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라이트닝 애로우 II
박순기와 민영희가 두 놈을 잡았지만, 아직 상황이 끝난 건 아니다.
제일 처음 프프걸스를 쏘려다 손에 화살을 맞은 놈이 정신을 차렸다. 쥐고 있던 권총은 손을 관통한 화살에 맞아 옆으로 날아갔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놈이 그 권총을 향해 달려가면서 왼손을 쭉 뻗었다.
뒤에서 프프걸스 리더 소지영이 두 사람이 던져둔 방패를 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조심해요!”
박순기와 민영희는 이미 적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이 권총을 잡는 게 더 빨랐다.
박순기가 삼단봉을 꺼냈다. 접혀 있는 삼단봉이라도 적에게 던질 생각이었다.
민영희의 손에는 어느새 초소형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칼이 워낙 작아서 그걸 던져도 적을 제압할 순 없지만, 제대로 맞히면 잠깐 시간을 벌 수는 있다.
그녀가 단검을 던지려는 순간, 갑자기 옆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은빛 화살이 총구를 돌리던 놈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으아악!”
적이 비명을 지르며 권총을 떨어뜨렸다.
박순기가 자세를 낮추고 적을 스쳐 지나가며 삼단봉으로 다리를 후려쳤다. 그 와중에 왼손으로는 바닥에 떨어뜨린 권총을 잡아챘다.
정강이를 얻어맞은 적이 비명을 지르며 반쯤 엎어졌다.
“아악!”
민영희는 점프해서 적을 뛰어넘으며 머리를 걷어찼다.
이번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적이 뒤로 나자빠져 기절했다.
두 사람은 적을 타격하고 지나가자마자 뒤로 돌아섰다.
이제 이곳에 있던 넷 중에 서 있는 놈은 없었다.
박순기가 몸을 일으키며 민영희의 손을 보았다.
“야. 너 그거 칼이냐?”
민영희가 얼른 단검을 숨기며 말했다.
“은장도야. 은장도.”
“딱 봐도 수리검인데?”
“에헤이. 지금 우리가 이런 사소한 걸 따질 때야?”
민영희가 나강인 쪽을 보았다. 박순기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나강인은 활을 내리며 프프걸스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두 사람은 바닥에 떨어진 다른 권총도 재빨리 챙겨서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런 후에 방패를 다시 잡았다.
민영희가 소지영이 들고 있던 방패를 넘겨받으며 말했다.
“지영이가 동생들을 지키고 있었네? 잘했어.”
민영희와 박순기는 여우 헬멧과 곰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소지영은 그녀가 누군지 확실히 깨달았다. 그녀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영희 언니?”
“응. 우리야. 구하러 왔다.”
“그럼 활을 들고 계신 저분은….”
“누구겠니? 뻔하잖아.”
나강인은 쓰러진 놈들을 향해 걸어가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배에 화살 맞은 저놈 죽었냐?”
나강인은 손을 노렸는데 화살이 빗나가서 배에 꽂혔다.
- 아직 안 죽었습니다. 화살에 맞은 위치만으로 판단하면, 아마 병원에 보내면 살 겁니다.
“아마?”
- 저놈을 뒤집어놓고 제대로 확인한 게 아니라 정확하진 않습니다.
“죽으면 곤란한데.”
- 화살은 교전 중에 빗맞은 겁니다. 게다가 민간인을 쏘려던 놈입니다. 죽어도 쌉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죽는 놈이 있으면 합수부에서 못 덮어준다고 했잖아. 그냥 응급조치로 목숨만 붙여….”
AI 전지인이 갑자기 경고했다.
- 적 병력 추가 확인!
총소리가 났던 건물에서 세 명이 튀어나왔다. 세 명 다 권총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에는 기다란 탄창이 꽂혀 있었다.
AI 전지인이 즉시 적의 무기를 분석했다. 무기 정보가 홀로그램으로 떴다.
- 9mm 반자동권총 2정, 소형 기관단총으로 개조한 자동권총 한 정. 자동권총에 대용량 탄창이 있습니다!
개조 자동권총은 기관단총처럼 연사로 쏠 수 있다. 대신에 연사로 쏘면 명중률이 떨어졌다.
세 놈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현장을 확인하더니 앞쪽에 있는 화단 뒤로 몸을 숨겼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차량 블랙박스에서 확인한 세 놈입니다.
방금 본 세 명의 얼굴 사진이 홀로그램으로 떴다. 셋 다 얼굴에 손수건을 복면처럼 쓰고 있었다. 그래도 눈 주변은 드러나 있었다.
그 사진 옆에 주차장 차량 블랙박스에서 확인한 놈들의 사진이 추가로 떴다. AI 전지인이 양쪽 사진의 눈 주변 부분을 확대한 후에 겹쳐 보여주었다.
나강인이 적을 향해 달려가며 말했다.
“세 놈 다 차 이사 부하들이야.”
나강인이 그들이 나온 건물을 보았다.
“저 안에도 문제가 생겼겠지.”
- 적의 공격이 예상됩니다. 서두르십시오!
나강인이 달리면서 박순기와 민영희에게 외쳤다.
“방패! 적 사격에 대비!”
즉시 두 사람이 방패를 단단히 쥐고 자세를 낮췄다. 프프걸스 세 명은 그 뒤에 바짝 붙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 엄폐물 뒤에 숨은 세 명은 프프걸스 쪽으로 사격할 생각이었다. 그쪽에 교전 흔적이 있는 데다가 방패까지 두 개나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방패 뒤에 무장 병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막 사격하려는 순간, 나강인이 달리면서 적 사격에 대비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고개가 나강인 쪽으로 돌아갔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적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일부러 그랬어!”
- 적은 엄폐한 상태입니다. 화살로 제압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 적이 수평으로 사격하면 빗나간 탄환에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이렇게 뛰잖아!”
적이 엄폐한 방향에는 줄타기 놀이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굵고 긴 나무들을 엇갈린 형태로 묶어 탑처럼 높은 지지대를 만들었고, 양쪽 지지대 사이에는 공중을 가로지르는 밧줄이 걸려 있었다.
그건 원래 이 유원지에 있던 시설은 아니다. 지역 행사의 흥을 돋우려고 주최측에서 줄타기 공연을 준비하며 설치한 것이다.
나강인이 그곳으로 달려가 한쪽 지지대의 다리를 밟고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 순간 적의 사격이 시작됐다.
첫 탄은 지지대 중간에 박혔다. 두 번째 탄은 지지대 위로 날아왔다.
나강인이 지지대 꼭대기를 박차고 더 위로 점프했다.
그는 공중을 날며 왼쪽 가슴 앞 탄띠에서 화살을 뽑았다.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그의 손에서 화살이 저절로 생기는 것처럼 보였다.
숨어서 전투를 보던 관광객들이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화살이 손에서 생겼어?”
“마법이야?”
나강인이 공중에서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금속 화살이 햇빛을 반사하며 날아갔다. 반사광 때문에 마치 빛으로 만든 화살을 날린 것처럼 보였다.
나강인이 지지대 꼭대기에서 다시 점프한 건 엄폐물 너머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화살이 위에서 아래로 날아가 방금 나강인을 쏜 놈에게 꽂혔다.
“으아악!”
한 놈은 잡았다. 그런데 그사이에 다른 놈이 몸을 최대한 숨긴 채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어디로 날아올지는 AI 전지인이 알려주었다. 나강인이 밧줄 위에 올라타 앞으로 달렸다. 반대쪽 지지대는 적들이 엄폐한 곳 근처에 있었다.
총탄이 옆으로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강인이 탄띠에서 다시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었다. 그러면서 밧줄을 콱 밟았다가 반동을 이용해 위로 점프했다. 그의 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고도가 높아지자 엄폐한 적을 쏠 각도가 나왔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활을 쭉 잡아당겼다가 시위를 놓았다. 화살이 햇빛을 반사하며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혔다.
두 번째 화살도 적중했다. 적이 고꾸라졌다.
AI 전지인이 다급히 경고했다.
- 기관단총을 주의하십시오! 적이 쏩니다!
나강인이 활을 쏜 직후를 노리고 기관단총 사수가 벌떡 일어나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소나기처럼 날아왔다.
숨어서 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나강인의 몸은 이미 아래로 뚝 떨어지던 중이다.
나강인은 밧줄을 밟자마자 앞으로 점프했다. 발끝에 반대쪽 지지대 끝이 걸렸다. 그 지지대를 밀어 차며 다시 뛰었다.
이번에는 위로 점프하지 않았다. 기관단총 앞에서 너무 높이 뛰면 피격 위험이 대폭 증가한다.
그는 앞쪽으로 날았다. 기관단총 사수의 머리 위쪽이었다.
총탄들이 위쪽으로 먼저 쏟아졌다가 나강인을 쫓아 아래쪽으로도 발사됐다. 하지만 총구를 돌리는 것보다 그가 날아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기관단총 사수는 당황했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나강인을 쫓아 총구를 위로 번쩍 들었지만, 자세가 너무 나빠서 조준이 어려웠다.
나강인이 기관단총 사수의 머리 위로 날아가면서 활을 쏘았다. 은빛 화살이 수직으로 내리꽂혀 적을 관통했다.
“으아악!”
기관단총 사수가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나강인도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의 앞에는 2층 건물의 대형 유리창이 있었다. 그 유리창은 활짝 열린 상태였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비행경로가 창틀과 충돌하는 코스입니다! 회피하십시오!
공중에서 방향을 바꿀 방법은 딱히 없다. 하지만 창틀에 충돌하기 직전에는 방법이 있다.
나강인이 왼손의 활을 앞으로 뻗어 창틀을 밀어쳤다. 합금으로 만든 활이 휘어지며 그의 몸을 조금 옆으로 밀었다. 수평으로 날아가던 몸은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그의 몸은 열린 창문을 통해 안으로 날아갔다가 2층 바닥에 떨어졌다. 몸은 계속 회전해 등부터 바닥에 충돌했다. 날아온 힘이 워낙 강해서 그 상태로 쭉 미끄러졌다.
그는 미끄러지던 몸이 멈추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등이 조금 뜨끈했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충격으로 드래곤 플레이트가 일부 손상됐을 수 있습니다.
***
박순기가 방패와 권총을 들고 앞으로 뛰며 외쳤다.
“네가 얘들을 지켜!”
민영희가 같이 뛰며 소리를 질렀다.
“제압이 먼저야!”
그들은 적이 엄폐물로 사용한 화단을 향해 달렸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방탄 방패로 몸을 방어하며 화단 옆으로 뛰었다. 그러면서 조금 전에 빼앗은 권총을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길 필요는 없었다.
박순기가 총구를 내리며 말했다.
“여긴 끝났네.”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세 놈 다 화살을 정통으로 맞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진짜 화끈하게 하셨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민영희가 건물을 보았다.
“나 사범님이 총에 맞은 건 아니겠지?”
“맞았어. 배에 한 발. 불꽃이 튀더라.”
“드래곤 플레이트?”
“어. 그거지. 최첨단 방탄조끼.”
“그럼 건물 안으로 뛰어들 때 어디 부러지지만 않으면 되는데….”
“그 실력에 부러질 리가 없잖아.”
“그치.”
***
유원지에 놀러 온 사람들은 갑자기 일어난 총격전 때문에 놀라고 당황했다. 겁먹은 사람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방패로 총탄을 막고 화려하게 적을 때려눕힌 두 사람도 대단했지만, 하늘을 날면서 화살을 쏘는 사람은 더 굉장했다.
“나 방금 엘프를 본 것 같아.”
“너 게임을 너무 많이 한 거 아니냐?”
“나무 위를 날아다니면서 활을 쏘잖아. 그게 엘프 아냐?”
“아주 엘프가 마법 화살도 쐈다고 하지?”
“그치만 화살이 빛났다고! 그 화살은 손에서 저절로 생겼고! 그거 분명히 라이트닝 애로우야!”
“응.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아니야. 엘프는 저런 SF 느낌의 헬멧 안 써. 난 진짜 SF 영화에서 튀어나온 줄 알았다.”
“그럼 뭔데?”
“뭐긴 뭐야. 히어로잖아.”
“아. 그건 인정.”
***
정보기관 수습 요원 김 과장이 멍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방금 뭘 본 거냐.”
수습 요원 이 과장도 입을 벌리고 있다가 말했다.
“나 사범님이겠지?”
“다른 사람이 저런 게 가능하겠냐?”
“아니, 원래 펄펄 나는 분인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사람인 줄 알았지. 저게 어떻게 가능해?”
“되는 거 봤잖아.”
“봐도 안 믿기니까 그러지. 사람이 어떻게 밧줄 위를 날아다니면서 활을 쏘고, 그 화살이 어떻게 다 정확히 박히냐고.”
“라스베이거스 서커스단?”
수습 요원 이 과장이 말했다.
“맨날 같은 동작을 연습하고 밑에 안전장치 깔아놓고 하는 것하고, 실전에서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면서 하는 게 같아?”
“다르지. 완전히 다르지.”
수습 요원 김 과장이 양손으로 자기 뺨을 때리며 말했다.
“난 처음부터 나 사범님은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 진짜 정체는 로봇일 거야. 저건 헬멧이 아니야. 이제야 본색, 아니, 기계 얼굴을 드러낸 거지.”
수습 요원 이 과장이 김 과장을 보다가 다시 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개소리가 진짜처럼 들리는 걸 보니까, 우리가 미쳤구나.”
“나만 미친 게 아니었어? 너도 미쳤어?”
두 사람은 현실적인 걱정도 들었다. 이 과장이 말했다.
“보고서 어떻게 쓰지?”
“위에서 안 믿겠지?”
“너 같으면 그런 보고서를 믿겠냐?”
“아니. 집어 던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