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08화 (308/411)

308. 활과 칼

AI 전지인이 드래곤 플레이트의 손상을 경고했다.

- 전면부에 1발 피격 직후, 등부터 떨어지면서 미끄러질 때 추가 손상이 발생했을 수 있습니다.

“그 정도 충격으로 손상됐다고?”

- 피격 직후인 데다가 바닥에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드래곤 플레이트 덕분에 요원님의 등이 멀쩡한 겁니다.

“어…. 그럼 방어력이 얼마나 저하된 거냐?”

드래곤 플레이트는 총탄을 막을 때마다 방어력이 줄어든다. 그러다 한계에 달하면 방어 기능을 잃는다.

- 드래곤 플레이트의 후면부에 손상이 없으면 방어력 저하는 미미합니다. 반대로 후면부에 심한 변형이 일어났으면 방어력 자체가 소멸했을 수도 있습니다.

“너도 모른다는 거네?”

- 정밀 분석이 필요합니다.

“분석할 시간 없는 거 알잖아.”

- 그러니까 더 조심하십시오.

조금 전에 건물에서 세 명이 나왔다. 그놈들은 잡긴 했지만,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사람은 여섯이라는 게 문제다. 나머지 세 명이 이 건물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건물 내부 상황은?”

- 소음 정보를 수집 중입니다. 2층은 깨끗합니다. 아래층에서 다수의 인기척을 감지했습니다.

“1층 내부 구조는?”

AI 전지인이 건물 1층 내부 구조를 묘사한 3D 이미지를 생성해 2층 바닥에 깔았다.

나강인이 아래쪽을 보았다. 마치 유리로 만든 투명한 바닥을 통해 아래층을 보는 것 같았다.

- 1층 내부 구조는 유원지의 안내판 정보에 현재 확인한 2층 구조를 추가로 반영해 보완했습니다. 다만, 분석에 설계도면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 모습은 예상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감안해서 참고할게.”

홀로그램으로 표현된 아래층 모습에 사람 모습이 하나씩 나타났다. 소음을 분석해 위치를 정확히 알아낸 사람은 파란색 윤곽선으로, 확실하지 않은 경우는 노란색 윤곽선으로 표시됐다.

- 1층에 있는 인물이 소리를 전혀 내지 않는 경우는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감안해야지. 그런데.”

나강인이 아래층 중간을 가리켰다.

“저기가 제일 넓은 곳인데, 이쪽에 세 놈, 저쪽에 세 놈 말이야. 양쪽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것 같지?”

그가 가리킨 곳은 건물 안에서 제일 넓은 중앙 공간이다. 그 공간 양쪽에 두 팀이 각각 세 명씩 따로 모여있었다. 그들의 윤곽선은 파란색이었다.

“바깥에도 차 이사 쪽 세 놈하고 처음 보는 네 놈이 따로 움직였잖아. 같은 소속이 아닌가 본데? 일단 저것들은 빨간색으로 바꿔.”

파란색이던 여섯 명의 윤곽선이 즉시 빨갛게 변했다.

1층에는 사람 모양 윤곽선이 몇 개 더 있었다. 그들은 소리를 조금밖에 내지 않아 정확한 위치 파악이 어려웠다. 그래서 노란색으로 표시됐다.

“겁이 나서 조용히 있는 사람이라면, 민간인이겠지.”

-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이 건물의 축소 모형을 띄워봐. 외벽 없이 내부가 보이게 해서.”

곧바로 건물 외벽이 제거된 모형 영상이 AR 렌즈를 통해 눈앞에 나타났다. 나강인이 그 영상을 손으로 돌렸다. AI 전지인이 그의 손짓을 인식해 영상을 회전시켰다.

“이런 상황이면 활을 쏘기 어렵겠는데?”

활은 원거리 단발 투사 무기다. 방아쇠만 당기기만 하면 총탄이 나가는 권총과는 연사력 차이가 크다.

- 화살 잔량도 부족합니다.

왼쪽 어깨에 걸친 탄띠는 길이가 짧아서 접이식 화살을 많이 끼워둘 수가 없다. 게다가 밖에서 치른 전투에서 화살을 여러 개 소모했다.

지금은 탄띠에 남은 화살보다 적의 숫자가 더 많았다.

- 실내 근접전을 추천합니다.

“민간인들이 적과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바깥에서 상대한 놈들은 권총은 물론이고 개조 기관단총까지 있었다. 아래층에 있는 놈들도 최소한 권총은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면 나도 무기가 필요한데 말이야.”

***

이 건물 1층에는 널찍한 홀이 있었다. 아주 넓은 건 아니지만 작은 행사 정도는 치를 수 있는 규모였다.

그 공간 곳곳에는 기둥이나 초대형 화분, 상품 진열대처럼 몸을 숨길 엄폐물이 있었다.

한쪽 엄폐물 뒤쪽에는 승합차에서 내린 세 사람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반대편 계단 앞쪽에도 세 명이 각자 엄폐물에 의지한 채 손에 권총을 쥐고 있었다.

승합차에서 내린 세 사람 중에 우두머리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기둥 뒤에서 그 남자가 말했다.

“이봐! 오해는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고 나서 풀자고!”

반대편에서 욕설과 함께 다른 소리가 나왔다.

“함정을 판 새끼들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우리가 그런 거 아니야!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우리 애들을 셋이나 내보냈잖아!”

“나가서 우리 애들을 다 쏴버렸겠지! 기관단총 소리 다 들었어!”

“아니라니까 이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

반대편에서 총성과 함께 총탄이 날아왔다. 기둥에 총탄이 꽂히면서 콘크리트 조각이 깨져나갔다. 상대가 욕을 내뱉었다.

“닥쳐! 이 새끼야!”

***

나강인은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아래쪽 상황을 확인했다.

“저것들이 여기서 거래라도 하다가 뭔가 틀어졌나 보다.”

- 한쪽에서는 오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쪽은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밖에서 기관단총 소리까지 들렸으니까 더 급해졌겠지. 놈들이 혼란에 빠진 건 우리한테 좋은 일인데.”

1층에는 민간인들도 있었다.

“저놈들을 그냥 덮치면 빗나간 총탄이 문제가 되겠지?”

- 총이 너무 많습니다. 총격전이 벌어지면 높은 확률로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겁니다.

“그렇다고 저대로 놔두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결국 사람들까지 쏠 거다.”

-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지금 생각하는 중….”

갑자기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한 놈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뭐라고 하는지 들려?”

- 목소리가 너무 작습니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 도청은 어렵습니다.

통화는 짧게 끝났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통화할 때보다는 커서 AI 전지인이 도청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강인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외국어였다.

“통역해.”

AI 전지인이 통역한 음성을 들려주었다.

- 2팀이 전멸했다.

- 저 새끼들 짓입니까?

- 아니. 저쪽에서 내보낸 놈들도 전멸했어.

- 예? 그러면 2팀이랑 서로 쏘다가….

- 그게 아니다. 제3세력이 있다. 양쪽을 전멸시킨 놈이 2층으로 들어왔다.

- 그럼 지원은 안 옵니까?

- 일단 대기시켰다.

- 어쩌죠?

- 이 사태가 저쪽 새끼들 짓이 아니라니까, 손을 잡고 여길 빠져나가야지.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외부에서 이곳을 감시하는 놈이 있어.”

- 적의 정찰병으로 추측됩니다.

“여기를 조사하러 온 팀이 왜 발각됐나 했더니, 적 정찰병에게 걸린 거야.”

- 적이 기다리는 지원병력이 그 정찰병일 겁니다.

나강인이 활에서 활줄을 풀었다. 휘어져 있던 활이 일직선으로 쭉 펴졌다.

이 접이식 활의 재질은 탄성이 뛰어난 합금이다. 활대는 두께가 얇고 폭은 좁지만 길이는 제법 길었다.

일직선으로 펴진 활은 마치 검처럼 변했다. 비록 칼날은 없지만 전체가 금속으로 되어 있어 장검처럼 쓸 수 있다.

“저놈들이 손을 잡으면 민간인들이 위험해. 바로 치자.”

- 동의합니다. 적이 목격자를 제거하려 하기 전에 공격해야 합니다.

나강인이 적의 위치를 확인하고 공격 순서를 정했다.

“계단 앞에 있는 놈들부터!”

나강인이 계단을 달렸다.

1층은 AI 전지인의 예상보다 장애물이 많았다. 적은 기둥이나 초대형 화분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민간인 몇 명도 그런 엄폐물 주변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민간인들의 위치가 좋지 않았다. 양쪽 세력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한쪽은 엄폐물로 막아도 다른 쪽은 총구 앞에 그대로 노출된다. 그러면 빗나간 총탄에 맞을 수 있다.

나강인은 계단을 벗어나는 순간 모퉁이를 발로 박차며 왼쪽으로 날아갔다. 적의 위치는 미리 파악해 두었다. 그가 날아간 방향에 한 놈이 있었다.

나강인이 날이 없는 철검을 내질렀다. 검의 끝이 적의 목을 푹 찍었다.

“켁!”

날이 없는 칼이라 관통하진 않았지만, 기절시키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타격이 들어갔다. 목을 찔린 놈이 푹 고꾸라졌다.

계단 반대쪽에 있던 놈의 총구가 즉시 나강인 쪽으로 움직였다.

AI 전지인이 적의 예상 사격 방향을 표시했다. 나강인이 옆으로 뛰었다. 거의 동시에 적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탄은 그의 잔상만 뚫었다.

나강인이 적의 옆쪽 대각선 방향으로 고속으로 이동했다. 적이 급히 발사한 총탄이 나강인의 바로 뒤쪽으로 날아갔다.

AI 전지인이 재빨리 경고했다.

- 민간인 피격 위험 증가!

이런 식으로 계속 피하면 뒤쪽에 있는 민간인이 맞을 수 있다. 어차피 피하기만 할 생각도 없다.

나강인이 바닥을 박차며 직각으로 방향을 꺾었다. 방금 사격한 놈이 있는 쪽이었다.

적은 방아쇠를 당기면서 나강인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정면에서 쐈기 때문이다.

그런데 AI 전지인은 적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총탄이 어느 궤도로 날아갈지도 예상할 수 있다.

나강인이 몸을 옆으로 젖혔다. 총탄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동시에 나강인의 날 없는 철검이 공간을 갈랐다. 가르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 속도면 날이 없는 칼로 베어도 상대는 목이 부러진다.

나강인이 철검을 옆으로 조금 비틀었다.

금속으로 만든 검의 평평한 옆부분이 적의 얼굴을 강하게 때렸다. 탄성이 좋은 철검이 곡선으로 휘어졌다.

“켁!”

위력을 줄이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충격은 아니다. 적은 팽이처럼 돌면서 나자빠졌다.

철검은 낭창낭창 흔들리다가 도로 쭉 펴졌다.

이제 이쪽에 있는 놈은 두목 하나뿐이다. 두목은 다른 엄폐물 뒤에 있어서 바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가 엄폐물 옆으로 돌아와 총구를 나강인 쪽으로 향했다.

나강인이 대형 화분을 박차고 점프했다. 그러면서 두목을 공중에서 덮쳤다.

두목이 권총을 위로 번쩍 들며 방아쇠를 당겼다. 빗나가기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탄피 속 장약이 터지며 총탄이 날아가 나강인의 배를 때렸다. 배에서 불꽃이 튀었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두목의 머리를 철검으로 내리쳤다.

“켁!”

두목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털썩 꿇었다가 머리를 앞으로 박으며 엎어졌다.

나강인은 두목을 치고 앞쪽으로 날아갔다가 바닥에 몸통부터 떨어졌다. 그는 그대로 쭉 미끄러져 기둥 뒤로 숨었다.

AI 전지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요원님! 적 권총의 사격 방향을 경고했잖습니까!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일부러 맞아준 거야.”

- 지금은 드래곤 플레이트의 잔존 방어력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 일부러 피격당하지 마십시오!

나강인이 고통을 참는 소리를 냈다.

“끄으으!”

- 드래곤 플레이트가 총탄을 방어했습니다. 아플 리가 없습니다.

“아픈 척하는 거야.”

반대쪽에 있던 세 명은 나강인이 갑자기 나타나 상대편을 습격하는 걸 보고 당황했다.

“저 이상한 헬멧 쓴 새끼 뭐야?”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당황한 데다가, 어쨌든 상대편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서 구경만 했다.

그러다 그들은 상대편 두목이 나강인을 향해 한 발을 쏘고 고꾸라지는 걸 똑똑히 봤다.

“어? 저 새끼 배에 한 방 맞았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점프해서 달려드는 놈한테 권총을 위로 들어서 쐈으니까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권총탄은 드래곤 플레이트가 방어했다. 총탄이 충돌할 때 불꽃이 살짝 튀긴 했는데, 그 세 명은 나강인의 뒤쪽에 있어서 복부의 불꽃을 볼 수가 없었다.

선글라스가 실실 웃었다.

“흐흐흐. 저 헬멧 새끼 말이야. 기둥 뒤에서 죽어가는 소리를 내는 걸 보니까 배에 제대로 맞았나 보다.”

“설마 방탄조끼를 입은 건 아니겠지요?”

“내가 봤는데 재킷 속에 옷이 얇았어. 아니야.”

선글라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두 명도 권총으로 나강인이 몸을 숨긴 기둥 쪽을 겨누었다.

선글라스가 명령했다.

“가서 헬멧 쓴 놈 상태 확인해. 그리고 저쪽 새끼들도 죽었는지 제대로 확인하고. 새끼들이 내가 배신한 거 아니라니까 사람 말을 믿지를 않아.”

“헬멧 쓴 놈이 저항하면 어떻게 하죠?”

“이 상황에서 어쩌겠냐? 목격자를 남기겠냐? 쏴버려.”

“예!”

민간인들은 그 말을 듣고 겁에 질렸다. 그들도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부하 둘이 나강인 쪽으로 총을 조준한 채 접근했다.

“이 새끼 진짜 죽었나?”

“그러면 좋겠….”

나강인은 검에 다시 활줄을 걸고 탄띠에서 화살 두 발을 뽑았다. 화살 한 발은 활시위에 걸고 다른 한 발은 손에 쥐었다.

AI 전지인이 발소리를 이용해 적의 현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표시했다. 나강인은 기둥 뒤에서 적이 어디까지 접근했는지 확인했다.

- 민간인들이 겁에 질렸습니다. 적이 민간인을 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서두르십시오!

그 상업용 건물의 1층은 천장이 꽤 높았다.

나강인은 적의 위치를 확인하다가 기둥 뒤에서 위로 훌쩍 점프했다. 그는 천장 가까이에서 다리를 굽혔다가, 기둥의 장식물을 박차며 옆으로 튀어나갔다.

두 놈은 나강인이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진 줄 알았다. 그래서 권총을 아래쪽으로 겨누고 접근했는데 나강인이 갑자기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나강인이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를 놓았다. 화살이 아래로 내리꽂혀 적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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