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최지혜
나강인이 상업용 건물의 천장 가까이에서 활을 쏘았다. 화살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혔다.
그런데 화살에 맞은 건 먼저 다가온 놈이 아니라 그 뒤에서 경계하던 놈이다.
“으아악!”
뒤에 있던 놈이 금속 화살을 맞고 고꾸라졌다.
두 놈 다 나강인이 바닥에 쓰러졌다고 착각하고 권총을 아래로 향하고 접근했었다. 그런데 나강인은 위에 있다.
기둥 가까이에 있던 놈은 나강인을 쏘려면 권총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야 한다.
그놈은 황급히 총을 높이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머리 바로 위로 날아가 천장에 박혔다.
늦었다. 나강인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적의 뒤쪽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천장을 박찼다. 날아가는 방향이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뀌었다.
그는 처음부터 화살 두 대를 손에 쥐고 있었다. 한 대는 방금 발사했지만 오른손에는 화살 한 대가 더 있었다.
그 화살을 활에 다시 걸고 쏠 시간은 없다. 쏘려고 들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며 오른손의 화살을 옆으로 뻗어 아래로 내리꽂았다. 화살촉이 적의 어깨를 뚫었다.
충분히 강한 힘만 있으면 손으로 찍어도 활로 쏜 것처럼 금속 화살을 박아넣을 수 있다. 지금은 아래로 뛰어내리는 힘까지 더해졌다.
화살에 어깨를 관통당한 적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아악!”
AI 전지인이 다급히 경고했다.
- 적 사격합니다!
적은 아직 한 놈이 더 남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쓴 놈이 반대편에서 권총으로 나강인을 조준했다.
나강인은 적의 어깨에 화살을 박으면서 몸을 도로 회전시켜 바닥 쪽으로 발이 가게 착지했다.
적이 나강인의 움직임을 쫓아 총구를 움직이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즉시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총탄이 방금 어깨에 화살을 맞은 놈의 팔을 관통했다.
나강인이 발로 바닥을 박찼다. 그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미끄러졌다.
선글라스도 옆으로 뛰면서 방아쇠를 다시 당겼다. AI 전지인이 총탄이 날아올 방향을 예측했다.
선글라스의 사격은 이곳에 있던 다른 놈들보다 훨씬 더 정확했다. 그래도 이번 총탄까지는 피하려면 피할 수는 있다.
그런데 지금 상태에서 몸을 무리해서 비틀어 피하면, 공격권을 적에게 완전히 넘겨주게 된다.
그러면 나강인만 위험해지는 게 아니다. 적이 많이 쏘면 쏠수록 민간인들도 피격 위험이 증가한다.
나강인은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적의 조준이 정확하다는 걸 알지만 무시했다. AI 전지인이 경고 표시를 띄웠다.
적이 방아쇠를 당겼다. 장약이 폭발하며 9mm 총탄이 발사됐다. 총탄이 옆으로 이동하는 나강인의 옆구리를 때렸다.
완전한 상태의 드래곤 플레이트는 권총탄 몇 발 정도는 충격을 흡수하며 방어할 수 있다. 총탄이 충돌하자마자 금속 방어구의 표면에서 불꽃이 튀었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경고했다.
- 잔존 방어력 계산 불가능! 좀 피하십시오!
걱정과 달리 충격은 없었다. 드래곤 플레이트는 총탄을 완벽하게 방어했다.
하지만 다음 총탄도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 전에 반격해야 한다.
화살은 탄띠에 두 대가 남아 있지만, 그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 시간이 없었다.
대신에 지금 왼손에는 금속으로 만든 활이 있다.
나강인이 적을 향해 금속 활을 던졌다.
어차피 남은 놈은 하나뿐이다. 적이 금속 활에 손을 맞아 권총을 놓치면 간단히 잡을 수 있다. 적당한 충격만 받아도 그 틈에 덮치면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운이 나빴다. 적이 반사적으로 쏜 총탄이 날아가는 활을 때렸다. 금속으로 만든 활이 적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AI 전지인이 다급히 경고했다.
- 또 총에 맞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2층에서 굴렀던 게 드래곤 플레이트의 방어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아직 모른다. 모르는 상태에서 이미 두 발이나 맞았다. 밖에서 맞은 것까지 포함하면 세 발이다.
나강인이 옆으로 계속 움직였다. AI 전지인이 주변 상황을 홀로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이제 뒤쪽에 민간인은 없다.
적도 나강인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AI 전지인이 적의 사격 순간을 포착했다. 더 맞으면 위험하다.
나강인이 몸을 옆으로 휙 젖혔다. 총탄이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몸을 젖히며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댔다. 탄띠에 남아 있는 화살이 하나 잡혔다.
그는 그 화살을 뽑았다. 접이식 화살이 길게 늘어났다. 마치 손에서 은색 화살이 생기는 것처럼 보였다.
적이 다시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나강인이 허리에 힘을 주었다. 뒤로 기울였던 몸을 앞으로 숙이며 오른팔을 옆으로 뻗어 강하게 휘둘렀다. 마치 언더핸드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것처럼 화살을 손으로 던졌다.
손가락과 손목의 움직임이 화살의 회전력을 증가시켰다. 금속 화살이 레이저처럼 날아가 적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했다.
“끄악!”
적의 오른팔이 아래로 처졌다. 이제 오른손으로는 총을 들 수도 없고 방아쇠를 당기기도 어렵다.
적이 권총을 왼손으로 바꿔 잡으며 상품 진열대 뒤로 몸을 피했다.
나강인이 진열대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일대일 전투라면 바로 달려가서 덮치면 되지만, 지금은 민간인 쪽으로 총탄이 빗나가는 걸 경계해야 한다.
나강인이 아쉬워했다.
“젠장. 몸통에 꽂아버릴걸.”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드래곤 플레이트의 잔존 방어력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만, 다음 총탄에는 높은 확률로 뚫릴 겁니다. 절대로 맞으면 안 됩니다.
“알아.”
- 군용 신체 강화 시술을 받았다고 해서 피부에 방탄 능력이 생기진 않습니다.
“안다고.”
- 또 맞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잔소리 멈춰.”
갑자기 적이 피한 진열대 뒤쪽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꺄악!”
나강인이 걸음을 멈췄다.
“어? 지인아. 저기도 사람이 있었냐?”
- 상품 진열대가 커서 뒷부분을 직접 볼 수 없었습니다. 저곳에서는 소음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누군가 저 뒤에 정말 조용히 숨어 있다가 걸렸나 보다. 너무 조용해서 저놈도 몰랐겠지.”
적이 진열대 뒤에서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어깨까지 진열대 너머로 노출됐다.
“나한테 인질이 있다! 허튼수작하면 쏴버리겠어!”
- 적의 어깨 움직임을 분석했습니다. 팔을 옆으로 뻗은 상태입니다.
AI 전지인은 인질이 방금 지른 소리를 분석해 위치를 계산했다. 곧바로 상품 진열대 뒤에 사람 형태의 홀로그램 윤곽선이 나타났다.
- 적이 권총으로 인질을 조준하고 있습니다.
AI 전지인은 진열대 뒤에서 적이 민간인에게 권총을 겨누는 모습을 윤곽선으로 표시했다.
“한 방에 제압하지 못하면 인질이 총에 맞겠다.”
- 지금 요원님에게는 적을 한 방에 제압할 무기가 없습니다.
활은 이미 적에게 던졌다.
금속 화살로 조금 전에 적의 어깨를 뚫었지만, 그 위력은 마치 투수처럼 온몸을 사용해 화살을 던졌기 때문에 나왔다.
서 있는 상태에서 팔만 이용해 화살을 던져도 적의 손등 정도는 뚫을 수 있다. 그런데 권총을 쥔 적의 손은 상품 전시대 뒤에 있어서 손등을 노릴 수가 없다.
게다가 지금은 적이 인질을 조준한 상태다. 어설픈 위력으로 공격했다가 적이 방아쇠를 당기면 참사가 벌어진다.
선글라스를 쓴 놈이 진열대 뒤에 서서 나강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너 이 괴물 헬멧 새끼야! 너 정체가 뭐야!”
“이건 괴물이 아니라 드래곤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헬멧이다. 무식한 놈아.”
“이 새끼가! 너 경찰이나 특수부대지? 아니면 정보기관이야? 어쨌든 공무원이잖아! 이 여자 연예인이야! 이 여자가 죽으면 감당이 되겠어?”
나강인은 멈칫했다.
“어? 연예인?”
그는 이 유원지에서 연예인은 프프걸스밖에 못 봤다. 그런데 밖에 있는 프프걸스는 세 명뿐이다. 한 명이 모자랐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무대 옆에 최지혜가 없었습니다.
나강인이 멈칫하는 걸 본 선글라스는 기세가 살아났다.
“그래! 이 여자 요즘 뜨는 아이돌이야! 이런 여자가 죽으면 너랑 네 위에까지 다 잘리는 거야!”
“지혜 맞네.”
- 최지혜가 맞습니다.
나강인이 목을 좌우로 살짝 꺾었다.
“지혜를 구출하려면 저놈 총구부터 다른 방향으로 돌리게 해야겠는데….”
- 적은 왼손으로 권총을 쥐고 있습니다. 요원님의 시선을 조금 돌려 보십시오. 빈틈을 보이면 걸려들지도 모릅니다.
나강인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일부러 빈틈을 보여주었다. AI 전지인은 시야 경계의 영상을 분석해 적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그는 적의 권총 총구가 최지혜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 다른 쪽을 보는 척했지만,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걸려들지 않았다. 적은 여전히 권총으로 최지혜를 겨누며 물었다.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지나가던 활잡이다.”
“네가 그 정부 비밀요원이냐?”
나강인이 적을 다시 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날 아냐?”
선글라스를 쓴 놈이 쓰러져 있는 놈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순식간에 다섯이 당했어! 총도 아니고 겨우 활에! 이런 실력은 그 비밀요원밖에 없잖아!”
AI 전지인이 상황을 분석했다.
- 놈은 요원님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빈틈을 조금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총구 방향을 내 쪽으로 돌리지 않겠네. 젠장.”
- 적이 아는 정보의 수준이 낮습니다. 언론에 공개된 기사나 떠도는 소문 정도의 정보만 알뿐, 요원님의 개인정보는 모릅니다.
나강인이 해결한 사건 중에는 정부 특수요원이 주도해서 처리했다고 알려진 게 몇 개 있다. 합수부는 그의 정체를 숨기려고 일부러 그렇게 정보를 흘렸다.
“합수부에서 차 이사 쪽으로 내 정보가 새어나가지는 않았다는 뜻이지.”
정부기관에는 비밀요원에 관한 소문을 들은 사람은 꽤 있다. 하지만 나강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적다. 개인정보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강인이 적에게 물었다.
“야. 차 이사. 국가 중요기술을 쏙쏙 빼내는 정보력은 좋은데, 다른 쪽 정보력이 영 별로다?”
남자가 움찔하더니 다급히 외쳤다.
“오해다! 나는 차 이사님이 아니야!”
“어차피 넌 도망 못 쳐. 순순히 인정하고 항복해.”
“내가 아닌데 뭘 인정하란 거냐!”
“너 맞아. 네가 차 이사인 거 알고 왔어.”
“씨발! 난 진짜 차 이사님이 아니라고!”
나강인이 앞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적이 나강인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움직이지 마!”
- 적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최지혜를 쏠 확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나강인이 두 손을 들었다.
“야. 야. 진정해. 그래. 네가 차 이사가 아니라고 치자.”
“아니라고!”
“그러면 항복하는 게 낫잖아.”
“뭐?”
“지금 이 유원지에는 너를 잡겠다고 달려온 팀이 한둘이 아니야. 내가 널 놔줘도 유원지 밖으로 도망 못 친다고. 건물을 벗어나자마자 집중공격을 받을걸?”
“제기랄.”
“그런데 말이야. 만약 네가 차 이사가 아니라면, 아직은 총에 맞은 사람은 없으니까 심한 처벌은 안 받겠지?”
“그, 그건….”
“비싼 로펌 쓰면 징역 일이 년으로 끝날지도 몰라. 그 정도 돈은 모아놨지?”
선글라스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닥쳐! 내 손에 연예인 인질이 있으니까 나 하나쯤은 빠져나갈 수 있어!”
나강인이 오른손을 왼쪽으로 움직여 출입구를 가리켰다. 그 창문은 선글라스가 볼 때는 오른쪽에 있었다.
“저 입구에서 중무장한 특공대가 지금 당장 뛰어들어올 수도 있다고.”
나강인의 손이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올 때 어깨에 걸친 화살용 탄띠를 슬쩍 스쳤다.
탄띠에 딱 하나 남아 있던 접이식 화살은 그의 손이 스치는 순간 접힌 상태 그대로 사라졌다.
선글라스는 왼손에 쥔 권총으로 최지혜를 겨눈 채로 오른쪽 출입구를 향해 시선을 힐끗 돌렸다가 다시 나강인을 보았다.
- 적이 오른쪽 출입구와 요원님 양쪽을 번갈아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지혜가 있는 왼쪽은 볼 틈이 없었다.
반면에 나강인은 최지혜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AI 전지인은 최지혜가 내는 소음을 분석해 현재 자세까지 알아냈다.
최지혜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주저앉아있었다. 두 손은 바닥을 짚은 상태였다.
AI 전지인은 적의 어깨 움직임을 분석해 왼손의 권총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계산했다. 지금은 최지혜를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적의 어깨가 흔들립니다. 심리 상태가 더 불안정해졌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나강인이 말했다.
“내가 요즘 아는 사람들하고 건강 체조를 좀 하는데 말이야. 우리끼리는 2단계라고 부르는 체조야.”
프프걸스는 원래 오늘 자연 체조 2단계 연습을 하러 체육관에 와야 했다. 그런데 이 스케줄에 가야 해서 오늘 연습은 빠졌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나강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출입구까지 감시하는 중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였다.
지금 그의 머리는 나강인이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분석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들리는 그대로만 이해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갑자기 체조 이야기는 왜 하는데!”
“긴장 좀 풀자고 하는 이야기야. 그 체조에 학다리 자세라는 게 있어. 그 동작이 어떤 거냐면 말이야.”
나강인이 상체를 부드럽게 돌리며 양팔을 옆으로 뻗었다. 한쪽 다리도 슬쩍 들어 학다리 자세를 했다.
적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총으로 쏘기 딱 좋은 표적용 허수아비처럼 보였다.
AI 전지인이 갑자기 위험 표시 여러 개를 주르륵 띄우며 고속 음성으로 경고했다.
- 최지혜가 적을 공격합니다!
“뭐? 왜!”
-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