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02화 (302/411)

302. 제작 거점

신은하와 이보라만 뻗은 게 아니다.

공지현도 체육관 바닥에 누워서 숨을 헐떡였다.

“언니들은 소리칠 힘이 있나 봐요. 저는 진짜 죽을 거 같은데.”

운명의 창을 찍을 때는 액션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나강인이 설계한 액션은 대부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끊기지 않고 연속으로 쭉 촬영하는 방식이다. 누군가 중간에 실수해서 다시 찍더라도 재촬영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그녀는 나강인에게 액션 연기를 배울 때도 그렇게 할만할 줄 알았다. 연습이니까 영화 촬영 때보다 쉬울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굴러보니 그게 아니었다.

‘혼자 이 훈련을 받았으면 아까 뻗었을 거야.’

다섯 명의 배우가 체육관에서 똑같이 굴렀다. 그래서 겨우 버틸 수 있었다.

존경심도 좀 들었다.

‘이런 힘든 수련을 오랫동안 하셨으니까 액션 고수가 되신 거겠지.’

그건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은 지구연합 군용 신체 강화 시술 덕분이다. 영화 촬영 때 다른 배우들의 움직임까지 통제할 수 있는 건 전투지원 AI 전지인의 보조 덕분이다.

차은서는 이번 드라마에서 신인치고는 괜찮은 배역을 받았다. 그녀는 낙하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오늘 훈련을 이 악물고 받았지만, 결국 뻗었다.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서 의지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했다.

“근데요. 연지는, 괜찮은가 봐요.”

배우 다섯 명과 총권도 수련생 다섯 명의 훈련 강도는 다르다. 총권도 수련생들은 체력이 좋은 만큼 더 많이 굴렀다.

그래서 아홉 명은 잠깐 주어진 휴식시간에 바닥에 널브러졌다.

수련생들은 빨리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드러누웠다.

배우들은 앉아 있을 힘도 없어서 누웠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연지는 아예 눕지도 않고 생수병을 아홉 개나 챙겨서 다른 배우와 수련생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전 할만하던데요?”

정보기관 요원 김경식이 바닥에 누워서 생수병을 받으며 물었다.

“이게 할만해?”

“에이. 저는 아저씨만큼 심하게는 안 했잖아요.”

“연지야. 국가를 위해 그 한 몸 바쳐볼 생각 있니?”

“없는데용.”

“없구나. 그래. 잘 생각했다. 넌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민영희가 옆으로 누워서 손을 뻗었다.

“연지야. 언니한테 경호 기술 배울래? 너 이쪽 일 하면 잘할 거 같아.”

박순기가 옆에서 손을 흔들었다.

“쟤 전교 1등에 배우까지 하잖아. 과학자가 되든 배우가 되든 그쪽으로 성공하면, 경호 받는 쪽에서 안 부담스럽겠냐?”

“하긴. 자기보다 유명한 배우가 자기를 경호하면 좀 난감하겠다.”

“반대로 배우로는 못 떴는데 다른 배우 경호를 해봐. 분명히 뒤에서 이상한 말 나온다.”

“연지야. 하지 마. 넌 이쪽 일이랑 안 맞아.”

“넹!”

나강인이 배우들에게 말했다.

“자. 충분히 쉬었으면 이제….”

신은하가 체육관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팔다리를 파닥거렸다.

“더는 못해! 우리 비밀기지는 북쪽 산에 있다! 자백했으니까 살려줘!”

다른 세 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강인을 보았다. 다들 배우라서 표정 연기가 상당했다.

이연지는 더 할 힘이 있지만, 눈치가 없는 건 아니라서 가만히 있었다.

“음…. 오늘 훈련은 좀 빨리 끝낼 생각이었는데.”

“난 지금 당장 끝나기를 원한다!”

“뭐, 그러자. 더 굴렸다간 한두 명 죽을 거 같으니까.”

신은하가 몸을 일으켰다.

“진짜?”

“은하야. 넌 힘이 좀 남은 것 같….”

그녀가 도로 벌렁 드러누웠다.

“잘못 본 거야!”

“알았다. 고기나 먹으러 가자.”

“응? 고기?”

“바비큐.”

이연지가 옆에서 입맛을 다셨다.

“고기 어디서 먹어요?”

“내 제작… 작업실 앞마당이 고기 먹기 딱 좋아.”

총권도 수련생 다섯 명도 눈을 반짝였다. 박순기가 물었다.

“나 사범님. 그럼 저희도….”

“와이번 플레이트를 만들어야 하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죠.”

수련생 다섯 명이 즉시 벌떡 일어났다.

“얼른 가죠!”

“당장 짐 챙길까요?”

구워 먹을 고기는 마트에서 나강인이 직접 골랐다. AI 전지인이 신중하게 고기를 고르며 말했다.

- 굽는 건 다른 사람에게 맡기십시오.

AI 전지인은 직접 만든 요리보다 남이 만든 밥을 더 좋아한다.

“당연하지.”

그들은 먹을거리와 술까지 충분히 산 후에 세 대의 차에 나눠 타고 나강인의 제작 거점으로 이동했다.

나강인의 제작 거점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서 경기도 쪽에 있다. 그곳은 산에서 가까웠다. 주변에 다른 집이나 건물은 별로 없었다.

제작 거점 앞에는 넓은 공터도 있었다.

총권도 수련생 중에는 전에 이곳에 와본 사람도 있고 처음 온 사람도 있다. 그런데 처음 와본 수련생들도 여기가 어디인지는 안다.

“아. 여기가 그 비밀 제작소….”

“겉모습만 보면 그냥 낡고 작은 2층 건물인데….”

나강인이 그들을 제작 거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와아. 겉만 그렇고 내부는 진짜….”

“장난 아니다. 최첨단 비밀기지 같아.”

“일부러 건물 외부는 허름하게 하신 건가?”

원래 허름하던 곳이라 싸게 샀다. 내부의 장비는 그동안 꾸준히 늘렸다.

나강인이 수련생들에게 말했다.

“와이번 플레이트는 오늘 만들 겁니다.”

박순기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몇 개나요?”

“네 개 다요.”

“네? 그걸 오늘 다 만드실 수 있습니까?”

“못 믿는 사람은 안 만들어줄 겁니다.”

“믿습니다!”

“팔뚝 형태를 측정해야 하니까 한 명씩 이쪽으로 와요.”

박순기가 제일 먼저 다가왔다.

“저요!”

민영희가 투덜댔다.

“이건 나만 받는 줄 알았는데.”

박순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넌 마음을 그렇게 나쁘게 쓰니까 결혼을 못 하는 거야.”

“뒈지고 싶냐?”

“야. 미성년자도 있는 곳에서 욕은 좀 아니지.”

“극락왕생하고 싶으세요?”

“아니, 미안. 살려줘.”

배우팀 다섯 명 중에 넷은 제작 거점 내부를 보며 감탄했다.

이보라는 입을 쩍 벌렸다.

“어머나. 여기 무슨 비밀기지야?”

신은하가 자랑했다.

“강인 오빠가 이것저것 만드는 곳이야.”

공지현은 눈을 반짝거렸다.

“세상에. 선생님은 연기랑 운동만 잘하시는 게 아니었어. 공부도 잘하셨나 봐.”

“강인 오빠 한국대 나왔어.”

“와!”

“거기 교수님하고 어려운 연구도 공동으로 하고 그래.”

“와아! 무슨 연구인데요?”

신은하도 잘 모른다. 듣긴 했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으응? 뭔가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는 그런 거?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해?”

이연지가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혹시 아저씨가 가끔 얼굴에 박쥐 가면 쓰고 그래요?”

신은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안 그래. 그런 가면 없어.”

차은서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인 오빠가 우리 피시방에 왔을 때는 돈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런 곳이 있으면서 그때는 왜….”

“그때는 없었는데, 그동안 돈 많이 벌었어. 영화도 하고 드라마도 하고 따로 뭔가 만들고 그래.”

“와. 진짜요? 그럼 지금 부자예요?”

“아니. 그동안 번 돈으로 이 낡은 건물 사고, 저런 장비들도 자꾸 사고, 한국대학교에 연구비로 투자하고….”

갑자기 신은하가 투덜댔다.

“아이 씨. 생각하니까 열 받네. 그렇게 흥청망청 다 써버려서 나한테 쓸 돈이 없어!”

나강인은 사람들의 왼팔 측정을 마치고 설계를 시작했다. 그가 첫 번째 팔뚝 보호대를 설계하고 부품 제작을 위해 장비를 돌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앞마당에서 먹을 준비를 했다.

나강인이 앞마당으로 나갔다. 고기를 구울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신은하가 입맛을 다셨다.

“술은 이슬하고 테란이네? 섞어 먹자. 소주랑 맥주는 섞어야 제맛이지.”

곧바로 바비큐 파티가 시작됐다.

총권도 수련생 다섯 명은 고기를 열심히 먹었다.

“여기서 먹으니까 더 맛있네.”

“오늘 훈련이 일찍 끝나서 더 맛있다.”

“매일 이런 식이면 좋겠다.”

그런데 다섯 명 중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 두 사람은 술을 마실 수 없다.

박순기가 불평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 차는 놔두고 올걸.”

민영희가 말했다.

“대리 불러.”

“여기는 너무 외진 곳이라서 대리 못 불러. 그래서 아쉽다.”

고기 몇 점을 먹고 나서 술병에 손을 대던 민영희가 멈칫했다.

“어?”

“뭐야? 너 그 생각은 못 한 거냐?”

“아니, 나는 몰랐지. 야! 그런 건 미리 알려줬어야지!”

다른 세 명은 술을 잘만 마셨다. 이호석이 소맥을 말아 마시며 웃었다.

“흐흐흐. 우리가 너희 것까지 마실 테니까 고기나 많이 먹어.”

배우들은 육식 맹수처럼 고기를 흡입했다.

이보라가 쌈을 입안 가득히 넣으며 말했다.

“고기만 먹으면 건강을 망쳐서 그렇지 살은 안 쪄. 먹어. 먹어. 막 먹어.”

차은서가 물었다.

“우리는 술도 마시고 있잖아요.”

“어…. 밥은 먹지 마.”

이연지가 불평했다.

“전 사이다 먹고 있어요. 저도 그거 한 잔만 마시면 안 돼요?”

이보라가 얼른 술병을 옆으로 치웠다.

“응. 넌 아직 안돼.”

“고기가 너무 잘 들어가요. 너무 맛있어요.”

“우리 오늘 운동 많이 했잖아. 그래서 그래.”

신은하가 외쳤다.

“이게 우리 최후의 만찬이야! 배가 찢어질 때까지 먹어!”

나강인은 수시로 제작 거점에 들어가 설계도를 추가하고 장비를 다시 세팅했다.

와이번 플레이트에 필요한 부품은 미리 준비된 합금 철판을 전자동 장비가 입력된 도면에 따라 레이저로 잘라내고 가공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그래서 세팅만 제대로 해주면 필요한 부품은 자동으로 나왔다.

나강인이 밖으로 나와서 고기를 먹으며 신은하에게 물었다.

“며칠 내로 주연이 확정되면 드라마 제작 스케줄도 곧바로 시작하는 건 알지?”

“알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먹잖아. 스케줄 시작하면 식단관리 들어가야 해.”

나강인은 음식을 먹는 와중에 틈틈이 안으로 들어가 작업 결과물을 직접 손보고 장비를 새로 세팅했다.

와이번 플레이트의 왼쪽 팔뚝 부분은 설계나 제작에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건 총탄을 막을 수 없는 대신에 생산성이 좋았다.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마신 후에 그가 결과물을 가지고 나왔다. 그가 가져온 건 팔뚝 보호대 다섯 개였다. 민영희의 것은 똑같은 문양을 새기기 위해서 안으로 가져갔었다.

모든 보호대에는 총과 주먹 모양의 마크가 레이저 마킹 방식으로 새겨져 있었다.

박순기가 깜짝 놀랐다.

“어? 벌써 다 만드셨어요?”

“전체 세트가 아니라 한쪽 팔뚝 부분만 만드는 거니까 오래 안 걸려요. 하나씩 착용해 봐요.”

다섯 사람이 얼른 고기를 내려놓았다. 다들 혹시 새 보호대에 기름기라도 묻을까 봐 물티슈로 손을 닦은 후에 만졌다.

박순기가 먼저 팔뚝 보호대를 찬 후에 왼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가벼웠다. 움직임이 제한되지도 않았다.

박순기가 왼팔을 들고 활짝 웃었다.

“이거지! 쇠파이프 같은 건 이걸로 팍 막고…. 어? 나 사범님. 이걸로 막다가 망가지면 수리도 되나요?”

“드래곤이나 와이번 시리즈는 원래 수리가 어려워요.”

“아. 조심해서 써야겠습….”

“임무 수행 중에 망가지면 하나 새로 만들어드리죠.”

“으흐흐. 팍팍 막겠습니다.”

경호관 최남수가 왼팔을 움직여보다가 물었다.

“나 사범님. 이건 판매는 안 하십니까?”

“총알도 못 막는 걸 어디 쓰게요?”

“저희가 꼭 총알만 막는 건 아니니까요. 이게 있으면 저희 일에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대량생산이 안 되는 건 드래곤 플레이트와 마찬가지라서.”

“아…. 그럼 어렵겠네요.”

민영희가 옆에서 말했다.

“남수 오빠. 와이번 플레이트는 우리끼리만 써야 더 특별하지. 총권도 마크까지 찍혀 있는 걸 왜 여기저기 뿌리려고 그래?”

“그런가?”

“가서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이나 실컷 해.”

이연지가 쪼르르 다가왔다.

“앗! 이거 진짜 있어 보여요! 다섯 분이 같이 포즈 잡으시면 사진 찍어드릴게요!”

김경식이 손을 흔들었다.

“아니, 우리는 사진은 좀….”

민영희가 말했다.

“연지야. 우리 중에 사진 찍혀도 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하지 마.”

“네? 왜요?”

신은하가 이연지를 불렀다.

“연지야. 그분들은 위험한 일 하는 분들이니까 사진 찍지 말고 이리로 와서 고기 먹어.”

“공무원 아녔어요?”

“맞긴 맞는데, 위험한 일을 하는 공무원들이야.”

“맹수 사냥 같은 거 하시나?”

“얼른 와서 고기나 더 먹어.”

“넹!”

사람들은 다시 고기에 손을 댔다. 이제 다들 배가 불러서 먹는 속도가 느렸다. 와이번 플레이트를 만드느라 얼마 먹지 못한 나강인만 입맛을 다시며 다가갔다.

나강인이 젓가락을 잡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그는 모르는 번호는 어지간하면 받지 않는다. 그가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로 발신자부터 확인했다.

합수부 형사의 전화였다.

“음?”

나강인이 한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뭔가 나왔습니까?”

- 차 이사의 대포폰이 켜졌습니다.

나강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위치 바로 보내주시죠.”

- 지금 보냈습니다.

문자로 주소가 하나 날아왔다.

AI 전지인이 즉시 그 주소 주변의 간단한 지도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상세 지도는 인터넷으로 조회하는 게 낫지만 간단한 지도로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여기서 가까운 곳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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