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05화 (305/411)

305. 무장

나강인이 프프걸스를 감시하는 놈들을 슬쩍 보며 말했다.

“이 병아리들이 걸린 거였으면, 저놈들이 병아리들의 시선을 피해서 움직여야지. 그런데 이쪽을 경계하지도 않잖아.”

나강인의 옆에는 정보기관 수습 요원 두 명이 서 있었다. AI 전지인은 낮은 수준의 훈련병을 병아리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다른 팀이 걸렸을 거야. 그리고 아마.”

계속 힐끗거리면 거꾸로 상대에게 정보를 줄 수도 있다. 나강인이 놈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정면으로 보지 않고 시야의 경계에 슬쩍 보이기만 해도 AI 전지인이 어느 정도는 대응할 수 있다.

“저놈들은 아직 자기들이 들키지는 않았다고 판단했을 거야. 그러니까 저렇게 대놓고 움직이지.”

- 들켰다는 걸 깨달으면 프프걸스를 인질로 잡을 겁니다.

“그러겠지. 연예인을 인질로 잡으면 쓸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니까.”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시야 경계에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보고했다.

- 적 넷 중에 요원님을 보는 놈은 없습니다. 적은 아직 요원님이나 병아리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날 못….”

나강인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지인아. 저놈들이 차에서 내린 그놈들 맞아?”

AI 전지인이 즉시 SUV 차량에서 내린 놈들의 사진과 지금 보고 있는 놈들의 사진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얼굴이 달랐다.

- 중복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주차장 SUV에서 내린 여섯 놈이 전부가 아니었어. 이 유원지에는 다른 놈이 더 있어.”

- 정보가 부족하여 적의 규모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 여섯 놈은 그럼 어디 있지?”

-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젠장. 이러면 곤란한데….”

나강인이 수습 요원에게 물었다.

“야. 너희들. 총 가져왔냐?”

수습 요원 박 과장이 대답했다.

“아니요. 저희는 평소에는 권총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온 거라서….”

“됐다. 너희 기관에 작전 들켰다고 전해.”

“예? 저희가 들켰습니까?”

“너희가 들켰든 다른 팀이 들켰든, 이미 놈들이 눈치챘어. 그러니까 원래 임무는 접고 차라리 내 백업을….”

- 이 병아리들은 총이 없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차라리 신병들을 쓰십시오.

“아니다. 너희는 조용히 빠져. 병아리들이 낄 자리가 아니야.”

“저희도 잘할 수 있습니다!”

“음….”

나강인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둘이서 데이트라도 하는 척하면서 사람들 구경이나 해. 수상한 놈을 찾아내도 쫓아가지 말고 나한테 연락만 해라.”

“예! 그런 훈련 많이 했습니다!”

나강인은 두 사람을 유원지에 남겨두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전화를 걸었다. 박순기가 전화를 받았다.

- 나 사범님. 여기 프프걸스 애들 온 거 아십니까? 제가 좀 전에 봤는데….

“수색 활동 접고 주차장으로 후퇴해요.”

- 예?

“다른 팀이 왔다가 들켰습니다. 조용히 걸어와요.”

- 알겠습니다.

나강인이 차를 세워둔 곳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연인인 척하며 그곳으로 걸어왔다.

박순기가 물었다.

“나 사범님.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

“기관 다섯 곳에서 차 이사를 잡겠다고 각자 팀을 보냈는데, 먼저 도착한 팀이 있나 봅니다. 그 팀이 들켰습니다.”

“아니, 어디서 그런 바보짓을….”

“어느 팀이 들켰는지는 아직 모릅니다만, 경찰 쪽 팀일 수도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한 팀 보냈다던데요.”

“우리도 바보짓 자주 하죠. 예. 그럼요.”

나강인이 표정이 조금 나빠졌다.

“그런데 그놈들이 프프걸스를 감시하고 있더군요.”

“예? 걔들을 왜요? 그냥 연예인인데….”

“아직은 감시만 하고 있지만, 상황이 불리해지면 걔들을 인질로 잡을 생각이겠지요.”

박순기가 얼굴을 구겼다.

“젠장.”

민영희가 물었다.

“그럼 걔들부터 빼내야 하는 거 아녜요?”

“갑자기 빼내면 놈들을 자극할 겁니다. 다른 놈들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아서 그냥 덮칠 수도 없습니다. 일단 우리가 먼저 무장부터 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나강인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총 가져오신 분?”

박순기가 고개를 흔들었다.

“비번인데 가져왔을 리가요.”

민영희도 총이 없다.

“전 민간인이라 총은 정부의 의뢰를 받았을 때만 나와요.”

“그럼 어쩔 수 없이 이걸 써야겠군요.”

나강인이 자동차 트렁크를 열었다. 안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그중에서 접이식 부채처럼 생긴 물건을 꺼냈다. 그건 마치 쇠로 만든 30cm 자를 몇 개 겹쳐놓은 것처럼 생겼다.

박순기가 물었다.

“그게 뭡니까?”

나강인이 그 물건을 왼손으로 잡고 팔을 옆으로 강하게 흔들었다.

몇 겹으로 접혀 있던 철판들이 즉시 좌우로 주르륵 펴졌다. 철판과 철판 사이에 있는 부품들이 서로 얽혀 단단히 고정됐다.

접이식 부채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 순식간에 폭이 좁고 얇으며 길이는 긴 철판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 철판의 한쪽 끝에는 가느다란 끈이 감겨 있었다. 끈의 끝은 동그란 고리 형태로 묶여 있었다.

나강인이 기다란 철판을 구부리면서 반대쪽 끝에 끈을 걸었다.

박순기는 완성된 형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이건 활이잖습니까!”

기다란 철판이 순식간에 활처럼 변했다. 양궁과는 달리 아무런 보조장치도 붙어 있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활이었다.

“접이식 활입니다.”

“이거 쇠로 만든 활 맞죠?”

“몸체는 탄성을 높인 베타 티타늄 합금을 베이스로 만들었고, 활줄은 탄소섬유 복합체를 썼습니다.”

“와. 이런 건 어디서 파나요?”

“당연히 직접 만들었죠.”

“예? 직접…. 멋진 거 만드셨네요. 부채가 한 번 흔들어주니까 활로 변할 줄이야.”

“휴대성을 높이려고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활을 들고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민영희가 물었다.

“그런데 활만 있으면 어떻게 해요? 화살은요?”

나강인이 트렁크에 있는 작은 하드케이스를 열었다. 안에는 폭이 넓고 길이가 짧은 가죽 벨트가 들어있었다. 벨트 위에는 연필처럼 생긴 금속 원통이 주르륵 붙어 있었다. 그 벨트는 마치 탄띠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박순기가 당황해서 물었다.

“설마 이거 총알은 아니죠? 아니, 총알치고는 너무 긴데…. 거의 연필 사이즈인데….”

나강인이 그 벨트를 왼쪽 어깨에 감았다. 폭이 넓은 벨트가 왼쪽 가슴 일부를 보호대처럼 덮었다. 그런 후에 벨트에서 금속 원통을 하나 뽑았다.

가느다란 원통 속에는 더 가는 원통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끝부분을 뒤쪽으로 잡아당기자 마치 접이식 안테나가 길게 뽑히듯이 속에 들어있던 은색 원통들이 주르륵 딸려 나왔다.

나강인이 원통을 끝까지 뽑았다.

각각의 원통의 경계에는 굵은 쪽에는 작은 돌기들이, 가는 쪽에는 그 돌기와 맞물리는 구멍들이 있었다. 원통이 완전히 뽑히는 순간, 돌기들이 구멍과 결합하며 단단히 고정됐다.

제일 큰 원통의 뒷부분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원통의 표면에 원둘레의 절반 크기로 접혀서 붙어 있던 금속 두 개가 찰칵 소리를 내며 펴졌다. 꼬리 날개였다.

탄띠에 걸려 있던 화살촉이 마지막으로 빠져나왔다.

어느새 나강인의 손에는 기다란 금속 화살이 하나 들려 있었다. 앞쪽으로 갈수록 화살대가 가늘어졌지만, 제일 앞쪽에 있는 화살촉은 원래 굵기 그대로였다.

나강인이 말했다.

“화살은 여기 있습니다.”

박순기는 깜짝 놀랐다.

“헉! 세상에 접이식 화살이란 것도 있습니까?”

“만들었습니다.”

“예? 이것도요? 어떻게요?”

“제작소에 있는 장비들로 심심할 때 조금씩?”

“아. 하긴. 드래곤 플레이트도 만드시는데 이정도야 충분히 만들 수 있겠죠. 와. 그래도 이런 걸 실제로 볼 줄이야.”

그 금속 화살은 평소에는 연필 크기로 접어서 보관하다가 이렇게 쭉 뽑으면 화살 형태로 변한다. 한 번 화살로 만든 걸 다시 접으려면 제작 거점에 있는 도구를 사용해 분해해야 한다.

나강인은 그 화살은 트렁크에 넣어두고, 보관용 가방에서 접혀 있는 예비 화살을 하나 꺼내 탄띠 빈자리에 끼웠다.

민영희가 그 모습을 보며 걱정했다.

“나 사범님. 갑자기 무기를 챙기시는 이유가 혹시….”

나강인이 활을 접어 부채 형태로 만들며 대답했다.

“프프걸스를 감시하는 놈들은, 저 SUV에서 내린 놈들이 아닙니다.”

민영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우리 예상보다 적이 많은 거군요.”

“거기다 권총으로 무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박순기가 인상을 썼다.

“젠장. 우린 권총을 안 가져왔는데.”

“그러니까 일이 틀어졌을 때를 대비해 우리 화력을 보강해야죠.”

접이식 활은 접어놨을 때는 무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강인이 활을 접어 허리에 끼웠다.

그는 재킷도 하나 걸쳤다. 양궁용 가슴보호대 형태의 탄띠와 거기 끼워져 있는 화살들이 재킷 속으로 사라졌다.

박순기가 말했다.

“이야아. 그러고 계시니까 무장한 게 전혀 표가 안 나네요. 그 활 더 있습니까? 저희도 돕겠습니다.”

“활을 쏠 줄 압니까?”

“어…. 저는 아닌데….”

박순기가 민영희를 돌아보았다. 민영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조준기와 보조장치가 달린 활이라면 좀 쏘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활은 명중률이 너무 떨어져요.”

나강인이 말했다.

“그럼 두 사람은.”

그가 자동차 운전석 문을 열고 계기판 아래에 있는 레버를 조작했다.

작은 모터 소리와 함께 운전석 문짝 안쪽에서 철컥 소리가 몇 번 들렸다. 그런 후에 문짝 내장재가 툭 벌어졌다.

나강인이 그 안에서 넓은 판을 꺼냈다.

“어? 나 사범님. 그건….”

“방탄 방패입니다. 놈들이 총을 가졌으니까 두 분은 방패라도 있어야죠.”

“방탄이 되는 방패치고는 되게 얇….”

방패 표면의 무늬가 박순기의 눈에 익숙해 보였다.

“그거 혹시….”

“드래곤 플레이트 기술을 적용해 만든 방패입니다.”

“아니, 그 귀한 걸 잘 보관하시지 차 문짝에 넣어두셨….”

박순기는 말을 하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어? 그럼 이 자동차 문짝은 방탄입니까?”

“이중 방탄입니다. 차체 철판 안쪽 벽에는 방탄용 합금판을 붙였고, 내장재 쪽에는 이걸 넣어뒀습니다. 지금은 방패를 뺐으니까 바깥만 방탄인 상태고요.”

“와…. 그런 구조면 막 RPG도 막는 거 아닙니까?”

“완전히는 못 막아도 도움은 좀 되겠죠. 실험은 못 해봤지만.”

“아니, 무슨 승용차를 장갑차로 개조를 하시나….”

나강인이 방탄 방패를 뒷좌석에 놓았다. 그런 후에 조수석 문짝을 다시 열고 계기판 아래를 조작했다. 조수석 문짝의 내장재도 모터 소리와 함께 벌어졌다.

나강인이 거기서 꺼낸 방탄 방패도 뒷좌석에 놓았다.

“두 사람은 여차하면 이걸 써요. 프프걸스 애들을 보호하려면 이 방패가 필요할 겁니다.”

방탄 방패 안쪽에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손잡이도 있었다.

박순기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 안 생기는 게 제일 좋지만, 만약 문제가 생기면 걔들은 저희가 지켜줘야죠. 그런데 걔들을 지키다가 와이번 팔뚝 보호대가 망가지면 새로 만들어주실 거죠?”

“양팔 세트에 조끼까지 추가해드리죠.”

박순기가 활짝 핀 얼굴로 큰소리쳤다.

“그럼 저만 믿으시죠!”

“방심하다 총에 맞으면 아무것도 안 만들어줄 겁니다.”

“에이. 그동안 배운 총권도에 방탄 방패까지 있으니까 그 정도는 막아야죠.”

나강인이 트렁크에서 납작한 가면을 꺼냈다. 그가 그걸 손으로 잡고 툭 폈다. 납작한 가면이 펼쳐져 머리와 얼굴 전체를 보호하는 헬멧으로 변했다.

“이건 그냥 가지고만 있다가 상황이 벌어지면 써요. 드래곤 헬멧 시리즈인데 휴대성을 높인 겁니다.”

“아! 드래곤 시리즈면 이것도 방탄….”

“이건 접이식인 데다가 두상에 맞춰 만든 게 아니라 총탄에 직격당하면 뚫립니다.”

“예? 그럼 왜 굳이….”

“정면에서 직격당했을 때는 뚫리긴 하지만 생존율을 높여줍니다. 그리고 옆으로 빗맞는 탄 정도는 튕겨낼 수 있는데, 싫으면 말고요.”

“써야죠. 전 이 곰 가면으로 하겠습니다.”

민영희도 가면을 하나 집었다.

“전 여우 가면으로 할게요.”

나강인이 말했다.

“그럼 제가 먼저 가서 그놈들을 감시….”

갑자기 총소리도 들렸다. 단 한 발이었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젠장. 이렇게 빨리 쏠 줄은 몰랐는데.”

나강인이 접이식 활을 왼손에 쥔 채로 말했다.

“내가 먼저 적의 시선을 끌 테니까, 기회를 보다가 진입해서 사람들을 보호해요.”

두 사람이 얼른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들었다.

“방어는 저희한테 맡겨주시죠.”

***

프프걸스 리더 소지영은 갑자기 들린 총소리에 몸을 움츠렸다.

“뭐야? 뭔데?”

다른 멤버들이 그녀 옆에 모였다.

“가스통 터졌어?”

“교통사고 난 거 아냐?”

“유원지 안에서 교통사고가 어떻게 나?”

“놀이기구가 떨어졌나?”

“아. 그거인가?”

소지영이 움츠렸던 몸을 펴며 말했다.

“깜짝 놀랐네. 누구 안 다쳤으면 좋겠….”

갑자기 관광객들이 고함을 질렀다.

“총소리다!”

“누가 총을 쐈어!”

프프걸스 멤버들이 다시 몸을 움츠렸다. 멤버들이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나라에 총이 왜 있어?”

“저, 전쟁이야?”

“언니 생일에 주려고 산 선물이 내 방 서랍 속에….”

“야! 그런 이야기는 이럴 땐 하지 마! 무섭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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