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10화 (310/411)

310. 최지혜 II

나강인은 경찰 특수부대가 당장 건물에 진입할 수도 있다는 말로 떡밥을 먼저 깔았다. 그런 후에 한쪽 다리를 드는 허수아비 자세로 빈틈을 대놓고 보여주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적이 총구를 프프걸스 막내 최지혜가 아니라 나강인 쪽으로 돌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적보다 먼저 최지혜가 움직였다.

최지혜는 주저앉은 상태로 두 손을 바닥을 짚은 상태였다. 그녀의 바로 앞에는 적의 총구가 있었다. 대신에 적은 나강인과 출입구를 경계하느라 그녀 쪽은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갑자기 등을 바닥으로 눕히며 허리를 들고 다리를 쭉 뻗어 위로 올려 찼다. 그동안 배운 자연 체조 덕분에 움직임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빨랐다.

바닥에 누운 덕분에 상체는 권총의 사선에서 벗어났다. 발로 올려 찬 곳은 적이 권총을 쥔 손이었다.

“억?”

적은 손을 걷어차이자마자 방아쇠를 당겼지만 최지혜는 이미 바닥에 누운 상태였다. 앞으로 발사된 총탄은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벽에 꽂혔다.

발을 걷어차인 충격에 권총 발사 반동이 더해져 적의 왼손이 위로 높이 올라갔다.

권총을 쥔 손이 전시대 위쪽으로 완전히 노출됐다.

나강인은 최지혜가 공격하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접이식 화살을 손끝으로 튕겼다. 연필 크기로 접혀 있던 금속 화살이 쭉 늘어나 순식간에 완전한 형태의 화살로 변했다. 마치 아무것도 없던 손에서 화살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 같았다.

나강인이 왼발을 앞으로 쭉 내디디며 옆으로 뻗었던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의 어깨와 허리, 다리까지 오른팔의 회전에 힘을 보탰다.

화살을 던질 때는 손목의 스냅까지 더했다.

손으로 던진 화살이 활로 쏜 것처럼 고속으로 날아가 적의 왼손을 꿰뚫었다. 그러고도 힘이 넘쳐서 적의 권총을 옆으로 날려버렸다.

이제 적의 손에는 총이 없다.

나강인이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상품 전시대 위로 점프하며 적의 목을 손으로 콱 잡았다.

“켁!”

나강인이 계속 전진했다. 목을 붙잡힌 놈은 그대로 쭉 끌려가 벽에 처박혔다.

나강인이 적의 왼손에 꽂힌 화살을 잡고 벽에 콱 박았다.

인테리어용 합판으로 만든 건물 내부 벽에 화살이 깊게 박혔다. 적의 왼손이 마치 표본실의 파리처럼 벽에 달라붙었다.

“으아악!”

적이 비명을 질렀다.

나강인이 권총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꽤 멀리 날아가 아무도 없는 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최지혜가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채로 허리와 오른 다리를 위로 번쩍 들고 있었다.

나강인이 인상을 썼다.

“야! 넌!”

최지혜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주, 죽는 줄 알았어요!”

“거기서 왜 권총을 차! 발차기가 빗나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이러라고 체조 이야기를 하신 거 아니에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최지혜는 요원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목소리와 행동으로 파악했을 겁니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행동한 것 같습니다.

나강인이 화를 냈다.

“내가 너한테 그런 걸 왜 시켜! 내가 한쪽 다리로 서서 빈틈을 대놓고 보이다가, 이놈이 날 쏘려고 하면 그때 잡으려고 했다고!”

“하지만 분명히 자연 체조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경찰특공대가 오기 전에 이놈이 여기를 빠져나가려면 날 쏘는 게 제일 확실해! 내 자세가 심하게 불안정해야 총구를 나한테 돌리지! 내 학다리는 일부러 그걸 유도한 후에 반격하기 위한 거였다고!”

최지혜가 다리를 슬그머니 내렸다.

“어머나. 말을 하시지.”

“이놈이 듣는데 어떻게 말을….”

나강인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민간인이 여러 명 있었다. 그들이 듣는데 계속 구박할 순 없다.

“후우.”

나강인이 최지혜에게 물었다.

“그래서, 안 다쳤냐?”

그녀는 꾸중 타임이 끝났다는 걸 깨닫고 표정이 밝아졌다.

“넹!”

“그럼 일어나서 사람들이랑 밖으로 나가. 밖에 아군이 있으니까.”

밖에는 박순기와 민영희가 있다.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도와드려요?”

“까불지 말고 나가라.”

“넹!”

그녀가 자리에서 겨우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와. 무서워서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지만, 제가 사람들에게 잘 말해볼게요!”

“어. 그래.”

최지혜가 천천히 걸어서 홀을 지나가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같이 밖으로 나가요! 여긴 이제 다 끝났대요! 나쁜 놈들은 다 잡았어요!”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최지혜를 따라 출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나가던 사람 몇 명이 나강인을 향해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비밀요원이라면서요? 진짜 멋졌어요.”

“여기 제 전화번호….”

최지혜가 명함을 꺼내는 젊은 여자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요! 그런 거 줄 시간 없어요! 가요!”

사람들은 밖으로 나갔다.

나강인이 선글라스를 쓴 남자의 목을 쥔 손을 멱살 쪽으로 옮겼다. 그런 후에 선글라스를 벗기며 말했다.

“야. 차 이사.”

남자가 기가 죽은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나, 나는 차 이사님이 아니라고 계속 말했는데….”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적의 표정과 음성, 몸짓을 분석했습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이 60%를 넘어섰습니다. 차 이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처벌이 약해지니까 진짜 차 이사라고 해도 일단 아니라고 주장하겠지.”

-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나강인은 차 이사의 대포폰을 추적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가 남자에게 말했다.

“너 계속 차 이사를 ‘차 이사님’이라고 부르네? 지금까지 잡은 다른 놈들은 그냥 ‘차 이사’라고 불렀거든?”

“헉!”

“지금까지의 상황에 그 호칭까지 추가로 고려하면, 설사 네가 차 이사가 아니라 해도, 대포폰을 대신 들고 다니는 최측근 부하 정도는 되겠지?”

남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눈동자도 흔들렸다.

나강인이 히죽 웃었다.

“그럼 넌 차 이사의 얼굴을 알겠네?”

***

건물 출입구 밖에는 경찰 박순기와 프리랜서 민영희가 방탄 방패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정보기관 수습 요원 김 과장과 이 과장도 근처로 다가왔다.

최지혜가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민영희가 헬멧을 벗으며 다급히 불렀다.

“지혜야!”

최지혜가 얼른 그녀에게 달려들어 와락 안겼다.

“언니! 죽는 줄 알았어요!”

“너 먹을 거 사러 갔다더니….”

“히잉. 매니저 오빠 몰래 매점에 갔는데 막 나쁜 놈들이 총도 쏘고 싸움도 하고….”

“괜찮아. 이제 다 끝났…. 안쪽 상황은 다 끝난 거 맞지?”

최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넹. 선생님 혼자 들어와서 싹 다 쓸어버리셨어요. 아! 한 놈은 아직 살아있는데 손으로 목을 잡고 계세요. 이렇게요.”

“잘 해결했을 줄 알았어. 전설이잖아.”

“네? 선생님이 무슨 전설이에요?”

“어…. 그런 게 있어.”

나강인이 마지막으로 붙잡은 놈을 질질 끌고 밖으로 나왔다.

구출된 다른 사람들은 이미 그 건물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간 후였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다가왔다. 수습 요원 두 명이 먼저였다. 두 사람이 나강인을 향해 엄지를 동시에 들었다.

“역시!”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곳에는 다른 팀도 있다.

합수부 외에도 차 이사를 잡겠다고 투입된 외부 기관 팀이 다섯 개다. 그중에서 이 유원지에 먼저 도착한 팀이 다가왔다. 팀장이 말했다.

“그놈이 차 이사입니까? 수고하셨습니다. 그놈은 저희가 데려가겠습니다.”

민영희가 앞을 막았다.

“잠깐만요. 일은 우리가 다 했는데 끝나고 와서 이러는 건 아니죠. 소속이 어디세요?”

팀장이 대답했다.

“경찰입니다.”

“와. 부르지도 않았는데 먼저 왔다가 들통나는 바람에 일을 어렵게 만든 팀이 어딘가 했더니, 경찰이었네요.”

민영희가 박순기를 보며 말했다.

“쪽팔리겠다?”

경찰 요원 박순기도 헬멧을 벗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리며 투덜댔다.

“왜 나한테 그래?”

“왜겠냐?”

팀장이 인상을 썼다.

“뭐요? 우리가 들통나다니. 증거 있습니까?”

“증거는 잡아놓은 놈이 수두룩하니까 조사하면 나오겠지요?”

팀장이 앞으로 나왔다.

“됐고, 저놈은 우리가 데려갔습니다.”

수습 요원 두 명이 얼른 말했다.

“그건 아니죠. 우리도 있는데!”

팀장이 물었다.

“거기 두 분은 소속이?”

정보기관 수습 요원 김 과장이 머뭇거렸다.

“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빠져요.”

“아니, 그게 아니라….”

뒤늦게 도착한 팀이 두 개나 더 있었다. 그 팀들이 달려왔다.

“잠깐!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우리도 뭔가 해야죠!”

민영희가 박순기에게 말했다.

“야. 어쩐지 분위기가 점점 난장판이 될 거 같다?”

“그러게.”

구급차는 이미 여러 대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게 알려지면서 근처 경찰서와 군부대에서도 지원병력이 출발했다.

그 많은 인원이 이곳에 도착하면 더 난장판 될 게 뻔했다.

나강인이 합수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상황이 심각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팀이 지금 그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대충 잡았으니까 과속하지 마시고 천천히 오시죠.”

- 예? 대충 잡았다니요?

나강인이 현장을 쓱 둘러보았다.

“저기에 넷, 저기에 셋, 안에 다섯, 내 손에 하나. 일단 그 정도네요.”

- 마, 많은데요? 원래 여섯 명 아니었습니까?

“다른 패거리가 또 있더라고요. 그중 두 놈은 순기 씨하고 영희 씨가 잡았습니다.

- 아니, 둘을 빼도 열한 놈이나 되는데….

“두목은 순기한테 맡겨놓을 테니까 합수부가 와서 접수하시죠.”

- 금방 도착합니다! 그런데 두목이면, 혹시 차 이사를 잡은 겁니까?

나강인이 잡아놓은 놈을 내려다보았다. 화살에 두 대나 맞은 데다가 끌려 나올 때 반항하다가 더 맞아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놈은 자기가 차 이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네요? 그 말을 그냥 믿을 수는 없지만요.”

- 아. 이번에도 놓쳤….

“설사 아니라 해도, 차 이사 얼굴을 아는 놈입니다.”

- 헉! 그렇습니까!

합수부 형사가 운전하는 사람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 더 밟아! 무슨 일 생기기 전에 우리가 인수해야 해!

- 다 왔습니다! 저 앞입니다!

나강인이 통화를 마친 후에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놈들은 합동수사본부가 맡을 겁니다.”

형사팀장이 항의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경기도는 우리 관할입니다!”

“그거야 윗분들하고 협의하시고, 체포는 합수부가 했으니 그렇게 아시죠.”

나강인이 두목을 박순기에게 넘기면서 말했다.

“합수부 팀이 거의 다 왔다니까, 뺏기지 말아요. 이놈이 핵심입니다.”

“흐흐. 당연하죠.”

프프걸스의 다른 멤버들은 다가오지 못하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강인이 세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세 사람은 그 손짓을 보자마자 달려와 최지혜를 껴안았다.

“지혜야!”

“언니! 나 죽을 뻔했….”

“치킨 사줄게! 실컷 먹어!”

“그래도 돼?”

“치킨 맛 과자 사러 갔다가 큰일 난 거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사장님하고 담판을 지어서라도 치킨 먹게 해줄게!”

“그럼 나도 언니들 마시던 치맥….”

최지혜는 고등학생이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 넌 치콜 먹어.”

“쳇. 치사 먹을 거야.”

***

나강인이 현장을 벗어났다. 민영희가 방탄 방패를 들고 따라붙었다.

“어디 가시게요?”

“외부에서 정찰하던 놈이 있는데, 그놈도 잡아야 해서요.”

“네? 저렇게 쓸어버렸는데 아직도 남은 놈이 있어요?”

“가서 순기 씨나 도와줘요. 지금은 머릿수가 딸릴 텐데.”

“잠깐 와본 거예요. 순기를 어떻게 믿고 혼자 놔둬요? 갈 거예요.”

그녀가 왼손을 귀에 댔다.

“지원 필요하면 전화하세요.”

“방패 그거 나중에 반납해요.”

“넵!”

나강인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서 접이식 헬멧을 벗어 옷 속에 넣었다. 활은 접어서 허리에 끼웠다.

소지하고 있던 접이식 화살은 이미 다 소모했다. 화살용 탄띠는 재킷 속에 가려져 있어서 남에겐 보이지 않았다.

그 재킷은 2층에서 구르는 바람에 등 부분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는 재킷을 뒤집어 입었다. 흰색이던 옷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이러면 관광객들은 나강인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

나강인이 그곳을 벗어났다. 앞쪽 길을 지나가는 아이가 엄마를 조르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나도 가면 사줘!”

“무슨 가면?”

“아까 그 드래곤 가면!”

“그거 어디서 파는지 집에 가서 검색해 보자. 인터넷에서 팔겠지.”

“그거 쓰면 나도 막 날아다녀?”

“아니. 사람은 하늘을 못 날아.”

“나는 거 봤는데?”

“그 사람이 신기한 거야.”

“그 가면만 사면 나도 반짝이 쏠 수 있어?”

나강인은 접이식 화살을 금속으로 만들었다. 그 화살을 밝은 햇빛 아래에서 쏘면 빛을 반사해 반짝이며 날아간다.

아이 엄마가 말했다.

“세상에 빛을 쏘는 활은 없어.”

“쏘는 거 봤는데?”

“나도 그게 너무 신기해. 도대체 뭘 쏜 거지?”

나강인은 엄마와 아이가 지나간 후에 작게 말했다.

“지인아. 이 헬멧 디자인을 장난감 회사에 팔까?”

- 개발자가 누군지 널리 알려지면 수습이 되겠습니까?

“그냥 말해봤어. 장난감 회사에서는 짝퉁 헬멧이 나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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