 민영희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눈빛이 매서웠다.
민영희가 얼른 두 손을 앞으로 들었다.
“뭐! 왜! 덤벼라!”
신은하가 끼어들었다.
“어머어. 나는 드래곤 플레이트가 있는데, 와이번은 또 뭐예요?”
민영희가 얼른 신은하의 옆으로 도망친 후에 말했다.
“드래곤 시리즈가 레어 아이템이면 와이번은 그냥 매직이죠.”
“아. 내 거가 더 좋은 거네요?”
민영희가 네 사람에게 외쳤다.
“다들 왜 나한테만 그래! 은하 씨는 나보다 더 좋은 게 있는데!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 안 했으면 나도 못 받을 뻔했다고!”
박순기가 나강인에게 항의했다.
“나 사범님! 저랑 같이 사람도 구하고, 나쁜 놈도 잡고 했는데, 왜 쟤만!”
다른 세 사람도 박순기를 응원했다.
“순기 잘한다!”
“더 해!”
“설마 순기한테만 주시진 않겠지!”
나강인이 손을 들었다.
“알았어요. 그건 원래 와이번 플레이트 세트의 일부분인데, 왼쪽 팔뚝용으로 하나씩 만들어줄 테니까 진정해요.”
박순기가 슬쩍 욕심을 냈다.
“기왕이면 상체 방어구로….”
“싫으면 말고요.”
“아닙니다. 싫기는요. 기왕이면 보호대 표면에 총권도 마크라도 새겨달라는 거죠.”
“그런 마크가 있어요?”
“이제부터 만들어야죠? 하하하.”
AI 전지인이 AR 렌즈를 통해 부대 마크를 하나 보여주었다.
- 지구연합군 부대 마크 중에서 총과 주먹이 나오는 것을 찾았습니다.
“저게 개별 부대 마크는 아니지?”
- 아닙니다. 제 초기 메모리에 들어 있는 건 부대 타입별로 사용하는 공용 마크입니다.
“그냥 전략 특수군 마크를 쓰는 건 어때?”
- 저 훈련생들에게는 과분합니다.
“그럼 저 총과 주먹 마크는 어느 부대 거야?”
- 강습사단을 의미하는 마크입니다.
“저거로 하자.”
나강인이 물었다.
“지금 총권도 마크를 그릴 테니까 일단 보고 결정해요. 누구 종이랑 펜 가진 분?”
박순기가 가방에서 노트와 볼펜을 꺼냈다.
“이거면 될까요?”
“딱 좋네요.”
나강인이 종이에 지구연합군 강습사단 마크를 그렸다.
그가 몽타주를 그릴 때는 AI 전지인의 손 보정이 들어간다. 홀로그램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손으로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이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 불가능합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부대입니다.
나강인이 그림을 완성한 후에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거면 어때요?”
총권도 수련생들이 그림을 보고 박수를 쳤다.
“진짜 있어 보입니다!”
“몽타주를 잘 그리신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런 디자인도 진짜 장난 아니십니다.”
총권도 5인방은 가끔 이 체육관에 모여서 훈련을 받는다.
신은하도 CF를 찍을 때 따로 훈련을 받아봤다.
하지만 배우 네 명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나강인이 그 배우들에게 물었다.
“나한테 액션 연기를 배우고 싶다고?”
차은서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대사는 별로 없지만 자주 등장하니까 액션 연기 기회가 많을 거예요. 기왕이면 제대로 하고 싶어요.”
나강인이 이연지에게 물었다.
“너도?”
“전 액션 때문에 뽑혔다던데요? 그니까 잘해야죠.”
“네가 오디션 때 벽을 밟고 날아다녀서 액션 점수를 많이 받았지만, 연기도 꽤 잘했어.”
“진짜 잘하는 분들하고 비교하면 햇병아리죠. 더 열심히 해야 돼요.”
“음….”
AI 전지인이 말했다.
- 이연지의 운동능력은 공부만 하던 학생의 수준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수준입니다.
“너는 운동 따로 배운 거 없다고 했지?”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배웠다니까요?”
“그거 말고는?”
“당연히 없죠. 저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에요.”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네가 어딜 봐서? 너 땡땡이 자주 치더라?”
“하긴. 제가 말해놓고도 어색하네요. 모범생은 아닌데. 히히.”
나강인이 공지현을 보았다.
“너는?”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연기라면 다 배우고 싶어요.”
“역시 지현이는 자세가 됐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굴러보자. 내 액션 훈련은 별거 없어. 그냥 구르다 보면 돼.”
그 구르는 훈련이 어떤 수준인지 CF를 찍을 때 경험해 본 신은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난 아직 캐스팅 결과 안 나왔으니까 다음에 할게!”
“캐스팅은 며칠 내로 결정될 거야. 더 미루면 촬영 일정에 문제가 생기니까.”
“내가 주연이 안 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미리 훈련해야지. 캐스팅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런가? 하긴.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다는 소식을 슬쩍 흘리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겠다.”
“자. 그럼 다 이해한 거로 알고 시작….”
이보라가 얼른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저한테는 왜 안 물어봐요?”
“이 액션 연습은 네가 하자고 한 거라며?”
“그…렇죠?”
“그러니까 넌 물어볼 필요도 없이 굴러야지.”
***
나강인은 열 사람을 열심히 굴렸다.
박순기는 특별 케이스로 더 굴렸다.
한 시간 후에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신은하가 체육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말했다.
“아니, 잠깐. 내가 잘못 생각했어. 이건 아니야.”
지쳐서 나가떨어진 이보라가 욕이라도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도대체 누가 하자고 한 거야!”
“너! 네가 했어!”
“좀 말리지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