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추적자 II
나강인이 주차장 바닥을 가리켰다.
“시멘트가 아니라 맨땅입니다.”
이 주차장은 넓은 공터에 울타리를 쳐서 만들었다.
박순기가 손바닥을 치며 물었다.
“아! 맨땅에 난 바퀴 자국으로 최근에 들어온 차들을 찾는 건가요?”
“바닥을 단단히 다져서 만든 데다가 출입한 차량이 워낙 많아서 그건 어렵습니다. 그래도 주차된 지 오래된 차 일부는 제외할 수는 있지요.”
나강인이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차량의 상태를 확인했다. 특히 타이어를 먼저 보았다.
“대포폰이 켜진 장소에서 찾은 바퀴 자국은 경차용은 아닙니다. 승용차도 타이어 좁은 건 제외하면.”
나강인이 주차장을 다 돌고 나자 AI 전지인이 도표를 띄워 보여주며 보고했다.
- 설정 조건과 맞지 않는 차량을 모두 제외했습니다. 남은 차량은 15대입니다.
“이것저것 다 제외하고 나니까, SUV와 승용차 열다섯 대가 남는군요.”
“예? 그게 그냥 한 번 쭉 돌면서 대충 보면 다 보이십니까?”
“쭉 돌면서 자세히 봤습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제가 봤습니다.
“역시 나 사범님. 그런데 용의 차량이 열다섯 대나 되면.”
박순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걸 저희 셋이서 어떻게 다 조사하죠?”
“한 대만 골라내야죠.”
“예? 어떻게요? 여기 있는 차 중에서 골라낸 게 열다섯 대라고….”
“단서는 더 있습니다.”
나강인이 근처에 주차된 차량의 번호판을 가리켰다.
“차 이사라면 가짜 번호판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겠지요?”
“그야 그렇죠. 그놈이 그동안 저지른 짓을 보면, 훨씬 더 정밀한 것도 위조할 수 있을 겁니다. 철판을 성형해서 페인트만 바르면 되는 가짜 번호판 정도는 쉽게 만들겠죠.”
나강인이 아까 지나온 곳을 가리켰다.
“대포폰이 켜진 그 장소에는 차가 정차한 곳 앞뒤로 발자국이 많더군요.”
“예. 거기서 뭔가 했을 거라고 하셨…. 아! 거기서 진짜를 가짜 번호판으로 바꿨군요!”
“아마 처음부터 가짜 번호를 달고 와서, 거기서 또 다른 가짜로 바꿨을 겁니다.”
“하긴. 차 이사라면 번호판쯤이야 몇 번이라도 바꿨겠죠.”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가짜 번호판이 붙어 있는 차를 찾으면 됩니다.”
박순기가 휴대폰을 들었다.
“차량 번호 조회부터 할까요?”
“그래서 정확히 찾을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좋지요. 그런데 번호판을 가짜로 만들더라도 차종이나 색깔 정도는 맞춰서 했을 겁니다.”
“하긴.”
“그러니까 확실히 하려면 직접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나강인이 조금 전에 주차장을 돌아다닐 때 AI 전지인은 각 차량의 영상을 수집했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열다섯 대의 전면 사진 모두 띄워.”
수집된 열다섯 대의 차량 홀로그램 사진이 허공에 주르륵 떴다.
“차 앞부분과 번호판의 오염 상태가 다른 차를 찾아.”
AI 전지인이 즉시 열세 장의 사진을 치우고 승합차 한 대와 승용차 한 대의 사진을 남겨 확대했다. 오염 상태가 어떻게 다른지도 표시했다.
- 두 대를 찾았습니다.
그 두 대의 위치도 AR 렌즈를 통해 표시했다.
나강인이 그쪽으로 걸어가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 9인승 SUV는 범퍼와 그릴의 오염 상태와 번호판의 상태가 다릅니다. 범퍼에 묻어 있는 흙이 번호판에는 없어요.”
“어? 자세히 보니까 그러네요? 번호판이 그릴보다 조금 깨끗한 느낌도 들고요.”
그가 다른 차도 가리켰다.
“저 승용차도 번호판이 너무 깨끗합니다.”
“저건 일부러 닦은 것 같은데요?”
“그렇죠. 번호 쪽만 물로 닦은 것처럼 깨끗한 걸 보면, 고속도로에서 과속할 때 앞에 휴지라도 붙이고 달렸을 겁니다.”
“벌금 강하게 맞을 짓인데….”
“그러니까 저 승용차는 차 이사의 차가 아닙니다. 고속도로에서 쓴 번호판을 달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까 그곳에서 번호판을 바꾸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그것도 그러네요. 아까 거기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일반 도로니까요.”
나강인이 9인승 SUV를 가리켰다.
“남은 차는 이것뿐입니다. 차 이사는 이 차를 타고 왔습니다. 이 번호판은 가짜일 겁니다.”
“일단 번호부터 조회하겠습니다.”
박순기가 제작 거점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했다. 번호도 불러주고 빠른 조회를 당부했다.
민영희가 물었다.
“나 사범님. 그럼 지금부터 이 차를 감시하는 건가요? 그놈들이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가 잡으면 되죠?”
“여기서 기다릴 게 아니라.”
나강인이 지역 축제가 한창인 유원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놈들을 저기서 찾아내야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놈들이니까요.”
“하지만 이 차를 타고 온 놈의 얼굴을 모르잖아요. 여긴 CCTV도 없는데.”
잠시 후에 박순기가 다가와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조회 결과가 문자로 들어왔습니다. 번호판과 차량의 타입은 일치합니다만, 차 주인의 휴대폰 위치는 다른 곳에서 잡힙니다. 그것만 가지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정황상 가짜 번호판이 맞나 본데요?”
“예상대로군요. 이제 순기 씨가 해줄 일이 있는데요.”
“말씀만 하시죠.”
나강인이 SUV의 맞은편에 주차된 차를 가리켰다.
“저 차에 블랙박스가 있습니다. 주차 중 상시 감시로 해놨으면 이 차에서 누가 내렸는지가 찍혔을 겁니다.”
“진짜 찍혔으면 좋겠습니다.”
박순기가 차량 운전석에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그는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협조를 요청했다. 잠시 후에 차 주인이 걸어왔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무슨 일이신데….”
박순기가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저희가 수사 중인 사건이 있는데 말이죠.”
“제, 제가 무슨 짓을 했는데요?”
“선생님이 아니라, 이 차 블랙박스에 최근에 뭔가 찍혔을 것 같아서요. 잠깐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차 주인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 휴우. 난 또.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협조해야죠.”
차 주인이 차량 블랙박스에서 메모리카드를 뽑아주었다. 박순기가 그 메모리카드를 나강인에게 넘겼다.
나강인은 스마트폰에 메모리카드를 넣은 후에 최근 영상 파일들을 복사했다.
박순기가 메모리카드를 돌려주며 말했다.
“협조 감사합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범인을 꼭 잡으세요.”
“예. 물론이죠.”
차 주인이 간 후에 세 사람은 그들의 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나강인이 스마트폰에 복사한 동영상을 차에 있는 노트북에 다시 복사한 후에 영상을 재생했다. 큼지막한 노트북 화면에 뜨는 영상을 세 사람이 같이 확인했다.
박순기가 화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어? 내립니다! 여섯 놈이나 되는데요? 차 한 대에 많이도 탔네요.”
“그래서 9인승 SUV가 필요했겠죠.”
민영희가 박순기에게 물었다.
“저 중에 누가 차 이사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워낙 귀신같은 놈이라 사진이 찍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나강인이 말했다.
“얼굴을 확인했으니까 저놈들을 찾으러 갑시다. 난 따로 갈 테니까 두 사람은 같이 움직여요.”
박순기가 물었다.
“예? 왜 우리는 같이….”
“두 분이 애인이나 부부처럼 하고 다니면 더 자연스럽잖습니까? 아무도 의심 안 할 겁니다.”
“민개랑요? 제가요? 애인이요? 부부요?”
민영희가 인상을 구겼다.
“뒈지고 싶냐? 나도 싫거든?”
두 사람은 투덜대면서도 같이 움직였다. 적이 여섯 명이나 되는 상황이라 박순기나 민영희는 등 뒤를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 나강인은 혼자서 움직였다.
“지인아. 그놈들을 찾아.”
- 이미 요원님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영상과 비교하는 중입니다.
“그놈들이 사람이 많은 곳으로 온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게 뭔지도 알아내야….”
- 요원님.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강인은 당황했다.
“나도 봤다.”
이 유원지에서는 지역 축제가 한창이다.
나강인이 축제 현장에 차려진 공연 무대를 보았다. 그런데 그 무대 근처를 아는 얼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 프프걸스를 발견했습니다.
“쟤들이 왜 저기서 나와?”
- 저 병아리들은 오늘 스케줄이 있어서 체육관에 오지 못했습니다.
“그 스케줄이 이거였냐?”
- 지역 축제는 아이돌의 좋은 행사 소득원입니다.
나강인이 프프걸스를 보며 말했다.
“차 이사는 조용히 찾아야겠다. 쟤들 행사를 망치면 좀 그렇잖아.”
- 이곳은 민간인이 너무 많아서 전투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감시만 하고, 행사장을 벗어난 후에 잡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당연히 그게 좋겠지. 그러려면 이놈들을 찾아야 하는데, 왜 한 놈도 안 보이냐?”
이 유원지에는 건물이 몇 채 있었다.
“실내에 들어가 있나?”
유원지를 좀 더 조사하는데 합수부 형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강인이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 차 이사의 대포폰이 켜졌던 위치에 저희 팀이 도착했습니다.
“직접 가신 거군요.”
- 제가 좀 늦게 출발했는데 서둘러 달려서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 보내주신 그 단서는 어떻게 찾아내신 겁니까?
“잘이요.”
- 아, 네. 잘…. 어? 잠시만요. 제가 다시 걸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가 몇 분 후에 다시 연결됐다.
-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유원지에도 지원팀이 갔습니다.
이 유원지에 차 이사가 있다는 정보는 주차장을 조사할 때 합수부에 전달했다. 영상도 그때 보내주었다.
“여기를요? 차 이사가 눈치 못 채게 천천히 조사하신다더니요?”
- 합수부가 외부 기관에 조용히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외부 기관에서는 생각이 달랐나 봅니다.
“어디서요?”
- 경찰 쪽에서 한 팀이 여기로 오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그 유원지로 방향을 틀었답니다.
“순기 씨가 여기 있는데 굳이요?”
- 순기랑은 소속이 다릅니다. 경찰은 경기도 쪽에서 팀이 나갔습니다.
나강인이 합수부 형사의 말에서 이상한 단어를 감지했다.
“잠깐만요. ‘경찰은’이라니요?”
- 정보기관 쪽에서도 비슷하게 움직였습니다. 차 이사는 국제 산업스파이니까 그쪽도 관할이긴 해서요.
“사람을 보낸 기관이 두 곳입니까?”
- 군에서도 대전차미사일 사건 조사를 근거로 수사관을….
나강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몇 곳에서 온 겁니까?”
- 다섯 곳입니다. 지금쯤 도착한 팀이 있을 겁니다.
“환장하겠네요.”
- 차 이사가 하도 거물이니까 다들 잡아보겠다고 팀을 보냈는데, 여기저기서 한 팀씩 보내다 보니까 규모가 커졌습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병아리 두 마리를 찾았습니다.
“일단 한 팀은 찾았습니다. 아는 얼굴이니까 제가 만나보죠.”
-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건데,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까 다들 의욕이 앞서서….
“형사님 잘못은 아니죠. 알겠습니다.”
***
정보기관 수습 요원 김 과장이 말했다.
“여기서 그 여섯 놈을 찾으라고? 사람이 너무 많은데?”
나강인은 차량 블랙박스에서 확인한 영상을 이미 합수부로 보냈다.
그 영상에는 차에서 내린 사람들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선명한 영상은 아니지만 사진과 얼굴을 잘 보고 비교하면 구분할 수는 있었다.
“그 사진은 확대해서 그런지 좀 흐릿해서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겠던데.”
“그래도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나강인이 두 사람의 뒤에서 물었다.
“위에서 뭘 까라고 하디?”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헉!”
“어멋! 나 사범님? 왜 여기 계세요?”
“뭐냐? 내가 여기 있는 거 모르고 왔냐?”
“아니, 저희는 이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는데, 위에서 일단 여기부터 가라고 해서….”
이 두 사람은 나강인과 아는 사이다. 우주 정거장 계획과 관련된 위성기지국 해킹 사건 때는 나강인이 두 사람을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수습인 너희들을 왜 굳이 보냈겠냐? 너희 위쪽에서는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보낸 거야.”
“그, 그런가요?”
“잠깐. 너희 둘만 온 거 맞아?”
“저희도 그건 잘….”
수습 요원 이 과장이 팔을 툭 쳤다. 김 과장이 즉시 말을 바꾸었다.
“아, 죄송합니다. 작전 중이라 현재 상황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너희 기관에 그 현재 상황을 알려준 사람이 나다.”
“예?”
“됐다. 괜히 사고나 치지 말고….”
AI 전지인이 경고 메시지를 띄웠다.
- 10시 방향 상황 발생!
나강인이 옆을 슬쩍 보았다.
AI 전지인이 관광객 사이에 있는 네 사람을 따로 표시했다.
- 위험인물들을 발견했습니다.
“저놈들이 왜?”
- 무대 주변 민간인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무대 옆에는 프프걸스가 있었다. 매니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늘 공연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는 중이다.
AI 전지인이 경고한 네 사람은 프프걸스를 보고 있었다.
“그냥 구경하는 모습은 아니지?”
- 전술 대형입니다. 상황이 나빠지면 습격할 수도 있습니다.
“무장은?”
- 적의 옷이 두꺼워 분석이 어렵습니다. 권총을 소지했을 수 있습니다.
“습격하려는 이유는?”
- 모르겠습니다.
나강인은 짐작이 갔다.
“여기로 출동한 팀이 우리 빼고도 다섯 개야. 그중에 일찍 도착했다가 들통난 팀이 있나 보다.”
AI 전지인이 수습 요원 김 과장과 이 과장의 머리 위에 화살표를 띄웠다.
- 이 병아리들이 제일 의심스럽습니다.
“나도 그렇긴 한데, 다른 팀이 걸렸을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